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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청년

독거청년 2013.6.18. 


나는 독거청년이다. 혼자서 잠을 자고 혼자서 밥을 먹으며 혼자서 영화를 보고 혼자서 사랑을 한다. 나는 거의 모든 것을 혼자서, 그리고 나만의 공간 안에서 하고 있다. 

독거노인과는 다르다. 독거노인은 자신에게 주어졌던 인생을 다시 곱씹으며 하루를 보내지만, 나 같은 독거청년은 앞으로 주어질 인생을 어떻게 채울까를 고민하며 하루를 보낸다. 

독거청년이라는 것을 선택한 것은 물론 나 자신이다. 내가 원해서 독거청년이 되었고, 내가 원한 방의 크기를 선택해서 이 공간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것이다. 이 좁은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밖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지구는 얼마나 큰지, 서울은 얼마나 큰지를 알 겨를이 없다. 

다만 나는 좁은 책상 위, 그것보다 더 좁은 노트북 화면을 가만히 응시하며 타닥타닥 거리는 자판소리에 내 흥을 겨울 뿐이다. 

독거청년이 살아가는 방식 속에 늘 '혼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혼자라고는 하지만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밖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입고 나갈 옷이 있고 내가 어디든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통카드가 있다. 그리고 그 교통카드가 데려다주는 곳에는 사람이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 일부도 역시 독거청년이지만 그들은 그들을 독거청년이라는 지위로 부르지 않는다. 직장인이라던가, 공무원이라던가, 기자라던가 그럴 듯한 이름들로 자신들의 지위를 숨기고 있다. 내가 보기엔 다들 독거청년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독거청년의 삶을 그들은 하루하루의 바쁨 속에서 잊어가려고 노력하고만 있는 것이다. 

일본에는 '히키코모리'라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히키코모리는 집 안에서 모든 생활을 하며 사회와 완전한 단절을 도모하고 있는 사람들을 칭한다. 해가 뜨는 것이든, 지는 것이든 그런 자연환경의 변화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이 어떻게 퇴화되어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하지만 독거청년은 다르다. 독거청년은 자신의 삶이 일어설 수 있는 공간을 좁은 방 한칸으로 설정한 것 뿐이다. 서울 같이 넓고 큰 대도시에서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설정한 것 뿐이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밀알이다. 독거청년은 그 밀알을 뿌릴 공간을 찾은 것, 그 뿐이다. 

독거청년이라고는 해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 나같이 좁은 방에 주방도 없는 공간에서 사는 독거청년이 있는가 하면, 넓은 오피스텔이나 빌라에서 자신만의 작업공간을 갖거나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는 독거청년도 있다.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말그대로의 고시원에서 자신을 반겨주는 것은 텔레비전 한대 뿐인 독거청년도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독거청년의 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시점은 '미래 완료'이다. 우리말로는 성립하지 않는 시점이지만, 독거청년은 언제나 '미래 완료형' 문장을 적어내려가고 있다. "지금 이 생활이 끝나면 나는 더 나은 곳으로 이사를 갈거야." "지금 이 공부가 끝나면 나는 공무원이 될거야." "지금 이 과정이 끝나면 나는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거야." 하며 미래에 완성될 자신의 앞날을 그리고 기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독거청년이지만, 나는 청년이다. 아직은 젊다. 나이 29살이지만 젊고 혈기왕성하고 불의에 항거까지는 아니라도 항의할 줄은 알고 아직도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 나는 독거청년이지만, 좁은 방에 좁은 노트북에 좁은 생각을 가지고 살지만 나는 그래도 독거청년이라는 내 자리가 참 고맙고 또 쓸쓸하다. 

독거청년의 삶, 이것은 언젠가는 끝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