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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3. 11:02 내 생각

‘시멘트 핫도그’ 20161203

 


2009 1,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위앙짠)의 근교, 어느 한 초등학교에서 2주간의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유스클립(Youth CLIP)이라는 대학생국제교류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였고, 보건복지부의 후원으로 진행하게 된 봉사활동이었다. 2주간 내가 맡았던 업무는 다름 아닌 도서관 짓기였다. 그곳의 초등학교는 교사(校舍)와 화장실 건물만이 있는 곳이었기에 도서관을 세울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당시 현지에서 활동중이던 시민단체로부터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라오스에 가기 이전까지 내가 손에 벽돌을 잡아본 적은, 2006년 아동양육시설에서 공익근무를 할당시 식당을 증축할 때 뿐이었으므로 완전 초짜였다. 현지의 인부-라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이었다와 협력하며 도서관의 바닥이 될 곳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학교의 정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널찍한 공간이 형성된 뒤, 본격적으로 벽돌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평소 한국에서 길을 걷다가 집이나 건물을 새로 짓는 공사장을 지나가며 보았던 대로, 현지 인부들이 쌓아놓은 벽돌 첫 줄 위에 잘 게운 시멘트를 얇게 발랐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벽돌 줄을 만들기 위해 벽돌을 올려놓는 일이 반복되었다. 집중해서 몇 장 째 올리고 있었는데, 현지인 인부이자 2주간 봉사활동 끝에 친구가 된 뎅(빨갛다는 의미의 이름)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손사래를 쳤다. 뎅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라는 건 확실했다. 이어 뎅은, 자신이 들고 있던 망치로 내가 쌓아 올린 벽돌을 가볍게 툭 하고 쳤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하며 놀라기도 전에 벽돌은 힘없이 툭 하고 쓰러졌다. 나는 당황했다. 분명 벽돌은 세워져 있는 듯 보였다. 몇 장의 벽돌이 아주 보기 좋게 줄지어 서 있었고, 그것은 내가 익히 보던 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뎅은, 그렇게 해서는 벽돌이 제대로 붙어있지 못한다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잘 게운 시멘트를 한 움큼, 손에 들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판자에 덜어내더니 그것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꽤 두꺼운 핫도그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세워져 있던 벽돌 위에 툭 하고 올려놓았다. 그럼 벽돌 위로 핫도그 모양의 시멘트 덩어리의 반 정도가 드러나 보였다. 나머지 반은 아래 벽돌과 접착되어 있었다. 드러난 반 정도의 시멘트 핫도그 위에 새 벽돌을 올리자 새 벽돌의 무게에 의해 시멘트 핫도그는 납작 눌려졌고,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들이 삐죽하며 묻어 나왔다. 그것을 시멘트 칼로 긁어내자, 그때야 비로소 내가 흔히 보던 모습의 벽이 드러났다. 이어 뎅은 다시 망치를 들어, 처음에 내가 세웠던 벽돌을 넘어뜨리던 강도와 비슷해 보이는 강도로 그 벽돌을 툭 하고 쳤다. 벽돌은 움직이지 않았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가 잘 접착되어 있었기에 벽돌은 큰 흔들림이 없었다.

 

방법을 알게 된 나는, 2주간의 시간 동안 벽돌 쌓기에 나름의 조예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실제 공사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우스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여타 봉사자들보다는 빠르고 바르게 벽돌을 쌓아 올렸다는 것은 확실했다. 덕분에 내 손과 얼굴은 거칠어져 갔지만 말이다.

 

라오스에 가기 전까지 벽을 보면, 보기만 좋은 그 평평한 모습만 생각했다. 벽돌은 아주 얇게 바른 시멘트로도 충분히 붙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벽돌을 서로 붙이기 위해서는 보이는 양보다 보이지 않는 꽤 많은 양의 시멘트가 필요했다. 그것들이 끈끈히 붙어 무너지지 않는 벽이 되었고, 건물이 되었고 라오스에서는 도서관이 되었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 어떻게 이 사회가 유지되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면, 겉으로 보면 별다른 것 없이 멀끔해 보이지만 사람들 사이 사이에도, 제도 사이 사이에도 두꺼운 핫도그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 그것이 개인 간에는 사랑일 수도 있고 가족 안에서는 책임감과 존경일 수도 있고, 사회 전체로 보면 법과 제도든지, 민주주의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겉에서 볼 때는 어떻게 지탱되고 유지되는지 궁금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떤 시련이나 고난이 닥치면 결국 이런 끈적임과 접착력이 그것을 지켜준다. 사랑, 가족애, 책임과 의무, 민주주의라고 했지만 그것들 결국 하나로 묶으면 연대(連帶)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아껴 여기고, 누구 하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함께 손을 잡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무너지려 할 때 힘을 모아 버틸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주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시멘트 핫도그가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겉모습에 신경을 써온 듯 했다. 겉으로 멀끔하면 되니, 부실공사를 한 탓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붕괴했고, 씨랜드에서는 유치원생과 선생님을 포함한 2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세월호가 가라앉으며 사망자 295명과 실종자 9명이 발생한 것이다. 겉보기에 배는 바다에 침몰하지 않을 듯 보였다. 바다에 빠지더라도 나라가 승객들을 구해낼 것이라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어 사회적 연대는 원활히 진행되지도 않았다. 불필요한 색깔 논쟁과 유가족을 비난하는 글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만이라도 제대로 묻길 바랐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다시 말해 벽 안에 끈끈히 묻어 있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그것은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해 필요한 시멘트 핫도그 보다 더욱 중요하다.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공교롭게도 우리는 사회적 연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가 누구를 지킬 것인가. 누가 국가를 지킬 것인가. 지킬 것은 자기 자신 뿐인 세상에 살고자 하는가,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가. 산업화가 주었던 사회적 연대 배고픔과 민주화가 주었던 사회적 연대 민주주의를 넘어 무엇을 사회적 연대의 목적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해 보인다.

 

일을 마치고 난 뒤 뎅과 술을 마시면, 우리는 서로를 격려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가 느꼈던 연대감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난 뒤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애국심 따위가 아니라 우리 친구의 이야기이며,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며, 우리보다 먼저 더 나은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이 남긴 이야기들이다. 더 튼튼한 벽을 세울 것이다.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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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9. 00:24 내 생각

멈추어 있다기보다 뒤로 가는 느낌” 20161128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철역에 들어선다. 평소와 다른 점이란 하나도 없다.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찾을 것이며, 역까지 걸어오는 사이 누군가 나에게 보낸 메시지는 없는지 찾기도 할 시간. 스마트폰으로 무엇인가를 보는 사람들을 셀 수 없이 만날 것이며,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신경도 쓰지 않을 그 시간으로 들어가는 평소와는 다를 것 없는 일상.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 아니어도 괜찮다. 백화점이든 대형마트든 그것이 있었던 어느 곳이면 어디든지,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 보았을 일상적이면서 평소와는 다르지 않는 그 시간에 그것이 고장이 난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에스컬레이터. 때에 따라서는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무빙워크(moving walk)라고 해도 될 것이다.

 

지난 번에 왔을 때까지도, 아니 어제까지도 멀쩡하던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 나 있다. 내려가는 길이 그것을 타고 지나가는 것 뿐이기도 하고 고장난 게 대수냐 싶기도 해서 멈춰선 에스컬레이터 위에 한 발자국 올려놓으면, 기분이 묘하다.

 

항상 눈으로 인식하고 몸으로 확인하며 움직인다거나 내려간다거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 멈추어 서 있을 때, 몸과 마음이 느끼는 그 느낌. 쉽게 표현할 수는 없다. 내 발로 걷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왠지 조금 뒤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별한 일 없는 걸음걸이임에도 걸을 때 마다 요상한 전율을 느껴가며 걷다가, 멈춰선 에스컬레이터의 중간 즈음에 이르러서는 어느새 익숙해져있다. 마치 그것이 원래 처음부터 계단이었던 것처럼.

 

고장이 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 고치면 다시 에스컬레이터는 원래처럼 사람들을 아래로 위로 실어 나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멈추게 만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다시 그것이 제대로 동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그것이 움직이게 되면 사람들은 다시 예전처럼 그것을 타고 어딘가로 향해 움직일 것이다.

 

정치적인 용어라는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인류는 진보해왔다. 불과 100년 전과 지금의 삶은 얼마나 다른가. 1000년 전과는 또 얼마나 다른가. 오랜 시간이 아니어도 괜찮다. 10년 전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20년 전에 인터넷이 우리의 삶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옛날이라고 부를 정도의 과거.

 

지금까지 인류는,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진보를 거듭하며 자유를 확대하여 왔다. 기술이 그럴 것이고 예술이 그럴 것이고, 나아가 정치가 그럴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당일(20161128), 한국이라는 반도국가에서는 새로운 국정 역사교과서에 집필진으로 참여한 교수 및 교사의 명단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지금의 국정교과서재편찬이 있기 전, 국정교과서였던 역사교과서가 정부가 검정하고 인정하는 교과서로 변경된 적이 있었다.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검인정 역사교과서 중에서 선택을 하여 역사를 가르치던 때를 끝내고 다시, 국가가 일률적으로 편찬한 역사교과서를 사용토록 하고자 한지 1. 그 결과물이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멈추어 있다기보다 뒤로 가는 느낌이다. 과거에도 국정 역사교과서로 사용한 적이 있으니, 다시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하는 반론은, 인류의 자유 확대와 사상적 진취성의 발전을 멈추자 주장하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를 채택하자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너무 방종하게 나아가고 있으니 멈추자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에 그것은 뒤로 가는 것이다. 느낌만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뒤로 간다고 느낄 정도로.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가 확대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느껴오며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채 해결되지 않은 불평등과 부조리 등이 있지만, 성공했던 사례들을 기억하고 나아지려는, 나아가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이런 욕망들이 모여 자유와 민주주의의 향연을 준비하고, 예비해왔던 것이다. 이미 이룬 성취들을 지키고, 획득하지 못한 권리를 얻고 다하지 못한 의무들을 다할 마음가짐을 갖춰왔던 것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훼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길게 논할 것은 되지 못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현대인이라면 신문을 펼치거나 뉴스를 틀어볼 것이며, 미래의 사람이라면 20164분기의 사료를 살펴보길 바란다. 이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멈추어 있었던지를. 그리고 결코 그것은 멈추어있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고 복고(復古)적인 것이었던지를.

 

멈춰선 에스컬레이터. 그 위를 걸을 때의 묘한 느낌은 일시적일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다시피 반쯤 내려왔을 때 다시 그것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래서는 안된다. 익숙해질 것은, 지구가 멈추지 않고 돌고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유는 확대되어야 하고 권리와 의무는 정의로운 절차를 거쳐 획득되고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가 멈추면 모든 인류가 죽듯이, 우리의 운명을 우리의 손에 쥐도록 한 민주주의의 역사 앞에 멈출 수는 없다.

 

에스컬레이터가 멈추어 있다면, 그 위를 한 번 걸어보면 이 글이 이해가 더욱 잘될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이여, 그리고 지금을 역사로 만든 현대인들의 후손 미래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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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7. 20:19 내 생각

"불편한 것은 때론 도움이 된다." 20161114


고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였다. 일제시대부터 사용해오던 교사(校舍)가 낙후된 탓에 안전하지 않자 새롭게 교사를 짓기 시작했다. 신입생인 우리 1학년은 과거 도서관으로 사용하던 건물에 둥지를 틀었고, 그마저도 교실으로 사용할 공간이 충분하지 않자 옥상에 컨테이너 박스도 올려야 했다.


주목적이 도서관이었던 건물이었으므로, 그 건물에는 화장실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탓에 건설현장이나 관광지에서나 있을 법한 이동식 화장실이 건물 가까이 설치되었다. 개학을 막 했을 당시에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400명이 넘는 혈기왕성한 남학생이 싸대는 오줌과 똥의 냄새는 참으로 복잡한 심경을 들게 했다.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던 중 묘한 느낌이 들었다. 더워서 창문을 열고 수업을 들을 때였는데, 집중이 잘된다는 느낌이었다. 왜 이런지 궁금해서 화학시간에 선생님께 질문했다.


"쌤, 화장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처음에는 맡기 싫었다가 뭔가 계속 맡다보니 정신이 또렷해지는 거 같습니더. 이거 와 이런겁니꺼?"


내가 있던 교실은 2층이었고, 임시화장실은 건물 1층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창문을 열면 그 냄새가 정확히 우리 교실로 들어왔다. 화학 선생님은 창문을 열어보시곤, '암모니아 냄새네.' 라고 하셨다. 소변에서 나온 요산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암모니아가 된 듯 하시다면서, 암모니아 냄새는 사람한테 각성이나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셨다. 신기했다.


냄새나고 더럽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이, 그것을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게 삶에 도움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더러운 느낌은 들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을 때 창가에 서서 암모니아 냄새를 킁킁거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도 그렇다. 짧게 잡아도 1987년 이후 새롭게 형성된 민주주의 질서가 무너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일제식민지를 거쳐 해방된 사회에서 시간적으로 길고 더러운 독재와 여러 민주주의적 실험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 어디선가 더러운 냄새가 나고, 그 냄새를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100만명이나 모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 더러움이 우리가 스스로 뽑은 대통령과 정부에 의해서 자행된 것이기도 하고 또 방관한 책임이 있는 여러 주체들, 예를 들어 언론과 지식인 등에게도 있다고 하면 쉽게 대놓고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 더러움, 분명 도움이 된다.


민주주의가 일상이었고, 그것은 쉽게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이 피어오르던 더러움은 일부의 어떤 것이거나, 쉽게 정화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이상 참지 못할 것이 되니,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더러움이 있었기에 -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에 대한 파괴와 농단이 있었기에 - 그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더러움은 때론 도움이 된다. 내가 고등학교 때 느꼈던 암모니아의 더러움은 공부에 집중하게 도왔고,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민주주의와 헌정질서 파괴는 거의 모든 국민이 그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더러움이 도움이 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안고 살아갈 순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학교 건물은 새롭게 지어졌고, 그 건물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집중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무너진 민주주의와 헌법질서에서 그 더러움을 인내하며 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새롭게 민주주의의 건물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물론 새로운 건물에도 화장실은 있겠지만, 우리가 청소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더러움을 만들어야 할 것은 아닐까.


더러움은 때론 도움이 되지만, 그 더러움을 치우는 것 역시 사람들이다. '더러웠지' 라는 것을 기억하며,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 미래를 더욱 깨끗이 만들기 위해 노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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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1. 19:16 내 생각

'갑을 문화 그리고 계층 사회'  2015.1.21. 


JTBC의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한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고정 게스트로 합류한 네팔의 '수잔'이라는 청년이 고정 게스트가 되기 전 '인턴(?)'으로 한 번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다른 게스트와 MC들로부터 네팔의 문화와 종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카스트'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네팔 역시 힌두교 문화권이므로 카스트 제도가 있으며 결혼 상대의 결정, 직업의 결정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카스트 제도의 틀 내에서 정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 MC 뿐만 아니라 여타 국가들의 게스트들은 '아직도 그런 신분제와 같은 제도가!' 하는 놀라움과 동시에 문화다양성을 인정하는 뉘앙스를 동시에 풍겼다. 


최근 다양한 사건으로 불거지긴 했지만, 한국 사회의 '갑을' 문화는 역사와 전통이 깊다. 사실상 일본에 의한 갑오개혁이 시행되기 이전에 오천년의 역사는 신분제 사회였다. 크게는 왕족과 양반, 서민 그리고 노예(근대적 단어이긴 하지만.)로 구성된 신분 사회는 그 구조를 변경시키려는 일부의 노력들은 여지 없이 실패로 끝났다. 갑오개혁 역시도 신분제의 철폐를 통한 평등 사회 구축이라는 대의를 갖춘 듯 하지만 사실은 조선 말기 이미 문란해 지기 시작한 신분제를 국가가 나서서 그것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그를 통해 세수 확보를 도모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는 일본 식민정부에 소속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기준이 되었고, 몇몇 친일파는 기사 작위를 받아 조선 이전과는 또 다른 신분을 갖게 되었다. 


최근의 갑을 문화에 대한 비판에 대해, 마치 '역사적으로 갑을 문화가 정착된 국가이니 문제 삼을 것이 없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미군정기 이후 1948년 독립 이후 우리가 취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갑을 문화와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와 같은 계층 문화를 우리 스스로 내면화시키고 있다는 데 더욱 큰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핵심 의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자와 연구자들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니 좀 더 전문적인 해석은 여타 학자들의 저서를 통해서 확인해보길 바란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유주의의 핵심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정도 내에서 자신의 자유를 제한 없이 펼칠 수 있는 것이고, 민주주의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있어 다른 누구의 도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결정으로 그 방향을 이루는데 도와주는 사람을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서 뽑는 절차이며 과정이다. 이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는 본인은, 한국 사회의 갑을 문화, 계층 문화는 사실 자유주의도 아니며, 민주주의도 아닌 상황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주의의 핵심 의제를 시쳇말로 표현한다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라 요약할 수 있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개인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범위의 일들은 극소화되고 있다. 가령 예를 들어 화가가 되겠다는 어린 학생이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 어느 시대에도 경제적 지원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어떤 시대와 어떤 사회와 비교한다 할지라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지원은 막대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림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화가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경제적 지원은 일상화되어 있다. 화가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분야라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이미 '노력'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꿈들로 가득차 있다. 혹자들은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 사회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냐며, 노력을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 며 반문을 하겠지만 노력을 해서 성공한 그 일부의 사람들이 결코 한 사회의 평균이 될 수 없기에, 되지 않았기에, 여러 사람이 그 사람의 삶을 동경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 주었으면 한다. 누구나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다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라는 말에 부정적인 어투를 본인은 과감히 지울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이 그러한가.


민주주의 핵심 의제 역시 흔히 쓰는 표현으로 바꾸면, "내가 원하는 미래는 내가 만든다."라 할 수 있다. 작게는 구의원에서 크게는 대통령까지, 각자가 원하는 마을, 사람, 나라의 모습을 그리며 투표를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투표는 번거로운 일이 되었고, 누군가 우리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가진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있어도 사람들은 그러한 태도에 크게 반감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민주화 이전의 시대의 사람들은 그러한 태도에 자신의 목숨과 청춘을 바쳤지만 제도적으로 민주주의가 다시 한 번 확립된 이후의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내 통장의 잔고를 더욱 늘려줄 수 있는 사람을 유명인으로 만들어 주는 법'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세금 제도와 교육 제도를 끈질기게 요구했음에도 점점 더 삶과 유리되는 방향으로 정치가 이끌려 가는 것은 그러한 '올바름'이 '경제적인 혜택'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한국 사회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경제에 종속된 '카스트' 사회가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카스트 제도에 대한 검색을 해 본 결과 "학벌 사회, 한국 사회 카스트 만들어" 등의 글을 읽었다. 대학 서열이 한 사람의 신분이 되어 버리는 위험성을 경고한 글이었지만, 이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일 수 밖에 없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명문 대학을 나왔다고 그 사람이 카스트의 정점이나 그 언저리에 머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어떤 대학을 나왔든 그 사람이 사장이 되거나, 의사, 변호사, 판사 등 사회적 지위와 동시에 경제적 혜택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대학의 이름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같은 대학 내에서도 '인문계열' 학생과 '공학 계열' 학생들 사이의 취업 시장에 있어서의 카스트 제도는 만연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어느 덧 사람들은 한국 사회를 '계급은 없지만 계층은 있는 사회' 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계층이 어디 인지를 자신 스스로, 그리고 타인을 통해서 확인받기 시작했다. 대기업 직원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를 '미생'이라 부르기도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기도 하며, 결혼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 등 개인적인 부분에 까지 그 계층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지는 대기업 총수와 그 일가들의 행태를 보며 '저들도 저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라는 연민의 시각 마저 보이며 일부 사람들의 경제력-권력 독점을 내면화시켜버리고 있다. 


앞서 한국 사회의 갑을 문화-계층 문화의 역사성에 대해서 잠시 언급을 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의 갑을 문화-계층 문화를 역사적 '유물'로서 보전하자는 취지가 결코 아니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하지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감히 역사를 만들 수 있는 힘이 개인 각자에게 주어져 있다면, 우리는 100년 뒤, 200년 뒤의 역사가들에게 최소한 이런 한 줄의 글은 쓰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2000년 대의 한국은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와 유사한 경제적 카스트 제도를 강화하며 유지하여 왔다." 그리고 그 카스트 제도가 활성화 되는데 있어 가장 주체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일부 대기업 총수나 권력층이 아니라, 99%라 스스로를 위치 짓는 민주주의 시민들에 의해서 성립-활성화되었다.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이며,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평등을 훼손하는 제도라고 욕하기 이전에 우리는 스스로 카스트 제도의 나쁜 원형을 우리의 손으로 소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이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은 힌두교 카스트 제도 내에 같은 계급끼리의 연대 혹은 연대 의식을 우리 사회는 결코 가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 때문이다. 어느 사이인가 연대는 '전경련'이나 '국회의원 의원회관'에서나 통용되는 말이 되었지, 필부필부의 집이나 한적한 도로 위 혹은 어린 아이가 뺨 맞아 쓰러지는 어린이집 숫자 매트 위에서 찾을 수 있는 말은 아니게 되어버렸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은 처음 읽는 사람에게 길고 지루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찾아야 할 연대, "잃어버린 연대를 찾아서"라는 책이 나온다면, 프루스트의 저 책보다 훨씬 더 긴 시간과 지루함 그리고 때로는 일부 몇몇의 피가 붉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야아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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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oodman 2015.04.10 00:43  Addr  Edit/Del  Reply

    글 잘읽었습니다 대단하네요 ㄷㄷ

2014. 11. 20. 23:18 내 생각

인류 역사 진보와 장애인 2014.11.20. 


나는 인류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이다. 그 인류 역사 진보의 핵심은 기술 발전도 아닌, 우주 탐험도 아닌 인간 개인개인의 가치를 높였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노예'가 있었다. 노예라는 표현보다는 노비 혹은 머슴이라는 표현이 익숙하지만 그들의 처지는 노예였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살지 못했고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했으며, 자녀의 출생은 '재산 증식'으로 간주되었다. 제1차 갑오개혁(1894년)에 이르러서야 공사 노비제를 없애는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주인집에 '자발적으로' 남아 자유로인 노비를 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다. 남자 노비는 머슴으로라도 불렸지만 여자 노비의 경우는 그 이름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여자 노비의 경우에는 주인의 성폭행과 성추행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어미가 노비인 경우에는 남편의 지위에 관계 없이 노비 지위를 물려주는, 말 그대로 노비 생산 공장으로 밖에 대접받지 못했다. 
광복을 맞이한 이후, 각 개인의 권리가 중요 시 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연합국들로부터 받아들였지만 막상 나아지지는 못했다. 알다시피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손을 잡고 들어왔고, 민주주의는 광복 이후 몇몇 독재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인간 개개인의 가치를 높여가는 인류 진보의 역사 속에 간과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는 지에 따라 그 국가의 선진성을 척도로 삼는다면 적절한 기준이 될 듯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 역시 비용이 문제로 밖에 치환되지 않는다. 낙태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고, 태어난 이들에 대해서 당연히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어제 내가 올린 아이디어는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더욱 편하게 탈 수 있도록 하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이 아이디어를 들은 한 친구는 "장애인은 안내견이나 자원봉사자가 있지 않냐."라는 질문을 내게 했다. 물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적인 논리 뿐만 아니라 사람이 가진 '선의'를 베풀 수 있다는 점에서 성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매번 그 도움을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에서 받을 수도 없고 또 줄 수도 없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장애 제도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가는 것이다.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는 부분들을 혼자 해결해나가면서 사람은 성장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한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논의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나 통용된다.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탈지 택시를 탈지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지에 대해서 선택권을 넓혀나가야 그 장애인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권리도 아닌, 의무도 아닌 한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장애를 갖고 있다 해서 혜택이라 생각해서도 또 혜택을 준다고 생각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지금 인도 위에 서 있다면 가운데 노란 보도블럭이 보이는가. 그 보도 블럭은 시각장애인이 길을 혼자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지금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면 '저상 버스'라는 이름의 버스가 혹시 서 있는가. 그 버스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버스다. 지하철 역에 있다면 휠체어 리프트를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들 역시 장애인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인류 역사의 진보는, 노비 상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극적인 사건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역시도 제도로서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그 내용에 대한 학습과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허황된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인류 역사의 진보, 자유주의의 적용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장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잣대가 장애인에 대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왜 집 밖에 나와서 난리야?' 라던지 '누군가 반드시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길에서 장애인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소한 것들이라도 장애인들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 나가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할 때 그에 대해 도움을 주어야 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라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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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1. 21:20 카테고리 없음

완벽히 맑은 물은 없다. 2013.7.11. 


절대선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다. 파랑새를 찾으려는 모험과 같이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것을 찾아 헤매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절대적인 선을 지향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숭고한 행위라고 생각까지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또는 자신과는 다른 계급의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해버리는 경향까지 있다. 절대선이 무엇이기에, 그들은 그것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평판까지 거는 것일까. 


완벽히 착한 사람은 없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단 한번도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부처는 결혼을 한 이후, 자신의 부인과 자식을 내버려둔 채 수행을 떠났고, 예수는 유대인들과의 갈등을 자초했고, 그 결과 자신의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소크라테스는 대표적인 악처라고 불리는 크산티페에게는, 더이상 무능할 수 없고 또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남편으로 기억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버린 소크라테스를 크산티페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 공자도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지만 어느 한 곳 정착하지 못하고 중국 전역을 주유하면서 많은 왕들을 깨우치긴 했지만, 모든 왕들이 그의 말에 감사를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성인들이 이러할 진대, 우리가 완벽히 착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성인을 뛰어넘는 어떤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런 것이 아니면 단지 '지향함'으로서 자위를 하는 것일까. 


도림천을 이리 저리 걷다보면, 천 내에 물고기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게 보인다. 무슨 종(種)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손가락 정도의 크기에 큰 눈을  가지고 있고, 자세히 보아야 보일 정도로 흙의 색깔과 유사한 색을 띤 물고기다. 가끔 물 위로 튀어올르기도 하여서, 도림천이 죽은 하천이 아님을 몸소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몸짓이 가히 절박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물고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만약에 이 물이 완벽히 맑은 물이었다면 이 물고기들이 살아갈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완벽히 맑은 물이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 물은 사람이 마시거나 동물 혹은 식물이 그것을 섭취한다면 생명을 다하고 만다. 증류수라는 것인데, 그 물 속에는 그 어떤 이물질도 들어가지 있지 않고, 분자 구조에 따라 수소 2개와 산소 하나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것을 마신다는 것은, 화학식을 마시는 것과 같다. 이런 물이 존재함에도 우리는 그 순수한 물의 결정체를 마시지 않고, 애써 미네랄이든지 탄산이든지 그것도 아니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세균들이 들어가 있는 물을 마신다. 그리고 물고기는 '더러워' 보이는 물 속에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또 생명을 유지하며 그리고 다시 자신의 세대를 그 물 속에서 이어간다. 완벽히 맑은 물이 있음에도 우리는 왜 오염되고, 여러가지가 뒤섞인 물을 마시는 것일까. 


완벽히 착한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고, 완벽히 맑은 물은 우리에게 소용이 없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중 우리가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가질 수 밖에 없고, 또 가져야만 했던 여러가지 신체적 장애나 정신적 장애, 뿐만 아니라 가족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불화 요소들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우리는 결코 그것들을 부정하고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은 고매한 척, 심지어 가족간의 불화에 있어서도 자신의 책임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거나 존경하지는 못한다. 삶에서도 그러한데 역경을 이겨내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역경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은 절대선을 추구하고 있으니 절대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마치 절대악인 양 대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대우를 받는 사람도 그럴 이유가 없고, 그런 대접을 하는 사람도 그럴 자격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착할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그것은 '누구나'이기 때문에, 일종의 진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위들 중 착한 행위가 차지하는 부분이 많은 사람, 그리고 과거에 실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정중히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조금씩이라도 이 사회는 나아지고 있고 인류는, '발전'이라는 단어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나쁜 행위를 하고서도 자신이 나쁜 행위를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다시 그런 잘못을 반복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게 역사의 가르침이긴 하지만, 간혹 가다가 그런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그 사람의 운명이라고 부러워하거나 후세에 분명 고통을 받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편하자고 하는 것이지 그 어떤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


완벽히 맑은 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물은 실험실에서만 존재하지 우리 실생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완전히 착한 사람만 존재하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 영역에서도, 사회의 각 영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완벽히 착한 사람을 찾는 것을 포기하자는 것이 이 글의 주제라면 주제겠다. 절대선을 지향하는 정치인은 사기꾼일 확률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시행착오라는 것은 완벽함 이후의 것이 아니라,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하는 행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정치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겪는 모든 행위가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의 행위가 아니라, 동굴 속에 비쳐보이는 그림자와 같은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너무나 많은 불순물이 들어있어 마시게 되면 사람은 마시면 안되는 물이 하나 있어 소개를 하고자 한다. 마시면 안되는 물이긴 하지만 우리 지구상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 바닷물이 그것이다. 마실 수 있는 강물이 마실 수 없는 바닷물로 변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젊을 때는 정의롭고 절대선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거나 어떤 계기로 인해 바닷물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우리는 지켜봐왔으므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바닷물 속에도 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 또한 사실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아이러니일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리 인류의 기원을 따져올라가면 결국 우리 역시도 바다에서부터 그 시작이 있었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진보해오고 있었던 그것과도 닿아 있어, 언제나 지금의 현 상태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함을 또 다시 한번 배우게 된다. 


목이 마르다. 오염된 물을 마셔야겠다. 그렇지만 오염된 사람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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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3. 02:50 카테고리 없음

갤러리 민주주의 2013.7.3.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민주주의가 지속된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정체(政體)로서 익숙한 것은 군주제이거나 귀족합의체이다. 로마 제국이 그랬고, 프랑스 혁명 전 프랑스와 혁명 후 프랑스가 그랬다. 심지어 세계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난 이후에도 많은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정체로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 역사 내에서도 1945년 이전까지 민주주의 정체가 있었던 적은 없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는 '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 체계임을 인정하고 또 그것을 지켜나가고자 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고종의 '대한제국'의 이름을 닮아있는 국가에서 그렇다. 


3년간의 미군정기, 한국전쟁 발발 전 2년 동안의 민주주의, 한국전쟁 3년, 이승만 하야 이후의 의원내각제의 짧은 민주주의 이후, 박정희 독재정치, 전두환 독재정치 그리고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거의 절반 정도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국가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런 대한민국에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있어, 그 한 마디를 남길까 한다. 


그것은 '갤러리 민주주의'다. 


갤러리는 '화랑'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다시 말해 그림을 볼 수 있는 곳, 곧 갤러리인 것이다. 그리고 갤러리라는 용어는 골프 시합에서도 등장하는데, 선수들을 구경하고 있는 수많은 관객들을 갤러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갤러리는 미술관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은 자신이 마음에 든 미술 작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살 수 없다. 하지만 '갤러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 가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살 수 있다. 이 갤러리가 '갤러리 민주주의'의 갤러리다. 


우리는 민주주의 정체 내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은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대통령 선거는 5년에 한 번, 국회의원 선거는 4년에 한 번이다. 어떤 정치학자가 선거 기간에만 우리가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는 순간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했지만 이런 표현은 과격하다고 본다. 대신, 본인이 보기에는 선거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그것을 지켜만 보는 그림의 주인이자 갤러리의 손님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자신이 산 그림이 제 값에 팔릴 때나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자신이 소중한 한 표를 주고 산 그림 혹은 인물이 좋은 그림이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의 생각이 다른 경우에는, 그저 그 한 표를 버려야만 한다. 


갤러리 민주주의.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정해진 기간에만 통용되는 것이므로 나머지 기간에는 관조자로서 그 역할을 하는 국민들이 대다수인 민주주의, 이런 현상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든 없든 관계 없이 주인된 입장으로서 그것의 관리 책임을 묻지 않으니 관심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하는 정쟁(政爭)이나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갈등에 대해서 국민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팔짱을 낀 채, 몸을 뒤로 빼 멀찍이서 그것을 구경만 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나 관련된 업계의 정책이나 이슈가 나오면 심하게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나서 그 몸을 일으킨 것을 후회하며 다시금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이 없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이 있지만 그 의견을 말하지 않을 뿐더러, 말할 기회를 준다고 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고선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고 푸념하고 있다. 골프 시합에서 그렇지만, 자신이 골프 선수보다는 골프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갤러리들은 박수를 치거나 조용히 다음 홀로 이동한다. 그런데 정치란 경기는, 조용히 이동하지도 않으면서 막상 경기장으로 올려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더라도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자신은 단지 그 갤러리에서의 입장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갤러리 좌석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해도 저것보다 잘하겠다.'


갤러리 민주주의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정치적 이슈나 정쟁에는 직접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서 입만 나불거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확한 정보나 생각을 심어준다. 그리고 분명 정치 섹터에 나아가지 않더라도 참여할 수 있는 분야가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무시하고, 자신이 설 곳은 저런 마이너 리그가 아니라, 메이저 리그라며 스스로의 가치를 근거없이 높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민주주의는 그 활력이나 원칙을 잃어가고 있다. 


차라리, 아예 관심을 끄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플라톤이 '철인(哲人)정치'를 읊조리기엔 현 정치인들의 도덕성이 바닥을 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도움도 되지 않고, 시끄럽기만 한 갤러리들을 물리치는 것이 어떤 경기든, 어떤 정치상황이든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말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나중에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이 문단만을 발췌해서, 내가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느니 하는 왜곡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내가 40대 50대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없기를 바란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그렇지만, 갤러리가 빠지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없기에, 대의(代意) 민주주의를 형성했고, 그것의 대표가 국회의원이다. 갤러리들이 빠지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되, 갤러리 민주주의는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자 한 것은 아니다. 


갤러리 민주주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민중들이 자신들이 갤러리가 아님을 확실히 천명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적는다. 고매한 척 앉아서 팔짱끼고 있지말고, 부정의(不正義)를 일삼는 정치 세력에게 무엇이 정의인지 소리 높여,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이야기를 해야한다. 그리고 혼자서 힘든 경우에는 다른 사람과의 연대를 통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에서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 더욱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또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이것이 갤러리 민주주의가 사라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자 해결책이다.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SNS의 등장으로 비교적 과거보다 자신의 의견을 많은 사람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큰 확산효과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예전처럼 등사기를 돌려가며, 첩보 작전과 유사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던 시기는 지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입 밖으로 내거나 공개적인 곳에 올리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떻게 변질되고 왜곡되고 곡해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민주주의 상황은 좋지 않음이 틀림이 없다.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의견을 적고 알리는 데 대해서 조롱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지위나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권위에 따라 그 파급효과가 달라지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이런 행태는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강력히 주장해본다. 특히 20대에 만연하고 있는 '갤러리 민주주의' 현상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이 나 혼자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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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2. 03:30 카테고리 없음

심판이 넋 놓고 있으니.. 2013.6.23. 


스포츠가 근대화가 되고 난 이후, 거의 모든 경기에는 심판이라는 존재가 중요성을 더하게 되었다. 심판은 경기의 시작과 끝을 알리며, 또 승부를 가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선수들 중 일방이 경기 규칙에서 잘못된 행위를 하였을 경우, 제재를 가하거나 벌점을 주거나 다음 경기에서 불이익을 얻도록 하고 있다. 선수들은 그 심판의 권위에 복종하며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 충분한 인지를 하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의 여러 문제들은 결국 심판들이 넋 놓고 있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심판들이 제대로 역할을 다한다면 정치인들이든 행정 관료들든 검찰 소속의 검사나 법무부 장관이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를 할 수 있을터인데도 불구하고, 심판이 그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 정치에서의 심판은 누구인가? 바로 국민이다. 불특정 다수의 국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더욱 나은 사회가 되고 더욱 많은 국민들이 자신의 꿈과 행복을 이 한반도라는 공간 내에서 이룰 수 있도록 하는데 의지가 있는 국민이다. 이런 국민들이 심판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니, 권력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고 있는 것이다. 


좋은 선수를 기용하지 못한 감독들의 탓도 있을테지만, 그런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경기장 위에 올라와 있는 선수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심판의 역할이다. 공적 경기장인 국회, 대통령, 법원 등에서 우리가 알아차리고 해야하는 일은 그들에게 제대로 된 룰을 주지시키고 만약 그 룰을 어기거나 심판의 명령에 불복종할 경우에는 다시는 경기를 설 수 없을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하지 못하다. 도덕적이든 도의적이든 잘못된 선수를 경기장에 올려보내는 것 뿐만 아니라, 경기장 위에서도 제대로 된 경기를 펼치지 않고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경기를 펼치려고 하는 나쁜 선수들에게 심판은 경고를 제대로 날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나쁜 관성에 젖은 선수는, 자신이 잘못을 한다고 하더라도 심판의 제재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다시 그런 잘못을 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마저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경기 운영 규칙이다. 국민(인민)들의 뜻을 모아서 국가를 운영하는데 그 원동력으로 삼고,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경기 규칙이다. 이 경기에서 선수들은 대통령부터 시작하여, 국회의원, 검찰, 법원 그리고 경찰을 포함하는 행정관료들까지 포함된다. 이런 선수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고 감시하는 사람들은 바로 국민이다. 민주주의라는 경기장에 오른 선수들은, 그 경기장 안에서는 국들의 통제를 받아야 마땅하나 지금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그 민주주의라는 경기장 자체를 훼손하는 사람들마저 있다. 이런 경우에 우리 국민이자 심판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우리느 충분히 알고 있다. 그들에게 경고를 내려야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하는 엄중한 경고를 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당장의 승패를 떠나서 경기의 룰을 제대로 지키도록 하는 것이,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이나 선수, 그리고 심판에게까지도 '정의'의 기준이 제대로 서는 순간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보면, 심판들의 역할은 충분히 그 역할을 다했었다. 이승만 정부 시절, 부정선거에 항의한 부마항쟁과 전두환의 집권 야욕을 꺾고 이 땅 위에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우고자 했던 광주민주항쟁, 그리고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던 87년 6월 항쟁의 역사는 우리가 심판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1895년 동학농민운동이 그랬고, 이어 진주에서의 항쟁 역시 그랬다. 치정자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 바치면서까지 다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정치인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고 정책을 마구 바꾸어도,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경기장인 민주주의를 훼손해도, 법원과 검찰이 권력층에 맞는 판결을 내리고 구속을 결정해도 우리는 아무말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원래 그랬다는 것 마냥 행동하고 있다. 경찰은 수사를 축소시키고 은폐시키기에 급급하고 그것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심판들의 역할은 도대체 무엇인가. 


심판들이 제대로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그 역할을 다해야만 한다. 엄중한 경고를 내릴 수 있는 권리는 우리가 민주주의 국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임과 동시에 앞으로 우리의 미래세대가 그 경기장을 포기하고 떠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노력인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경기장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해 둔다면 우리 후손들은 무너진 경기에서, 규칙도 없고, 경고도 없는, 총과 칼 그리고 돈이 권력이 되는 사회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이런 사태는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우리 심판들이여. 다시 한번 우리에게 주어진 호루라기를 입에 물자. 그리고 힘껏 불자. 잘못을 저지른 선수에게 그 호루라기의 소리가 지난 역사의 소리이며 지금의 회한이며, 미래에 대한 우려가 섞여 있다는 것을 들려줘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심판들이여, 일어나자.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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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0. 01:13 카테고리 없음

'미시사'를 아시나요? 2013.6.20. 


어색한 단어일 것이라 생각한다. '미시사'는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는 아니다.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경제학 전공자에게는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이라는 용어는 익숙할지 모르나, '미시'와 '거시'가 수식하는 것이 역사(史)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역사의 연구 중에는 엄연히 미시사와 거시사가 존재한다. 


미시사는 말 그대로, 사람 한 명 한 명의 역사 혹은 각각의 물건들의 역사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역사나 컴퓨터의 역사를 연구한 것이 미시사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나폴레옹 한 명의 역사를 연구하거나 백범 김구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그 일종일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나폴레옹이나 김구의 역사는 '평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미시사는 아니다. 진실한 의미의 미시사는 바로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의 역사이며, 우리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마을에 사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삶을 담은 이야기이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마을에 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역사가 될 수 있는지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라는 것은 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의 사회를 형성하는데 일조한 사건이나 사람들에 관련된 것들이다. 이런 역사는 거시사라고 불린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대부분은, 주요 사건이나 주요 인물들을 위주로 알고 있었던 것이며 그것들이 거시사가 지배해 온 역사의 큰 물줄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큰 물줄기를 형성했다면 그 물줄기 속에 고고히 흐르는 한 방울의 물과 그 물줄기에 힘을 보태는 작은 지류 역시 역사라는 이름을 불리는 것은 어색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누구의 딸이나 아들로 태어나서 어떤 생활 환경 속에서 살아왔고, 자신만의 역사 속에 큰 역사가 이해되고 또 그것들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사소하지만 큰 결정들이 지금 현재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큰 역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작아 보이지만 더욱 절박하고 또 진실된 역사들이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역사를 바꾸고 사회를 진보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들은 맨 앞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뒤에서 낫이나 쟁기를 들고 나왔던 사람들이라고. 프랑스 혁명이 '나폴레옹 혁명'이 아니듯, 동학농민운동이 '전봉준 운동'이 아니듯 말이다. 맨 앞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역사적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뒤의 사람들 있었기에 그들은 역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TV를 켜거나 신문이나 책을 읽게 되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연예계 스타나 운동선수들, 혹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낸다. 그들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들이 가진 생각은 무엇인지를 우리는 듣게 되고 읽게 된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파급 효과를 가진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궁금해하는 삶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들이 가진 지위나 능력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지금 그 자리로 올라가도록 한 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자녀들을 키우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느끼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역할이다. 


TV에 나오지 않아도 우리는 자신만의 역사들을 만들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역사를 우리는 만들어가고 있으면서 다른 이의 역사를 부러워하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신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 역시 매우 허황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가지는 폭력성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전해지는 우리네 시대를 조명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만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생각을 대변하는 사람이며, 조명을 받는 이야기라는 것 역시 사실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삶이 의미가 있듯, 남의 삶에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가져야 되는 태도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자신의 역사를 묵묵히 적어내려가는 수많은 민초에게 경외심을 가져본다. 


p.s 내가 이렇게 글을 적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내 역사를 돕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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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의 전사 2013.09.25 15:46  Addr  Edit/Del  Reply

    공감합니다..

  2. 이창준 2014.07.29 22:41  Addr  Edit/Del  Reply

    너무 공감가는 말씀입니다. 많이 배웠습니디.

  3. 나룻배 2014.11.10 14:57  Addr  Edit/Del  Reply

    미시사에 대해 조사하다가 방문하였습니다.
    마지막의 문구가 미시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