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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7.02.19 여행과 수강신청
  2. 2017.01.04 우리 모두, 수수하지만 굉장해
  3. 2016.12.21 “알바 시각표”
  4. 2016.08.29 교토에서 만난
  5. 2016.04.11 따라하기
  6. 2016.03.31 37점
  7. 2015.03.29 현우의500자_117
  8. 2015.03.11 2015년 3월 11일
  9. 2015.01.28 불친절한 글
  10. 2014.03.17 일본 그리고 일본인
2017. 2. 19. 21:17 내 생각

'여행과 수강신청'





1. 남들이 많이 듣는다고 내게도 좋은 수업은 아니다.



말 그대로, 남들이 많이 듣는 수업이라고 소문이 난 수업들은 학점을 잘 주거나 수업이 편한 수업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수업이 반드시 나에게 맞는 수업이라는 보장이 없다. 수강신청 이야기로 하면, 학점을 잘 준다는 수업이라도 절대평가가 아닌 이상, 누군가는 반드시 C이하를 받는다. 그리고 수업이 편하다는 것은, 열심히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 다시 말하면,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들어도 머리 속에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 수업을 비싼 등록금 내고 들을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점만을 따기 위해 들어온 곳이 대학이 아니라면 말이다. 남들이 많이 듣는 수업은 결국 남들에게는 좋은 수업일 수 있겠지만, 자신에게는 최악의 수업이 될 수도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 남들이 가서 좋은 여행지나 국가라고 해도, 자신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일본 오사카 정도가 딱 적당한 예인데 비자도 필요 없어지고 항공권도 싸게 많이 나오는 관계로 오사카에 많이 간다. 하지만 가보면 일본 사람보다 많이 만나는 게 한국 사람(특히 난바)이고, 예전부터 관광지였지만 이제 한국인들 대상으로 한 상술들이 많이 들어와 여행지라기 보다 쇼핑지구 혹은 식당지구 느낌이 많이 든다. 그리고 이미 너무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어서 가서 막상 보면 새로운 감동이나 일본 특유의 장점을 찾기 보다 '이미 어디서 본 듯한 사진'이나 '어디서 먹은 듯한 음식'만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돌아올 때 사오는 것들도 '도쿄 바나나'나 폼클렌징 크림 등. 그래서 오사카 여행은, 기본만 해도 손해는 없지만 자신의 경험이나 추억에 쉽게 남지 않는다. 돈은 들였지만 좋은 여행이었다 라기 보다 '좋은 쇼핑'이었다 정도가 남는 여행. 그래서 남들이 많이 간다고 해서 쇼핑을 싫어하거나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는 여행지는 피하는 게 좋다.



2. 강의 위주의 수업인지, 토론(발표) 위주의 수업인지를 확인하자.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 강의계획서 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강의계획서라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 그 강의계획서에는 이 수업이 어떤 교재를 갖고 수업을 할 것이며, 수업 방식과 평가 방식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적혀 있다. 그것을 읽으면 수업이 교수님이 일방적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스타일의 수업인지, 아니면 학생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수업인지를 알 수 있다. 우선 자신이 어떤 스타일인지 혹은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는지를 먼저 파악을 해야 한다. 강의 방식이 좋은 학생은, 이해 능력과 암기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학생일 것이고 토론(발표) 위주의 수업이 좋은 학생은 팀워크에 뛰어나거나 수업을 통해 친구들을 사귀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일 것이다. 우선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를 먼저 파악을 하고, 강의계획서를 보고 수강 신청을 해야 최악의 선택은 피할 수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 크게 여행을 패키지와 자유 여행으로 나눌 수 있고, 자유여행에도 혼자 가느냐 친구를 포함하여 둘 이상 가느냐 로 나눌 수 있다. 패키지는 어차피 혼자 간다는 개념이 애매하기 때문에 자유 여행에만 혼자/친구랑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여행 자체에도 '휴양'이 목적이냐 '탐험'이 목적이냐 로 나눌 수 있는데 휴양과 탐험은 여행지를 선택할 때 매우 중요하다. 휴양을 하고 싶은 사람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나 일본의 온천지역을 선호할 것이고, 탐험 스타일의 사람은 남/북미나 유럽 등지를 선호하리라 생각한다. 탐험이라고 적긴 했지만 오지여행을 가는 것은 아니고, 평소 접하지 못한 문화나 문물을 접하려는 의도가 있는 여행을 탐험이라 통칭했다.(실제로 오지로 여행가는 건 당연히 탐험) 탐험이냐 휴양이냐 역시도 자신이 어떤 스타일이냐 따라 다른 여행지를 갈 수 있다. 그리고 패키지와 자유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직접 계획 짜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자유여행,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패키지가 좋다. 스타일에도 맞지 않은데 굳이 자유 여행을 해서 일정 변경이나 숙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껴안기 보다 패키지라도 좋은 곳이 있으면 패키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친구와 함께'가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여성분들 중에 일부는 외국 여행을 할 경우 혼자 가면 무섭다고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시는 분들이 있다. 물론 친한 친구와 함께 가겠지만, 여행에 가서 여행지의 상황이나 현지인보다 친구가 무서워 질 경우도 있다. 어떤 곳이든 둘 다 처음 가보는 곳이면 긴장하게 되고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고, 만약 다투기 까지 하게 되면 여행은 여행대로 망치고 우정은 우정대로 금 간다. 여행을 혼자 갈 것인지 친구와 갈 것인지에 대해서 판단이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은, 여행을 같이 언젠가 가보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먼저 함께 국내여행을 가볼 것을 추천한다. 국내에서는 말도 다 통하고 돈 문제도 없으니 크게 충돌할 것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단 둘이 의논해서 해결할 문제들은 지역과 나라를 떠나서 언제든 일어나기 마련이고, 거기서 자신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길게 적었지만, 수강신청도 마찬가지고 여행도 마찬가지고 자기 스타일을 알아야 한다. 자기 스타일도 모른 채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거나, 막연한 불안함 때문에 친구와 무조건 함께 를 외친다면 자신도 힘들고 같이 간 누군가도 반드시 힘들어 지게 마련이다.

 



3.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이 좋은 수업.

 

1번과 맥락이 통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포인트가 다른 내용이 있다. 대부분 선배들이 추천하는 수업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성적 잘 주고 듣기 편한 수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수강신청 경쟁률은 치열하고, 막상 수업을 들어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헛돈 그리고 헛시간 날리는 것이라는 것은 앞서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하는가 하면,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찾아서 들어야 한다. 교재와 수업 방식은 강의계획서에 적혀 있는 대로 하는 교수님들이 대부분이니, 꼼꼼히 살펴보거나 혹은 수강신청 전에 궁금한 게 있으면 강의계획서에 적혀 있는 교수님 메일이나 연락처로 질의를 보내도 된다. 어떤 수업에 관심이 생기고, 그 내용에도 관심이 있다면 그 수업을 신청하면 될 것인데, 가장 크게 걱정되는 것은 역시 학점이겠다. 하지만 학부수업의 수준에서 자기 학과 학생이든 타과 학생이든 수업을 들었을 때, 전혀 이해가 되지 않게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는 없다. 또 어떤 수업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인 만큼 다른 학생들보다 열의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가 교수든 박사과정이든 혹은 시간강사이든 관계 없이 수업시간에 열의를 보이는 학생에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제공한다. 그것이 반드시 학점이 아닐지 모르나, 열의를 갖고 열심히 공부를 하면 학점은 분명 좋게 나올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남들이 가는 여행지 말고, 자신이 정말 가고 싶었던 여행지를 찾았다면 그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불안감보다 궁금증과 호기심 혹은 어떤 주제를 갖고 여행을 떠나라. 이미 인터넷에 여행지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으니, 자신이 가고 싶은 여행지를 찾았다면 그곳에서 자신이 정한 주제에 맞는 여행코스를 새롭게 짜보거나 소소한 일탈 등을 추가한다면 분명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남들이 다 가는 여행지는 분명 검증이 되었다는 안도감은 들 수 있겠으나 새롭게 개척하는 재미는 반감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미 책에 나와 있는 어떤 식당이나 유스호스텔, 관광지 말고 현지에 직접 가서 현지인에게 길이나 식당을 묻거나 추천을 받으면 현지인만 알고 있는 좋은 곳을 추천 받을지 모르니 그런 재미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어느 나라든, 여행자들이 자신의 나라 혹은 도시에 관심을 갖고 어떤 질문을 해오면 그 고마움을 반드시 느낀다. 그래서 그 열정이 전달되어 더욱 좋은 여행지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놓치지 말길. 수강신청도 마찬가지고 여행도 마찬가지고, 자신이 주도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 성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4. 수업이 끝난 뒤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를.

 

수강신청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되면 수업에 맞춰 학기가 시작된다. 학기가 시작되면 첫 주는 수업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지고, 보통 두 번째 주부터 진짜 수업을 시작하는 학교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한 달 반 정도가 지나면 중간고사를 치고, 다시 한 달 반 정도가 지나면 기말을 친다. 길게는 4개월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3개월 정도의 체감 기간을 갖는다. 그 이유는 3월이 되면 신입생들은 학생회나 학교의 일정에 짜여진 행사로 정신이 없고, 정신 좀 들까 싶으면 중간고사, 중간고사가 끝나서 좀 놀까 싶으면 레포트 하나, 레포트 하나 다 쓰고 좀 쉴까 하면 기말고사를 치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지났는지를 알 수가 없다. 신입생뿐만 아니라 2,3학년도 마찬가지이다. 신입생 들어왔다고 좋다고 같이 놀다가 같은 결론으로... 최근에는 취업 준비와 학점 관리 때문에 노는 학생들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 학기가 짧게 느껴지는 것은 여전하리라. 이런 짧은 느낌을 줄이기 위해서는, 매주 수업이 끝나고 나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업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트를 정리하든 교과서를 다시 읽든 아니면 녹음을 해둔 파일이 있다면 녹음을 통해 다시 수업을 되새김질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매주 수업이 끝나고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겠지만, 대부분의 대학 시험이라는 것이 이해와 암기 능력을 묻는 시험이 기본이므로 시험기간이 되면 다들 암기에 열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술과 연애(실패)에 찌들어 있던 자신을 시험기간 직전에 발견하고, 3월 중순에 배운 것을 기억해내려 하지만 노트에는 누군가 기억은 안나지만 자신의 글씨체로 써놓은 내용만이 가득하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매주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을 정리해 놓으면 시험 대비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식 축적에도 큰 도움이 된다.

 

여행도 마찬가지. 여행을 양적으로 다니는 사람이 있고, 질적으로 다니는 사람이 있다. 굳이 나눌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많이 다녀보고 어디가 좋은지 알아보자는 사람이 양적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고, 한 군데를 가더라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살펴보고 관찰하고 또 그것을 통해 얻은 경험이나 지식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정리해 놓는 사람을 질적인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라 구분하고 싶다. 양적과 질적 중 무엇이 좋다 나쁘다의 기준이 아니라, 양적인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 역시도 분명 질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여행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여행을 정리한다. 그 방식이 사진이 되었든 글이 되었든 아니면 그림이 되었든 다양하지만, 아주 긴 여행에서는 규칙적으로 기록을 정리하고 남기고, 짧은 여행에서는 집으로 돌아온 뒤 사진이나 메모 등을 바탕으로 정리를 하곤 한다. 그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 여행기나 여행 에세이가 되는 것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은, 그 여행 당시의 기억을 소중히 생각하고 또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정리를 한다. 그래서 누군가 어느 여행지에 대한 질문을 하면 마치 어제 갔다 온 것처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여행 중/후의 정리가 가지는 힘이다. 마치 대학수업을 들은 후 자신의 방식대로 정리한 내용들이 자신이 지식이 되듯.



 

5. 방학은 정리이자 재정비

 

한 학기를 다 보내고 나면, 학기 초의 수강신청은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다시 수강신청이 돌아온다는 것은 분명하다. 신입생의 경우, 대학교라는 곳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을 테지만 분명 반복된 실수를 할 것이다. 오히려 더 학점 잘 주는 수업은 없는지, 이왕 시험공부 한다고 힘들 것 학기 중이나 좀 편하게 다니자 싶어 레포트도 없고, 과제도 없는 수업을 찾아 다니는 하이에나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대학생활은 딱히 지식의 측면에 있어서는 기억이 남지 않는다. 물론 수업에 충실하지 않은 대신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 대외활동에 참여한다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수업을 통한 지식측면에서는 충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방학은 말 그대로 방학이고, 대학의 방학은 도약의 계기가 된다. 학기 중에는 수업을 소화하느라 깊게 읽지 못했던 전공서적이나 추천도서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도 하고, 직접 답사를 가볼 여유가 없었던 곳에 답사도 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어느 분야와 어떤 방식에 관심이 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높여나갈 수도 있다. 이런 방학기간 동안 다음 학기를 준비하고, 한층 성숙된 학기를 보낼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다.

 

여행도 그렇다. 일정한 주거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여행이 끝나면 그곳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분명한 것은, 여행을 떠나 있는 기간 만큼 여행과 여행 사이의 기간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행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서로가 느낀 색다른 느낌을 공유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다음 여행지에 대한 준비와 정보습득을 할 수 있는 기간이 되기도 한다. 여행은 여행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데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가고 싶다 라고 마음 먹는 순간부터가 여행이다. 실제 여행은 아닐지라도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행에 대한 기대와 그 기대에 부응하는 착실한 준비는 다음 여행에서의 큰 보답으로 다가온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는, 어떤 여행지가 자신에게 맞는지 혹은 자신이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하거나 필요한 여행자금을 모을 시간이 되기도 한다. 또 여행 메이트를 찾기도 한다. 여행과 여행 사이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다음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천차만별이다. 마치 방학에서의 성장이 다음 학기에서의 성장으로 이어지듯이 말이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는 못해도, 한 번 다녀온 여행지는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 여행과 수강신청이라는 두 가지의 전혀 다른 행위가 연결이 될 수 있을 듯 하여 글로 옮겨보았다. 수강신청이라고는 해도 대학생활 전반을 다루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고 또 이미 수강신청이 끝나버린 대학도 있어 시기에 적절성에는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한다. 그리고 여행도, 개인마다 다양한 방식이 있고 또 그만큼 수단이 어울리는지 혹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 역시 다양해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학의 한 학기를 짧은 지식 여행이라고 본다면, 수강신청 역시 여행의 준비라고도 할 수 있고 여행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행은, 직접 여행을 하는 것만큼 간접 여행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읽어보고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참조해주시길, 감히 바라본다.

 

추신. 수강신청은 대학을 들어가서 하는 것인 만큼 이 글을 쓰면서, 대학을 가지 않았거나 혹은 가지 못한 분들에게 불편함을 드리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수강신청은 대학생들이 자신이 어떤 수업을 들을 것인지를 정하는 과정입니다. 대학생활의 내용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신 분이 있으시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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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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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4. 21:25 내 생각

독서는 취미랄 것도 없으니, 굳이 최근에 내가 가진 취미를 말한다면 “일본 드라마 시청” 정도다. 드라마 시청이 취미라니 참 별 것 아닌 취미다 싶기도 하지만, ‘영화 감상’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취미에 속하는 것이 드라마 시청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왜 영화는 감상이고, 드라마는 시청이라 부르는 것일까. 이왕 취미라고 적을 거, 멋드러지게 일본 드라마 감상. 이게 내 취미 되시겠다.


최근이라 해도 작년(2016년)의 일인데, 취미의 일환으로 보았던 두 편의 일본 드라마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 편은 2016년 2분기 드라마 “중쇄를 찍자 (원제 : 重版出来)”이고 또 다른 드라마는 2016년 4분기의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원제 : 地味にスゴイ、校閲ガール河野悦子)”이다. 일본은 1년을 4분기로 나누어 드라마를 제작하고, 큰 변동이 없는 이상 한 편의 드라마는 10화 안팎으로 제작된다. 거의 모든 드라마는 사전제작의 형태로 제작되기에 중간에 스토리를 바꾼다거나 또는 불필요한 설정이 없는 것으로 일본드라마는 유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 드라마가 유명한 점은, 다양한 직업에 대한 소개와 그 직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것이 작년의 앞서 소개한 두 편의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두 편의 드라마 모두 출판과 관련이 있다.


우선 “중쇄를 찍자”라는 드라마는, 출판업계 중에서도 만화잡지를 만드는 편집하는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배경으로 한다. 유도선수로서 체육대학을 나왔지만 부상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된 신입직원(주인공)이 만화잡지를 만들어 나가고 편집자로서의 역량을 쌓아가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주된 내용은 아니지만 기성 만화가 및 신입 만화가가 느끼는 고충, 잡지를 통해 내어야만 하는 이익과 그와 동시에 담아야만 하는 독창성 간의 미묘한 갈등 그리고 영업사원이 느낄 수 있는 보람 등에 대한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다. 글로 적으니 드라마의 내용이 중구난방인 듯 보이지만, 드라마를 본다면 앞선 내용들이 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 드라마는 교훈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만화가와 만화잡지를 편집하는 편집자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만화가보다는 ‘만화잡지 편집자’라는 직업이 가진 어려운 점과 그런 어려운 점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만화잡지의 편집자는 결코 우리가 직접 만나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역시 출판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는 드라마지만, 여기에서는 편집부서가 아닌 ‘교열’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로 다룬다는 것이 앞선 드라마와는 차이가 있다. 제목에서 이름이 드러나 있는 주인공, 코노 에츠코는 패션잡지의 편집자가 되기를 원해 ‘케이본샤’라는 출판사에 입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입사 후 알게 된 그녀의 부서는 책의 오탈자나 내용 상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교열부’. 패션잡지라면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보는 그녀이지만, 책을 내기 전에 교열을 한다는 사실 조차 몰랐던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책을 교열해 나가며 교열부의 다른 직원들 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책상에 앉아 모든 교열을 했던 직원들이 사실관계 확인이나 지명 확인들을 위해 현장조사를 나가기도 하고,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담당하며 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교열까지 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단순히 작가가 적은 글을 수동적으로 교열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교열의 범위 내에서 교열자로의 의견을 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이끌어 냈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의 범위는 자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데 까지가 그 범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교열부 혹은 교열담당 직원들은 일반 독자들은 앞선 만화잡지 편집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그 존재를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취미’로써 갖고 있는 일본 드라마 ‘감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과 몇 일 전 새해가 되어 내게 들려온 한 가지 뉴스 때문이다. 그 뉴스란 국회에서 일을 하시는 청소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협력업체 직원의 지위에서 정규직인 국회 직원으로 전환되었다는 뉴스였다. 몇 해 전부터 국회 청소노동자의 지위와 대우에 대하여 국회 안팎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쉽게 사람들의 기억이나 관심에서 잊혀졌고, 그렇게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2016년 작년의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의 여야 구성이 변경되었고, (역시 나는 모르는 사이) 청소노동자의 지위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듯 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나는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딜 가나 쉽게 청소노동자를 만날 수 있다. 그곳이 도서관일 수도 있고, 빌딩의 로비나 공항 등 어디든지 청소를 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잘 찾으면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나 업무를 보느라 혹은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는 청소노동자의 모습은 쉽게 눈 앞에서 사라진다. 분명 존재하는 사람들이지만, 당연히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그들의 존재나 처우는 망각되고 만다. 그리고 깨끗해진 화장실 거울과 비워진 쓰레기통,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건물의 로비를 걸으며 누군가 이곳을 청소를 하고 있겠거니- 정도의 판단만 한다.


나는 이번 국회의 청소노동자들의 정규직 국회직원으로서의 전환에 대하여 찬성의 입장이다. 하지만 국회가 끝은 아니다. 그리고 시작도 아니다. 당연한 것을 그 시작과 끝을 나눌 수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에는 남들이 하지 않으려 하거나,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중 정확히 몇 퍼센트가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뉘어져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갖고 그 보람에 상응하는 직업적 안정성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그 성과나 결과물에 대해 직접 자신의 이름을 내걸거나 표시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란, 사실 많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 속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있다. 굳이 티를 내어야 할 필요성도 또 그것이 그들의 삶에,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안정성과 삶에의 필요성을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하게 되는 또 하나의 필요충분조건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 수수하지만 굉장한 일을 하고 살고 있다. 어떠한 직업이든 자신이 언제 그 굉장한 일을 그만두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나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면, 그것은 목적으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고 직업이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존재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일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든 각자의 생계와 삶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직업을 통해 행복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글을 마무리 한다. 우리 모두, 별 볼일을 하는 듯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라며. (아, 그리고 소개한 두 편의 드라마는 꽤 재미난 드라마이니 한 번 나와 같은 ‘일본 드라마 감상’을 취미로 가진 분이라면 감상해보시길.)


이미지 출처 : http://channel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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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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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1. 00:50 내 생각

“알바 시각표” 


‘이러다가 분명, 또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받지 못 할거야. 어떻게 하지? 내가 얼마만큼 일을 했는지, 시각표를 적어놔야겠다.’ 


2004년 겨울, 아직 11월임에도 더 이상 추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추위가 이어졌다. 내가 일했던 주유소는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에 세워져 있어 바다와 상당히 가까웠다. 바다는 다른 건물들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의 비린 냄새와 함께 차가운 겨울 바람은 주유소 곳곳을 파고 들었다. 나는 몇 번이고 주유소 소장님께 아르바이트를 위한 대피장소, 그러니까 주유소에 들어가면 흔히 보이는 조그마한 부스를 하나 사서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벌벌 떨며 손님을 기다려야만 했다.


10월에 시작한 주유소 주유원 아르바이트도 이제 손에 익을 무렵, 10월 달의 급여를 처음 받았을 때 생각했다. ‘내가 일한 시간보다 적은 금액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시간을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라고 정해두긴 했지만, 매번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손님들의 차에 기름을 넣는 일이 많았고, 추가 근무에 대한 것은 으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추가 근무에 대한 급여를 달라고 해도 소장님은 가끔 저녁을 사주는 것으로 몇 일 간의 추가근무에 대한 급여를 지불하는 것이라 여기시는 듯 했다. 


11월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집에 있던 A4 용지 한 장에 11월의 달력을 한 장 그려갔다. 토, 일요일도 없이 일을 했으므로 11월 한 달의 달력은 딱 내가 일을 할 날을 의미했다. 그리고 달력 위에 내 이름을 적어 소장님께 매우 친절한 목소리로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며 드렸다. 


“소장님, 제가 이런 걸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이번 달 말에 알바비 계산하실 때 편하게 하시라구요.” 


소장님은 그 종이를 받아 드시더니, ‘이게 뭘까?’ 하는 눈빛으로 내가 내민 종이와 내 얼굴을 몇 번 번갈아 보셨다. 그리고 이윽고 “그래, 내가 일일이 못 챙길 수도 있으니까 월말에 다 적으면 나한테 다시 보여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소장님께서 화를 내시거나 혹은 내게 지난 달 급료가 적었냐고 따져 물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내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아마도 지난 한 달 간 내 근무 중, 주유 실수도 없고 또 청소나 단골 관리 등을 솔선하여 하는 모습들을 보시며 칭찬을 하셨던 것을 떠올리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날부터 퇴근하기 전 내가 몇 시에 출근을 했고 또 퇴근을 했는지를 정확히 계산해 표에 적어 넣기 시작했다. 월말이 되면, 총 몇 시간을 근무했는지를 모두 더한 값을 적어서 소장님께 드렸고 그렇게 나는 내가 일한 정확한 시간에 맞는 시급을 받았다. 그 당시 내가 한 달을 꼬박 일하고 받은 돈은 약 8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표는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왔을 때도, 같은 표를 만들어 올 것을 소장님께서 요구했고 그것을 적어 채워줄 것을 요구했다.) 


최근 대기업의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생의 시간을 쪼개고 뭉개는 형식으로 약 4만 명이 넘는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84억에 달하는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이 뉴스가 되었다. 깊은 화가 났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이 더러운 옛말을 아직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기업이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몇몇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식으로 어딘가에 취업하기 전, 아르바이트는 간접적으로 사회를 배우고 또 자신의 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이지 않냐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지금 현재의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는 결코 젊은 사람만이 하는 것도 아닐 뿐 더러, 젊은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그것은 더욱 보호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찬란한 시절의 가치인 ‘젊음’이라는 시간을 써서 최저시급을 받아가며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경험이 되기 때문도 아니고, 사회를 배우기 위해서도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위해 단기적으로 나마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 따위가 아니다. 삶의 유지에 필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돈이다. 


봉사는, ‘돈을 벌지 않는 일’이 아니다. 돈이 아닌 또 다른 가치를 벌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봉사다. 그렇기에 결코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을 소비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마치 ‘봉사’나 ‘의무’와 같이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아르바이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신의 시간을 들이는 모든 경제관계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스스로가 원하지 않은 것을 해달라며 요청하곤 그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결코 서로에게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자신이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임에도,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설명하진 못해도 느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글을 정리하며, 일본에서 유학했을 때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한다. 당시 여자친구가 없었던 나는 일본인 친구들 중 한 명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녀에게 호감을 표시하기 전, 한국과 일본에 연애에는 다른 점이 있을까 해서 일본인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일본인 여자친구와 가까워질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선 밥을 같이 먹어라. 그리고 밥을 같이 먹을 정도의 사이가 되면, 술을 함께 마셔라. 그러면 그 여자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고백을 해도 된다’ 따위의 어이 없는 대답을 내게 해주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나는, 왜 그런 순서로 이어지냐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는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밥을 함께 먹자고 한 이야기를 듣고 같이 밥을 먹고, 또 술을 마실 정도라면 그 여자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들일 만큼.’ 


나는 시간이 소중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것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소중하기에 그 사람이 가진 시간 역시 소중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사람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두고 있을까? 한 명의 아르바이트가 어떤 일에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언제나 대체가 가능한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아니면 그 한 명이 소중하고 또 관계에 있어서도 유지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궁금해진다. 궁금해지기도 전에 우리 사회는 그 답을 이미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틀린 답을 정답이라고 우기며. 


한 명의 아르바이트라 할지라도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시간은 결코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지켜 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 모두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람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지켜주기 위하여 발전해 온 역사가 우리 인류의 역사이자 자유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아, 너무 멀리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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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29. 23:59 내 생각


"교토에서 만난." 2016.08.29.


처음에는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하는 줄 알았다.

 

일본 교토의 어느 시민회관에서 후쿠야마 테츠로(福山哲郞) 민진당 참의원의 강연이 끝난 뒤, 점심을 먹고 캔 커피를 하나 사러 나온 길이었다. 나와의 거리가 2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을까. 한 여자가 무릎을 바닥에 댄 뒤 양손 역시 바닥에 대며 수그리고 머리를 숙인 채 한 참을 있었다. 처음에는 교토라는 지역에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절도 많고 또 전통을 지키는 곳이라 생각해서, 삼보일배를 하는 승려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금 자세히 보니, 거지였다. 그것도 여자 거지. 그날도 날씨는 더웠고, 여자 거지의 옷도 그만큼 가벼워져 있었다. 긴 바지를 입고 조리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상의는 가슴이 거의 드러나 보이는 검은 민소매 티 하나를 달랑 입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부스스했고, 얼굴과 드러난 팔과 손은 검게 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삼보일배라고 오해했던 그 행동은, 다름 아닌 자판기 밑에 떨어진 동전을 찾는 행위였다. 일본은 길거리에 자판기가 많다. 음료 자판기 뿐만 아니라 담배 자판기도 있었기에 분명 그 아래에 동전을 실수로 떨어트리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저 여자 거지는 그런 동전 중 하나를 발견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바로 자판기 앞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호주머니에는 일본 엔화 동전이 가득 있었고, 지갑에는 빳빳한 일본지폐가 두둑히 있었다. 그리고 내 앞으로 사람이 지나갔다. 그 사람은 누군가가 자판기 아래에 실수로 떨어트린 동전을 찾기 위해 무단횡단을 하며 지나가는 일본의 여자 거지였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단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많은 단편을 남긴 그였기에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단편소설의 내용은 일본의 탄광마을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탄광에서 일을 하며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사는 극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당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로 팽창일로를 걷던 일본 내에서도 이런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었겠구나 하는 일종의 측은함을 느꼈다. 식민본국의 국민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식민지의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일상적 삶과는 유리(遊離)된 제국주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 조지 오웰(George Orwell)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다. 조지 오웰 자신의 삶과 그 주변의 삶을 르포 형태로 적은 이 책에서는, 담배와 홍차를 포기하지는 못하지만 역시 극도로 가난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국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산업혁명과 중상주의 정책으로 영국은 세계제국이 되었음에도 그 혜택은 결코 모든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20168월의 일본 교토에서는 수많은 관광객이 붐볐고 버스 안은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키요미즈데라(청수사)에서 바라본 교토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발전되었고 화려했다. 하지만 그 도시 안, 어느 곳에서는 자판기 밑에 떨어진 동전을 주우며 다니는 여자 거지가 있었다.

 

화가 난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건너며 수많은 국가들이 시장 개척이나 영토 확보 등의 이유로 다른 나라를 침략했고, 각 나라의 전통을 말살시켜 가며 자국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웠다. 우리나라 역시 그 대상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화가 난 부분은, 그렇게 다른 나라 국민들의 생사와 역사를 짓밟았으면 자국의 국민들이라도 편히 먹게 살게라도 해줄 것이지, 그러지도 못할 것이면서 왜 다른 나라에 침략을 했더란 말인가. 결국은 많이 가진 자가 더욱 많이 갖기 위해, 그것이 권력이든 돈이든 아니면 다른 그 어떤 것이든, 자국을 희생하며 또 다른 희생자를 찾는 것 뿐이었지 않냐 말이다.

 

이날 오전에는 한국과 일본과의 교류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일본 참의원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그 직후 일본에 살고 있는 거지도 만났다. 내 눈 앞의 자판기 아래에 동전이 없자 빠르게 다음 자판기를 찾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일본 참의원의 눈빛에는 자신이 36살에 당선이 된 후 18년 간 계속 참의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서렸다. 그 자신감 찬 눈빛과 여자 거지의 생존을 위한 눈빛은 도저히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국경을 갖춘 근대국가가 형성된 시점은 유럽에서의 30년 전쟁이 끝난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이라는 것이 정치학계와 국제법학계에서는 정론으로 받아들여진다. 전쟁의 상대국이었던 국가 내부의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기 위해 30년 간 싸웠다는, 그 어이 없는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것이 국경이다.

 

국민과 국경. 이것은 단지 누가 더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고 누가 더 경제력이 있는지를 살피는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되어서도 안된다.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이 과거에는 군주였고, 지금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국민들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그 지배집단을 선출하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국가 안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핍박받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경이란, 바로 그 국경 안에서만이라도 그런 사람들이 사라지길 바라는 지배집단의 의무가 다하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일본 교토에 가서, 국경과 국민 그리고 지배집단의 의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더불어 빈곤계층을 안정적인 삶의 궤도에 올리는 옳은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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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1. 17:01 내 생각

“따라하기”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학교 근처에 라면집이 있었다. 그 가게 이름이 토라(虎). 호랑이라는 이름의 라면집에는 호랑이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저녁을 먹기 위해 꼭 이 라면집을 들렀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학생은 곱빼기를 무료로 드립니다.’라는 아름다운 문구에 홀린 탓이다.


라면 가게는 작았다. ‘일본 라면 가게’라고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좁고 기다란 가게였다. 가게 안에는 부부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셨지만 추억은 미화되는 법이니-가 계셨다. 라면과 볶음밥 세트를 주문하며, ‘오오모리데(곱배기로)’라 말하며 누가 봐도 학생인 듯 보이도록 가방을 벗어보였다.


라면을 기다리는 동안 하는 일이란, 주인아저씨가 라면의 면을 삶다가 한 가닥 끄집어내어 제대로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후루룩 먹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손님들이 어떻게 먹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일본 생활에 익숙해졌을 때는 가게의 손님들을 보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라면을 먹는지 꼭 확인해야 했다.


따라 하는 것.


우리나라와 일본은 사는 방식이 닮은 듯하지만 달랐다. 일본 사람들의 관습과 습관이 있었고, 그것은 외국인인 내가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었지만 지킬 수 있다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라면을 먹는 방법도 다른 사람들을 보며 배웠다. 사실 라면 뿐만 아니었다.


일본어도 그랬다. 다른 것도 그랬지만.


처음 한 학기, 4개월 내도록 따라만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귀로는 유심이 듣고 눈으로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입술을 보았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부모의 말과 입술을 보는 것과 같았다. 일본어뿐만 아니었다. 그릇을 세 손가락으로만 드는 법, 인사를 일본식 예의에 맞게 하는 법, 수업시간에 공부를 하는 척 하며 딴 짓을 하는 법 등을 배웠다. 그리고 나아가 일본 문화로 사고하는 법까지 배웠다. 사고하는 법이라 거창하게 적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생활을 하는 것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따라 하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가는 곳이나 겪는 것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따라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탓에 따라 했다. 하지만 따라 하기에는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다름 아닌 ‘제대로 따라 하기’다. 누군가를 따라하려 하면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다 따라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구를 따라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따라하는 사람을 따라하면 된다. 예를 들어,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이나 전통 문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따라하면 된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사회 내에서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갑자기 따라 하기?


다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가는 곳이나 겪는 것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따라 한다. 앞서 적은 문장과 같은 문장이다. 하지만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럴 때는 무엇을 하면 될까.


책을 읽으면 된다. (지겨운 결론이지만, 언제나 참인 결론인 듯 싶다.) 고전을 인간 문명의 정수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이상하게 생긴 할아버지, 할머니, 형, 누나, 오빠, 언니들이 우리보다 과거에 살면서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해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걸 또 이렇게 해보니까 해결되더라 – 하는 것을 친절히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살았고 또 죽어간 뛰어난 혹은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적어 남긴 사람들의 책이 고전이다. 이런 고전에는 따라할 것들이 가득 차 있다.


몇 해 전 한국사회에서는 ‘힐링’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힘들어하는 수많은 ‘아프니까’ 청춘남녀 뿐만 아니라 몇 번을 흔들렸는지도’ 모를 어른들 모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위로는 받았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해답이나 시도해 볼만한 도전들을 찾지는 못했다. 다들 처음 겪는 일이었을 고민들과 어려움에 대해서, ‘괜찮다’라는 말 한 마디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괜찮다’ 한 마디 해주면 된다는 걸 알았으니 ‘따라한’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결론이 이상하다. 나도 안다.


일본 라면 먹다가 따라하라고 하다가 고전 읽으라니. 결국 나도 이 글을 적으면서, 누군가 나를 따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거나 힘들 때, 순간의 감정이 언짢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위로를 받기보다 나 이전의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둔 뼈아픈 충고나 그 속에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것이니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그런 마음.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고 그 방법을 또 누군가 따라할 것이다. 그렇게 고전은 이어지고 삶은 새로워진다. 행복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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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31. 18:53 내 생각

“37점”


이제부터 여러분이 읽게 될 이야기는,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나 중에서 자신이 어디까지 나아질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나 그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본어를 내 나이 또래가 흔히 접하던 계기로 접한 것은 아니었다. 내 또래가 ‘흔히 접하던 계기’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통해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게 된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을 ‘오타쿠’라고 불렀는데, 최근에는 ‘덕후’라 부르는 듯 하다.


나는 ‘러브레터’라는 영화를 보고,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된 후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만’이라는 뜻의 ‘케도’라는 발음이 재밌었다. 그렇게 배운 일본어를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꾸준히 배웠다.


어떤 목적이 있어 배운 것이 아니었기에, 일본어능력시험을 치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저 일본어를 배워 일본인과 말이 통한다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낀 것이 다였다. 일본어능력시험을 처음으로 치게 된 시기는 일본 교환학생이 끝날 무렵이었으니, 일본어를 접하고 거의 10년이 흐른 다음이었다.


일본어를 재미로 배우고 말하고 있던 대학교 1학년 2학기의 어느 날 일본 교환학생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다시 들어온 대학이었고 열정과 의지가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교환학생 모집 공고에는 ‘일본어능력시험 2급 이상 소지자와 그에 준하는 일본어회화실력을 가진 자’라고 되어 있었다. 자신만만하게도 회화실력 하나만을 믿고 지원을 했고, 덜컥 합격을 해버렸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일본 사이타마현의 한 대학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외국인 학생을 위한 일본어교실이 있었고, 그것은 교환학생이라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었다. 수업을 듣기 전 반편성 고사를 치렀다. 그때 받은 점수가


37점.


기억에도 어렴풋이 남아있는 ‘매우 낮은’ 점수였다. 물론 100점 만점이다. 나는 내가 최하위반에 가겠구나- 생각을 했고, 일본어교실을 담당하고 계시던 교수님과의 면담에 들어갔다. 여자 교수님이셨는데, 보랏빛이 도는 여성용 정장을 깔끔히 입고 계셨다. 나는 자리에 앉았고, 교수님께서 내게 한 가지 질문을 하셨다.


‘시험지에 나온 글을 읽었지요?’


시험지에 나온 글을 읽었냐니.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그 뉘앙스가 묘했다. 읽다 읽지 않다의 ‘읽다’가 아니라, ‘읽어내다’의 읽다 였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 나는 내가 일본어교실 중 가장 높은 반에 편성이 된 것을 알았다. 그 반에는 일본어능력시험 자격은 물론, 일본어한자시험인지 뭔지 나는 알지도 못하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쉽게 말해, 나보다 모두 일본어능력이 뛰어났다.


정말 힘들었다. 교환학생이라도, 아니 교환학생이므로 일반 일본인 학생들이 듣는 대학 수업도 들어야 했고 또 일본어 수업도 들어야했다. 오전에는 일본어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일반 수업을 듣었는데 내가 느끼는 난이도는 일본어 수업이 더 힘들었다.


말이 좋아 일본어교실이지, 일본의 역사나 일본 뇌사의 역사, 일본의 여러 이야기 등을 읽고 적고 쓰고 또 매주 시험을 치르기까지..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일주일일주일이 빠르게 흘러갔다.


역시나 점수는 꼴등.


한 단계 아래의 반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 단계 아래로 가면 다음 학기에도 다시 최상급 반의 일본어수업을 들어야했고 그럼 이 고생을 다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개겨 보기로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갈 즈음. 그러니까 한 학기가 한 달이 남은 즈음 점수가 갑자기 올랐다.


90점 대를 받기도 하고, 또 때론 두 개 이상 틀리지 않기도 했다. 놀란 것은 나 만이 아니었다. 우리를 가르치시던 일본인 선생님들께서도 놀라셨다. 하루는, 중년의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권 군의 실력이 급격하게 오른 게 화제입니다.


그만큼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멍청하게 보이는 것도 싫었고, 또 내가 어느 정도까지 나아질 수 있는지 궁금했기에 그 좋다는 교환학생, 그렇게 놀거 다 논다는 교환학생의 1학기를 일본어 공부와 학과 공부를 하며 보냈다. 물론 공부 밖에 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저녁에 피곤한 상태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자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일본어 단어와 문장을 외우기도 했고, 학과 수업은 내용 이해를 위해 매 시간 녹음을 해서 들었다.


일본어가 늘었다.


원했던 결과였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이룰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힘든 일은 그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는 법이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간에.) 내 일본어 실력은 엄밀히 말하면, 나의 노력이 일부 들어가 있는 내 주변 환경의 영향이었다. 쉽게 말하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경쟁하고 힘쓰는 환경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겸손’이라는 가치로 자신의 가능성을 쉽게 낮춘다. 하지만 무엇인가 배우려는 사람은 겸손하되 겸손하면 안된다. 겸손이 필요한 순간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아직 부족하구나’라는 것을 느낄 때이며 겸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은, '나도 저렇게 잘 할 수 있어' 라는 욕심을 가져야 하는 순간이다.


앞서 이야기를 했듯이, 여러분이 읽은 이야기는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을 할 수 없는 여건인 사람도 있고 또 지금의 상황도 충분히, 아주 충분히 힘든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지금 있는 곳 - 그곳이 학교여도 좋고, 직장이라도 좋고, 그 어디라도 좋다-에서 자신이 발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나고 싶다면 ‘다소 무리’라고 생각되는 범위나 ‘절대 무리’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여 보아도 될 듯 하다. 사람은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한다. 적응을 위한 초기에는 분명 힘들지만 어느 샌가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일본어교실을 담당하시던 교수님께서는, 문제는 틀렸지만 그것을 ‘읽어낸’ 나를 평가하셨다. 다시 말하면, 나아지길 원하는 나의-학생의 욕심을 알아차리신 셈이다. 이런 교수나 선생님 혹은 선배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좋은 선생님과 함께 있다. 바로 자기 자신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위의 이야기는 누구나에게나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중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고 그 배움을 통해서 더욱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글이, 하나의 방법이 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한계는 자신은 결코 모른다.


그러니 한 번 한계 너머로 자신을 던져보시길. 만약 너무 힘들어 다시 돌아오고 싶어도 한 번 더 참아보고, 그래도 정말 힘들면 그래도 한 번 더 참아보고 정말 죽을 듯이 힘들면 그때 돌아와도 된다. 그래도 당신은 그 전보다 성장해 있을 것이고, 그런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확신, 아니 예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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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9. 22:29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117


저녁 즈음 다시 돌아온 도서관, 과제 준비를 하기 위해 책들을 펼쳐놓은 채다. 교환학생 신분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4월의 어느날이었다. 검은 건 칠판이요, 하얀 건 교수가 적어놓은 글씨라는 것 정도는 이해했다. 나이 든 교수의 판서는 일본인 친구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한다. 생면부지 친구들의 노트를 복사하는 것도 모자라 매 수업 시간마다 녹음을 한 뒤 복습하는 하루가 계속됐다. 과제도 피할 수는 없었다. 도서관에서 과제 준비를 이러저러쿵하고 있는데 갑자기 도서관에 불이 꺼진다. 당황하는 학생들. 하지만 학교 노트북의 불빛이 그대로인 것을 보니 정전은 아닌 듯 했다. 이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지구의 날입니다. 지구를 위해 10분 간 소등하도록 하겠습니다. 10분 동안 생각했다. 전기는 지구의 몸을 파헤쳐 캐낸 어떤 것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10분 뒤 다시 불이 들어온 뒤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갔다. 그 10분 동안, 나는 지구와 이전보다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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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1. 22:32 내 생각

2015년 3월 11일 - 2014.03.11. 


오늘은 일본에서 쓰나미가 일어난 지 4년이 되는 날이다. 그와 더불어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 날이기도 하다. 형의 큰 아들, 즉 나의 조카의 생일이다. 불교적 전통을 가진 우리 가족은 음력 생일을 쇠지만, 나는 큰 조카의 생일을 양력으로 기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이 일으킨 천재지변으로 죽은 날, 우리집은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날이다. 4년 전에 일본 열도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죄를 지은 것이 없다. 죽은 이들 중에 범죄자나 살인자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그런 죽음을 당해야만 하는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죄를 짓지 않았지만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부모의 사랑 덕에 태어난 조카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삶이란 죽음을 담보하는 과정 중 하나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사는 그 순간부터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선택할 수 있도록 삶을 운영할 뿐이다. 자살을 꿈꾸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자신의 목숨을 내맡긴 곳에서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을 기대하고 있지 않는다.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태어나 사랑하는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평화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죽기를 바라는 것, 이것은 문명이 이룩해낸 성과이다. 불과 물을 다룰 수 없었던 시기, 많은 인류의 원조들은 야생 동물들의 먹이감이 되는 불상사를 당했거나 치수(治水)에 실패한 탓에 여름이면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야만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랑이라는 가치가, 일반화되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최소의 단위가 가족(최근에는 개인이 되고 있긴 하지만)이다. 삶과 죽음이란 결국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우리 인류는, 가족과 괴리된-사랑과 괴리된 탄생과 죽음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2011311일은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진 날이다. 그들이 그런 상황에 빠졌던 것은, 단지 자연재해가 일어날 곳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 뿐이다. 그리고 우리 조카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그것 뿐이다. 삶과 죽음이란 어찌 보면 운, 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누구의 아들딸로 태어날 것인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운의 한 측면을 갖고 있다면, 죽음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 관리나 인생을 통해 운영되어온 삶의 원리가 타락이 아니라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더이상 현대는 죽음조차도 운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할 듯하다. 어떤 죽음을 구할 것인지에 대해서 선택의 권리는 박탈되었다. 박탈된 선택권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그 권리를 찾아오겠다 의지를 불지르게 만들었다. 자살이 그 하나의 방법이며, 안락사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되짚어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의 진실이, 지구가 자신을 지키는 원리라 하여도, 이미 생겨버린 측은지심, 가족의 사랑 속에서의 탄생과 죽음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사례가 아니라 한국의 사례만 하여도 무수한 사례를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 죽음에 대한 측은지심이 정치에 의해 훼손되고 정치화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훼손된 측은성은, 그것을 없애고자 하는 정치세력에 의해 더욱 강한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사랑이라는 가치에 눈을 떠 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든, 국가가 해야할 일은 국민 개개인이 그 가족의 사랑 속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호막을 쳐 주어야 할 것이며, 또한 그 개개개인이 고통 속이 아니라 사랑 속에서 얼굴에 흰 천을 덮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데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데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일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나, 객사하는 사람을 두고 앞뒤없이 너의 책임이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충생신고와 사망신고를 받는 행정의 원칙과 젊은이들의 젊음을 담보로 내맡겨진 안보의 원리 역시 '가족의 사랑 안에서의 탄생과 죽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만나지 못하는 이를 위한 보호이며, 단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당할 수 있는 이의 수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2011311일 일본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 날 나의 조카가 태어났다.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은 416일의 세월호 사건 당일 어딘가의 나라, 어딘가의 가족 안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차가운 철제 배 안에서 많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누구나 사람을 죽는다. 그러니 죽음을 인정하라 따위의 말은 더이상 이 지구 상 위의 많은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311일의 일본을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416일을 기억해야 하고, 그 유가족들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죽지만 그 죽음이 예상하지 못했던 죽음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할 수 있었던 불상사에 대해서 국민이 권력을 이양해 가며 많은 돈과 힘을 싣어준 국가라는, 추상적 존재에 대한 역할을 다시 한 번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 사랑 안에서의 탄생과 죽음은 인권 진보의 산물이 아니라, 선사 시대에는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삶의 운영 원리 중 하나이며, 그것을 최근에 들어서야 이룩해낸 성과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빌어, 선택한 죽음이 아닌 '뒤집어 씌어진 죽음'을 맞이한 모든 이에 대한 애도와 함께, 그런 와중에도 가족의 일원이 된 우리 조카를 비롯한 모든 새로운 존재들에 대한 환영과 함께, 각자가 살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 과연 요구하는 것들이 무리한 것들인지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생각을 알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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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8. 05:42 내 생각

# 0   2015. 1.28. 
아래에 적힌 글은 매우 불친절한 글이다. 왜냐하면 글을 적는 내가 갖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들이 두서 없이 나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감히 예견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 적고 나니, 글의 길이도 무척이나 불친절하다.)


# 1 
프랑스에서 '샤를리 앱도'라는 풍자 잡지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를 풍자한 그림을 그렸고, 이 잡지사에, 프랑스인이면서 이슬람 문화에서 살아 오던 청년들이 난입해 기자, 직원 및 이들을 막기 위한 경찰을 죽였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프랑스 내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처우 문제 역시 같이 불거지고 있다.


# 2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총선에서 승리했다. 국회 과반수를 넘기지는 못했지만 그리스 국민들의 열망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시리자의 대표이며 유력 차기 총리 후보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총리를 뽑기 위한 과정을 곧바로 실행에 옮길 것이라 밝혔다. 그리스는 알다 시피 재정 문제로 포루투갈, 아일랜드, 이틸리아, 스페인 등 PIIGS 라 불리던 나라 중 하나이다. 외국에서 볼 때는 국가 재정 파탄의 원인이 과도한 복지지출이라 판단한 듯 하나, 내부에서의 시각에서는 부정부패와 공무원들의 행정 무능이 원인이라고 판단하는 입장도 있다. 어찌됐든 이번 급진좌파연합의 총선 승리는, 유럽연합 국가로서 그리스가 앞으로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고 그리스'만'을 위한 재정 정책을 필 것으로 예상되어 유럽 연합 국가들의 위기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 3
프랑스에서 '샤를리 앱도' 사건 이후 프랑스 국민들이 거리에 나선 것은, 표현의 자유는 보호되어야 하고 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폭력적 수단(테러를 포함하여)에는 결사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샤를리 앱도 사건의 배후에는,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프랑스 국민이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국민들에 대한 사회 내의 분위기가 결코 좋지 않았던 데에 또 다른 문제의 시발점이 있다. 프랑스는 2011년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나고 여성인권을 억압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공장소에서의 히잡(부르카) 착용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히잡을 착용하는 것이 여성인권을 억압한다고 판단한 프랑스 정부 및 의회의 판단이었으며, 히잡 금지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 프랑스 국민들이 존재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이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중 다수가, 종교의 자유와 연계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집단 시위를 하였음에도 이 법은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


# 4 
프랑스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알제리를 비롯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라오스 등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던 제국주의 국가였다. 지금은 모든 국가가 독립을 하였고, 일부 몇몇은 프랑스령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프랑스는 더이상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다. (우리 역사에도 제국주의 국가로부터의 국권 침탈이 이뤄지게 되는데, 그 나라는 일본이며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겪었다.) 프랑스로부터 식민 경험을 당한 알제리 등 일부 국가들은 이슬람 국가였다. 이슬람교를 믿는 국민들이 있던 나라에 프랑스가 식민지를 건설하여 카톨릭과 개신교를 믿는 식민 지도층을 형성했다. 식민지 국가들에게 있어서 독립은 국가의 독립임과 동시에 종교의 독립을 의미했다. 제국주의 시대는 1945년 세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종식되었지만, 프랑스는 이후에도 몇몇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후 모든 국가들이 독립을 이루었다.


# 5
우리나라에서 일부 혹은 많은 사람들은, '샤를리 앱도' 사건을 마치 프랑스 내에서 일어난 일부 이슬람교 신도들의 극단적 테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또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그 대상이 되는 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 역시 있다. 이런 입장들은, 프랑스의 역사와 사회 구성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을 못하는 경우라고 여기는 것은 오만일지 모른다. 예를 들어, 주제와 벗어나지만, 일본에서 위안부 여성을 희화화하거나 조롱하는 그림을 그렸고, 한국인 혹은 중국인 청년이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을 테러했다고 해보자. 그러자 일본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달라며 시위를 한다면 어떨까. 불편하고 극단적인 예이지만, 역사적인 맥락과 사회적인 흐름을 무시하고 사건을 바라볼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을 언급하고 싶었던 것이니 널리 양해를 구한다.


# 6 
제국주의 프랑스라는 역사적 맥락에 대해서는, 언급을 이미 했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맥락은 무엇일까. 프랑스 정계에서, 예전에는 아비지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았지만, 지금은 그의 딸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 된 사람이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과 마린 르펜, 이 두사람이다. 이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민자는 이 나라를 떠나라!"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살면서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민자의 자녀이거나 유럽 연합이 형성되면서 프랑스로 건너온 이민자 탓에 프랑스가 지금 경제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고, 또 청년들이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 핵심에 있다. 다시 말해, 순수 프랑스인을 위한 프랑스를 만들겠다 라고 하는, 어디선가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 독재자가 했던 말과 유사한 말을 하는, 현재의 그의 딸은 프랑스의 차기 대선 후보라고 생각되는 인물 중 인기가 1위다. 반(反) 이민자 정책과 더불어 이민자 유입에 큰 계기가 된 유럽 연합에 대해서도 높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 동유럽 및 구 식민지 출신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이러한 극단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정당 대표가 차기 대선 후보가 된다면 프랑스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


# 7 
잠시 한국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작년 12월 10일 전북 익산에서 '평양에 다녀온 그녀들의 통일이야기'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 고등학교 3학년 19세 남학생이 황 등 인화물질을 폭발시켜 2명이 화상을 입었다. 재미교포 신은미 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열고자 했던 토크 콘서트는 종편에 의해 '종북 콘서트'라 불리게 되었고, 종북 논란의 핵심이 되었다. 재미교포인 신은미 씨가 미국으로 강제출국되는 것으로 논란은 줄어들었으나 19세 남학생이 저지른 백색테러에 대한 논란은 불씨조차 만들어지지 못했다. 주지하다 시피 한국은, 국가보안법이 있는 나라다. 북한 정권에 대한 찬양, 고무 등은 죄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법은 과거 여러 민주화 인사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고 헌법 상 사상의 자유와 배치된다며 많은 비판을 받아오고 있지만 여전히 법전의 한 구석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여기서도 나오는 말이다. 테러, 역시 그렇다. 19세 남학생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표현의 자유를, 테러로서 막고자 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사회적으로 비판 받아야 마땅했으나 우리 사회는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 이유는, 표현의 자유가 용납되지 않는 '종북' 프레임에 피해자들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19세 소년은 종북주의자를 처단하려 했다며, 여러 보수주의 세력으로부터 변호사 비용을 후원받기도 했다.


# 8 
한국 사회에서 북한은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상이다. 북한 국민들에 대한 무한한 연민은 별도로 논의된다.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 지식인이나 유명인들은 종북주의자가 되었고, '김정일 개새끼'에 이어 '김정은 개새끼'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종북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는, 종북 판별법까지 유행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현행법이 있으니, 북한에 대한 찬양 및 고무는 당연히 법적으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와 별도로,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프랑스의 샤를리 앱도 사건이 던져주고 있다고 하면 과대 망상일까? '이슬람에 대한 조롱이나 희화화를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이슬람교를 믿는 프랑스 국민들이 하는 것에 대해서, 만약 우리가 북한을 흡수하여 통일하는 형태로 통일 한국이 형성된 이후, 다시 말해 국가보안법의 대상이 되는 국가가 사라지고 난 이후 북한 출신 대한민국 사람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희화화와 조롱을 하지 말아달라'라고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미래까지 예견하지 않더라도, 19세 소년이 행했던 표현의 자유를 막는 테러에 대해서, 프랑스 국민들의 '나는 샤를리'라는 팻말을 들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시위를 우리나라에서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신은미', '나는 황선'이라는 팻말이 등장하는 순간, 그 자신이 종북주의자임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은, 섣부르기만 한 것일까?


# 9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이 총선에 승리했다. 그리스만을 위한 경제 정책을 세우고, 유럽연합으로부터의 이탈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정당의 대표가 차기 대선 출마 예상자들 중에서 1위를 하고 있고, 이 사람은 이민자는 프랑스를 떠나야 하고, 이민자 유입의 물꼬가 된 유럽연합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그리스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불법체류자의 유입이나 이민자 확대에 대한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 10 
세계 1차 세계 대전은 어찌보면 참, 허무하게 발발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 대공이 유고슬라비아 민족주의자의 총알을 맞고 죽은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제국 그리고 이탈리아(이탈리아는 1차 세계대전에는 삼국 협상의 편에 섰음)의 삼국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 협상 간의 갈등으로 비화되어 국가의 소멸과 생성 그리고 국경선의 변경에 까지 이르게 된 사건이다. 1차 세계 대전의 배경과 핵심에는 '민족주의'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역시도 1차 세계 대전 이후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확장에 따른 국가별 경제 이익의 차이 등의 원인에 의해서 발발하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민족주의다. 그리고 여전히 이 민족주의는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까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많은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그 입김은 기분 나쁜 흥분감만 고취하고 있다.


# 11
우리나라의 경우에, 북한에 대한 입장을 민족주의라는 틀 내에서 보기는 상당히 어렵다. 왜냐하면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족이 같다고 해서 민족주의라는 파괴력 높은 이데올로기의 근원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 북한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은, 북한과 유일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에 향하고 있다. 중국 역시 유일한 동맹국으로 북한과 '조중상호방위조약'으로 맺어져 있는 상태다. 한국전쟁 정전 이후 일부 국지전은 있었으나, 아시아 전체가 전쟁으로 빠져드는 상황의 위기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 이데올로기의 차이로부터 시작된 냉전 시기와는 유사하지만 또 다르게,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간의 경제적 갈등이라는 큰 경기장은 이미 형성되었다. 이미 중국은 세계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되었고 미국은 1985년 프라자 합의 이전부터 경제 대국이라는 지위를 지켜내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북한을 절대 중국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내부적인 합의를 이미 이룬 듯 하다. 그리고 그 과정으로서 북한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과 북한 국민에 대한 무제한적인 온정주의적 관점을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종북주의는 그만큼 힘을 가진다.


# 12
종북주의가 힘을 가짐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도 이민자 및 불법체류자에 대한 반감 역시 급증하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는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했다며, 불법체류자의 자녀에게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법이 곧 통과될 것이며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은 이민자와 불법체류자의 천국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그 법안의 내용은 UN에서 정한 아동권리협약의 내용을 한국적으로 적용한 것이었다. 단지 법안 상의 오류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다른 정치인을 비판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고 하기에는, 다소 씁쓸한 감정이 남는 것은 이자스민 의원 자신이 이민자이며, 그 법안의 내용이 추구하는 방향이 이루어질 경우, 우리나라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민자나 불법체류자를 돕게 되니 절대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반응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수많은 이민자가 살고 있고, 또 그들의 사회적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적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와 동시에 이민자와 불법체류자에 대한 반감이 확대되고 그것이 정치적 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 역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실업률이 높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이러한 이민자 및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반감이 하나의 운동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하나의 기둥을 형성한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 과거 히틀러 집권 직전의 독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 13
사회적 소수자 혹은 약자에 대한 적개심이나 증오는, 한국 사회에서 이미 큰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일간베스트' 통칭 '일베'로 불리는 반여성주의, 반국제화, 독재 찬양, 일부 지역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 훼손 등 다양한 문제점을 이미 드러내고 있는 이러한 사이트와 사용자들에 대해서 우리 정부는 큰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오히려 20대, 30대의 표를 끌어오기 위한 인터넷 전위부대 쯤으로 생각하고, 후원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머물던 이들이 실제 사회에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 이들에게 국가가 했던 반응은 '표현의 자유' 존중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나라만의 문제점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재특회'와 같이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한국인(조선인)을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자고 하는 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이러한 모임이 조직화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직 중국에서는, 민족적 소수자 혹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집단적 분노나 반발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것은 중국인 특유의 '누구든 들어와라, 그러면 넌 중국인이 될 것이다' 라는 태도일지도 모르겠으나, 중국은 역사적으로 일본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적개심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계기가 되었든, 그런 조건이 형성된다면 중국 역시도 이런 국가 내의 이민자 및 불법체류자 혹은 소수자에 대한 억압은 일어날지도 모른다.


# 14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삼국의 보수화는 기정 사실이다. 자국 우선, 자국민 우선이라는 공감대는 국경 안에서 이미 통용되고 있다. 유럽과 같이 연합이 아니니 국민들 간의 왕래와 이민 등이 폭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뿐이니 지리적으로 근접하고 경제적으로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 쉽게 말해, 타국에 대한 반발심은 항상 상존하고 있으니 그 계기가 무엇이 될지 서로서로 눈치를 보며 살피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사상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으며, 한국에서는 현 정부와 여당의 목적과 목표대로 종북이라는 낙인은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명시 해놓은 헌법보다 높은 사회적 영향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일본은 자민당 독주체제를 확립하고 '정상국가'가 되어 군비를 다시 갖추어 과거의 경제적-군사적 영광을 되찾고자 하고 있다.


# 15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세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 역시 민족주의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 민족주의의 뒤에는 여전히 '경제 발전'이라는 지상 과제가 숨기지도 못하는 몸은 포기한 채 얼굴이라도 숨겨보자고 '민족주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본다. 유럽에서 1차,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여러 시도들을 해왔고, 제도적으로 완비되었다고 안심한 순간, 사람들은 더욱 나은 생활수준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과거와는 다르게 낮은 활기를 가진 자국에 대하여 과거의 향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내부의 적이 필요하게 되었고, 사회적인 약자로 보이면서도 만만해 보이는 집단에 대한 반감은 매우 사소한 시작으로 발현되었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서로 묶여서 돌아가다 보면 걷잡을 수 없는 형태로 비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국정 운영을 위해 그리고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좀 더 편리한 국가 지도 체제 완성을 위해, 한국에서는 종북이 등장했고, 일본은 국민 스스로가 정치에 관심을 끊는 형태로 자민당의 독주를 용인하며 '먹고 살게만 해달라' 말하지 않고도 말하기 시작했으며, 중국은 언젠가 완성될 진정한 공산주의 실현을 위해 국민들의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억누르고 있다. 아시아의 세 나라 모두 '경제'라는 것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핵보다 더욱 높은 층위의 어떤 것이라 상정하였고 이 지상 과제를 풀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될 것이다.


# 16 
유럽도 그렇고, 아시아도 그렇고, 본 글에서는 배제되어 있지만 지구 상 위의 수많은 국가들이 겪는 유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논의되고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책을 논의하는 것을 막고 있는 세계적 경제 침체는 일시에 풀릴 것 같지는 않다. 불안하지만, 그 해결책이란 또 다른 혁명과 또 다른 세계 전쟁과 또 다른 극단주의의 광풍 속에서 등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 드러나는 전쟁-극단주의의 실체는 과거의 어떤 형태보다도 더욱 잔인하고, 무자비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 17 
답은 무엇일까.


p.s 'IS 이슈'가 빠진 이유는 실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국가들 내부에만 집중하고 그 연결고리를 찾고자 했기 떄문이다. 다음 기회에, IS 등장이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적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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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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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17. 02:50 카테고리 없음

2008년이었다. 
다시 대학에 들어와서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경험을 쌓아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어떤 한 수업에서 한 편의 독립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우리 학교'였다.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일상을 담은 그 영화는 내가 알지 못했던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의 존재를 나에게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를 제작했던 제작자와 감독이 직접 학교에 와서 영화를 같이 본 후 그 영화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받고 또 대답을 해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여운은 길게 남았다. 이후 보건복지부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 '조사연수단'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조선학교'에 직접 방문할 기회가 생긴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일본에 방문하기 전 사전 학습의 계기로 삼고자 '한일합동교육연구회'라는 한국과 일본의 교사들이 모인 연구회에서 개최한 행사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토론하고, 또 한국에서의 다문화 문제 등에 대한 필드워크를 안산시 원곡동에서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때 만난 일본의 선생님 혹은 선생님이었던 분들은 일본에서까지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신다.

그 중 한 분이었던 '가리베 게이코' 라는 할머니 선생님이 계신다. 일본에서 약 30년 간 선생님으로 근무하셨던 가리베 선생님은,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어찌 보면 천민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는 '가죽 제작 노동자'들이 모인 곳에서 선생님을 하셨다. 일부러 지원을 하셔서 그곳에서 근무하시며 그들의 삶에서 교육에 대한 부분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크셨다고 했다. 조사연수단으로 일본에 갔을 때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다. 조선학교에 함께 찾아가기도 하였으며 우리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주시기도 하셨다. 당시에는 일본어에 능숙하지 못했던 내가 물었다. "우리 학생들에게 이런 좋은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따지듯 물은 것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우리를 대해주시는 가리베 선생님께서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 듯 했다. "나는 학생들이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다리가 될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런 학생들을 돕고 싶은 것 뿐이에요." 이 말씀은 내가 약 1년 간 교환학생으로 있을 당시까지도 변치 않으셨다. 한달에 한 번씩은 꼭 내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고, 당신의 집에와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셨다. 저녁 식사를 가리베 선생님과 그의 부군-할아버지께서도 선생님이셨다- 과 함께 그리고 고양이 토라와 함께 식사를 했다. (토라는 내가 한국에 돌아갈 즈음에야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면서 당시의 한국과 일본의 사정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일본의 민주당 정권교체에 대한 한국의 반응에 대해서 물으시기도 하셨으며,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에 대한 역사적 맥락 등에 대해서도 알려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더욱 열심히 공부하길 바란다는 말씀으로 나에게 격려를 해주셨다. 일본 이시하라 전 동경도지사가 재일 조선학교의 부지 중간에 도로를 내겠다(조선학교를 없애기 위해)고 하셨을 때 조선학교를 지키기 위해 사비(한국돈으로 약 1000만원)를 기부하시기도 하셨던 가리베 선생님은 일본 내 조선학교가 북한의 교육을 받기는 하지만 일본의 역사 속에서 있었던 조선인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또 조선인으로서 교육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 기회를 제공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셨다. 가리베 선생님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가시고 계시는 것으로 안다. 

또 다른 일본인 한 분은, 역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본 동경에 코리아타운이 조성되어 있는 '신오오쿠보'의 '신오오쿠보초등학교'의 선생님이셨다. 지금 이 분은 선생님을 그만두셨다. 그만두신 이유는, 오키나와에 한일합동연구회가 방문했을 당시 일본군이 자행했던 위안부에 대한 집단학살 장소를 견학하시고 난 뒤 만약 이런 장소에 대한 답사 혹은 연구가 간헐적으로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기억에서 잊혀지게 될 것이라며 교직을 그만두시고, 오키나와에 가서 집단 학살에 대한 연구를 하시기 위하셔라고 하셨다. 저 말씀을 직접 들을 때 그 분의 눈빛은 엄중하면서도 어딘가 모를 슬픔이 서렸다. 자신의 직장을 그만두고서도 꼭 알리고 싶은 사실에 대해서, 그는 깊은 미안함과 또 역사 속의 한 장면을 맨몸으로 맞설 용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한 명의 일본인을 소개해주고 싶다. 한국말이 정말 유창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일본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하게 되는 한 여자분은 일본에서 판매되는 NHK 한국어 교재를 편집하시기도 하고,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 방영될 때 필요한 대본의 번역을 맡고 계신 분이었다. 오사카에서 그 분을 만났을 때 주섬주섬 가방에서 '황진이' 대본을 꺼내시고는, 우리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옛 우리말에 대한 질문을 하셔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분께서 이야기하셨다. "아, 이게 이런 뜻이군요. 제대로 이야기해주셔야 되요~ 이거 그대로 드라마에도 나오고 나중에 책으로도 번역되서 나올 거란 말이에요~" 다시 말해, 우리가 말해준 것을 기준으로 일본 방송 및 책으로 편집되어 일본 전역에 퍼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 분을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고 난 뒤 몇 년이 지나서 TV에서 그 모습을 다시 뵙게 되었다. 릿쿄대학에서 열리는 '윤동주 시인 추모행사'에 참여하고 계시는 모습이었다. 그분 역시 릿쿄대학을 나오신 것으로 기억한다. 윤동주 시인의 추모행사에서 다른 일본 학생들 혹은 일본인들에게 윤동주 시인의 시와 그의 생각을 전하고 있는 그 모습에서 나는 일본인이라는 모습을 또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일본 아베 정부가 지속적으로 위안부, 조선침략에 대한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과거를 부정하여 얻을 수 있는 현재란 허황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아베는 당장의 결집을 위한 오만을 일삼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와 조선 침략 직전의 일본과 매우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일본 정부에게 있어, 우리는 단호한 태도로 그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본 글을 통해서 알리고자 하는, 일본 내 수많은 양심있는 일본인들은 자신의 정부를 부끄러워하며 역사에 대한 엄중함을 받아드리고자 한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먼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태도를 유지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몇몇의 일본인이 일본 전체를 대표할 수도 없고 대표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부에서 그들의 역사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한국과의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통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확신을 가진 몇몇 일본인들의 노력에 대해서는 우리는 같이 응원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가리베 게이코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당신의 집에서 식사를 할 때 해주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함께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많이 노력해야 해요."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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