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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턱이었다. "산중턱이었다." 산중턱이었다. 어린 시절이었으므로 오르긴 힘들었지만, 한 번 오르고 나면 높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탁트임과 그로 인한 청량감이 들었다. 할머니의 집(할아버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으므로, 주말마다 방문하는 곳은 자연스레 할머니의 집이 되었다, 그리고 정식명칭은 할매집이다.)은 산을 뒤로 세워진 단독주택이었다. 넓다거나 크다고는 하지 못했지만, 형과 내가 뛰어 놀 만큼의 공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결코 한 번도 빠져보진 못하겠지만 마산의 명치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합포만은 또 그만큼의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할머니집에서 가까운 곳에는 우물이 있었다. 할머니의 집 바로 앞 아래쪽에는 200평 남짓 되는 밭이 있었고 그 밭과 아랫집 사이에 흙길이 있었다. 그 흙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더보기
“알바 시각표” “알바 시각표” ‘이러다가 분명, 또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받지 못 할거야. 어떻게 하지? 내가 얼마만큼 일을 했는지, 시각표를 적어놔야겠다.’ 2004년 겨울, 아직 11월임에도 더 이상 추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추위가 이어졌다. 내가 일했던 주유소는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에 세워져 있어 바다와 상당히 가까웠다. 바다는 다른 건물들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의 비린 냄새와 함께 차가운 겨울 바람은 주유소 곳곳을 파고 들었다. 나는 몇 번이고 주유소 소장님께 아르바이트를 위한 대피장소, 그러니까 주유소에 들어가면 흔히 보이는 조그마한 부스를 하나 사서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벌벌 떨며 손님을 기다려야만 했다. 10월에.. 더보기
절대값 취하기 “절대값 취하기” 20161128 언제 처음 배웠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학시간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당연히 그렇겠지. 수학에서 밖에 쓰지 않는 말이니까. 아, 아니구나. 대학에 들어와서 경제학을 배웠을 때도 사용하긴 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숫자와 관련된 것에 절대값을 쓰는 것이겠구나. 절대값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세로로 두 줄을 긋는 것인데, 두 세로줄 사이에 +(양수, 플러스)가 들어가든 –(음수, 마이너스)가 들어가든 관계없이 그 결과가 양수로 나오게 하는 것을 두고 ‘절대값을 취한다’라고 한다. 예를 들어, 예를 들어보려 했는데 절대값 부호를 컴퓨터로 어떻게 찾지? 근의 공식은 찾았다! 아, 이게 필요한 게 아니지. 이거?││ 이게 맞는 듯 하군. 다시 예를 들면, │-3│이라고 .. 더보기
친함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친함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가끔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는 장면이 있다. 그건 고3이었을 때 수능을 마친 뒤의 일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패잔병들의 모임처럼, 수능이라는 전쟁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져 버렸으니 자존심이라도 지켜보려는 친구들은 날카로웠다. 사소한 일에도 큰 시비로 번질 수 있었으니 서로 졸업 때까지 조용히 지내자는 암묵적 합의도 있었던 듯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의 한 친구와 다른 반의 한 친구가 싸운다는 소식이 복도로부터 들렸다. 이 싸움이 있기 몇 달 전 우리 반의 두 친구가 싸운 적이 있었는데 이때의 불똥이 이상하게 나에게 튀었다. 그 둘의 싸움을 말리거나 중재할 사람이 나 밖에 없었는데(응?왜일까?) 내가 말리지 않았다며 꽤나 욕을 들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누군가 싸움.. 더보기
길어도 괜찮아 “길어도 괜찮아.”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은, 2009년 일본에 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페이스북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꽤 많은 친구들이 가입을 했고, 서로의 일상과 가벼운 인사를 담벼락에 남기는 도구로서 좋은 도구라 여겨졌다. 당시의 페이스북은 지금의 페이스북과는 상당히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면은 훨씬 조잡했고 채팅 기능은 있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렇게 광고가 많지 않았다. 벌써 7년 째 페이스북을 하고 있다. 뭔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한 서비스를 사용한다는게 놀랍기도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나에게 있어 약 1년 반 전부터 페이스북 사용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특별한 변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페이스북에 어머니께서 가입을 하신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 더보기
거칠 혹은 까칠 "거칠 혹은 까칠" 20대 이후가 되어 나를 만난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어릴 적에 꽤나 재밌는 사람이었다. (재밌는 사람이라 표현할 수도 있고, 남을 잘 웃기는 사람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 때는 흔히 말하는 '오락부장'으로서의 복무를 충실히 했지 말입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에는 항상 웃는 얼굴로 다닌다고 별명이 '씨산이' 였을 정도였다. (씨산이는 사투리로, 바보 같이 실실 웃고 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던 어린이가 20살이 넘고 머리에 뭔가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남을 웃기는 일에 주저함이 많아지게 되었다. 투철한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 내가 웃기는 것을 즐겨 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방이 웃을 상황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편하게.. 더보기
할당량 할당량 2014.09.28. 사람은 하루에 얼마 정도의 말을 해야 한단다. 남자보다 여자가 그 양이 많은 것은 실험으로도 그리고 경험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말의 '하루할당량'이라고 불러도 무관한 말은 그 양을 넘겼을 때는 큰 문제가 없으나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에는 다양한 현상으로 그것을 채우고자 한다. 예를 들어 잠을 잘 때 잠꼬대를 한다거나 혼잣말을 하게 되는 것이 그런 현상 중의 일부이다.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할 때 혼자말을 중얼거리던 모습을 스스로 겪어보았기에 틀린 말은 아니리라. 나아가 생각해보면 글도 그렇다. 하루에 적어야 하는 글의 양이 정해져 있다기 보다 '쓰고 싶은 글'의 양이 있다고 여겨진다. 말과 다르게 숙고의 시간을 거쳐 혹은 순간의 영감으로 글을 써내려가다보면.. 더보기
시선 시선 2014.8.14. 글을 시작하기 전에.. 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2년 간 하던 공부에서 실패를 한 후 방안에 쳐박혀서 책만 죽어라 읽던 시절이 있었다.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경우는 더이상 읽을 책이 없는 경우와 먹을 것이 떨어진 경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살아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친구의 부질 없는 전화를 받았을 경우였다. 친구는 하루 한 번씩 전화를 해서 아무말 없이 내가 무엇인가를 말하기를 기다렸다. 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전화를 건 친구의 성의를 봐서 '살아있다' 라고 짧게 대답을 한 후,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럼 다시 전화가 왔다. 전화가 와서는 집 앞에 와있으니 당장 나오라는 것이다.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친구가 고시원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는 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