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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7.01.18 산중턱이었다.
  2. 2016.12.21 “알바 시각표”
  3. 2016.11.28 절대값 취하기 (1)
  4. 2016.04.22 친함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5. 2016.04.21 길어도 괜찮아
  6. 2016.04.04 거칠 혹은 까칠
  7. 2014.09.28 할당량
  8. 2014.08.14 시선
2017. 1. 18. 11:19 내 생각


"산중턱이었다."


산중턱이었다. 어린 시절이었으므로 오르긴 힘들었지만, 한 번 오르고 나면 높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탁트임과 그로 인한 청량감이 들었다. 할머니의 집(할아버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으므로, 주말마다 방문하는 곳은 자연스레 할머니의 집이 되었다, 그리고 정식명칭은 할매집이다.)은 산을 뒤로 세워진 단독주택이었다. 넓다거나 크다고는 하지 못했지만, 형과 내가 뛰어 놀 만큼의 공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결코 한 번도 빠져보진 못하겠지만 마산의 명치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합포만은 또 그만큼의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할머니집에서 가까운 곳에는 우물이 있었다. 할머니의 집 바로 앞 아래쪽에는 200평 남짓 되는 밭이 있었고 그 밭과 아랫집 사이에 흙길이 있었다. 그 흙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바로 그 우물이 있었다. 생각하는 그런 우물은 아니다. 물을 길어 쓰는 우물이 아니라 물이 넘쳐 흐르는 우물이었다. 무학산 줄기에서 흐른 물이 지하로 타고 흘러 마침 그곳에서 솟아 올랐고 그 물을 사용하기 위해 누군가 만들어 놓은 시멘트로 만든 우물이었다. 우물 주위에는 이끼나 고사리 같은 것이 푸르름을 더하고 있었고, 가끔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보라색 조그만 꽃들도 보였다. 그리고 아주머니들.

 

빨랫감을 들고 나와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들. 그들의 손에도 조그마한 꽃들이 피었다. 보라색은 아닌, 붉은 꽃. 그 꽃은 사람 손과 꼭 같았다. 붉게도 피었지만 손목에 붙어 부지런히 빨래에 묻은 삶의 때와 먼지들을 털어내고 있었다. 크지 않은 동네였으므로, 내가 그 옆을 지나갈 참이면 그 꽃들은 내 손을 잡고 내 볼을 꼬집었다. ‘해누, 왔나~.’ 인사를 꾸벅, 하긴 하지만 누군지 알지 못하는 아주머니들이다. 그저 매주 얼굴을 보고, 성씨를 붙이거나 출신지역을 붙인 ‘~으로만 불리는 아주머니들이다. (참고로 우리 할머니는 뒷길댁으로 불렸다. 길 뒷편에 살았기 때문이리라.) 꽃과 같은 손, 손과 같은 꽃들이 빨래를 하고 있는 그곳은 매주 할머지집에 갈 때마다 꼭 한 번씩 들렀다. 여름이면 거기서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웃통을 벗고 등목을 하기도 했고, 어머니를 따라 빨래를 하러 가선 이끼나 풀잎들을 뜯어다가 흘러가는 물에 슬며시 올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우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내가 성장하지 않을 것처럼.

 

시간이 흘러 할머니께서 이사를 하셨다. 혼자 사시기엔 큰 집이기도 했고 또 그만큼 융통할 수 있는 돈이 궁색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또 다른 할머니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다 몇 해 전, 우연히 그 우물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바짝 마른 우물, 그리고 더 이상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그 공간. 꽃 한 송이 피어 있지 않았고 누가 보아도 그저 둔덕이었다. 빨래를 하는 손 빨간 아주머니도 없었고, 나를 불러 세우는 이도 없었다. 나는 그 사이, 그곳을 오르는 데 힘을 들이지 않았고, 가능하면 차를 타고 가거나 할머니집 바로 뒤에 생긴 산복도로에서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그저 그랬다.

 

10여 년이 지나며 많은 것이 변했다. 할머니집이 있던 동네에는 소방도로가 생겼고, 그 소방도로로라는 주차공간이 생기자 사람들은 차를 타고 동네를 드나들었다. 그 동네에 살던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또 그렇게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 채워지는 새로운 동네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나는 청소년을 지나 성인이 되어 있었고, 메마른 우물 하나 보다 더욱 메말라 있을지도 모를 감성, 감정을 갖게 되었다. 살면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어릴 적의 추억이라기 보다 하루하루, 강하게 내리쬐는 감정 없는 논평과 시선과 그리고 생계, 그런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만약.

 

변하지 않고 만약, 그 우물이 그대로 예전처럼 흐르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푸른 이끼가 묘한 징그러움을 선사하고 보라색 조그만 꽃과 붉은 손꽃이 나를 반겼다면, 나 역시도 그 당시의 순수한 모습이 다시금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느낌으로 내가 다시 감정이 흘러넘치는 우물이 되어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길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랑은 모텔에서의 2시간으로만 상징되는 이곳에 한 방울 한 방울 감정을, 떨어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우물이 하나쯤,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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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1. 00:50 내 생각

“알바 시각표” 


‘이러다가 분명, 또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받지 못 할거야. 어떻게 하지? 내가 얼마만큼 일을 했는지, 시각표를 적어놔야겠다.’ 


2004년 겨울, 아직 11월임에도 더 이상 추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추위가 이어졌다. 내가 일했던 주유소는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에 세워져 있어 바다와 상당히 가까웠다. 바다는 다른 건물들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의 비린 냄새와 함께 차가운 겨울 바람은 주유소 곳곳을 파고 들었다. 나는 몇 번이고 주유소 소장님께 아르바이트를 위한 대피장소, 그러니까 주유소에 들어가면 흔히 보이는 조그마한 부스를 하나 사서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벌벌 떨며 손님을 기다려야만 했다.


10월에 시작한 주유소 주유원 아르바이트도 이제 손에 익을 무렵, 10월 달의 급여를 처음 받았을 때 생각했다. ‘내가 일한 시간보다 적은 금액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시간을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라고 정해두긴 했지만, 매번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손님들의 차에 기름을 넣는 일이 많았고, 추가 근무에 대한 것은 으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추가 근무에 대한 급여를 달라고 해도 소장님은 가끔 저녁을 사주는 것으로 몇 일 간의 추가근무에 대한 급여를 지불하는 것이라 여기시는 듯 했다. 


11월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집에 있던 A4 용지 한 장에 11월의 달력을 한 장 그려갔다. 토, 일요일도 없이 일을 했으므로 11월 한 달의 달력은 딱 내가 일을 할 날을 의미했다. 그리고 달력 위에 내 이름을 적어 소장님께 매우 친절한 목소리로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며 드렸다. 


“소장님, 제가 이런 걸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이번 달 말에 알바비 계산하실 때 편하게 하시라구요.” 


소장님은 그 종이를 받아 드시더니, ‘이게 뭘까?’ 하는 눈빛으로 내가 내민 종이와 내 얼굴을 몇 번 번갈아 보셨다. 그리고 이윽고 “그래, 내가 일일이 못 챙길 수도 있으니까 월말에 다 적으면 나한테 다시 보여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소장님께서 화를 내시거나 혹은 내게 지난 달 급료가 적었냐고 따져 물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내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아마도 지난 한 달 간 내 근무 중, 주유 실수도 없고 또 청소나 단골 관리 등을 솔선하여 하는 모습들을 보시며 칭찬을 하셨던 것을 떠올리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날부터 퇴근하기 전 내가 몇 시에 출근을 했고 또 퇴근을 했는지를 정확히 계산해 표에 적어 넣기 시작했다. 월말이 되면, 총 몇 시간을 근무했는지를 모두 더한 값을 적어서 소장님께 드렸고 그렇게 나는 내가 일한 정확한 시간에 맞는 시급을 받았다. 그 당시 내가 한 달을 꼬박 일하고 받은 돈은 약 8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표는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왔을 때도, 같은 표를 만들어 올 것을 소장님께서 요구했고 그것을 적어 채워줄 것을 요구했다.) 


최근 대기업의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생의 시간을 쪼개고 뭉개는 형식으로 약 4만 명이 넘는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84억에 달하는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이 뉴스가 되었다. 깊은 화가 났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이 더러운 옛말을 아직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기업이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몇몇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식으로 어딘가에 취업하기 전, 아르바이트는 간접적으로 사회를 배우고 또 자신의 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이지 않냐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지금 현재의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는 결코 젊은 사람만이 하는 것도 아닐 뿐 더러, 젊은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그것은 더욱 보호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찬란한 시절의 가치인 ‘젊음’이라는 시간을 써서 최저시급을 받아가며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경험이 되기 때문도 아니고, 사회를 배우기 위해서도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위해 단기적으로 나마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 따위가 아니다. 삶의 유지에 필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돈이다. 


봉사는, ‘돈을 벌지 않는 일’이 아니다. 돈이 아닌 또 다른 가치를 벌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봉사다. 그렇기에 결코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을 소비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마치 ‘봉사’나 ‘의무’와 같이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아르바이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신의 시간을 들이는 모든 경제관계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스스로가 원하지 않은 것을 해달라며 요청하곤 그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결코 서로에게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자신이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임에도,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설명하진 못해도 느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글을 정리하며, 일본에서 유학했을 때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한다. 당시 여자친구가 없었던 나는 일본인 친구들 중 한 명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녀에게 호감을 표시하기 전, 한국과 일본에 연애에는 다른 점이 있을까 해서 일본인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일본인 여자친구와 가까워질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선 밥을 같이 먹어라. 그리고 밥을 같이 먹을 정도의 사이가 되면, 술을 함께 마셔라. 그러면 그 여자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고백을 해도 된다’ 따위의 어이 없는 대답을 내게 해주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나는, 왜 그런 순서로 이어지냐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는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밥을 함께 먹자고 한 이야기를 듣고 같이 밥을 먹고, 또 술을 마실 정도라면 그 여자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들일 만큼.’ 


나는 시간이 소중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것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소중하기에 그 사람이 가진 시간 역시 소중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사람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두고 있을까? 한 명의 아르바이트가 어떤 일에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언제나 대체가 가능한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아니면 그 한 명이 소중하고 또 관계에 있어서도 유지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궁금해진다. 궁금해지기도 전에 우리 사회는 그 답을 이미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틀린 답을 정답이라고 우기며. 


한 명의 아르바이트라 할지라도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시간은 결코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지켜 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 모두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람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지켜주기 위하여 발전해 온 역사가 우리 인류의 역사이자 자유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아, 너무 멀리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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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8. 12:21 내 생각

절대값 취하기”  20161128

 

언제 처음 배웠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학시간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당연히 그렇겠지. 수학에서 밖에 쓰지 않는 말이니까. , 아니구나. 대학에 들어와서 경제학을 배웠을 때도 사용하긴 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숫자와 관련된 것에 절대값을 쓰는 것이겠구나. 절대값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세로로 두 줄을 긋는 것인데, 두 세로줄 사이에 +(양수, 플러스)가 들어가든 –(음수, 마이너스)가 들어가든 관계없이 그 결과가 양수로 나오게 하는 것을 두고 절대값을 취한다라고 한다. 예를 들어, 예를 들어보려 했는데 절대값 부호를 컴퓨터로 어떻게 찾지? 근의 공식은 찾았다, 이게 필요한 게 아니지. 이거?││ 이게 맞는 듯 하군. 다시 예를 들면, │-3│이라고 하면, 이것은 +3과 같게 된다. │+3│도 결과는 양수 3이긴 마찬가지인데, 어차피 양수(+)인 것에 절대값을 취할 필요는 없겠지? 하여튼 절대값을 취하게 되면 그 안에 있는 숫자가 음수라도 양수가 된다는 게 중요하다! 중고등학생 여러분, 이것만 기억하면 수학 시험에서 한 문제는 맞출 수 있습니다!

 

갑자기 왜 절대값 이야기를 하는걸까?

 

우리 삶에도 절대값이 필요하다. 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좋지 않은 일도 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좋은 일이라면, 헤어짐은 슬픈 일이다. 목표로 했던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면,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등등등. 더욱 많은 예들을 들 수 있겠지만 일일이 예를 드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정말 많은 예나 사건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예를 들기보다 전체적으로 좋은 일을 양수(+, 플러스)라고 하고, 좋지 않은 일을 음수(-, 마이너스)라고 해볼 수 있다면 삶에 왜 절대값을 취할 필요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 전체 삶을 보면, 좋지 않았던 일도 좋은 일이 된다. 다만 그 좋지 않은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지금 당장 힘들어죽겠는데,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과연 좋은 일이나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마구 샘솟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러한 하나하나의 좋지 않았던 일들이 결코 음수(-, 마이너스)로만 남아있는 일은 없다. 생각해보자. 1년 전에 나를 슬프게 한 일이 뭐였지? 2년 전에 나를 괴롭힌 일이 뭐였지? 시간이 지난 뒤에까지도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이나 슬픔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시간이 흘렀기에 잊은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있지만, 좋은 경험이든 좋지 않은 경험이든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2014 4 16일의 세월호 사건과 같은 국가적 재난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잊지 않기로 함으로써 +(양수, 플러스)가 되었다. 국가적 재난을 떠나 개인적인 슬픔 혹은 뼈아픈 경험만을 본다면, 자신도 모르게 절대값을 취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삶에도 절대값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수학과 경제학에서만 절대값을 배우고 적용한다는 건 아무래도 좀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학 공부나 경제학 공부가 차지하는 시간의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하지만 삶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랬듯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 많은 경험을 하고, 감정을 갖는다.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 중 잊고 싶은 기억,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에 ││(절대값)을 씌어보자. 당장 절대값을 취하는 것이 어렵다면,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절대값을 취해 양수(+, 플러스)로 만들어보자.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관계 없이, 자신이 유발했든 유발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과 경험들에 대해 한 번 멋드러지게, “좋았어! 절대값을 취해보자!”라고 하는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나 알다시피 좋은 일과 경험은 적다. 좋지 않은 일과 경험은 징그럽게도 많다. 우리 삶에도 절대값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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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17.06.04 12:43  Addr  Edit/Del  Reply

    개인적으로 좋았던 일을 +/ 좋지 않았던 일을-로 생각 하셨네요.
    수학 에서 절댓값 은 단지 -를 +로 바꿔 주는게 아닙니다. 수의 절대적인 양,거리를 보여주는거죠.
    삶에서 절댓값 을 씌운다면 좋지않았던 일이 좋은 일이 되는게 아니라. 그냥 본질 그자체. 감정을 뺀 상태가 되야 할것 같아요.
    그냥 벌어진 이벤트. 선형적 시간 개념에서 발생한 그 상태의 이벤트.
    절댓값 은 그런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 4. 22. 01:30 내 생각

친함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가끔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는 장면이 있다. 그건 고3이었을 때 수능을 마친 뒤의 일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패잔병들의 모임처럼, 수능이라는 전쟁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져 버렸으니 자존심이라도 지켜보려는 친구들은 날카로웠다. 사소한 일에도 큰 시비로 번질 수 있었으니 서로 졸업 때까지 조용히 지내자는 암묵적 합의도 있었던 듯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의 한 친구와 다른 반의 한 친구가 싸운다는 소식이 복도로부터 들렸다. 이 싸움이 있기 몇 달 전 우리 반의 두 친구가 싸운 적이 있었는데 이때의 불똥이 이상하게 나에게 튀었다. 그 둘의 싸움을 말리거나 중재할 사람이 나 밖에 없었는데(?왜일까?) 내가 말리지 않았다며 꽤나 욕을 들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누군가 싸움을 하면 말리겠노라- 하고 했던 허망한 맹세를, 수능이 끝난 뒤에야 지키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지만, 어쨌든 그랬다.

 

, ! 싸우지 마라. (한껏 짜증난 목소리로)

 

한참 서로의 얼굴을 주먹으로 마사지하고 있던 두 친구의 사이를 슬며시 쑤셔 들어갔다. 그런 뒤 한껏 힘을 주어 둘을 떼어냈다. 싸우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때만 해도 힘이 셌던 것인지 둘은 생각보다 쉽게 멀어졌다. 우리 반 친구에게 그만하라며, 교실로 들어가자고 하는 순간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돼지쉐끼(새끼의 사투리, 쉐끼), 니는 뭐꼬?

 

? 나한테 한 이야기일까? 정말?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반 친구는 정확히 내 눈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 난 그냥 싸움 말린거 밖에 없는데? 하고 냉정을 찾았으면 다행이었겠지만 나 역시도 무언가 지키고 싶었던 것이 있는 느낌으로 갑자기 싸움을 시작했다. ‘뭐라고? 다시 말해바라!’ 라고 시작한 싸움에 옆반 친구는 참 많이도 맞은 듯 했다. 체급이 달랐다고 솔직히 고백해야겠지만, 어쨌든 나의 싸움은 두 친구를 말리던 것보다 더 격렬하게 말림을 당하며(?) 끝이 났다.

 

수업시간이 끝나고 다시 쉬는 시간, 화장실을 갔다.

 

가보니! 나와 싸웠던 그 친구가 밀대자루를 손에 쥐고, 나를 죽일거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씩씩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나도 죽을 만큼 소변이 급했으므로, 그 친구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총총거리며 가서 소변을 시원하게 보고 들키지 않은 채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난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한 무리의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찾아왔다.

 

잠시 배경설명.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이상한 교육을 했는데 대학처럼 학생들이 교실을 옮겨다니며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시기가 잠시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 교실 앞에 넓은 공간을 만들어 일종의 휴식공간이 있었다. 배경설명 끝. 나는 그 한 구석 모퉁이에 앉아 당시 유행하던 힐리스를 신은 채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를 찾아온 한 무리의 친구들은 나의 위치와 정대각선의 모퉁이에 한껏 어깨와 미간에 힘을 주며 섰다. 굳이 분류하자면 양아치일까. 3이 되어서도 와해되지 않았고, 수능을 치고서도 저러고 있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에게는 그게 우정인 듯 보였다. 무리 사이에서 마치 대변인인 양 한 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평소 얼굴과 이름은 알지만 딱히 친하다고 할 친구는 아니었다. 그 역시 양아치였다.

 

니가 내 친구 때렸나?

 

일종의 보복성 방문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 한 걸음 나왔던 친구가 다시 묻는다. 돌았나?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갑자기 잘 안난다. 좀 길게 대답했던 것 같은데, 아마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저 새끼가 내한테 먼저 욕을 했다. 나는 싸움을 말릴려고 한건데, 내한테 시비 걸고 그러면 안되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비논리적인 대답이었는데, 이 대답이 먹혔다. 무리의 친구들이 생각해봐도 싸움 말리는 사람한테 다시 시비거는 건 아니었나 싶었던 듯 하다. 한 걸음 나왔던 친구는 다시 뒤로 들어갔고, 그 무리의 친구들 중 일부는 나에게 앞으로 조심해라, 툭툭 던지며 모두 다시 자기 교실로 들어갔다. 나와 싸움을 했던 친구는 양아치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나름의 계파는 유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조심하지 않았다. 그래도 싸움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런 치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게도 적고 있냐.

 

나 한 명 조지겠다고, 우루루 몰려온 그 친구들 - 결국 다 고등학교 동창들이긴 하지만 -이 참 미웠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기가 맞았다고 친구들을 불러온 그 친구보다 무슨 일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자기랑 단지 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해코지하려 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 그 친구들이 난 참 미웠다.

 

그럴 수도 있다.

 

, 그럴 수도 있다. ‘친하다는 것 역시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내가 속하지 않은 그룹이나 집단의 친함이 나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러고 있지 않은지 반성을 해보게 되는 측면도 있다. 내가 당할 때는 느끼는 것을, 가해자가 되면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인간이 가진 이중성인가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 감정의 근원이 친함이라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기도 하다.

 

자주 만난다. 이런 상황.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아도,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또 다른 사람과 어울리도록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다. 정치에 있어서는, 자신에게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물급 인물이나 정당에 친밀함을 느껴 거물급 인사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을 막무가내로 비난하거나 또는 상대 정당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을 일삼기도 한다. 정치에서 뿐만 아니다. 오히려, 정치를 포함하는 공적 영역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소한 일상에서의 친밀함이 주는 폭력이 더욱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는 친구라 할지라도 나는 누군가와 친하다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것이 용인되는 경우도 있고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뒤에 서줄 수 있는 용기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이 옳은 행위인지 옳지 않은 행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생각을 해야 사람이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저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죄를 물을 수 없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적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취재하며 내린 결론이다.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은 주체적인 판단 즉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저런 반인류적인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은 지금도 그 울림이 있다. 생각이라는 것은 어떤 누군가를 죽이거나 살리거나 혹은 철학적이거나 사상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세운 기준에 의해서 행동하거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정도로도 생각은 그 충분조건은 모두 채운 듯하다. 이런 생각의 기준에 친함이 포함될 수 있을까?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친함이라는 것이 향하는 방향이 중요하다. 내부적인 친함을 외부적인 미움으로 표현할 경우, 친함은 사실 친함이라기보다 추악함이다. 지키려는 것은 고작 자신의 마음 편함정도일지도 모르고 다음에 자신이 같은 경우를 겪게 되었을 때, 다른 이에게 보였던 미움처럼 같이 미워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감히 바라건대

 

친함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 있다면, 그 친함의 외부적 표현도 친함으로 보여주면 어떨까. 아니, 욕심을 버리고 친함의 시작으로 보여주는 건 어떨까 싶다. 친밀함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해서 연구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친밀함이란 결국 우연의 결과이다. 가족이 되는 것도 친구가 되는 것도 연인이 되는 것도, 이러한 친밀함의 시작은 결국 우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라도 지금 부모의 아들딸이 되고 싶어 된 사람은 없고, 친구라 할지라도 연인이라 할지라도 우연한 만남에 의해서 시작했다. 그럴 것이면, 지금은 친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 우연한 기회나 친밀함의 시작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우리 사회나 국제 사회나 나아가 향후 형성될지 모르는 우주 사회나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점들이 해결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마음 많이 연 사람이 상처받는다.

 

슬픈 문장이다. 위의 문장을 다르게 표현하면, 더욱 좋아하는 사람이 상처 받는다고 표현할 수 있다. 결국은 누가 더 친해지고 싶어하느냐의 문제이다. 우리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가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친밀함을 표현한다면, ‘? 나랑 안친하잖아?’ 라거나 왜 갑자기 친한 척 하지?’ 라는 반응이 아니라, ‘저 사람과 친해질 수 있겠구나.’ 라거나 나도 마음을 열어볼까?’하는 생각을 가진다면, 더욱 넓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친함은 결국 폭력이 발생하는 요소였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많은 전쟁과 갈등의 근간에는 친밀함이 있었다. 더욱 친한 사람을 지키고자 했던 갈등, 자신과 같은 국적을 갖고 있거나 같은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부터 느끼는 친밀함으로부터 발생한 전쟁 혹은 동일한 사상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 세계를 반으로 나누어 싸웠던 냉전까지. 이런 글을 통해서 서로 친해집시다!’ 하고 연설적으로 외치는 것이 결국 일상 혹은 세계사에 어떤 큰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으나, 친밀함에 친밀함을 연습하고 포용해나간다면, 더욱 나은 우리가 될지 모르겠다.

 

수능이 끝난 고등학교 3학년, 친밀함의 범위 밖의 한 학생이 느낀 소외감 혹은 폭력의 경험으로만 끝내기는 아쉬워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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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21. 00:14 내 생각

길어도 괜찮아.”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은, 2009년 일본에 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페이스북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꽤 많은 친구들이 가입을 했고, 서로의 일상과 가벼운 인사를 담벼락에 남기는 도구로서 좋은 도구라 여겨졌다. 당시의 페이스북은 지금의 페이스북과는 상당히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면은 훨씬 조잡했고 채팅 기능은 있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렇게 광고가 많지 않았다.

 

벌써 7년 째 페이스북을 하고 있다.

 

뭔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한 서비스를 사용한다는게 놀랍기도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나에게 있어 약 1년 반 전부터 페이스북 사용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특별한 변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페이스북에 어머니께서 가입을 하신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몇 해 전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셨으면서도 페이스북은 하시지 않으셨다. 아마 하시는 방법을 모르셨을 것이다. 1년 반 전 고향에 내려간 김에 어머니의 스마트폰에 페이스북을 깔아드렸다. 집에 노트북도 한 대 내려보내드렸는데, 노트북보다는 폰이 쓰시기 편하실 듯 했다.

 

그리고 나는 페이스북에서 더욱착한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께서 가입하시기 전에는, 술을 마신 뒤 다소 우울한 내용이나 특정한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정치적으로 날카로운 글을 마구 싸적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가입 이후, 나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불편해졌을까? 답답해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물리적 거리가 먼 어머니와 더욱 심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적을 때에도 읽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며 적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어머니께서는 페이스북을 하시면서, 작은 아들이 서울에서 어떻게 하며 살고 있는지를 직접 보실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아실 수 있게 되었다. 또 작은 아들의 글을 꼭 읽으시며 응원의 한 마디나 농담 한 마디까지 던져주시게 되었다.

 

그리고 또 나는, 내 글의 팬을 얻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적은 글은 꼭 읽으신다 하셨다.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으시곤 나에게 어머니의 생각을 말씀해주신다. ‘정말 좋은 글이다.’ ‘이번 글은 좀 이해가 잘 안된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시며 내게 조언해주신다. 어머니는 내 글의 팬이다.

 

얼마 전,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글을 페이스북에 적었다. 어머니께서 그 글을 다 읽으셨다며, 이야기를 이으셨다. “매일 올라오는 너의 글이 갑자기 올라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게 된다.”하신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글을 매일 적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기다리지 마세요. 어머니께서 말씀 이으시며, “글이 길어서 읽기 힘들지만, 끝까지 다 읽을테니 계속 글 적어줘.” 내가 되묻는다. 글이 길어요? 그럼 좀 짧게 적을까요? 어머니 대답하시길,

 

길어도 괜찮아.”

 

되도록 길게 적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 길어지면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 글 역시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머니께서는 괜찮다 하신다. 길어도 읽어주시는 마음이 고맙고 또 한편으로 미안하다.

 

페이스북을 한 지 7. 지금은 단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훔쳐볼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꽤 멀리 살고 있는 나의 가족에게 혹은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누군가 나의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지금, 2016, 32살의 권현우라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목소리가 되었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기쁘다. 읽어주셔서 고맙다. 누구보다 어머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들은 오늘도 하루 열심히 살았고, 내일도 오늘 보다 나은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할겁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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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4. 19:16 내 생각

"거칠 혹은 까칠"

 

20대 이후가 되어 나를 만난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어릴 적에 꽤나 재밌는 사람이었다. (재밌는 사람이라 표현할 수도 있고, 남을 잘 웃기는 사람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 때는 흔히 말하는 '오락부장'으로서의 복무를 충실히 했지 말입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에는 항상 웃는 얼굴로 다닌다고 별명이 '씨산이' 였을 정도였다. (씨산이는 사투리로, 바보 같이 실실 웃고 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던 어린이가

 

20살이 넘고 머리에 뭔가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남을 웃기는 일에 주저함이 많아지게 되었다. 투철한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 내가 웃기는 것을 즐겨 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방이 웃을 상황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편하게 하지 못하는 '장난' 이 대표적이다. 평상시에는 장난을 잘 받아주던 친구들이, 어느 날은 내 장난에 정색을 한 경우가 있었다. 그 원인은 친구가 '몸이 아파서' 일수도 있었고, 집에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되묻지 못했고, 어느 사이엔가 분위기를 살피고 친구를 배려하다 보니 진중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배웠기 때문이다. 20살 때 처음 들어온 대학의 오티를 가는 버스 안, 학생회장 형님의 오티 관련 안내를 듣고 있었다. 당시에는 어색했던 '양성 평등'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오티에 가게 되면, 여장을 하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여장은 여성을 희화화하는 도구이며,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 중에는 여성을 포함한 많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멸시 혹은 조롱이 담겨 있다 했다.

 

몰랐다.

 

어릴 적 내가 웃기는 현우였을 수 있었던 것이, 다른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조롱해서 웃긴 것이 아님에도 '혹시 내가 그랬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없지는 않았을 테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으니, 그것을 알면서도 나쁜 일들을 저지른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몇 가지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뭔가 투박했다.

 

배운 것을 적용하고 써먹는데 있어서, (나의 표현이지만) 서울사람다워지지 않았다. '서울사람답다'라는 말은 뭔가 세련된 느낌이나 먼저 크게 배려하는 느낌의 어떤 것이지만, 나는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고집이 있었고, 배려를 너무 티나게 했다. 무언가 의도가 있는 듯 보였던 배려들은 오히려 많은 오해들을 낳았다.

 

언젠가 한 동생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 조금 더 매끈할 수 없어요? 형의 거칠거칠한 면이랑 잘 맞는 사람은 형과 친해지고 형을 더 잘 알 수 있겠지만, 형의 그 거친 면에 상처를 받는 사람도 많을 듯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 나름의 배려와 공부를 통해 얻은 어떤 것을 글이나 말로 표현할 때 그 거친 면이 드러났다. 그리고 나는 되려 그 거친 면이 나의 모습이라며, 세상 모든 것이 다 쉽고 편하고 별 일 없이 돌아갈 때 나 혼자라도 그렇게 거친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마치 김영랑의 시 '독을 차고'의 화자와 같은 심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외로워졌다.

 

몇몇의 편한 친구들은 나를 이해하고 인정했지만, 새롭게 사귄 친구나 나의 거친 면을 원하지 않게 확인한 친구들은 그 거침을 까칠함으로 인식한 듯 했고 그렇게 멀어져갔다. 결국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배려'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 이상의 배려는 없을 것이라 여겼던 나는, 사실 내 주관에 맞춰 배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타인의 몸과 마음 모두에게 어떤 '불편함'을 주고 있었다.

 

그럴수록 점점 더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쉽게 변할 수는 없었다. 지금 적고 있는 이런 글도 마찬가지였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글을 적자니 이전에 써 오던 '나의 스타일'의 글들이 가지는 관성이 있었고, 사람을 대할 때도 이전과는 다르게 갑자기 '너의 생각은 이런 부분이 잘못되었구나~‘ 라거나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고 차근차근 설명이나 해명을 할 수 있게 되기는 쉽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고집 센 사람이 무엇인가를 잘못 배우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은 가득 남아 있고 단지 그것을 배우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나은 사회를 위해 활용하고자 하는 나의 입장으로서는 여러모로 답답한 측면이 없지 않다. ‘고집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겠냐 싶으면서도 또 세상이라 부르던 사회라고 부르던 복잡다단하게 돌아가는 이 곳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강변해보아도 결국 외로운 사람은 나뿐이다 싶다.

 

가끔 혹은 자주 나도 매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몸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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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28. 17:43 카테고리 없음

할당량 2014.09.28. 


사람은 하루에 얼마 정도의 말을 해야 한단다. 남자보다 여자가 그 양이 많은 것은 실험으로도 그리고 경험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말의 '하루할당량'이라고 불러도 무관한 말은 그 양을 넘겼을 때는 큰 문제가 없으나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에는 다양한 현상으로 그것을 채우고자 한다. 예를 들어 잠을 잘 때 잠꼬대를 한다거나 혼잣말을 하게 되는 것이 그런 현상 중의 일부이다.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할 때 혼자말을 중얼거리던 모습을 스스로 겪어보았기에 틀린 말은 아니리라.


나아가 생각해보면 글도 그렇다. 하루에 적어야 하는 글의 양이 정해져 있다기 보다 '쓰고 싶은 글'의 양이 있다고 여겨진다. 말과 다르게 숙고의 시간을 거쳐 혹은 순간의 영감으로 글을 써내려가다보면 어느 순간 글이 쓰기 싫은 순간이 있고 분명 적고 싶은 내용은 다 적었지만 뭔가 더 끄적이고 싶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 쓰게 했던 '일기'는 글의 양에 익숙해지도록 하는데 그 뜻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루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하루의 글의 양을 채우는 것,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 역사 속에서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거나 그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글을 썼다. 녹음이나 영상시설이 충분치 않았기에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기 보다 글을 '써야만 한다'는 일종의 책임의식이나 성취 목적이 있었던 듯 하다.


또 한걸음 내딛어 보면, 만나야 하는 사람의 수도 정해져 있는 듯 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간혹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특이'하거나 '특별'한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평생을 혼자 있어야 한다면 아마도 포기의 흰 색 깃발을 들어야 할 것이다.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이란, 만나서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또는 생산적인 혹은 비생산적인 일을 하도록 하는 대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길거리를 지나 다니다가 만나는 사람, 만나고자 하는 약속을 정하고 만나는 사람,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우연히 만나는 사람 등 모든 사람은 사람이기에 할당량에 포함된다. 말과 글보다는 그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고 보이는 이 '사람 수의 할당량'은 때론 극단적으로 줄어들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대표적인데 세상 모든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단 한 명 연인의 존재가 사람 할당량을 가득 채울 만큼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TV'나 컴퓨터 등 화면을 통해 만나는 사람은 그 할당량에 포함되지 않는다. 할당량은 채우지 못하고 단지 할당량을 채우도록 '자극'하는 정도에서 그 역할은 멈추곤 한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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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4. 03:14 카테고리 없음

시선 2014.8.14. 


글을 시작하기 전에.. 


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2년 간 하던 공부에서 실패를 한 후 방안에 쳐박혀서 책만 죽어라 읽던 시절이 있었다.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경우는 더이상 읽을 책이 없는 경우와 먹을 것이 떨어진 경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살아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친구의 부질 없는 전화를 받았을 경우였다. 친구는 하루 한 번씩 전화를 해서 아무말 없이 내가 무엇인가를 말하기를 기다렸다. 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전화를 건 친구의 성의를 봐서 '살아있다' 라고 짧게 대답을 한 후,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럼 다시 전화가 왔다. 전화가 와서는 집 앞에 와있으니 당장 나오라는 것이다.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친구가 고시원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만나기 위해 왔다며 어슬렁거리고 있는 친구에게 돌아가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친구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소중해 보였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면 별 말없이 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으러 가서는 애써 공부와 관련없는 이야기들을 쏟아 내곤 했다. 친구는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마치 '신'이 된다며, 다른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우습게 넘겨버리고, 오직 내가 말하는 것만이 진실인 것인양 말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치 이야기를 할 때 내가 가장 생기가 돈다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친구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가끔 내게 정치 이야기를 묻곤 한다. 나는, 처음에는 내게 정치 이야기를 시킴으로써 내가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친구의 농락에 놀아나기 싫어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어느 샌가 몇 술갈의 밥이 내 입에 들어가고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 친구의 잘못을 꾸짖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친구는 그렇게 욕을 먹고 또 밥값을 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는 그렇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친구는 지금도 가끔 전화를 건다. 어찌나 내 삶에는 친구의 전화가 필요한 순간이 많은지, 이 친구는 시기가 지날 때마다, 마치 여름만 되면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내가 어떤 위기에 봉착했을 때마다 전화를 걸어 내 생사를 확인하곤 했다. 이렇게 적고 있으면 내가 마치 '예비 자살자'같이 들리곤 하지만, 나는 어느 누군가의 생각보다 생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죽고 싶은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아 있음으로 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과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있기에 죽음이 내게 주는 위안 따위는 내 고민의 자양분을 받아 먹지 못했다. 그래도 가끔은 내일이 두려울 때도 있다. 내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오늘을 사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듯 할 때도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은, 언젠가 거두어들일 사과에 대한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과나무든 자두나무든 심지어 땅에 심어도 나지 않을 타이어를 심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주어진 오늘을 살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의미로 밖에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런 시절도 다 지나고 내가 겪을 수 있는 고통이 이제는 다소 줄어든 것같아 보일 때도 있었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터라 우연히 지원했던 대학원에 합격하기도 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여기서 본질이란 '삶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밥벌이'의 문제 정도 되시겠다. 다시 고민에 휩싸인 나에게 친구는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했고 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집 밖을 나가는 것을 극히 줄이기 시작했다. 친구는 이제 집을 찾아오지는 않고 내가 살고 있는 번화가 주변에 와서 이렇게 전화를 하곤 한다. '커피나 한 잔 하자' 그리고선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고 간다. 다행히 지금은 집에 쌀이 있다. 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의 쌀이 있으니 내심 뿌듯함 마저도 느껴진다. 이렇게 적고 있으니 헤어나올 수 없는 고민에 빠진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실상 행복에 겨워있다고 표현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다. 큰 행복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처럼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를 한번이라도 만나본 사람들은 사소한 계절의 변화에도, 하늘에서 비가 내려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또 내가 어제 적은 것처럼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나를 찾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함을 느낀다. 행복이라는 것이 크지 않으니 쉽게 행복은 채워질 수 있고, 쉽게 채워질 수 있으니 더욱 잘 쌓인다. 그렇게 쌓인 행복으로 나는 무엇을 하는고 하니 이렇게 글을 쓰거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실은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지만, 이야기들을 하고 다니거나 좋은 기회나 좋은 사람을 찾아 다니곤 한다. 글을 쓰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읽는다'는 행위에 있어 지나친 수동성에 다소 질린 면도 없지 않아 좀 더 적극적인 행위를 해보고자, 쓰게 된 것이다. 작년 이맘때와 지금의 나는 달라진 듯 하다. 어떻게, 무엇이 달라졌는가 하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답을 찾아과는 과정에 있어 작년보다는 올해 더욱 단단한 마음과 깨끗하지는 못할지언정 더욱 넓어진 정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이 나에게 힘보다는 비난을 주고, 격려보다는 비판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살아 있다는 것을 감사히 느끼게 된다. 가족의 가치야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태양은 수소 가스를 불꽃으로 만들며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죽기 전에 태양이 먼저 사라지는 일은 없을테지만 태양 역시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나의 가족이 나에게 주는 사랑이란 그 어떤 것으로도 변하지 않으며 그것의 영원성을 내가 '영원히' 믿을 수 있기에 굳이 가족의 역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딱 한가지 아쉬운 것은, 부모님의 노화를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직 해드리지 못한 것들이 많다. 사랑은 영원할 지언정 어머니와 아버지의 연세는 무심하게도 한 살 두 살이 덧씌워지고 있다. 내가 삶에서 조급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내가 빨리 성공하지 못하거나 결혼하지 못하거나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것에서 조급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얼굴에 다시는 펴지지 않는 주름이 생기는 것을 막지 못한 조급함이요, 기력이 없음을 토로하는 어머니의 짧은 탄식 한 마디를 막지 못한 조급함이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밥을 아무리 먹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 있어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시간을 바꾸지 못하면 그 시간을 더욱 소중히 사용할 수 밖에 없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아주 간단한 결론을 도출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몸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함께 할 수 있는 방이 있다면 나는 그 방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단 두 층. 가족의 방과 내 방. 언제나 내가 갈 수 있는 그곳으로 가기 위하여 더욱 지금 있는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밖에 없다.

밤이 늦었고,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노트북 옆에는 담배와 책이 쌓여 있다. 하나는 정신을 해치고, 또 하나는 정신을 살린다. 균형을 잡아보려 해도 균형 잡는 것이 쉽지 않다. 해야할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살아있음'으로 인해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해야하는 것 중 하나가 글쓰기이다. 



글을 시작하며..


레이져에 질량이 있는지 물리학과 재료공학 등을 전공하는 다양한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친구들의 대답은 '모르겠다' 였고, 또 다른 친구들은 '레이져에 질량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측정할 수 있을 만큼 큰 질량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 듯 하다'는 애매한 대답을 남겼다. 다른 일부의 친구들은 '없다'라고 단정지었다. 극단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조건임에 틀림이 없다. 


뜬금없이 레이져의 이야기, 그것도 레이져의 질량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레이져에 질량이 있다면 높은 고층 건물이나 건물 안의 천장과 같이 우리가 손을 닿아 거리를 잴 수 없는 것들에 레이져를 쏨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량 손실을 계산하여 높이나 넓이를 계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거짓말이다. 레이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었으면, 여기다 적지 않고 공대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냈겠지.


레이져에 질량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오늘 나는 생각했다. 사람의 시선에도 질량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안구(눈알) 질량 말고,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시선 말이다, 시선.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에도 질량이 있다는 증거는 많다. 심지어 누구나 실험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가령 길을 가다가 잠시 멈추어 서서 바로 앞의 사람의 뒷통수를 가만히 쳐다 보고 있어 보라. 그럼 분명 누군가는 뒤를 돌아 보게 된다. 당신이 째려보고 있든 그냥 멍하니 보고 있든 관계없이 당신이 지켜보는 사람은 당신의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실패한 사람은 카페나 도서관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한 명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어보라. 그럼 당신의 시선을 받은 사람은 당신을 보지 않는 척 하면서, 당신을 흘끔흘끔 처다본다. 어떻게 그 사람들은 당신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까.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른다. 분명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그런 시선의 힘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고 그 결과가 싸움이든 사랑이든 어떤 형태로든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과학적이면서 비과학적이고 상식적이면서 비상식적인 분석이 필요할 듯하여, 나는 시선에도 질량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떤 한 곳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떤 남자 한 명이 나를 보고 있다.(혹시 몰라서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남자다. 이 블로그를 적고 있는 사람은 남자다. 그리고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 왜 쳐다보는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 시선에 질량이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했고 그 남자에게 속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오늘 내가 집에 가서 글을 쓸 거리를 던져주었다는 것도 있지만, 항상 시선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선에 질량이 있다는 다른 증거가 필요한 순간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의 눈을 바라볼 때가 대표인 증거의 하나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쳐다보면 서로의 눈동자를 보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눈동자가 아니라 시선의 질량을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시선의 질량을 교환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눈에 시선을 보내면 그 시선에 맞게 동등한 양의 시선을 다시 다른 눈동자로 보내게 된다. 이런 시선에는 색깔이 있어 '당신을 좋아합니다' 라는 의미를 담은 핑크색 시선이 있기도 하고, 심하게 다툰 연인의 경우에는 '당신이 싫어'라는 의미를 담은 검은 색 시선이 있기도 하다. 이 시선의 질량과 색깔을 확인할 수 있는 몸의 기관은 바로 '맹점'이다. 맹점은 빛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조직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선의 질량을 재기도 하고, 또 그것의 색깔을 알 수도 있다. 어라? 맹점이 시선의 질량을 잰다고 한다면 뒤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 중 하나이다. 빛을 받아들이는 맹점은 앞으로 들어오는 빛을 인식하기도 하지만 시선의 질량을 받아들일 때에는 앞뒤옆 가리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생각한 이론이 무너질 수 있으니 이렇게라도 우겨야겠다. 맹점이 시선을 느끼고 그 시선이 가지고 있는 질량 뿐만 아니라 색깔을 느낀다는 것은 많은 실험의 결과를 통해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화나 영화에서 표현되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 사이의 하트 뿅뿅이라던지, 싸우는 사람들 사이의 불꽃 등으로 이미 많이 표현되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은 시선의 질량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것이 가진 색깔이나 형태에만 집중을 해왔던 것이다. 


시선은 질량을 가지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는 증거는 또 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그들의 직업을 유지하는 것은 바로 시선이 가진 질량 덕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시선을 받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연예인 혹은 유명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시선 질량 계산기'와 '시선 질량 저장용기'를 타고나거나 혹은 노력을 통해서 그것을 만들기도 하고 키우기도 한다. 때때로 일부 사람들은 시선 질량 계산기와 질량 저장용기를 갑자기 엎어버리는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성공한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은 이 도구들을 잘 관리하고 더욱 크게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한다. 선천적으로 강한 질량 계산기와 큰 질량 저장용기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정치인, 유명인 혹은 연예인이 되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평생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갈구하며 살게 된다. 우리 시대에는 이런 사람을 '애정결핍'이라 부르기도 하고, '관심병자'라는 현대적 용어를 사용해 사람들의 관심 즉, 시선을 갈구하는 사람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시선의 질량은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모두 무색 즉 아무런 색깔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시선을 갖고 태어난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또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시선에는 일정한 색깔이 입혀지게 된다. 앞서 설명했던 대로 사랑을 할 때는 핑크빛이 또는 갈등을 할 때는 검은 빛을 띠기도 하지만 이런 색깔은 일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평소 시선의 색깔이 정해진다. 삶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만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시선이 어둡다. 그리고 그 시선의 질량 역시도 매우 기분 나쁜 형태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 반대로 밝은 생각과 타인에 대한 믿음 혹은 희망을 주고자 하는 사람은 그 시선의 빛이 밝다. 간혹 어두어 질 때도 있겠지만 다시 그 빛깔을 찾는 것이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무서운 이야기일 수 있다.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시선의 질량이 전해지는 형태도 다르고, 그 색깔도 다르게 된다고 하니 지금 나의 시선은 어떤 색깔인지 어떤 형태로 남에게 전해지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내었을 때 몰려올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개인의 몫이다. 시선의 색깔과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기나 어린 아이들과 만나면 된다. 


아기나 어린 아이들이 여러분의 눈을 보고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살펴본다면 여러분이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진단법은 결코 당신이 어떤 외모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실험 방법이 아니다. 아기나 어린 아이들 역시도 외모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좋아한다는 실험결과와는 별개로 여러분이 아이의 눈만을 보고, 아이 역시도 편안한 상태에서 여러분의 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면 외모와는 관련없이 여러분 시선의 형태와 색깔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선. 


시선은 질량이 있을지도 모른다. 실컷 질량이 있고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어 놓고선 '있을지도 모른다'니.. 하지만 엄밀한 실험을 통해서 확인되지 않은 것을 사실인양 말하는 정도는 이미 충분하 내가 즐거울 만큼 거짓말을 했으니 여기서 멈추어야 할 것이다. 다만 여러분들이 나의 글을 읽고 "진짜 시선이 질량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한 번 직접 실험해보시는 건 어떨까 한다.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하지 않아도 여러분과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연인들 혹은 지나가는 아무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서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따라 여러분의 시선의 질량(형태)와 색깔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반응이 좋은 반응인지를 굳이 말해도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글을 마치고 나서.. 


위의 '글을 시작하기 전에...'를 지울까 고민을 했다. 하지만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다. 밝히지 않아야 할 점도 아니고 과거의 내 모습에 있어 내가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나와의 대화에 더욱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 이것은 오히려 자랑스러운 기록일 수 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나와의 대화를 내가 원했을 때 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처럼 적었지만, 사실은 '좋아서' 적는 것이다. 글을 적고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웃어주거나 또는 한 번 즈음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들을 던져주는 것이 나는 참 좋다. 그래서 적는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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