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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6.12.21 “알바 시각표”
  2. 2016.12.16 “2005년 산 포도주”
  3. 2016.05.23 "잘가"
  4. 2016.04.04 거칠 혹은 까칠
  5. 2016.04.04 기타와 휘발유
  6. 2016.03.30 100쪽
  7. 2014.11.14 고마운 일
  8. 2014.09.28 할당량
  9. 2013.06.26 안경을 벗어보니.
2016. 12. 21. 00:50 내 생각

“알바 시각표” 


‘이러다가 분명, 또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받지 못 할거야. 어떻게 하지? 내가 얼마만큼 일을 했는지, 시각표를 적어놔야겠다.’ 


2004년 겨울, 아직 11월임에도 더 이상 추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추위가 이어졌다. 내가 일했던 주유소는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에 세워져 있어 바다와 상당히 가까웠다. 바다는 다른 건물들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의 비린 냄새와 함께 차가운 겨울 바람은 주유소 곳곳을 파고 들었다. 나는 몇 번이고 주유소 소장님께 아르바이트를 위한 대피장소, 그러니까 주유소에 들어가면 흔히 보이는 조그마한 부스를 하나 사서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벌벌 떨며 손님을 기다려야만 했다.


10월에 시작한 주유소 주유원 아르바이트도 이제 손에 익을 무렵, 10월 달의 급여를 처음 받았을 때 생각했다. ‘내가 일한 시간보다 적은 금액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시간을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라고 정해두긴 했지만, 매번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손님들의 차에 기름을 넣는 일이 많았고, 추가 근무에 대한 것은 으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추가 근무에 대한 급여를 달라고 해도 소장님은 가끔 저녁을 사주는 것으로 몇 일 간의 추가근무에 대한 급여를 지불하는 것이라 여기시는 듯 했다. 


11월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집에 있던 A4 용지 한 장에 11월의 달력을 한 장 그려갔다. 토, 일요일도 없이 일을 했으므로 11월 한 달의 달력은 딱 내가 일을 할 날을 의미했다. 그리고 달력 위에 내 이름을 적어 소장님께 매우 친절한 목소리로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며 드렸다. 


“소장님, 제가 이런 걸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이번 달 말에 알바비 계산하실 때 편하게 하시라구요.” 


소장님은 그 종이를 받아 드시더니, ‘이게 뭘까?’ 하는 눈빛으로 내가 내민 종이와 내 얼굴을 몇 번 번갈아 보셨다. 그리고 이윽고 “그래, 내가 일일이 못 챙길 수도 있으니까 월말에 다 적으면 나한테 다시 보여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소장님께서 화를 내시거나 혹은 내게 지난 달 급료가 적었냐고 따져 물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내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아마도 지난 한 달 간 내 근무 중, 주유 실수도 없고 또 청소나 단골 관리 등을 솔선하여 하는 모습들을 보시며 칭찬을 하셨던 것을 떠올리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날부터 퇴근하기 전 내가 몇 시에 출근을 했고 또 퇴근을 했는지를 정확히 계산해 표에 적어 넣기 시작했다. 월말이 되면, 총 몇 시간을 근무했는지를 모두 더한 값을 적어서 소장님께 드렸고 그렇게 나는 내가 일한 정확한 시간에 맞는 시급을 받았다. 그 당시 내가 한 달을 꼬박 일하고 받은 돈은 약 8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표는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왔을 때도, 같은 표를 만들어 올 것을 소장님께서 요구했고 그것을 적어 채워줄 것을 요구했다.) 


최근 대기업의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생의 시간을 쪼개고 뭉개는 형식으로 약 4만 명이 넘는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84억에 달하는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이 뉴스가 되었다. 깊은 화가 났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이 더러운 옛말을 아직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기업이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몇몇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식으로 어딘가에 취업하기 전, 아르바이트는 간접적으로 사회를 배우고 또 자신의 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이지 않냐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지금 현재의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는 결코 젊은 사람만이 하는 것도 아닐 뿐 더러, 젊은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그것은 더욱 보호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찬란한 시절의 가치인 ‘젊음’이라는 시간을 써서 최저시급을 받아가며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경험이 되기 때문도 아니고, 사회를 배우기 위해서도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위해 단기적으로 나마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 따위가 아니다. 삶의 유지에 필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돈이다. 


봉사는, ‘돈을 벌지 않는 일’이 아니다. 돈이 아닌 또 다른 가치를 벌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봉사다. 그렇기에 결코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을 소비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마치 ‘봉사’나 ‘의무’와 같이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아르바이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신의 시간을 들이는 모든 경제관계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스스로가 원하지 않은 것을 해달라며 요청하곤 그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결코 서로에게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자신이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임에도,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설명하진 못해도 느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글을 정리하며, 일본에서 유학했을 때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한다. 당시 여자친구가 없었던 나는 일본인 친구들 중 한 명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녀에게 호감을 표시하기 전, 한국과 일본에 연애에는 다른 점이 있을까 해서 일본인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일본인 여자친구와 가까워질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선 밥을 같이 먹어라. 그리고 밥을 같이 먹을 정도의 사이가 되면, 술을 함께 마셔라. 그러면 그 여자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고백을 해도 된다’ 따위의 어이 없는 대답을 내게 해주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나는, 왜 그런 순서로 이어지냐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는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밥을 함께 먹자고 한 이야기를 듣고 같이 밥을 먹고, 또 술을 마실 정도라면 그 여자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들일 만큼.’ 


나는 시간이 소중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것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소중하기에 그 사람이 가진 시간 역시 소중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사람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두고 있을까? 한 명의 아르바이트가 어떤 일에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언제나 대체가 가능한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아니면 그 한 명이 소중하고 또 관계에 있어서도 유지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궁금해진다. 궁금해지기도 전에 우리 사회는 그 답을 이미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틀린 답을 정답이라고 우기며. 


한 명의 아르바이트라 할지라도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시간은 결코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지켜 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 모두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람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지켜주기 위하여 발전해 온 역사가 우리 인류의 역사이자 자유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아, 너무 멀리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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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16. 01:41 내 생각

“2005년 산 포도주

 

10시가 넘은 시각,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글자를 보내주는 친구들에게 푸념하고 있을 때, 마침 같이 사는 친구가 집으로 돌아왔다. 부스스한 머리, 추위가 잔뜩 묻어 있는 어두운 색의 롱코트 그리고 손에 든 한 병의 포도주. 송년회를 하였다며 먹다 남은 포도주를 들고 왔다 한다. 포도주의 라벨에는 이 포도주가 2005년 산()이라는 표식이 있었다. 2005년이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이다. 그리고 이 포도주의 고향은 프랑스다.

 

집에 있는 몇 개의 안주거리를 꺼냈다. 먹다 남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전과 몇 조각의 치킨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냉장고의 냉기를 덜어냈다. 포도주 잔을 두 개 꺼내고 접시를 꺼내 가벼운 포도주 술상이 차려졌다. 포도주는 병의 3분의 1 정도가 남아 있었다. 작은 포도주 잔을 꺼냈기에 망정이지 큰 것을 꺼냈으면 한 명이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을 양이다. 포도주 잔에 조금씩 포도주를 따른 뒤, 쨍 하는 소리의 건배를 했다. 친구는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며 안주를 덜어 들고 가서 포도주를 마셨다. 나는 식탁에 그대로 앉은 채로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친구들에게 밀린 답장을 한다. 고마워. 다시 쓸 수 있게 되면 써서 보낼게.

 

비워진 포도주 잔을 다시 몇 번 적게 채워 넣으며 마시고 난 뒤, 포도주는 바닥을 보였다. 치킨이 두 조각 남았지만, 저녁을 일찍 먹은 탓에 다소 허기졌던 내가 먹어 치웠다. 안주를 모두 다 먹은 뒤, 젓가락과 접시를 탑 쌓듯 포개어 싱크대에 넣어 놓고 포도주 병을 재활용 분리수거 상자에 넣으려 일어났다. 그리고 혼잣말을 공기에 툭 던졌다.

 

“2005년 산이라.”

 

내 말을 들었는지 친구가 한 마디 거든다.

 

그거 한 병에 30만원 짜리다.”

 

순간 멈칫, 했다. 이 포도주 한 병이 30만원이란 말인가. 포도주를 마시기 위한 건배를 하기 전, 2005년 산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 이건 어느 정도의 가격일까 궁금했다. 친구는 그 때는 별 말 하지 않고 단지 좋은 거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2005년 산이면 꽤 오래된 것이라 했다. 나는, ‘2005년이면 우리가 21살 때인데, 그 사이 11년이 벌써 흘렀네. 11년이면 포도주한테는 긴 시간일 수 있겠네.’ 라 하며 가볍게 넘겼다. 포도주의 가치를 알았다고 해도 또 몰랐다고 해도 나에게는 그저 하룻밤의 마무리를 기분 좋게 도와주는 정도였다. 가치와 가격과는 관계 없이, 마셔서 기분 좋은 것으로 감정이 정리되는 어떤 것. 그럼에도 이것의 가격을 안 뒤, 순간 생각에 잠겼다.

 

나는 2005년 이후 지금까지 얼마나 더 숙성되었나. 얼마나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나. 사람을 물건처럼 가격으로 따진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내가 일을 하며 받았던 돈으로 비교는 가능하리라. 20, 2004 12월 당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받았던 시급이 2800원이었다. 이 시급도 원래 2700원이었던 것을 한 달 간의 근무성과를 강하게 사장님께 피력한 결과 100원의 인상을 얻어내었던 사소한 승리였다. 한 시간 2800원을 받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한다면 어떤가. 가장 최근에 돈을 번 것이 일본어 통역을 하였을 때인데, 2주 정도의 일정을 소화하고 적지 않은 돈을 받았다. 하루로 따지면 15만 원 남짓. 단지 금액으로만 따지면 악화되었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큰 성과를 내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신하지는 못한다.

 

10년이란 얼마나 긴 시간일까. 포도와 설탕이 원목으로 만들어진 통에 들어가서 10년을 담겨 있던 기간과 나의 20대는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두 번의 대학교 입학과 한 번의 대학원 입학, 군대 입대 실패와 아동양육시설에서의 공익근무 그리고 1년 간의 일본 생활과 2년 간의 고시생 생활 등 넓게 펼쳐졌던 삶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늘의 포도주는 나에게 조용히 이야기 한 잔을 권했던 것은 아닐까.

 

흔들리지 않는 통에 들어 앉아 생각했다. 사람들은 내가 여기 가만히 오래 있을수록 나의 가치를 높게 쳐 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흔들리며 넘어지고 일어나서 다시 넘어지며 그 가치를 높여나가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이란 사람들이 자신만의 길을 열고 아픔을 겪으며 그 사이 얻을 수 있는 성취들을 이뤄나가는 중, 그들에게 잠시 기쁨을 주는 것. 아무리 내가 비싸진들 나를 마시는 어느 누구보다도 결코 그 가치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나를 마신 그대여. 자신이 만든 통 안에 갇히지 마라. 어지럽게 흔들리고 넘어졌다 일어나고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며 울다가 웃어라. 그러다 가끔 힘이 들 때 나를 한 잔 들이켜 다오.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자유로운 그대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2005년 산 포도주 한 잔 마시며, 산미(酸味)와 생미(生味, 살아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맛)을 생각한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어떤 것들이라도 그것이 나의 가치를 낮게 할 것이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져야겠다. 20살 이후 지난 10여 년 간의 기간을 지내오며, 쉽게 손에 잡히지 못했던 생각을, 2005년 산의 포도주를 마시며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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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3. 02:51 카테고리 없음
"잘가"

어제 들어온 친구와 간신히 하루를 보냈을 뿐이다. 어느 바다에서 왔는지, 차에 실려 오는 동안 어지럽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그립지는 않은지. 몇 가지의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것을 기록이라도 하듯 내 짧은 기억력 속에 담아두려했다. 하지만 이내 곧 잊어버리고 다시 몇 가지 질문을 반복했다. 내 반복된 질문이 귀찮아질만도 했는데 새로운 친구는,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히 대답해준다. 내가 질문을 잊은 것 같으면 내게 다시 질문을 하라며 다그치기 까지 한다. 그 친구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넓은 몸이 횟감이 되기 전까지 자신이 살아있음을 내 질문을 통해서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 아저씨가 뜰채를 들고 와 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 새로운 친구를 잡으려 하면, 이리저리 피하면서 "나는 남해에서 왔어!! 내 이름은 광어야!!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의 삶이 부러워!!" 외치며 뜰채에 실려 나간다. 파닥파닥. 몇 번 파닥이다 횟칼에 목이 잘리고는, 부끄러운 속살이 사람들이 먹기 좋게 잘려 내 머리 위 창가로 보이는 사람들의 테이블에 놓였다. 핏기 하나 없는 하얀 몸은 이름 한 글자 적혀 있지 않았고, 고작 '자연산'이나 '양식' 정도의 분류만 허락되었다. 내 헤어짐에 눈물을 흘려도 물 속에 있는 탓에 보이지도 않았다. 매번 잊지만 또 매번 헤어질 때 생각하지만, 다음에는 수조를 떠나가는 친구들에게 꼭 외쳐주고 싶다. "잘가."

---

집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골목으로 돌아들어오려 하면 횟집이 하나 있다. 그 횟집은 특이하게도 수조들 중 한 칸에 금붕어를 키우고 있다. 오며 가며 보는 길에 횟감 생선들은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채워지기도 하지만 금붕어는 여전한 모습이다. 먹지 못하는 금붕어를 먹을 수 있는 광어나 멍게 등 해산물 사이에 키우는 주인의 생각은 알지 못하지만, 금붕어와 (대표적인 횟감인) 광어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갈까 궁금해졌다. 그걸 글로 표현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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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속에 태어나, 사랑 속에 살다, 사랑 속에 죽는다. 나는 이 표현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힘들면서도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태도이자 노력이라 믿는다. 최근 우리 사회는 그 무엇보다 '사랑 속에 죽는다'라는 것이 너무 힘든 것이 되었다. 높은 자살률 뿐만 아니라 빈곤사 그리고 타인에 의한 살인까지. 죽음을 맞이하기 전의 사랑이 불가능했다면, 죽음 이후의 사랑이 담긴 애도와 재발 방지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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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수조 속의 금붕어와 광어는, 분리되어 있기에 서로의 죽음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람은 다르다. 같은 나라에 살고, 같은 시기에 산다. 자신이 사랑 속에 살고 죽고자 한다면 타인의 삶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고 개선시키려 해야 한다. 그게 사람다운 일이다. 사랑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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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인근에서 돌아가신 분의 애도와 사랑 속에 삶을 마감짓지 못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잘가. 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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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4. 19:16 내 생각

"거칠 혹은 까칠"

 

20대 이후가 되어 나를 만난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어릴 적에 꽤나 재밌는 사람이었다. (재밌는 사람이라 표현할 수도 있고, 남을 잘 웃기는 사람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 때는 흔히 말하는 '오락부장'으로서의 복무를 충실히 했지 말입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에는 항상 웃는 얼굴로 다닌다고 별명이 '씨산이' 였을 정도였다. (씨산이는 사투리로, 바보 같이 실실 웃고 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던 어린이가

 

20살이 넘고 머리에 뭔가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남을 웃기는 일에 주저함이 많아지게 되었다. 투철한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 내가 웃기는 것을 즐겨 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방이 웃을 상황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편하게 하지 못하는 '장난' 이 대표적이다. 평상시에는 장난을 잘 받아주던 친구들이, 어느 날은 내 장난에 정색을 한 경우가 있었다. 그 원인은 친구가 '몸이 아파서' 일수도 있었고, 집에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되묻지 못했고, 어느 사이엔가 분위기를 살피고 친구를 배려하다 보니 진중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배웠기 때문이다. 20살 때 처음 들어온 대학의 오티를 가는 버스 안, 학생회장 형님의 오티 관련 안내를 듣고 있었다. 당시에는 어색했던 '양성 평등'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오티에 가게 되면, 여장을 하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여장은 여성을 희화화하는 도구이며,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 중에는 여성을 포함한 많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멸시 혹은 조롱이 담겨 있다 했다.

 

몰랐다.

 

어릴 적 내가 웃기는 현우였을 수 있었던 것이, 다른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조롱해서 웃긴 것이 아님에도 '혹시 내가 그랬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없지는 않았을 테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으니, 그것을 알면서도 나쁜 일들을 저지른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몇 가지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뭔가 투박했다.

 

배운 것을 적용하고 써먹는데 있어서, (나의 표현이지만) 서울사람다워지지 않았다. '서울사람답다'라는 말은 뭔가 세련된 느낌이나 먼저 크게 배려하는 느낌의 어떤 것이지만, 나는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고집이 있었고, 배려를 너무 티나게 했다. 무언가 의도가 있는 듯 보였던 배려들은 오히려 많은 오해들을 낳았다.

 

언젠가 한 동생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 조금 더 매끈할 수 없어요? 형의 거칠거칠한 면이랑 잘 맞는 사람은 형과 친해지고 형을 더 잘 알 수 있겠지만, 형의 그 거친 면에 상처를 받는 사람도 많을 듯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 나름의 배려와 공부를 통해 얻은 어떤 것을 글이나 말로 표현할 때 그 거친 면이 드러났다. 그리고 나는 되려 그 거친 면이 나의 모습이라며, 세상 모든 것이 다 쉽고 편하고 별 일 없이 돌아갈 때 나 혼자라도 그렇게 거친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마치 김영랑의 시 '독을 차고'의 화자와 같은 심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외로워졌다.

 

몇몇의 편한 친구들은 나를 이해하고 인정했지만, 새롭게 사귄 친구나 나의 거친 면을 원하지 않게 확인한 친구들은 그 거침을 까칠함으로 인식한 듯 했고 그렇게 멀어져갔다. 결국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배려'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 이상의 배려는 없을 것이라 여겼던 나는, 사실 내 주관에 맞춰 배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타인의 몸과 마음 모두에게 어떤 '불편함'을 주고 있었다.

 

그럴수록 점점 더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쉽게 변할 수는 없었다. 지금 적고 있는 이런 글도 마찬가지였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글을 적자니 이전에 써 오던 '나의 스타일'의 글들이 가지는 관성이 있었고, 사람을 대할 때도 이전과는 다르게 갑자기 '너의 생각은 이런 부분이 잘못되었구나~‘ 라거나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고 차근차근 설명이나 해명을 할 수 있게 되기는 쉽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고집 센 사람이 무엇인가를 잘못 배우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은 가득 남아 있고 단지 그것을 배우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나은 사회를 위해 활용하고자 하는 나의 입장으로서는 여러모로 답답한 측면이 없지 않다. ‘고집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겠냐 싶으면서도 또 세상이라 부르던 사회라고 부르던 복잡다단하게 돌아가는 이 곳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강변해보아도 결국 외로운 사람은 나뿐이다 싶다.

 

가끔 혹은 자주 나도 매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몸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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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4. 00:54 내 생각

"기타와 휘발유"


고등학교 1학년, 기타를 배웠다. 버스정류장 앞 조그만 기타 학원에서 성함이 '박진영'이라는 선생님으로부터 기타를 잡는 법부터 코드를 쥐는 법 등 하나씩 기타 현이 내는 소리를 만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몇 개월 동안 배운 실력이지만, 코드의 운용이나 멜로디 잡는 법을 열심히 배운 덕에 그해 학교 축제에서 '비오는 거리'라는 노래를 무대 위에서 부르기도 했다. '인기' 처녀 선생님이었던 담임선생님과 반장인 나, 부반장, 총무 이렇게 4명이서 무대를 꾸몄다.


기타를 배우니


다른 노래를 들으면 기타 소리에 관심이 갔다. 드럼이나 베이스, 보컬의 소리 사이에서 기타의 음에만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이렇게들 잘 칠 수 있는지 흥분하며 악보를 찾아 연습을 해보기도 했고, 기타 연주곡을 찾아듣거나 관련된 영상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휘발유?


속초와 강릉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 친구의 차로 이동을 했던 터라 서울에 도착하면 기름을 넣어야 했다. 친구의 차는 경유 차. 주차장에 고이 모셔져 있지만 내 차는 휘발유 차다. 친구가 기름 가격을 보는데, 친구는 경유의 가격을 본다. 나는 휘발유의 가격을 본다.


평소에도 나는 휘발유 가격만 본다. 경유의 가격이야, 내 차가 먹을 것이 아니니 관심 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기타도 그랬고, 휘발유도 그랬다. 사람은 자기가 관심이 가는 것을 먼저 보거나 아니면 그것만 본다. 노래는 기타 소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기타 소리만 들었고, 도로 위에는 휘발유 차만 다니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휘발유 가격만 보았다. 나 뿐만 아닐 듯 하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어떤 지위에 있는지에 따라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 심지어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이나 듣고 싶은 것만을 본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적은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율리우스 시저)가 먼 친척인 아우구스투스를 로마 초대 황제로 만들 때, 그를 평가하길.


"보고 싶은 것과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동시에 보는 사람"이라 평했다.


보고 싶은 것이든 듣고 싶은 것이든 먹고 싶은 것이든 자기가 하고 싶고 관심이 있는 것만 보고 듣고 느낀다면, 편하다. 상식이라는 것에 대한 상식이 사라진 최근에는, 결국 자기가 좋은게 좋은 거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나의 관심사와 타인의 관심사, 나의 위치와 타인의 위치 따위의 것들에 대해 비교는 하지 않아도 배려는 해야 한다. 배려를 해야 좋은 음악이 나오고, 다양한 탈 것들이 도로 위를 다닌다. 배려를 해야 좋은 정치인이 나오고, 좋은 나라가 된다. 굳이 정치가 아니라도. 좋은 가족이든 무어든.


살아가는데 있어 아는 것이 많을 필요는 없다. 살아갈 만큼 필요한 지식이면 된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이해해야 하는 것이 많을 필요는 있다. 나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타인에 대한 - 나아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여나간다면, 최소한 내 이야기만 무조건 옳다는 사람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좀 더 나은 어른이나 사람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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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30. 12:28 내 생각

"100쪽"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고전이라는 이름 말고 또 다르게 불리기도 한다. '누구나 제목은 들어보았지만,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드문 책'. 맞는 말인 듯 하면서도 또 누군가 지속적으로 사서 읽으니까 출판되는 것일테니 반쯤 맞는 말이라고 해두어도 될 것 같다.


나 역시도 제목을 들어본 고전을 사서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세 번 이상 어떤 책의 제목을 듣게 되면 그 책은 꼭 읽는 편인데,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세 번은 훌쩍 넘게 들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고전들을 죽 읽다보니, 한 가지 법칙이 자연스레 생겼다. 그것은 바로 '100쪽 까지만 읽자' 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100쪽 까지만 읽고 읽기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고전은 시간적으로 오래된 책들이기도 하고, 또 다양한 국가에서 적힌 책들인 만큼 시대나 배경을 이해하기 힘든 측면들이 많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정말 어려운 책들을 만나도 우선 '100쪽' 까지만 읽자고 마음 먹는다.


보통 책이 300쪽 전후라고 한다면 100쪽은 3분의 1은 읽은 셈이다. 500쪽의 책이라 할지라도 100쪽은 5분의 1.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다.


왜 꼭 100쪽 까지 일까?


100쪽을 지나서야 고전들은 이제 진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100쪽이 되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어떤 배경인지, 어떤 인물들이 나오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이러한 설명이 100쪽 정도가 되면 거의 마치게 되고, 내가 그때까지 책을 다시 책장에 꽂지 않는다면 이제 재미가 생긴다. 또 100쪽까지 읽었는데 억울해서라도 더 읽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고전에서(고전 소설이라 한정지어도 되겠다) 이 법칙은 지켜졌다. 100쪽을 넘게 읽은 책들은 그 결말까지 읽었고, 또 한 권의 책이 나의 책이 될 수 있었다.


책이 이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20년이 된 책도 있고, 50년 된 책도 있다. 이런 책과 같은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역시도 고전과 같이 100쪽의 법칙이 적용되는 듯 하다.


처음 만났는데, 뿅! 하고 마음이 가거나 '이 사람과는 무조건 친해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친구는,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이라고 영화 '친구'에서는 설명해주고 있듯이 친구는 고전의 전형이라 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 나아가 그 사람의 진실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100쪽이 필요하다. 시간적으로 몇 년이라던지 물리적으로 몇 번 만난다는 것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 있는 태도가 최근에 들어서는 더욱 필요해진 듯 하다.


읽다가 포기하는 책도 있고, 다 읽고 나서 혹평을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책에 대한,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의 자세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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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4. 02:28 내 생각

고마운 일. 2014.11.14.


# 4
집에 있으면 이유 없이 사람이 퍼졌다. 집에 있으면 행동거지가 자유롭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찌 살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집에 있으면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이 올리는 여러 미담들이 모여 있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있는 것이 편했다. 그러던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집을 나가 신촌이나 홍대를 걸으면 사람이 신기했다. 아침에 나가보면 여자들의 갓 한 화장의 냄새가 풍겼고,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가정 전선 수호를 외치고 나가는 전사처럼 보였다.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노동의 숭고함이 보였다. 젊은 연인들의 스킨십에는 어색함과 사랑이 동시에 빛을 발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신기했다. 사람이 사람을 신기하게 여길 정도가 되니 내가 사람이 아닌 듯 느껴지기도 했다. 연극 무대라면 나는 이름조차 붙어 있지 않은 세트의 나무가 된 듯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물건을 살 때 나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고,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은 내 안부를 물어주었다. 내가 적은 글을 읽어주는 사람도 있었으며 나에게 그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를 나눠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했다. 그리고 집 밖을 무조건 나갔다. 나가서 길을 걸으며 사람 구경을 한 것이 아니라 내 구경을 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구경했다.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을 구경했다. 카페에 앉아 몇 명이 읽는지도 모르는 장난 같은 글을 적어 올리기도 했고, 그러면서 혼자 킥킥대어 보기도 했다. 결국 글이란 자기 만족이라며 내가 만족했으니 그러니 됐다고 자위하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대중 속의 나를 바라보고 구경을 하니 재미가 있었다. 내가 변해가는 것을 보며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오늘 밤은 오랜만에 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몇 편의 글을 적는 것은 아니지만, 또 이런 글 몇 편으로 내가 갑자기 변할 일도 없겠지만, 이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다들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고맙다. 살아있다는 것, 오늘 하루도 살아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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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28. 17:43 카테고리 없음

할당량 2014.09.28. 


사람은 하루에 얼마 정도의 말을 해야 한단다. 남자보다 여자가 그 양이 많은 것은 실험으로도 그리고 경험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말의 '하루할당량'이라고 불러도 무관한 말은 그 양을 넘겼을 때는 큰 문제가 없으나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에는 다양한 현상으로 그것을 채우고자 한다. 예를 들어 잠을 잘 때 잠꼬대를 한다거나 혼잣말을 하게 되는 것이 그런 현상 중의 일부이다.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할 때 혼자말을 중얼거리던 모습을 스스로 겪어보았기에 틀린 말은 아니리라.


나아가 생각해보면 글도 그렇다. 하루에 적어야 하는 글의 양이 정해져 있다기 보다 '쓰고 싶은 글'의 양이 있다고 여겨진다. 말과 다르게 숙고의 시간을 거쳐 혹은 순간의 영감으로 글을 써내려가다보면 어느 순간 글이 쓰기 싫은 순간이 있고 분명 적고 싶은 내용은 다 적었지만 뭔가 더 끄적이고 싶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 쓰게 했던 '일기'는 글의 양에 익숙해지도록 하는데 그 뜻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루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하루의 글의 양을 채우는 것,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 역사 속에서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거나 그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글을 썼다. 녹음이나 영상시설이 충분치 않았기에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기 보다 글을 '써야만 한다'는 일종의 책임의식이나 성취 목적이 있었던 듯 하다.


또 한걸음 내딛어 보면, 만나야 하는 사람의 수도 정해져 있는 듯 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간혹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특이'하거나 '특별'한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평생을 혼자 있어야 한다면 아마도 포기의 흰 색 깃발을 들어야 할 것이다.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이란, 만나서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또는 생산적인 혹은 비생산적인 일을 하도록 하는 대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길거리를 지나 다니다가 만나는 사람, 만나고자 하는 약속을 정하고 만나는 사람,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우연히 만나는 사람 등 모든 사람은 사람이기에 할당량에 포함된다. 말과 글보다는 그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고 보이는 이 '사람 수의 할당량'은 때론 극단적으로 줄어들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대표적인데 세상 모든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단 한 명 연인의 존재가 사람 할당량을 가득 채울 만큼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TV'나 컴퓨터 등 화면을 통해 만나는 사람은 그 할당량에 포함되지 않는다. 할당량은 채우지 못하고 단지 할당량을 채우도록 '자극'하는 정도에서 그 역할은 멈추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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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6. 23:11 카테고리 없음

안경을 벗어보니. 2013.6.26.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주위에 있는 도림천을 걸었다. 고시촌에서 시작하는 산책로는 신림역을 지나 신대방역까지 이어지지만, 오늘 아침의 산책 혹은 운동은 신림역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는 것으로 정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약 20분이 소요되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도림천 내(內)의 이름 모를 물고기들을 구경하면서 걸으면 약 35분 정도가 걸리는 그리 길지 않은 거리다. 


하루 온종일을 앉아만 있다보니, '걷기'라는 행위의 욕구가 생겨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사뿐사뿐 걸어다니기를 즐기는 본인이지만, 평소와 다르게 오늘 아침 느낀바가 있어 글로 남긴다. 


본인은 시력이 좋지 않다. 시력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기준이 '병역'이기에 간단히 설명코자 한다. 20살이 되던해, 해군병에 지원해서 해군 기초군사학교에 들어갔다. 해군은 1주일의 가입교 기간 동안 다시 신체검사를 받는다.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해군에 들어가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은, 시력이 상당히 나빠 군대 자체를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입교 후 5일이 지난 후 다시 사회로 나왔고, 신체검사를 다시 받으니 '양안난시'로 인해 4급 판정을 받았다. 간단히 설명한다고 했지만, 설명이 좀 길었다. 결국, 군대를 갈 수 없을 만큼 눈이 매우 나쁘다는 것이다. 


눈이 나쁘니, 안경을 벗으면 사물의 분간이 쉽지 않다. 형체는 제대로 알아볼 수 있어도 글자를 읽거나 숫자를 분간하거나, 신호등을 인식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항상 안경을 쓰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별 계기없이 안경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하는 것이었으니 속도를 낼 것도 아니었으므로 안경을 벗어도 무방하겠다 싶었다. 안경을 벗어도 길과 건물, 사람의 형체는 보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는 키나 체형을 보고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사람이 남자인줄은 알겠으나 어떤 얼굴을 가졌는지를 알기 어렵고, 연령대를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여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새벽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으므로 젊은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그때 생각했다. 


아, 사람이 사람으로 보인다. 몇 살이든 얼굴이 예쁘든 못생기든 잘생기든 관계 없이 사람이 사람으로 보인다. 내가 지금까지 사람을 구분지었던 방법이었던 연령이나 성별, 그리고 최근 부각되고 있는 '능력'이라 여겨지는 외모에 대한 생각들은 소용이 없다. 어떤 얼굴을 가졌든, 키가 얼마든, 옷을 어떻게 입었든 관계 없이 모두 다 사람인 것이다. 심지어 부끄럽게도 내가 젊은 남자로서 가졌던 여성의 외모에 대한 편견이, 내가 안경을 벗는 것만으로 사라졌다. 결국 나는 안경을 쓰고 있었을때, 모든 것을 명확히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오히려 내가 제대로 보아야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내 인식 속에 안개만 덧씌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보니 그랬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관계 없이, 나와 부딪히지 않으려면 피해야하는 사람이었고, 나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걸어오는 여자가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든 사람이든 예쁜 사람이든 예쁘지 않은 사람이든 관계가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 썼던 안경이 오히려 내 인식을 흐리게 만들었고, 사물에 대한 분간이 쉽지 않아지자 오히려 더 명확히 그 본질이 보였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무조건 옳고 이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놓치게 되는 부분은,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라는 것과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 역시 나와 또 다른 사람이라는 것, 그 사람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든, 키가 크던 작던, 돈이 많건 적건을 떠나서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리라. 


러시아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 안톤 체호프의 소설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의 부인과 함께 자신이 예전에 살던 집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곳에는 예전 어머니가 보시던 거울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 거울에만 빠져서 평생을 미쳐 사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여 그 거울 없이는 단 하루도 사실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거울을 우연히 본 자신의 부인 역시도 어머니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거울에 집착했다. 사실 그 거울은 평평하지도 않고 더러워보이는 거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소설에서 안톤 체호프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결국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는 것, 그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편한 것만을 찾아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이 결코 진실이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의 내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못 옮긴 부분이 있으면 추후에 수정을 하겠다.)


나도 오늘 안경을 벗고, 내가 만나고 싶어하던 '예쁘고 젋은 여자'(다시 한번 부끄럽지만, 쑥스럽지는 않다)가 아닌, 남녀를 떠나고, 노소(老少)를 떠나고 미추(美醜)를 떠나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는, 내가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혹은, 볼 수 있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살았던 삶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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