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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사'를 아시나요?

'미시사'를 아시나요? 2013.6.20. 


어색한 단어일 것이라 생각한다. '미시사'는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는 아니다.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경제학 전공자에게는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이라는 용어는 익숙할지 모르나, '미시'와 '거시'가 수식하는 것이 역사(史)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역사의 연구 중에는 엄연히 미시사와 거시사가 존재한다. 


미시사는 말 그대로, 사람 한 명 한 명의 역사 혹은 각각의 물건들의 역사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역사나 컴퓨터의 역사를 연구한 것이 미시사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나폴레옹 한 명의 역사를 연구하거나 백범 김구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그 일종일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나폴레옹이나 김구의 역사는 '평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미시사는 아니다. 진실한 의미의 미시사는 바로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의 역사이며, 우리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마을에 사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삶을 담은 이야기이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마을에 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역사가 될 수 있는지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라는 것은 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의 사회를 형성하는데 일조한 사건이나 사람들에 관련된 것들이다. 이런 역사는 거시사라고 불린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대부분은, 주요 사건이나 주요 인물들을 위주로 알고 있었던 것이며 그것들이 거시사가 지배해 온 역사의 큰 물줄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큰 물줄기를 형성했다면 그 물줄기 속에 고고히 흐르는 한 방울의 물과 그 물줄기에 힘을 보태는 작은 지류 역시 역사라는 이름을 불리는 것은 어색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누구의 딸이나 아들로 태어나서 어떤 생활 환경 속에서 살아왔고, 자신만의 역사 속에 큰 역사가 이해되고 또 그것들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사소하지만 큰 결정들이 지금 현재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큰 역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작아 보이지만 더욱 절박하고 또 진실된 역사들이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역사를 바꾸고 사회를 진보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들은 맨 앞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뒤에서 낫이나 쟁기를 들고 나왔던 사람들이라고. 프랑스 혁명이 '나폴레옹 혁명'이 아니듯, 동학농민운동이 '전봉준 운동'이 아니듯 말이다. 맨 앞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역사적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뒤의 사람들 있었기에 그들은 역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TV를 켜거나 신문이나 책을 읽게 되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연예계 스타나 운동선수들, 혹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낸다. 그들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들이 가진 생각은 무엇인지를 우리는 듣게 되고 읽게 된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파급 효과를 가진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궁금해하는 삶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들이 가진 지위나 능력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지금 그 자리로 올라가도록 한 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자녀들을 키우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느끼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역할이다. 


TV에 나오지 않아도 우리는 자신만의 역사들을 만들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역사를 우리는 만들어가고 있으면서 다른 이의 역사를 부러워하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신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 역시 매우 허황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가지는 폭력성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전해지는 우리네 시대를 조명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만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생각을 대변하는 사람이며, 조명을 받는 이야기라는 것 역시 사실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삶이 의미가 있듯, 남의 삶에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가져야 되는 태도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자신의 역사를 묵묵히 적어내려가는 수많은 민초에게 경외심을 가져본다. 


p.s 내가 이렇게 글을 적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내 역사를 돕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