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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민주주의

갤러리 민주주의 2013.7.3.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민주주의가 지속된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정체(政體)로서 익숙한 것은 군주제이거나 귀족합의체이다. 로마 제국이 그랬고, 프랑스 혁명 전 프랑스와 혁명 후 프랑스가 그랬다. 심지어 세계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난 이후에도 많은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정체로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 역사 내에서도 1945년 이전까지 민주주의 정체가 있었던 적은 없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는 '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 체계임을 인정하고 또 그것을 지켜나가고자 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고종의 '대한제국'의 이름을 닮아있는 국가에서 그렇다. 


3년간의 미군정기, 한국전쟁 발발 전 2년 동안의 민주주의, 한국전쟁 3년, 이승만 하야 이후의 의원내각제의 짧은 민주주의 이후, 박정희 독재정치, 전두환 독재정치 그리고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거의 절반 정도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국가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런 대한민국에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있어, 그 한 마디를 남길까 한다. 


그것은 '갤러리 민주주의'다. 


갤러리는 '화랑'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다시 말해 그림을 볼 수 있는 곳, 곧 갤러리인 것이다. 그리고 갤러리라는 용어는 골프 시합에서도 등장하는데, 선수들을 구경하고 있는 수많은 관객들을 갤러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갤러리는 미술관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은 자신이 마음에 든 미술 작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살 수 없다. 하지만 '갤러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 가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살 수 있다. 이 갤러리가 '갤러리 민주주의'의 갤러리다. 


우리는 민주주의 정체 내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은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대통령 선거는 5년에 한 번, 국회의원 선거는 4년에 한 번이다. 어떤 정치학자가 선거 기간에만 우리가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는 순간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했지만 이런 표현은 과격하다고 본다. 대신, 본인이 보기에는 선거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그것을 지켜만 보는 그림의 주인이자 갤러리의 손님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자신이 산 그림이 제 값에 팔릴 때나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자신이 소중한 한 표를 주고 산 그림 혹은 인물이 좋은 그림이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의 생각이 다른 경우에는, 그저 그 한 표를 버려야만 한다. 


갤러리 민주주의.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정해진 기간에만 통용되는 것이므로 나머지 기간에는 관조자로서 그 역할을 하는 국민들이 대다수인 민주주의, 이런 현상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든 없든 관계 없이 주인된 입장으로서 그것의 관리 책임을 묻지 않으니 관심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하는 정쟁(政爭)이나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갈등에 대해서 국민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팔짱을 낀 채, 몸을 뒤로 빼 멀찍이서 그것을 구경만 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나 관련된 업계의 정책이나 이슈가 나오면 심하게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나서 그 몸을 일으킨 것을 후회하며 다시금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이 없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이 있지만 그 의견을 말하지 않을 뿐더러, 말할 기회를 준다고 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고선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고 푸념하고 있다. 골프 시합에서 그렇지만, 자신이 골프 선수보다는 골프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갤러리들은 박수를 치거나 조용히 다음 홀로 이동한다. 그런데 정치란 경기는, 조용히 이동하지도 않으면서 막상 경기장으로 올려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더라도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자신은 단지 그 갤러리에서의 입장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갤러리 좌석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해도 저것보다 잘하겠다.'


갤러리 민주주의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정치적 이슈나 정쟁에는 직접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서 입만 나불거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확한 정보나 생각을 심어준다. 그리고 분명 정치 섹터에 나아가지 않더라도 참여할 수 있는 분야가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무시하고, 자신이 설 곳은 저런 마이너 리그가 아니라, 메이저 리그라며 스스로의 가치를 근거없이 높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민주주의는 그 활력이나 원칙을 잃어가고 있다. 


차라리, 아예 관심을 끄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플라톤이 '철인(哲人)정치'를 읊조리기엔 현 정치인들의 도덕성이 바닥을 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도움도 되지 않고, 시끄럽기만 한 갤러리들을 물리치는 것이 어떤 경기든, 어떤 정치상황이든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말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나중에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이 문단만을 발췌해서, 내가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느니 하는 왜곡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내가 40대 50대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없기를 바란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그렇지만, 갤러리가 빠지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없기에, 대의(代意) 민주주의를 형성했고, 그것의 대표가 국회의원이다. 갤러리들이 빠지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되, 갤러리 민주주의는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자 한 것은 아니다. 


갤러리 민주주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민중들이 자신들이 갤러리가 아님을 확실히 천명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적는다. 고매한 척 앉아서 팔짱끼고 있지말고, 부정의(不正義)를 일삼는 정치 세력에게 무엇이 정의인지 소리 높여,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이야기를 해야한다. 그리고 혼자서 힘든 경우에는 다른 사람과의 연대를 통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에서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 더욱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또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이것이 갤러리 민주주의가 사라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자 해결책이다.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SNS의 등장으로 비교적 과거보다 자신의 의견을 많은 사람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큰 확산효과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예전처럼 등사기를 돌려가며, 첩보 작전과 유사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던 시기는 지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입 밖으로 내거나 공개적인 곳에 올리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떻게 변질되고 왜곡되고 곡해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민주주의 상황은 좋지 않음이 틀림이 없다.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의견을 적고 알리는 데 대해서 조롱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지위나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권위에 따라 그 파급효과가 달라지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이런 행태는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강력히 주장해본다. 특히 20대에 만연하고 있는 '갤러리 민주주의' 현상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이 나 혼자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