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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와 상순

효리와 상순 2013.7.7

가수 이효리와 역시 가수인 이상순이 9월 중 결혼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축하할 일이다. 두 명 모두 일면식도 없지만 누군가의 결혼은 또 다른 행복을 담보하는 행위라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기에, 우선 축하를 하고자 한다.


효리와 상순의 결혼을 주제로 무엇을 쓸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이미 효리가 방송에서 밝힌 내용들을 내 글에 담아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결혼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청첩장까지 찍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다시 한번 글로 옮기고 싶은 내용이 있어 이렇게 손가락을 바지런히 움직인다.


가수 이효리가 SBS의 토크 프로그램인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상순과의 만남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정확한 워딩을 옮기고 싶지만, 방송을 본지 오래된 것과는 별도로 다시 방송을 볼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되지 않기에 기억에 의존하여 적고자 한다.

 

효리가 상순을, 가수 정재형이라는 사람을 통해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은 시쳇말로 '탑스타'의 반열에 있었다고 했다. 성공적으로 솔로 데뷔 후 한국 가요계 시장에서 '이효리'의 대체제는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공가도에 있었던 효리에게 상순은 인디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독한 기타리스트'에 지나지 않았다. 상순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나, 그 당시 이효리는 자신의 삶에 만족해 있었고, 또 인기를 실감하고 있던터라 상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던 효리가, 표절 문제와 함께 약 2년 간의 공백기에 들어가게 된다. 그 기간 동안 효리는 자신을 '암흑'에 두지 않고,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자신이 누리고 있었던 '인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고, 또 바쁜 와중에 신경쓰지 못했던 반려동물에 관련된 내용이나 환경 문제 등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글을 적는 본인이 효리가 아닌 관계로, 효리가 이전부터 반려동물이나 환경에 관해서 관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약 2년 동안의 기간 이후, 일반 대중의 한명으로서 본인이 느끼는 효리의 이미지는, 마치 다른 사람인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외연이 넓어져 있었다. 언론을 통해 접촉하는 것이 전부라 할지라도, 그가 쓰는 어휘나 표현, 그리고 공감은 새로운 분야로 접어든 듯 했다.


이런 시간을 보낸 그가, 다시 상순을 만나게 되었다. 효리의 표현대로 한다면, 그 2년 동안에도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했고, 이상순 역시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는 했지만, 지금 이 글을 적는 시점에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상순은 2년 동안, 아니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지 본인은 모른다. 상순이라는 이름을 효리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처음 알았던 본인은, 본의아니게도 이렇게 효리를 위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효리가 다시 상순을 만나고, 그와 결혼을 하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에는, 효리의 변화가 크게 다가온다. 


상순의 과거, 현재를 모른다는 것은, 변명이 아니다. 그리고 변명을 떠나서 상순이라는 사람이 효리가 보기에는, 변함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에 그의 과거와 현재는 큰 의미가 있는 시점은 아니다. 상순이라는 사람은, 소나무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효리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오든, 화장을 하지 않고 오든, 인기가 많은 사람이든, 인기가 없는 사람이든 상순은 효리를 효리로서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효리는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도 지켜봐 줄 수 있는 상순이라는 사람을 반려동물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반려자로서 택한 것이 아닐까. 


효리가 2년 동안의 방황과 성장을 겪고 난 뒤, 자신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했다. 젊고 예쁜 시절에, 또 인기 많던 시절의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자신으로 볼 수 있는 관점, 그리고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외양이나 돈,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효리는 그 2년 동안의 시간을 통해서 배운게 아닐까. 


효리와 상순의 이야기는, 사실 여기서 끝이다. 이 둘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새롭게 쓰여질 것이고 효리와 상순, 상순과 효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기만 하면, 일종의 팬으로서 나의 역할은 끝난다. 


하지만 이 글을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효리와 같은 사람이 참 많다. 지금의 효리가 아닌, 자신의 최고라고 믿고 있고 자신에 맞추어서 세상이 돌아가기를 바라고,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생각했던 효리와 같은 사람 말이다. 그 수가 적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허황된 해석을 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룬 것인양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이가 자신을 향해 하는 쓴소리들은, 자신을 시기질투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 자신이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처절히도 이어나간다.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이런 사람의 주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진정한 모습을 보지 않고 이미지만을 본다. 이미지 역시도 자신이 원했던 이미지가 아닌, 보는 사람이 편한 이미지로 자신을 평가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그 이미지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효리가 겪었던 2년간의 시간을 겪는다면 어떻게 될까. 효리처럼 자신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까. 그렇지 않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보면 파도에 휩쓸려서이든, 몸에 힘이 빠져서이든 물 속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 허우적대거나 발버둥을 친다면 더욱 힘이 빠지거나 주위의 수풀이나 해초에 자신의 몸이 엉켜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몸에 힘을 빼고, 손에 들고 있고 있던 것이나 몸에 차고 있던 것을 버리고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것이다. 너무 깊지 않은 바다라면 그 바닥은 생각보다 금방 닿을 것이고, 그 바닥에 자신의 발이 닿는 순간 자신의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잠시 힘을 모아 바닥을 자신의 다리로 힘차게 차면 다시 물 위로 떠올라 자신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당황하여 허우적대면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지만, 사라진 줄 알았던 사람이 다시 멀쩡히 물에서 나오는 일 또한  흔하지 않은 일은 아니다. 


그와 같다. 


살다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떤 계기로 인해, 자신이 헤어나올 수 없을 듯한 고난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는 주위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것 같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만 같은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놓고,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한번 푹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살아가기' 위한 목적 하나만 생각한다면 필요한 것은, 입고 있는 옷이 아니라, 차고 있는 시계가 아니라 오롯이 자기 자신, 그 존재 한 단위만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그 의지가 아닐까. 아무리 힘이 없어도 살아가기 위한 '발 구르기'는 어디서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효리와 상순. 이효리는 자신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그로 인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이상순이라는 남자를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고 한 가정을 이루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이효리의 화장이나 옷이 아니라, 이효리 그 자체를 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우리 자체를 보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