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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에(踏み絵)와 종북 논쟁

'후미에(踏み絵)'와 종북 논쟁 



전혀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한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도 아닌 일이지만, 지금의 역사를 만드는데 있어 과거의 역사가 도움이 될 수 있기에 한 줄 적어볼까 한다. 역사는 가르침을 주기보다, 부끄러움을 주는 학문임에 틀림이 없다. 



과거 일본의 에도 막부에서는, 늘어나는 기독교 신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후미에(踏み絵)'라는 것을 도입하게 된다. 이것은 1612년 에도 막부의 수장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기독교 금지령에 이은 탄압을 위한 절차 중 하나였다. '후미에'라는 것의 뜻은, '후무', 앞으로 나아가다, 걷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의 접두사가 된 '후미', 그리고 그림이라는 뜻을 가진 '에'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그림 위를 걷는다' 라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림이란,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조각이나 그림을 뜻한다. 이 그림을 바닥에 두고, 기독교 신자에게 그림을 발로 밟고 지나가라고 했을 때 그것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기독교 신자가 아닌 것으로 여기고 목숨을 살려주었고, 그 그림을 밟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킨 사람은 그 그림 위에 자신의 피를 뿌려야만 했다. 



                                                <'후미에'의 대상이 되었던 예수가 새겨진 판화[각주:1]


'후미에'는 자신의 종교를 검증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종교에 관한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던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사례들은 있다. 조선 역시 이와 같은 역사는 가지고 있다. '절두산'이 그 증거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종교'의 수준을 넘어, 체제의 안정성을 해치는 죄악을 막는 것으로 생각했고 '후미에'와 같은 것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서 권력자나 주군에게 반발하지 못했다. 


일본의 예를 넘어, 미국의 상황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미국의 위스콘신 주 출신 상원이었던 매카시에 의해서, 공산주의에 대한 사상적 전쟁이 벌어졌다. 그것을 후대 사람들은 '매카시즘'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매카시즘에 대해서는, 충분히 많은 자료들이 나와있으므로 설명을 생략하겠지만, 매카시가 행했던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1930년대 스페인에는 내전이 있었다. 사회주의 성향을 가졌던 인민전선을 돕기 위해 전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이 스페인 내전에 스스로 참여했다. 그들을 일컫길 '국제여단'이라고 부른다. 국제여단이 스페인 내전을 통해서 막고자 했던 세력은 '프랑코' 장군의 파시즘 세력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프랑코가 승리하여, 스페인은 프랑크 독재의 시절로 들어가게 되지만, 이 '국제여단'은 매카시에게는 공산주의자들의 모임과 다른 것이 아니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 대륙을 몰아쳤을 때, 매카시는 국가조직 내에 있는 '국제여단' 출신들의 사람들에게 "당신은 국제여단에 소속되어 있으니 공산주의자다" 라는 낙인을 찍고자 했다. 하지만 매카시는 반발에 직면한다. 반발에 직면한 이유를 미국 독립언론의 대표적인 인물인 '이지 스톤'은 그의 책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국제여단이 사회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긴 했으나, 국제여단이 추구했던 목표는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 파시즘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매카시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파시즘'에 대한 선호를 나타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파시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했는가"


 이는 미국이 참전했던 세계 2차 세계 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모독을 의미했다. 매카시는, '국제여단' 소속이었다는 것을 하나의 '후미에'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사상의 자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너무나 부족했다 .


지금 한국에서는, 매카시즘의 흐름을 이어 받은 것인지 '종북 논쟁'이 한참이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저 사람은 종북주의자다'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만 해도,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자신이 종북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 증명의 대상이 되는 것이, NLL 논란이며, 천안함 폭침 등이다. 


                                               <2007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표지 사진>


NLL 대화록 전문이, 국가정보원에 의해서 공개된 이후 사람들은 '후미에'를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 문서로 존재하는 '대화록'을 읽고, "당신은 이 문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는가,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은, 이제 그 사람이 상식적 사고를 하고 있는지 하고 있지 않은지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은 "종북"인가 아닌가 하는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NLL의 포기가 북한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채, 국내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아니면 종북주의자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 그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천안함도 마찬가지다.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서 폭침되었다고 생각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묻는 사람은, 당신이 종북인지 아닌지를 묻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논리는 자신이 개발한 논리가 아닌, TV에 나오는 권력있는 사람들이 정해 놓은 논리대로 자신의 생각을 맞추게 된다. 


'후미에'는 비판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일본 막부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했다고 하는 '국내정치적 필요'라고 할지라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종교를 국가권력이 감시하고 사찰하고 또 정해진 것만을 믿으라는 것은, 과도한 집착이자 다른 국내 세력의 등장을 막기 위한 치졸한 수법임에 틀림이 없다. 그 당시의 일본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없었고, '종교의 자유'라는 것의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에 대한 무자비함 혹은 비이성성은 간과할 수 없다. 


역사는, 가르침보다는 부끄러움을 주는 것이 확실하다. 


지금의 한국은, '후미에'의 사례나 '매카시즘'의 사례에서 오히려 더욱 퇴보하고 있다. "북한"이라는 존재가 무너지고, 통일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목적이 아닌 자신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써, 북한과 관련된 사건들을 통해 국민들의 사상을 제단하려고 하는 '종북논쟁'은 여기서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합리적 이성이, 비합리적 광기 앞에서 풀처럼 쓰러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다시 한번 '이성'과 '합리'를 찾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p.s '종북논쟁'에 관련된 사례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인식을 묻는 '후미에'는 너무나 많다. 우리는 '후미에'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일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것을 강요하는 권력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개 숙인 사람이 있다면, 같이 고개를 들도록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1. http://terms.naver.com/entry.nhn?cid=3278&docId=1529263&imageNo=10&categoryId=378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