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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할 수 있음이..

서술할 수 있음이.. 2013.10.5. 


최근 글이 뜸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 개인의 사정 변화가 있엇던 것은 아니지만, 심경의 변화가 다소 있었다고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변명일 듯하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매일 똑같을 순 없듯이 원하는 것만 이루면서 살 수도 없는 것이란 것을, 하루 하루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런 중에도, 한 가지 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독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어느샌가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알량한 지식인 짓거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본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사정이지, 독서를 하는 내 사정은 아니다. 책을 읽는 것이 '꼴보기' 싫은 행동이라면, 그 행동은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더욱 꼴보기 싫게 만드는 나름의 복수일지도 모르겠다. 

독서를 하는 것이 취미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취미란에 독서를 적는 것이란, 취미란에 '밥 먹기' 또는 '숨 쉬기'라고 적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 이것이 내 개인적인 지론이다. 지론이랄꺼 까지 없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책을 읽고 더 깊은 생각을 하며 자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기를 바라는 사소하고도 소심한 바람이지만, 항상 그 효과는 봄바람에 민들레요, 가을날의 오리떼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해야하는 일이 쌓여있고, 적어야 하는 글들이 쌓여 있음에도, 또 치뤄야 하는 시험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나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우선, 나는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쓸 만큼의 글 실력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읽기를 지속할 뿐이다. 마치 소가 여물이 몇 번째 위에 들어있는지도 모른채 끊임없이 우선 씹어 삼키는 것처럼 나는 글을, 책을 그렇게 꾸역꾸역 내 머리 속과 가슴 속에 쟁여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고기가 될지 우유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두 번째로, 도피다. 책을 읽으면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다. 책 속의 상황이 주는 여러가지 우여곡절이나 반전 등에 내 스스로를 이입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유희는 없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는 있으나, 영화는 우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없이 거의 모든 것이 시각과 청각으로 주어져 있으므로 나의 역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천만 관객을 넘기도 하는가 보다. 음악은, 개인적으로 문외한인지라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감정을 가져야하는지 정확한 판단이나 감정의 기준이 생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음악은 도둑이 담장 넘듯이 훌쩍훌쩍 지나다니고만 있다. 반면 책은 그렇지 않다. 책은, 주인공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작가가 묘사하는 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떤 음악이 흐를 것이고 주인공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를 상상해보면 그것은 오감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 내 꿈까지 지배해버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보다 더 좋은 도피처는 없다. 

하지만 영원한 도피처는 없다. 도피할 수 있었던 것이면, 그것은 해결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해결할 수 없는 막연함에 가끔 홀로 눈물짓기도 하고, 또 혼자 마시는 술에 취해보기도 한다. 결국 책은 도피의 시간을 주었지만 도피처를 제공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내야 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나는 나의 글을 쓰고 싶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의 권리를 얻은 것이다. 내가 내 이야기를 적거나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적거나 내가 상상한 이야기를 적는 권리는 나는 글을 읽음으로써 얻게 되었다. 그 이전의 한글을 깨우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 권리에 대해서 나는 만끽하려한다. 그렇기에 나는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읽어야만 한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서술할 수 있음에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죽더라도 남는 것은, 내 이름이 아니라 내 글이고 내 생각일 것이다. 나는 내 글을 통해서 사람들이 이 시대를 읽고, 이 사회를 이해하고 그리고 미래를 예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내가 글을 쓰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하고 또 영원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누구도 나에게 시킨 적 없는 이 일을 나는 꾸준히 해나가야만 한다. 

상황이 바뀌고, 내가 글을 쓸 수 없는 시대가 오더라도 나는 글을 써야만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이 아니라 할지라도 나는 글을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시점에는 글을 읽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