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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답이 있지 않다.

책 속에 답이 있지 않다. 2012.8.28.

답답하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살아있지만 죽은 학문들을 공부하고 있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다. 답답한 마음에 최근의 사회를 반영하는 책들을 이리저리 눈과 손을 뒤적거려 찾아 읽어보지만 그 안에 살아있는 것이라곤 보이지 않고, 죽은 학자의 피가 베어있는 글과 살아있는 학자의 눈물 묻은 글만이 버젓이 배를 쭉 내밀고 나에게 읽어 보아라하고 이야기를 걸 뿐이다.

권력을 가진 이는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고, 가지지 못한 이는 대의를 이야기하지만, 언제나 대의는 눈 앞의 밥그릇에 가려진다.

길거리를 나가보면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마치 나만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이리저리 걷다보면 내 행복을 어디선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 행복,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내 행복을 나 혼자만의 행복이라 생각하진 말아 달라.

내가 책을 통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개인의 불행은 역사를 바꿀 수 없지만, 역사는 개인을 불행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불행의 원인은 아마도 내가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렇게 타닥타닥 소리가 나는 자판을 두드리고, 혼자 화를 내고, 사람들을 만나 역사의 흐름을 말하고, 회의주의의 냉탕과 낙관주의의 온탕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국제법, 영어, 일본어, 국제정치학, 경제학 교과서를 한 장씩 뜯어 먹는 것 뿐이다.

이리저리

의도하지 않았지만 지금 계속 이리저리라는 표현을 쓴다. 아마도 지금 이 단어가 내 상황을 잘 표현하는 것이리라. 비틀거리지는 않되, 그렇다고 명확한 중심이 잡혀 있지는 않은 상태일까.

땅만 보기에는 죽어가는 미물들이 가엾어 보이고,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기에는 너무나 높고 그 끝을 알 수 없고, 좌우 옆을 살펴보면 동무는 없고 경쟁자만 있다.

무엇을 바라는가. 나의 불행이 역사를 바꾸기를 바라는가. 역사가 내 불행을 앗아가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동무를 바라는가, 아니면 다른 이들에게 또 다른 경쟁자로 느껴지도록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책 속에 답이 있지 않다.

책을 읽었으면 그 책 속에는 답이 있지 않고, 우리 옆에 있는 사람에게 답이 있다. 책 속에는 권력도 있고, 대의도 있고, 행복도 있고, 사랑도 있지만 그 안에 사람은 없다. 사람은 우리 옆에 있다.

몸이 상한다. 마음이 상하면 몸도 상한다고 했던가. 지금 난 몸이 상한다. 공부를 하다보면 오른쪽 귀가 울리고 왼쪽 다리는 떨리고 뒷머리는 이유 없이 당겨온다. ‘을 품은 것이 내 마음을 이리, 승냥이처럼 할퀴어가고 있고, 그 상처는 몸으로 나타난다.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