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사랑 받고 싶을 때가 있다. 2012.8.12

<사랑받고 싶을 때가 있다> 2012.8.12.

나도 가끔 사랑받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랑을 받는 것이 일종의 권리이자 의무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그런 의미 없는 용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의 인류를 지탱해 오고 있는 사랑의 따스한 포근함을 느껴보고 싶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집에 가고 싶다는 게 내 마음이다. 서울에 오랜 기간 있으면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채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르는 채 꾸역꾸역 머리 속을 채워나가는 듯 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삶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이 오늘의 내가 끝나고 내일의 내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큰 변화를 느끼기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내가 사고를 당하거나 내 목숨을 스스로 끊지 않는 이상 10년 뒤와 20년 뒤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기쁜 일임과 동시에 슬픈 일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는 희망이 항상 우리의 곁을 맴돌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서울에서 홀로 있으면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는지 알 수가 없다. 친밀함과는 다른 사랑을 내가 찾아나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으나, 그런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내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 것이, 혹시라도 내 마음에 큰 흉터를 남기는 것은 아닐지 하는 불안함도 든다.

나도 안다. 부모님의 사랑에 의존하는 것은 예전에 뿌리쳐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평생 동안 품에 안고 살아야 하는 것임에도 틀림이 없다. 내가 부모가 되는 순간이라도 그것은 내 삶을 지탱하는 큰 부분임에는 그 어떤 이론의 여지는 없는 것이다. 살아가는 순간 언제나 그 감정은 내 몸에 흐르는 피와 같을 것이며 그 흐름이 멈추는 순간 내 마음은 죽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는가가 기준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받고 싶다. 따뜻한 잠자리와 그만큼 따뜻한 밥, 그리고 다른 사람의 체온을 통해 전해오는 다른 이의 심장박동 소리. 이 모든 것들을 통해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

귀로 듣는 음악이 아닌, 손으로 만져지는 돌멩이의 감촉이 아닌, 눈으로 보는 고흐의 그림이 아닌, 누군가 내 마음에 들려주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눈물겹도록 그립다.

사랑해 달라고 애원해도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다.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지만 나를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은 있다. ‘해주는것과 하는것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