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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이야기

어느 기술의 이야기  2014.5.13.


어제 오후 연구실에 앉아 내일 강연에 쓸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근데 노트북의 디스플레이와 키보드 부분이 접합되는 부분에 균열이 보였다. '헐'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한번 나온 헐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헐헐 대면서 학교 주위의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이대역 근처에 하나가 있길래 예약을 하고 부랴부랴 학교를 나왔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을 해서 접수를 했고 손님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시원한 차를 마시며 대기좌석에 앉아있었다. 그러고 멀뚱멀뚱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띤다. 할아버지는 연신 웃고 계신다. 
웃고 계시는 할아버지의 왼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자세히 보니 화면에는 영상 통화 창이 켜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영상통화 상대는 할머니였고 어림잡아 보아도 두 분의 연세는 70세는 족히 넘어보였다. 할아버지는 오른속을 들어 연신 좌우로 흔드신다. 할머니께서도 흔드시는 모습이 보인다. 

"아직 거기여?"
"응, 아직 여기여."
"언제 올거여?"
"곧 갈거 같애."
"응, 끊어."
"응, 안녕." 오른손을 흔드시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시다. 말쑥한 정장을 차려 입으시고 머리에도 무엇인가 제품을 바르신 듯 하다. '정정하다'라는 표현을 쓰기보다 '젊어보인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한 모습의 할아버지. 

나는 생각했다. 

기술은 때로는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기술이 사람을 잊고 기술끼리의 경쟁이 되면 전쟁이 된다. 하지만 분명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된다.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의 안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사람이 기술을 만나 더욱 행복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서비스센터에서 만난 그 할아버지는 분명 행복해보였다. 할머니의 얼굴을 수십년동안 보셨을테지만 영상 통화로 보는 그 모습 또한 반가워하시는 듯 했다. 사람이 기술을 만날 때, 기술이 사람을 도와줄 때 사람은 더욱 행복해지는 듯 하다. 그 연령을 막론하고 말이다. 

돌아오는 길 '타요' 버스도 보았으니,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주는 '버스'와 할아버지께 행복을 주었던 '휴대폰'. 

기술 우위에 대해서 다소 냉소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나에게 오늘 하루는 기술을 사람이 잘 쓴다면, 다른 가치가 아닌 '행복'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하루였다. 기록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