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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단상들 


# 1 
거시사는 박력있지만 미시사는 매력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크든 작든 어떤 이야기나 역사는 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 

# 2 
행복에도 한계가 없듯이 불행에도 한계가 없다. 

# 3 
실제로 있었던 실험이다. 쥐 세 마리를 하나의 우리에 가둬놓는 실험을 설계했다. 한 마리는 강한 쥐, 다른 한 마리는 평범한 쥐, 마지막 한 마리는 매우 약한 쥐. 강한 쥐와 평범한 쥐와 약한 쥐가 모여 있을 때는 강한 쥐가 나머지 두 마리의 쥐를 통제했다. 강한 쥐를 빼고 평범한 쥐 두 마리와 약한 쥐 한 마리를 우리에 넣었다. 평범한 쥐 두 마리 중 조금이라도 더 센 쥐가 나머지 두 마리를 통제했다. 약한 쥐는 어떤 실험에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했다. 
이번에는 약한 쥐 세 마리를 한 우리에 가뒀다. 초반에는 서로의 눈치를 보기에 바쁘던 쥐들이 어느 순간 위계질서가 정해졌다. 분명 약한 쥐 세 마리가 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위계질서가 잡히고 가장 강한 '약한 쥐'가 나머지 두 마리를 통제했다. 아주 사소한 차이였지만 분명 나머지 두 마리는 굴종했다. 
동물만이 이럴까. 
사람들은 끊임없이 '급'을 나눈다. 키가 얼마이고 연봉은 얼마이고 대학은 어디를 나왔고 지금 사는 곳은 어디인가 등의 기준은 무수히 많다. 키가 같은 사람끼리는 얼굴을 보고 얼굴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옷을 보고 옷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시계를 보고 시계가 비슷한 사람끼리는 차를 본다. 같은 대학을 다녀도 무슨 과를 다니는지를 나누고 같은 과를 다니는 사람끼리는 무슨 전형으로 들어왔는지를 나눈다. 같은 전형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학점으로라도 다른 사람과 자신의 급을 나누려 한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람의 특성을 좌지우지하는 '성별'까지 나누고 나누고 나눈다. 그러다가 어떤 한 분야에서든 모든 분야에서든 압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가볍게 찬양한다. 찬양한 이후 또 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며 자신이 더욱 나은 것을 찾는다. 농담으로라도 '원빈의 키'와 '김태희의 연기력'과 '정몽준의 아들'과 '유재석의 젖꼭지'를 찾는다. 찾고야 만다. 그러고선 혼자 만족한다. 하지만 앞에서는 엎드린다. 
자기만의 고유한 영역이 없다보니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당연하다. 경쟁이라는 것은 겹치지 않으면 안되고 경쟁을 겪고 나면 순위는 생기기 마련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지. 인간이되 인간이지 않은 인간들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참 답답하게 산다. 

# 4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면 된다. 

# 5 
현 정부를 나는 이렇게 평가하고 싶다. 
"블랙코메디 정부" : 웃음을 주되 그 웃음이 기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