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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에서. 2012.8.14.

<학교 도서관에서> 2012.8.14.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려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 수업 교재 말고는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한 권과 두꺼운 영어 단어책의 단어를 옮겨놓은 수첩이 공부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이지만, 러셀의 책을 읽기에는 내 정신이 너무나 명쾌해질 듯 해 지금은 아껴두고 읽어야 할 것 같고, 단어책은 아무런 이유 없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관계로, 그리고 수박 한 통을 먹고 싶은 관계로 대형마트와 기숙사로 돌아가려 하였건만, 또 밖에는 비가 온다. 예상하지 못했던 비는 아니나,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와 버리는 바람에 다소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길 수가 없다. 얼마나 당황스러웠으면 책가방 안에 책들을 다 정리해놓고 이렇게 노트북 하나 달랑 꺼내놓고 이런 글을 쓰고 있겠는가.

요컨대, 지금 상황은 할 수 있는 공부도 없고, 갈 수 있는 곳도 없는 상황이다. 뭔 이런 상황이 다 있나 싶기도 하지만 이럴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러셀의 책을 좀 더 읽었고, 금 본위제도와 금융제도가 가지는 문제점 그리고 여성의 사회참여 활성화를 위한 건축 상의 개혁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기에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글을 내가 쓰고 있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큰 기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러셀의 글에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쓸모 없는 지식이라는 글에 의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런 행위는, 지식으로서 즐거움을 주는 것이며, 하루의 일과를 - 지금 내 상황은 자발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 마치고 여가를 보내고 있는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므로 긍정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데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하루가 이렇게 시간이 잘 가니, 일주일이 금방이고,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니, 한 달이 금방이다. 어느덧 올해의 끝이 눈에 보이고 나는 하루 동안 뭐했나, 일주일 동안 뭐했나, 올해의 지금까지 약 8개월 동안 뭐했나를 가만히 되새겨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오는 날과 지워지지 않은 추억이자 상처도 있고, 내년의 일을 기약하기 위한 노력의 순간들도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새로운 공간으로 내 몸을 옮겨 내년을 더욱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기 위해 지금의 시간을 더 의미 있게 보내게 될 것이고 그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내가 향해 가야할 앞으로의 새로운 길을 내가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매사의 내 성격 상의 문제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즐기면서 하자라는 것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즐거울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그 일의 내용을 자세히 살피거나 입장을 바꾸어보거나 사소한 일이라도 순서를 바꾸어 본다면 의외로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은 많다. 그런 일들을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나는 찾아가면서 살아 왔다. 하지만 그런 재미가 반드시 어떤 일을 성취하는데 큰 도움을 주거나 성취 이전에의 삶을 크게 나아지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재미들은 결국은 성취 이후에 알려졌을 때 더욱 큰 재미와 감동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나도 익히 알고 있다.

나는 그래도 다짐할 수 있다. 즐기면서 살자. 내 나쁜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보고 다시 봐서 내가 언젠가 이해를 하게 되고 멋진 답안을 써 내게 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설명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그때 그 즐거움을 느껴보도록 하자. 시험의 합격이라는 것은 내 즐거움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즐거우면서도 내가 하고자 했던 국가와 민족을 위한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우면 포기하고 싶겠지만, 어려우면 책을 덮고 읽기 편한 신문이나 소설을 한 줄 읽어볼 수 있겠지만, 어려우면 한 숨 자면서 읽어도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지나가 있기를 바라고 싶겠지만, 그래도 그 부분은 결코 지나가지 않으며 내가 읽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지금의 나는 편한 모습으로 하루를 마감하겠지만, 나중에 나의 실수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들 중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글이 왜 이렇게 변하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지금은 공부를 하러 온 도서관에, 인터넷이 먹통이고 기숙사로 돌아가려니 비는 오고, 우산은 가져오지 않았다이것이 지금 현재를 가장 잘 설명하는 한 문장일 수 있겠다.

나는 내일도 공부를 할 것이지만 항상 즐기면서 하는 자세를, 잊지 않고 공부를 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내 스스로에게 한 번 불어넣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