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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생각

두 가지 생각.  2014.06.25

# 1 
'다섯 줌의 쌀'이라는 일본 선승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 있다. 읽은지 한 7~8년 된 듯 한데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있다. (선승의 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ㅠㅠ) 

어느 날 유명한 선승 한 명이 조용한 시골마을을 찾아온다는 소문이 났다. 시골 마을의 사람들은 두 번 다시 그런 기회가 없을 듯 하여, 이때를 빌어 가훈을 받고자 하였다. 
시간이 지나 선승이 지나가는 것을 알아 본 사람 중 한 명이 선승을 집으로 모셔 종이와 먹, 붓을 준비하여 가훈을 적어 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흔쾌히 마을 주민의 뜻을 받아들인 선승은 일필휘지로 이렇게 적어 내려갔다. 

祖死父死子死孫死(조사부사자사손사) 

위 여덟 글자를 본 마을 사람은 깜짝 놀라며 묻는다. 

"아니 스님, 가훈을 부탁드렸습니다만 이런 흉측한 내용을 적어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다들 죽는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에 선승은 대답을 한다. 

"이보다 좋은 가훈이 어디 있소? 할아버지가 죽은 다음 아버지가 죽고, 아버지가 죽은 다음 아들이 죽고, 아들이 죽은 다음 손자가 죽는다. 이 뜻은 태어난 순서에 맞게 죽는다는 것으로 자식의 상을 치르지 않는다는 좋은 가훈이 아니오?"

마을 사람은 그제서야 그 뜻을 알아차리고 저 여덟 글자를 가훈으로 모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단 한가지다. 최근 몇 달 사이 그리고 몇 일 사이의 우리네 세상을 보면 저 여덟글자가 큰 의미로 다가온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들의 영혼이 아직 고이 눈을 감지도 못했는데 사람들은 잊어가고, 사건을 발생시킨 사람들은 다시 그들의 권력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어려서 죽은 자식은 돌로 무덤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흙으로 봉분을 만들면 비가 오면 흘러내릴 것이고 잡초가 쌓여 그 흔적이 사라질 것이나 돌로 만든 그 무덤은 부러 흐트리지 않는 이상 온전히 남아 있을 것이기에 잊지 않고자 돌로 무덤을 만든 것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그 돌 사이를 흐르는 바람이 울음 소리와 같이 되어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며 훌쩍이는 그 소리를 부모는 듣고자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 죽고 아버지 죽고 아들 죽고 손자 죽는, 이 간명한 이치가 이다지도 어려운 세상이 왔단 말인가. 

# 2
얼마전 친구와 술을 한 잔 기울이면서 '가족'의 정치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친구가 이야기 하길,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기면 사람은 자연스레 보수적으로 변한다고 했다. 자신에게 지켜야 할 것이 생기면 변화보다는 안정이 더욱 높은 가치로 변화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지킬 것이 생김' 이것은 분명 가족이 주는 가치임에 틀림이 없다. 
그때 당시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동갑의 친구는 결혼을 했고 가정을 이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반박의 근거를 찾게 되었다. 

결혼을 해서 가족을 만든다. 가족은 분명 지켜야 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아이를 낳을 것이고 아이 역시 부모가 지켜야 한다. 
여기다. '아이' 
아이를 지키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지만, 만약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처럼 아이가 똑같은 시대와 사회와 고통과 경쟁과 허황된 꿈 속에 빠져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난 그런 시대를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지금보다 나은 시대를 만드는데 무임승차하고 싶은 생각 역시 추호도 없다. 더욱 나은 시대를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은 하지 못하겠지만 방관하고 싶진 않다. 가족은 그렇게 진보적이다. 지키되 지금 보다 나은 세대를, 시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가족, 자신만의 아이를 위한 진보가 아닌 우리 모두의 가족, 우리 모두의 아이를 위한 한 걸음. 
비록 나는 중도보수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지만 단 하나, 내가 갖게 될 가족의 미래, 그리고 우리 모두의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진보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