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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기억과 함께. 2012.8.24.

폭력은 기억과 함께. 2012.8.24.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도 그때와 전혀 다르지 않지만 나는 장난끼 많고 시끌벅적한 것을 즐기며, 친구들과의 우정을 쌓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때는 어린이였다고 하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지 모르겠다. ‘메롱별명 부르기를 나름의 취미로 삼고 하루하루 친구들의 당황하는 표정과 애정 어린 반발에 더욱 열정을 더해 친구들에게 장난을 쳤다.

그런 일상 중의 하루였다. 4교시가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나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자아이에게 언제나처럼 장난을 쳤고, 그 여자아이는 내게 메롱을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메롱에 대한 나의 반응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나는 그 여자아이가 울지도, 또 내 앞에서 화도 내지 않을 만큼, 또 웃으며 점심을 먹으러 갈 만큼의 힘으로 그 여자아이의 얼굴을 때렸다. “때렸다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내가 행한 것은 분명 폭력이었고 그 여자아이가 울든 울지 않았든, 웃었든 웃지 않았든 관계없이 나는 그 여자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나에겐 아무런 일이 아니었기에 점심을 맛나게 먹고 오후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다시 교실에 들어왔다. 교실에 들어와서 아마 다시 친구들이랑 장난을 치고 놀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5교시가 시작되었고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평소 좋아하던 담임선생님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교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압적인 자세로 우리들을 대했고 여자선생님이셨지만 남자선생님보다 무서웠기에 긴장을 하고 학교를 다녔었던 듯 하다. 그리고 수업시간에도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벌을 세우거나 손바닥을 때리거나 하셨던 선생님이다. 그런 선생님이었기에 나의 장난은 상당한 눈치를 필요로 하였고 몇 번은 걸려서 혼이 나기도 했고 또 몇 번은 선생님 몰래 장난을 치고 아이들과, 그때 당시에 할 수 있는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대뜸 나를 부르신다.

권해누, 앞으로 나와

항상 나의 이름을 부르실 때 권현우라는 이름의 발음보다는 경상도 사투리가 짙게 베인 권해누라고 내를 부르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딱히 좋은 일로 나를 부르시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던 듯하다.

대답을 하고 나는 교탁 앞으로 나갔고, 선생님은 나를 칠판을 뒤로 하고 서라고 하셨다. 선생님과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반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니 오늘 누구누구누구점심시간에 떄렸나?”

?”

니 오늘 점심 먹기 전에 누구누구누구얼굴 때렸제?”

 

생각해보니, 내가 점심을 먹기 전에 그 여자아이와의 다툼이라면 다툼인 것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말을 이으신다.

 

왜그랬노?”

그 아가 내한테 메롱 했으예

니는 니한테 메롱하면 다 얼굴 때리나?”

“...”

내가 나한테 메롱을 했다는 이유로 다른 친구들의 얼굴을 때리고 다녔으면 나는 아마 학교에서 유명한 싸움꾼을 통했을 것이고, 중학교에까지 그런 습관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마 왕따가 됐거나, 양아치가 되었을지 모를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 당시만 해도 친구가 메롱을 했다고 해서 자동반사적으로 얼굴을 때리는 그런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저 질문을 하시는데 내가 딱히 뭐라 대답할 사항은 없었던 듯하고,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선생님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던 것 같다.

 

오늘, 권해누가 점심 먹기 전에 누구누구누구가 자기한테 메롱했다고 그 아이 얼굴을 때맀다. 지금까지 5학년 올라와서 권해누한테 놀림을 받았거나 자기한테 메롱을 했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봐라.”

 

앞서도 말했지만, 학교에서의 장난과 주위의 친구들을 괴롭히는 것을 나름대로의 친밀함의 표현이라 생각하는 나로서는 선생님의 저 손을 들라는 요청에 학생들이 손을 많이 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순간의 걱정을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들 나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니 내가 설마 내가 괴롭힌 것을 얼굴을 다시 때릴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손을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찬 생각도 같이 했었던 듯하다.

하지만 친구들의 거의 반 이상이 손을 들었다. 내가 장난꾸러기로서의 명성은 같은 학년의 친구들에게도 유명한 일이었으므로 예상은 가능한 일이었으나, 아마 나도 그 당시 그랬고, 그 때 손을 들었던 아이들도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의 수를 확인하고 다시 이야기를 하신다.

 

권해누한테 놀림 받았거나 메롱 받은 너거, 앞으로 나온나.”

 

이제 나 혼자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외롭지는 않았으나 뭔가 분위기가 나를 중심으로 뭔가 큰 잘못된 일이 있어, 나를 혼내려는 것인가 보다 하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일렬로 권해누 앞에 서라.”

 

아이들은 내 앞에 일렬로 섰다. 나와 선생님은 내 친구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고 친구들은 나와 선생님을 바라보고 섰다. 친구들 어깨 너머로 보이는 다른 친구들의 얼굴들은, 몇몇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과 그 친구들의 얼굴보다 내 앞에 서 있던 친구들의 표정들이 굳어 있으면서도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한 명씩 지나가면서 해누 얼굴 한 대씩 때리고 가라.”

 

선생님이 내 앞에 선 친구들에게 시킨 것은 한명씩 내 앞에 와서 내 얼굴을 때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머뭇거렸다는 것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끼고 있었으므로 안경을 벗어서 손에 쥐었던 것을 기억한다.

친구들이 한명씩 내 앞으로 와서 내 얼굴을 때리고 갔다. 여기서도 때린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보다 건든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15명이 넘는 듯한 아이들에게 얼굴을 한 대씩 맞았지만 아프다는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고, 당황스러웠다는 기억은 강하게 남아있는 것 보면 그때 분명 아프지는 않았던 듯 하다. 지금도 아픈 것을 참지 못하는 만성엄살에 걸려 있는 내가, 그때 분명 아팠다면 울었을 텐데 울지 않고 다시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썼고 자리로 돌아갔던 기억이 있는 듯 하니, 아프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은 아프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에는 꽤나 큰 상처가 남았고, 그 고통이 지금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보면 어떻게든 나는 아팠나 보다.

아이들이 내 얼굴을 한 대씩 다 때리고 난 뒤,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고 선생님은 다시 이야기를 이으신다.

 

친구 괴롭히지 마라. 자기가 괴롭힘 당하는게 싫으면 남도 그거 당하기 싫은기다.”

 

멋진 말이다. 오늘 이 글을 적으면서 다시 옛 생각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내가 다 맞고 난 뒤 분명 저 말을 하셨다. 그리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갔지만, 그 날 오후는 딱히 기분 좋은 일은 없었던 듯 하다. 선생님께서 저렇게 멋진 말을 해주셨지만, 나는 기분이 전혀 좋지 않았다.

내가 친구를 때린 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지만, 친구가 나에게 맞았다고 해서 다시 같이 수업을 듣고 앞으로의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는 또 다른 친구들에게 내가 했던 행위를 똑같이 하도록 시키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로 그 선생님을 격하게 싫어하게 되었다. 지금도 만약 누군가 나쁜 선생님이라는 말을 하면 나는 5학년 대 담임 선생님의 이름과 얼굴을 바로 떠올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하루 수업이 마쳤고, 나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기분으로 집으로 갔다. 당시 우리집은 스포츠용품점을 하고 있었고, 1층에는 스포츠용품점, 2층에는 거주하는 집이 있는 그런 구조의 집이었다. 3층 건물에 3층에는 다른 집이 살고, 2층에도 도로 쪽으로는 피아노 학원을 하는 다른 친구의 집이 있었고, 뒤편에 우리 가족이 살았다.

집에 오지 마자 나는 어머니께, 오늘 점심 시간 이후에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상세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내가 그 선생님을 얼마나 싫어하는지에 대해서 내가 아는 모든 나쁜 표현을 다 써서 어머니께 내 감정을 전달해드렸다. 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친구를 괴롭히면 되나하시고 앞으로 그러지 마라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형제가 잘못을 해도 그것에 대해서 솔직히 이야기하고 어머니의 의견을 구하면 어머니는 크게 벌하지 않으신다. 생각해보면, 어머니께서 벌을 주신다고 하셔도 그것이 큰 효과를 나타내기 보다, 우리가 그 잘못에 대해서 제대로 인정하고 반성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우리 형제는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기에 어머니께서 나름대로 터득하신 형과 나를 기르는 교육철학이시지 않았나 한다.

시간이 지나서 저녁을 먹고 아마 2층의 내방에서 한숨 자고 다시 가게로 내려왔을 때였다. 가게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어머니는 아시는 분이신지 반갑게 인사를 나누셨다. 그리고 두 분이서 이야기를 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게와 2층 집을 이어주는 계단 앞에 있는 샤시 문 뒤에 서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께서 인사를 하신 분은 내가 점심 때 얼굴을 때렸던 그 여자아이의 어머니였다.

 

오늘 현우가 우리 아이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저도 현우한테 들었습니다. 현우가 잘못했다고 그러더라구요.”

. 우리집에서도 안때리는 아이를 현우가 때렸다고.”

나도 맞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도 집에서 맞고 자란 것은 아닌가 보다.

 

현우가 아까 집에 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설명하고 했습니다. 제가 아무개 어머니께 직접 사과 하라고 할게요. 현우야, 들어와봐라.”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나는 분명 샤시 뒤에 숨어서 듣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는 내가 거기 서 있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께서 부르시기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고, 또 이야기를 몰래 듣고 있었다는 죄책감에 어머니께로 갔다.

 

아무개 어머니시다. 인사드려라.”

안녕하세요.”

오늘 니가 그 아이 때렸으니 어머니한테 사과드려라.”

죄송합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분명 울었던 것 같다. 단지 사과하는게 부끄러웠거나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그 여자아이 어머니께서 계속 나에게 뭐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 내용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도가 다소 심한 내용이었기에, 내가 그 주먹질 한번으로 이렇게까지 혼이 나야하나 하는 생각에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어머니들께서 인사를 하시고 여자아이 어머니는 우리 가게를 나가셨고, 나는 두 분이서 이야기하시던 테이블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오셔서, 내 기억에는, 아무 말도 하시지 않으시고 나를 그냥 안아주셨다. 나는 아마 또 울었을 것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참 울보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여자 아이와 우연히 연락이 되어 서울에서 만나게 되었다. 20살이 넘은지 4년이 지난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도 그 여자아이를 우연히 알기에 세 명이서 같이 신촌에서 보았다. 내가 그 여자아이를 보는 심정은 반가움과 묻고 싶음이라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했다. 반가운 감정은 초등학교 동창을 다 큰 성인이 되어 서울의 번화가에서 만나니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묻고 싶음은 그 때의 그 일을 이 여자(이제는 여자아이가 아니라 여자가 되었기에)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가졌던 일종의 확인이었다. 한참 서로의 근황을 묻고, 지금 하고 있는 공부와 만나지 못했던 시간동안 있었던 즐거운 이야기들을 했다.

시간이 꽤 지난 뒤, 나는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그 여학생에게 물었다.

 

우리 초등학교 5학년 때, 내가 니 때려가지고 내가 다른 친구들한테 한 대씩 다 맞았던 거 기억하나?”

? 아니. 그런 일도 있었나?”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더 이상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기에 다른 주제로 바로 넘어갔지만 나는 그 여자 동창과 헤어지고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꽤 많은 생각을 했다.

 

나만 기억하고 있었구나.”

 

사실, 나는 그 여학생에게 화가 나있거나 왜 선생님에게 알렸는가 하는 것 등에 대해서 반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 여자아이가 선생님에게 알렸고 그 결과로 나는 지금 그때의 기억으로 인해, 긍정적으로는 교육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정적으로는 나쁜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를 품고 살아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내가 그 여자아이를 때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 여자아이는 자신이 학교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이 당한 폭력에 대한 일종의 보복을 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가서도 그 여자아이의 어머니께 이야기 한 것은 나라도 그랬을 것이기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선생님의 대응이었고, 그것이 나에게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공지영의 의자놀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잘못을 한 여학생들에게 서로의 뺨을 때리도록 시킨 교사의 이야기가 나와서, 나도 오랜만에 내 추억 금고의 열쇠를 하나 어렵게 끄집어 내 이렇게 글을 썼다.

폭력은 기억과 함께 간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진지하게 그리고 사뭇 보면 정당하게도 당한 쪽만 기억하게 된다. 자신이 당했다고 하더라도 나름대로의 보상이나 사과를 받게 되면 그 기억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무한히 들어오는 새로운 기억들로 인해 형체를 잃고, 색을 잃고, 뿌리를 잃다가 결국에는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동료들로부터 당한,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폭력을 당한 사람은 그 기억의 형체는 더욱 딱딱해지고 색은 선명해질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의 상징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정말 다행히도 우리 어머니를 만나 내가 균형을 잡아가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기에 지금 이렇게 글이라도 남기고,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단이라도 이렇게 다른 이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내 어릴 적, ‘신창원이라는 탈옥수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어떤 죄목으로 수감이 되었고 탈옥후 다시 몇 년을 복역해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신창원이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는 같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때 선생님이 넌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때 선생님이 이 썅놈의 새끼야. 돈 안가져 왔는데 뭐하러 학교와. 빨리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의 악마가 생겼다.

 

신창원이 썼다는 책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만 아는 과거를 가지고 산다. 결코 어느 누구도 자신이 겪은 과거를 다시 겪을 수 없고, 또 설사 겪는다고 해도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란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다. 나는 가끔 방송이나 신문, 혹은 잡지에 나오는 범죄자, 가출청소년, 성폭행범 등을 다루는 기사를 볼 때마다 이런 구절들을 발견하곤 한다.

 

이 사람은 어릴 때 억압을 받고 자랐으며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사회에 대한 폭력성은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발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억압을 받고 자랐고, 또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서 항상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리고 모두의 과거에 대한 평가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 스스로를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하는데 있어 우리들의 부모님과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 논리적 인과관계 역시 좋지 않게 생각한다.

인간이 위대한 점은 잘못된 과거로부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더욱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에서 그 위대함이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위인이 되어야 위인이 아닌, 자신의 과거에서의 오류와 실수들을 자신들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 역시도 인간만이 지닌, 지금 우리의 역사를 지탱하는 큰 근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신창원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신창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신창원이 되지 않은 것이 내가 뛰어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겪은 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가 원인이었던 폭력이지만, 다시 내가 폭력의 피해자가 된 입장에서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폭력은 기억과 함께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고, 사람을 사람이 아닌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신창원에 대해서 다시 검색을 해보니, 절도 그리고 살인까지 저지른 범죄자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스스로 사람이길 포기한 것이리라.

폭력은 어느 누군가에게는 기억조차 못하게 되는 것일지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버리는 사건이 되는 것일지도, 또 어떤 이에게는 나름의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는 것일지도,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는 권력의 표현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고, 또 자신이 누군가인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