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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2014.8.11. 


늦지 않은 밤이었다. 9시가 채 될까 말까한 시간이었으니 저녁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야 어찌 됐든 해는 이미 저물어 있었고 태풍의 영향인지 오후 늦게부터 내린 비에 건물들과 도로, 길바닥은 비로 젖어 있었다. 상암동에서 얼마 전 갓 취직한 동생과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서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워물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다소 경사가 진 길이라 속도를 늦추며 걸어내려 와야했다. 담배는 채 다 타지 않았고 하늘에는 달이 보이지 않았다. 마저 남은 담배를 피기 위해 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려는 순간이었다. 골목길로 들어가는 어귀에 위치한 집에서 어린 아이 한 명과 그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30대 중후반의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2층의 집에서는 아이의 할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또 놀러오라는 말을 연신 외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담배를 숨겼다. 아이에게 담배 연기를 맡게 하기도 싫었거니와 담배를 피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배를 숨겨서 전봇대 앞에서 마저 피려는데 아주머니께서 나를 부르신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이 오토바이를 조금 옮겨주실 수 있을까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주머니가 가리키는 오토바이는 나의 오토바이가 아니었다. (서울에서 내가 활용하는 교통수단은 BMW가 전부다. Bus(버스), Metro(지하철), Walk(걷기).)  내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시곤, 다시 말을 거신다. 


"오토바이가 차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차가 빠지기 좀 어려울 듯 해서요. 조금 뒤로 옮기면 차가 편하게 나갈 듯 해요. 제가 이 오토바이를 들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이제서야 이해가 됐다. 아주머니 생각에는 오토바이를 조금 뒤로 옮기면 후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쉽게 차가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담배를 부랴부랴 끄고 오토바이를 들어주기 위해 몇 걸음 앞으로 향했다. 오토바이를 옮기려니 내가 책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 올려 둘 곳을 찾았지만 온통 비에 젖은 탓에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 손에 들린 책 두 권을 아주머니께 드리면서 잠시 들어주시도록 부탁드렸다. 아주머니는 책을 받아드시곤 뒤로 한 걸음 물러나신다. 그 사이 아이는 이리저리 어머니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들어보려 하니 손에 딱히 잡히는 부분이 없었다. 과거 오토바이를 탄 경험이 있었기에 오토바이가 그리 가볍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또 오토바이를 뒤에서 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일단 시도해 보았다. 오토바이는 그날 오후 내린 비로 인해 많이 젖어 있었고 손을 대는 곳곳마다 축축한 물기가 내 손에 묻어나왔다. 들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지 않자 핸들을 움직여보기로 했다. 스쿠터 형태의 오토바이였으나 일상적인 스쿠터가 아닌 배기량이 큰 스쿠터였다. 보통 이런 스쿠터는 주차를 시킬 때 핸들을 걸어놓는 것이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의 습관이라 핸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한 예상을 하며 핸들을 살짝 움직여보니, 왠걸 핸들이 쉽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문제 해결은 쉬웠다. 오토바이를 잠시 세우고 핸들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후진을 했다가 다시 전진을 하며 오토바이를 자동차 범퍼와 멀찍한 곳에 다시 세워놓았다. 핸들을 다시 처음의 위치로 돌려놓았음은 당연하다. 


아주머니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제는 차가 잘 빠져나갈 수 있을거라 하신다. 손을 가볍게 털고 아주머니의 말씀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고개를 들어 아주머니 쪽으로 향하니 아주머니께서는 내 책을 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잠시 잊으신 듯 하다. 


"저기 책.."

 

그제서야 책을 돌려주시며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나도 책을 받으며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고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에서 다소 어리둥절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고맙다는 말을 한 것일까.


내게 책을 다시 주었기에 고맙다고 한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책은 원래 나의 책이었고 책을 든 상태에서는 오토바이를 움직일 수 없었기에 아주머니께 잠시 맡겨둔 것 뿐이었다. 맡겨둔 것을 다시 받았는데 고맙다고 할 만큼 우리 사회가 척박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직이 말하기는 했지만, 고마웠던 것일까. 


내가 고마울 수 있었던 이유는, 내게 착한 일 즉 선행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거나 다른 사람의 요청에 의해 무엇인가를 아무런 댓가 없이 할 수 있는 기회 혹은 사건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거의 대부분이 자신이 그 어떤 피해라도 입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태도나 자세를 갖기 마련인 현실에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준다는 것은 고마울 수 있다.

 

'선한 일을 많이 해야 복을 받는다' 따위의, 마치 선한 일을 하는 것을 저축을 하는 것과 같이, 얼마의 선행을 하였으니 그 정도의 혹은 그 이상의 복을 받을 수 잇을 것이다와 같은 논리에서 벗어나 선한 일은 그 자체로도 나에게 기분 좋은 일이며 또 고마운 일이다. 나의 기분이 좋고  또 고마움을 느꼈으니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생각보다 착한 일이나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쉽사리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불편함이나 동정심을 표현하는 듯한 행위가 될 위험성이 있기에 섣불리 누군가를 돕거나 선의를 베푸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불편함이나 동정심 뿐만 아니라 선의를 행하는 것에 있어 때로는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선의를 행하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여 오히려 선한 행위를 하지 않은 것만 못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행위는 자신이 자신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작게는 사회 크게는 지구 전체를 운영하는 큰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정도로 사소하지만 숭고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소한 행위라도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선의를 받은 사람이 하는 감사의 말과 함께, 내게도 선한 행위와 선의를 베풀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는데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어떨까.

 

오늘 다시 느낀 점이지만, 기부든 헌혈이든 사소한 도움이든 관계없이 또  유형과 크기에 관계없이 착한 일은 그 일을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