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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원

60원   2014.8.16.


샤워를 해야겠다. 여름에는 조금만 걸어도 쉽게 땀을 흘리니 더위 자체를 참기 어려운 것보다 땀이 흐르는 것을 참기가 더욱 어렵다. 땀을 참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릴 적 깨닫고 나서는 되도록 자주 샤워를 하곤 했다. 샤워를 하고 난 뒤 젖은 머리와 몸에 묻어있는 물기는 땀과 달랐다. 몸에서 나오는 물기와 몸에 끼얹는 물기는 어찌 이리도 다른가 생각하면서, 다시 땀이 나는 것이 두려워 선풍기 앞으로 달려오곤 한다. 


지난 주 언젠가 가을이 왔다는 것을 느꼈다. 어딘가 멀리서 가을의 향수를 뿌린 듯 했다. 어디서 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콧가에 은은하게 가을의 향이 났다. 찾아가보려 해보았지만 내 몸에서도 나는 듯 했고 붉은 벽돌 사이의 회색 시멘트에서도 나는 듯 했다. 꽃에 다가가서 향을 맡으니, 꽃이 '나는 가을 향과는 다른 향을 갖고 있다' 며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머쓱해진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바라보았지만 산은 멀뚱히 서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기만 했다. 가을의 향기 찾기에 실패한 나는 가만히 서서 그냥 이렇게 결론을 지어버렸다. 가을이 왔다. 그리고 여름만큼 반갑다. 


다음 주 중국에 갈 일이 생겼다. 나라 이름에 나라 '국'자가 들어가는 나라와는 크게 인연이 없었다. 미국, 영국, 중국, 태국과 같이 많은 나라들이 자신들이 나라임을 알려주고 있었으나 나는 아직 그들이 실존하는 나라인지를 직접 확인해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중국에 가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사건이라고 굳이 명명한 까닭은, 예기치 못하게 일어난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곳에 가기 전과 갔다 오고 난 뒤의 내 삶이 크게 변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생에 좀 더 의연히 대처하기 위해 여러가지 준비를 했다. 나와 함께 가는 사람들과 모임을 갖기도 했고, 중국에서 필요할 듯 한 여러 물품들을 서울의 이리저리를 돌아다니며 샀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 중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것도 빌렸다. 가장 빌리고 싶었던 것은, 중국어 능력인데 아무도 이건 빌려주지 않아 안타깝게 생각한다. 빌리지 못할 바에야 한 번 중국 현지에 가서 빌려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중국에는 없는 것이 없다고 하니 중국어 하나 쯤 빌려줄 수 있는 사람 설마 없겠나. 


이리저리 물건들을 사고 다니다보니, 내가 중국에 가서 사야 하는 중국어 능력이나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대륙의 기상 같은 것들을 살 때 중국 돈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번뜻 들었다. 생각이 들었다고 바로 행동에 옮긴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이 진짜 중국돈을 사용하는지 우선 확인이 필요했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돈을 쓰는지를 가만히 살펴보니, 과연 그랬다. 그렇다면 중국사람들도 중국돈을 쓰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중국돈을 어디서 바꿀지 다시 고민을 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에 대학교 안에 위치해 있는 은행에서 중국돈을 바꾸면 나를 마치 중국인의 기상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중국돈을 바꾸기 위한 길일을 잡았다. 중국돈을 바꾸는 것에 무슨 큰 의미를 두느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는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을 가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냐는 비판 섞인 목소리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구도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돈을 바꾸기 위한 길일을 잡았고 나는 그 길일의 의미를 더욱 확대시키기 위해 점심 메뉴로 태국 음식을 먹었다. 


강남역에서 친구와 태국 음식을 먹고 학교로 향했다. 내가 '학교'라고 부르는 학교는 총 세 군데가 있다. 하나는 교도소. 아, 농담이다. 나는 교도소의 담장을 넘을 용기가 없어 아직 그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첫 번째 학교는 숭실대학교. 2004년도에 들어간 학교다. 4개월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휴학을 했다. 군대를 간다는 핑계를 대고 휴학을 했지만 군대는 나를 받아주지 않았고 휴학이 자퇴가 되었다. 두 번째 학교는 건국대학교이다. 2008년도에 들어간 학교다. 24살 신입생은 즐거웠다. 하지만 CC는 하지 못했다. 갑자기 슬퍼진다. 세 번째 학교는 연세대학교다. 2014년에 들어왔다.한 학기를 다니고 휴학을 했다. 휴학이 자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겠지만, 10년 뒤에 다시 '대학'을 주제로 글을 쓸 때 어떤 내용을 쓰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 대학 이야기가 길었다. 내가 정한 길일에 찾아간 학교는 교도소, 아 농담이 갑자기 하고 싶어져서.. 컷, 다시. 내가 정한 길일에 찾아간 학교는 두 번째 건국대학교였다. 세 대학 중 현재 유일하게 '졸업'을 한 학교였고 마침 내가 정한 길일에 맞게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노선 사이에서 학교가 위치하고 있었다. 


오랜만의 건대입구역은 많이 변해 있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여전히 많았으며 특유의 시끌벅적함과 건대입구스러움이 있었다. 이리저리 사람을 치어가며 2번 출구의 계단을 걸어내려 갔다


요즘 한국에는 특이한 운동이 인기가 있는데, 그 운동은 특별한 동작을 필요로 하지 않고 단지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된다. 특이하게도 이 운동은 여자는 하지 않고 남자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계단을 오를 때 남자에게 필수적인 운동이 된 이 운동을 나는 친절히 계단을 내려 갈 때도 잊지 않고 했다. 열심히 운동을 하며 계단을 내려가다보니 익숙한 동그라미가 보인다. 익숙하다고는 했지만 최근에는 내 손아귀에서 자주 놀지 않는 것들이었다. 10원 하나와 50원 하나. 이 두 녀석이 나란히 계단의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처럼 운동을 하는가 해서 살펴보았더니 아니, 이 놈들이 당당하게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다. 마치 내가 고개를 숙이면서도 이리 저리 예쁜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비난이라도 하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나에게 이런 당혹감을 주다니.. 나는 얼른 허리를 숙여 이놈들의 눈을 가렸고,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듯해 내 호주머니에 쏙 넣어버렸다.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모른 채 했다. 열쇠가 반겨주는 소리가 들렸고, 열쇠는 이내 이 두 놈에게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며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돼지저금통에 넣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계단을 다 내려와보니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가끔 사람이 너무 많으면 한 명 한 명의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다. '사'를 길게 빼면서 사~람.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가까운 우리은행으로 향했다. 환전을 위한 현찰이 필요했다. 사찰보다 현찰이 더욱 많은 구원을 할 때가 있다. 걸어서 5분 거리의 우리은행에 가서 45만원을 인출했다. 40만원은 중국 내수 시장을 위해, 5만원은 한국 내수 시장을 위해 쓸 것이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환율이 얼마인가 살펴보니 1위안에 174원. 중국환율에 대한 학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에 나는 저것이 비싼 편인지 싼 편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왠지 비싸보였다. 우리은행이라 하여도 내가 가서 '우리은행이니 당신돈을 좀 주시오'라고 말하면 나를 학교에 넣을 듯 했다. 은행 건물을 나와 다시 학교 근처로 돌아왔다. 학교 근처에 외환은행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유럽에 갈 때 돈을 환전했던 적이 있었다고 내 기억이 말해주지만, 요즘 잦은 흡연과 음주로 내 기억력 담당 대리가  제정신은 아닌 듯 하니 대충 그렇겠지 하고 넘겼다. 외환은행에 가보니, 177원. 더 비쌌다. 외환은행이면 좀 더 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생각과 은행 생각은 여기서도 달랐다. 언제 같은 생각을 하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결국 학교 안의 신한은행에 가보기로 했다. 


학교 안에 있는 은행들은 보통 환전을 할 때 '우대'라는 것을 해준다. 이 '우대'라는 것은, 표시되어 있는 환율보다 더 싼 값에 환전을 해주는 것인데, 그 이유는 학생이기에 그렇단다. 학생이 외국을 간다니 이리 대견할 때가.. 하는 느낌의 우대일 것이다.


만약 학교 안의 은행에 갔는데, 내가 밖에서 만났던 은행들보다 비싼 환전비율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할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환율을 보지 말자. 이왕 간 거니 그냥 바꾸자. 다리도 아프고 큰 돈 하는 것 아니니 그냥 하자. 가끔 이렇게 단순해질 때도 있다. 사실은 거의 모든 순간 단순하게 결정한다는 것을 이 기회를 통해 밝혀두고 싶다. 좌우명까지는 아니라도 인생의 모토는 '그냥'이다. 매우 신중한 그냥. 여튼 그냥 학교 안의 신한은행에 가서 환율을 보지 않고 무조건 바꾸자 라고 마음을 먹으며 걸으니 다리가 더 아팠다. 신이 하는 일을 한 명이 해서 신한은행. 농담이다. 새로운 한국을 만들어보고자 일본에 있었던 교포들이 출자한 은행이라 신한은행. 이건 농담 아님. 여튼 학교 학생회관에 가서 신과 같은 직원들을 만나기 위해 번호표를 뽑자마자 나를 불렀다. 방학 중의 학교는 참 좋은 공간이다. 


환전을 하러 왔습니다. 어느 나라 돈으로 바꾸실 건가요? 중국 위안으로요. 아, 여행가시나봐요. 네. 얼마 정도 환전하실 건가요? 40만원할 겁니다. 네. 그럼 우선 여기여기여기 작성해주세요. 네. 그리고 이것도 작성해주세요. 요즘 개인정보보호가 강화되서요. 네. 스각스각. 여깄습니다. 혹시 환율우대가 되나요? 네. 물론이죠. 해드려야죠. 고맙습니다. 아, 혹시 60원 있으세요? 60원만 더 주시면 딱 맞게 환전해드릴 수 있는데. 아,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돈은 어떻게 드릴까요? 큰 돈 작은 돈 섞어드릴까요? 네. 제가 알아서 섞어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60원.


이놈들이 나를 벗어났다. 나를 벗어나 은행 언니의 손에 포옥 파묻히던 그놈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나를 흘겨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은 다름 아닌, 나에게 고맙다는 표정이었다. 건대입구역 2번 출구의 계단에서 굴러다니던 자신들을 구해주어 번듯이 정렬된 은행의 동전들과 함께 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잔뜩 묻어 나오는 표정이었다. 사람들 발에 밟히고 큰 돈이 아닌지라 사람들의 무관심과 홀대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이 어리고 작은 것들이 내 손에 들어왔고, 열쇠라는 새로운 친구를 얻었으며 뿐만 아니라 이제는 당당히 은행원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점심을 태국 음식을 먹었기에, 평소 잘 안하는 운동을 그날 따라 열심히 했기에, 30만원도 아니고 50만원도 아니고 40만원을 환전하고 마음 먹었기에 가능한 갱생이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마냥 신기했다. 역시 길일은 길일이었다. 


60원을 떠나보내고 모든 지폐에 마오쩌둥이 새겨진 중국돈 한 뭉치를 받았다. 진짜 다 마오쩌둥의 얼굴이 그려져있다. 다른 사람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역시 마오쩌둥이었다. 또 혹시 내가 가게 될 상해에는 다른 중국돈을 쓰면 어떻게 하지 라는 고민을 잠깐 했다. 하지만 바로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를 다시 깨달았다. 북경이 상해돈을 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새로운 직업을 찾은 60원의 이야기이다. 중국간다는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60원이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살다보면 가끔 우연의 일치가 필연인 듯 느껴질 때가 있고 필연이 이어지면 그것이 인연이 되는 경우도 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인연이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른 결론을 내게 된다. 


한 가지 이번 '60원의 갱생'을 통해 내가 깨달은 바 하나는, 가치는 그것을 알아볼 때 생긴다, 이 한 문장이다. 


다음 주 중국에 가서, 사고 말고 사건, 사건 말고 사연, 사연 말고 인연, 인연 말고 인생을 만드는 좋은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을지도 모를 60원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