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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관 이야기

이발관 이야기 2014.09.26. 


내가 원래 이런 종류의 추천은 잘 안하는 사람인데..ㅋ


이발을 해야겠다 싶어서 연세대학교에 있는 이발관을 찾아갔지. 미용실이 아니라 진짜 이발관. Barber shop이라 적혀 있었단 말이지. 학교 학생회관에는 이발관과 미용실 둘 다 있어. 지난 번을 제외하곤 거의 미용실을 다녔었는데 이번과 지난 번은 이발관을 갔어.


이발관을 가면 나의 나이보다 분명 2배는 더 사셨던 것 같은 이발사분들이 계시고 면도와 머리 세척을 담당하시는 50대 아주머니분들이 계셔. 오늘은 점심 직후에 가서 손님이 별로 없었어. 그래서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지. 의자는 진짜 이발관 의자야. 왜 이렇게 큰가 싶을 정도로 큰 의자에 앉아서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면 마치 왕이 된 듯 하지. 안경을 거울 앞에 올려놓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하이얀 셔츠에 어두운 색 넥타이를 하신 이발사께서 내게 다가오시지. 어깨에 손을 올리시면서 가볍게 어깨를 잡으시는데 그 부드러운 손길이란. 마치 이제부터 내가 너의 머리를 해방시켜주겠노라 하는 복음의 손길과도 같지. 어깨에 손을 잠시 올려두셨다가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시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지. 내가 머리를 자르겠다고 결심한 것을 칭찬이라도 해주시듯 말이야. 사실은 모질을 보시는 거야. 손을 이리저리 옮기시면서 내 머리의 특성을 파악하시는 손길은 정말 부드러워. 가을이 되었으니 순천만에 억새풀이 많이 자랐을텐데 그 억새풀을 간지르는 가을 바람이 내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듯 해.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라는 질문이 다시 내가 이발관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지.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 이제 겨울이 다가오니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기를 수 있게 깔끔하게 잘라주십시오. 원래 머리 스타일에 꽤나 신경을 쓰는 스타일이야 나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실은 그렇다네. 하지만 이제 사회인으로 접어드는 준비를 하는 만큼 깔끔한 머리가 필요했고, 겨울에 머리가 동파할 위험이 있으니 그 준비도 해야했지. 머리 윗 부분은 남겨둬야겠군.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야. 이발사께서 혼잣말인지 동의를 구하고자 하시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이발을 시작한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시니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지. 이발을 하거나 미용을 할 때 난 눈을 감아. 눈을 감아서 내 머리가 잘려나가는 느낌과 이전과는 다른 내 모습에 대한 기대를 부풀어오르게끔 하기 위해서지. 그래서 눈을 감고 있으니 위이잉하는 소리가 들려. 전자 바리깡이라고 밖에 알지 못하는 그 기계를 잠시 드시더시 내 구렛나룻이랑 뒷머리를 가볍게 정리하셔. 미용실에 가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전자 바리깡으로 머리를 자르는데 이발소는 그렇지 않아. 가위를 사용하지. 머리 밑의 정리를 위해서 잠시 전기의 힘을 빌렸을 뿐, 내 머리는 사람의 작품이라 할 수 있지. 바리깡질이 끝나자 가위 소리가 곧 들리기 시작해. 가위를 드시지 전에 빗을 정리하시는 소리가 들려. 빗에 끼인 머리카락을 솔 같은 것으로 이리저리 터시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그 빗의 사이사이에 내 머리가 들어가있었지. 가위 소리는 서걱서걱났다가 소각소각났다가 새근새근났어. 새근새근은 사실 내가 잠들었다는 소리야. 규칙적인 소리를 듣다보면 난 잠이 와. 점심을 먹고 와서 이기도 했고, 또 의자가 왕의자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 어깨와 내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그 손길이 부드러웠기도 했지만 아마도 그 소리. 내 귓가에서 들리는 그 소리는 내게 주문처럼 들렸어. 잠들어라. 고개를 떨구어라. 고개를 떨구어야 내가 다시 고개를 들어주지. 이런 주문 소리 말이지. 내가 꾸벅꾸벅 졸더라도 깨우지 않으셔. 깨우시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만지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아. 잠이 들어도 받는다니까. 진짜야. 머리 밑의 정리가 끝나면 머리 위 부분을 정리하시지.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싶을 때 내가 잠에서 깨면 내가 두르고 있었던 하얀 천을 풀러서 정리를 하시지. 그러고 있으면 하얀 거품이 묻은 솔에 따뜻한 물에 풀어진 비누거품이 묻어 내게 다가와. 하얀 거품이 내 구렛나룻과 뒷머리에 묻으면 비누향이 은은히 풍겨. 그리고 그 솔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피부에 닿는 만큼 차가운 물에 하지 않고 따뜻한 물에 해서 피부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는 그 배려는 일품이지. 비누칠이 된 내 머리 주변에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든 면도칼이 스윽하고 지나가. 아주 짧은 소리를 내며 스윽. 스윽. 스윽. 그리고 내 어깨 위에 올려진 흰 휴지에 내 머리카락의 파편들이 이리저리 묻어나가는게 느껴져. 아주머니께서도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머리 가장자리를 정리해주시지. 이번에는 면도를 하지 않았지만 지난 번에 면도를 할 때도 상당히 기분이 좋은 손길이었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손에 면도를 하였지만 그 느낌 또한 좋았지. 전문가는 익숙한 느낌을 훼손하지 않는구나 하는 사실을 느꼈었지. 이번에는 오늘 면도를 하고 나왔기에 이발만 해서 구렛나룻과 뒷머리에만 그 황홀함을 느끼게 해주었지. 콧수염과 턱수염이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있나. 머리 면도가 끝나면 이제 머리를 씻어야 해. 요즘 미용실에는 머리를 감는 곳이 따로 있지만 연세대 이발관에는 앉은 자리에서 머리를 감아. 어떻게 감냐고? 내가 자세를 숙이면 앞에 세면대가 있어. 다리쪽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고 방수가 되는 천을 내 목에 두르지. 그리고선 머리를 감아. 따뜻한 물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따뜻한 물이 나오면 내 머리에 그 물줄기가 흐르는데 물의 따스함과 이발사의 배려가 혼합되어 마치 그 물은 핑크색을 띠는 듯 해. 물론 물은 물색이지만 말이지. 비누로 머리를 감겨주시는데 한 번 비누로 감으시고 헹구신 뒤 다시 한 번 머리를 감겨주셔. 두 번 다 비누로 감겨주시만 왜 그러신지는 몰라. 두 번의 비눗칠이 끝나기 전에 얼굴에도 물을 흘려주시면서 손으로 내 얼굴을 씻어주셔. 부담스럽지 않게. 가볍게. 슥슥. 머리감기가 끝나면 내 머리 위로 수건을 올려 머리를 말려주시고 내게 일어나라고 하시며 내 얼굴을 닦기 위한 수건을 또 주시지. 얼굴을 이리 저리 닦고 있으면 다시 새수건을 들고오셔서 내 머리를 닦아주셔. 털어주셔. 말려주셔. 나도 내 얼굴을 다 닦고 있으면 다시 아주머니 등장. 아주머니께서는 의자를 뒤로 눕히시더니 내 얼굴에 로션을 발라주시지. 로션을 바르시는 동작이 사뭇 특이한 것이 얼굴에 로션을 한 번 바르고 손뼉을 치시고 다시 바르고 또 손뼉을 치시지. 로션향은 목욕탕향이야.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데도 내가 마치 목욕탕에 와 있는 것 같군. 손뼉소리와 함께 잠은 완전히 깼고 내 얼굴에는 고루 발린 로션과 고루 퍼진 목욕탕향이 남아. 다시 의자를 세우고 앉아 있으면 다시 이발사님 등장. 머리를 빗으로 정리하시곤 다시 한 번 가위를 드셔. 그리고선 마무리를 해주시지. 잠시 어디론가 사라지시더니 드라이어를 들고오셔서 머리를 위이잉하고 말려주시는데 이때 손길 또한 나쁘지 않아. 머리를 다 말리셨으니 이제 끝났나 하고 있으니 내 뒷목을 딱! 잡으시면서 안마를 해주시네. 아프지 않았지만 내가 요즘 피곤했던지 뭉쳐져있는 걸 내가 느낄 정도였어. 뒷목 맛사지가 끝나니 머리 맛사지를 해주시고, 머리 맛사지가 끝나니 어깨 맛사지를 해주셔. 그 손끝에서 전해지는 힘이 내게 시원함을 주었지. 날아갈 듯 한 기분이었어. 일어나니 몽롱하더구나. 기분이 이몽룡했어. 미안.


왕좌에서 일어나서 셔츠를 주섬주섬 입고 가방을 으쌰으쌰매었지. 그리고 계산을 하러 카운터에 갔어. 카운터에 가서 내가 얼마를 냈는지 알아?


6,000원. 그래. 6,000원이야. 학생은 6,000원이고 일반은 1만원이야. 난 나이로는 일반이지만 학생이니 6,000원. 내가 저리 길게 적은 것들을 다 하고도 6,000원. 그래. 6,000원.


내가 이런 추천 잘 안하는 스타일이긴 한데,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남자들 중에 화려한 머리 말고 단정하고 깔끔한 머리를 원하시는 분들은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1층에 있는 이발관을 한 번 찾아와 봐. 4,000원을 아끼고 싶으면 학생같이 입고 오거나 백팩을 메고 오는 센스는 잊지 않길 바래. 입구에 들어오자 마자 '학생입니다'라고 외칠 필요는 없어. 계산할 때 학생인지 아닌지 판가름날테니까. 자신이 학생처럼 보이나 일반인처럼 보이나 시험해보고 싶은 사람도 한 번 와보아. 학생이라 하고 싶어도 머리를 한 번 깎고 나면 오히려 1만원이 내고 싶어 질거야.


이렇게 긴 글의 주제가 뭐냐.


머리 깎으니 기분이 좋다. 이거지 뭐. 별거 있겠어. 
그리고 연세대 이발관 추천이지 뭐.


추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