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당량 2014.09.28.
사람은 하루에 얼마 정도의 말을 해야 한단다. 남자보다 여자가 그 양이 많은 것은 실험으로도 그리고 경험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말의 '하루할당량'이라고 불러도 무관한 말은 그 양을 넘겼을 때는 큰 문제가 없으나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에는 다양한 현상으로 그것을 채우고자 한다. 예를 들어 잠을 잘 때 잠꼬대를 한다거나 혼잣말을 하게 되는 것이 그런 현상 중의 일부이다.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할 때 혼자말을 중얼거리던 모습을 스스로 겪어보았기에 틀린 말은 아니리라.
나아가 생각해보면 글도 그렇다. 하루에 적어야 하는 글의 양이 정해져 있다기 보다 '쓰고 싶은 글'의 양이 있다고 여겨진다. 말과 다르게 숙고의 시간을 거쳐 혹은 순간의 영감으로 글을 써내려가다보면 어느 순간 글이 쓰기 싫은 순간이 있고 분명 적고 싶은 내용은 다 적었지만 뭔가 더 끄적이고 싶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 쓰게 했던 '일기'는 글의 양에 익숙해지도록 하는데 그 뜻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루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하루의 글의 양을 채우는 것,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 역사 속에서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거나 그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글을 썼다. 녹음이나 영상시설이 충분치 않았기에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기 보다 글을 '써야만 한다'는 일종의 책임의식이나 성취 목적이 있었던 듯 하다.
또 한걸음 내딛어 보면, 만나야 하는 사람의 수도 정해져 있는 듯 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간혹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특이'하거나 '특별'한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평생을 혼자 있어야 한다면 아마도 포기의 흰 색 깃발을 들어야 할 것이다.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이란, 만나서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또는 생산적인 혹은 비생산적인 일을 하도록 하는 대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길거리를 지나 다니다가 만나는 사람, 만나고자 하는 약속을 정하고 만나는 사람,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우연히 만나는 사람 등 모든 사람은 사람이기에 할당량에 포함된다. 말과 글보다는 그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고 보이는 이 '사람 수의 할당량'은 때론 극단적으로 줄어들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대표적인데 세상 모든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단 한 명 연인의 존재가 사람 할당량을 가득 채울 만큼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TV'나 컴퓨터 등 화면을 통해 만나는 사람은 그 할당량에 포함되지 않는다. 할당량은 채우지 못하고 단지 할당량을 채우도록 '자극'하는 정도에서 그 역할은 멈추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