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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전문가"

"짝사랑 전문가"  2014.10.04.


'전문가'라는 호칭을 받는 데에 있어 얼마 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모르나, 나는 분명 '짝사랑' 분야에 있어서 이미 전문가의 수준을 넘었다. 태초에 짝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었던 것처럼 짝사랑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개척해나가고 있는 본인을 볼 때면 때론 대견스럽기 까지 하다.


첫 짝사랑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당시 매우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이 첫 감정을 감히 '짝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그 여학생만을 생각해왔다는 걸 보면, '사랑'의 필수 조건인 '헌신'이 비추어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3년 동안 거의 매주 그 여학생의 집에 전화를 걸었고, 그때마다 그녀의 할머니가 받는 통에 어느 시점에 가선 할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기에 이르렀다. 가끔 할머니께 그 여학생에게 전화를 바꾸어 달라고 말하고선 그 여학생이 전화를 받으면 놀래 끊곤 했던 그 볼바안간 소년은 어디갔을까. 그 여학생의 집 앞에 있는 공중전화에 가서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라도 할머니의 목소리를, 아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던 마음은 참으로 순수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사를 갔었고 나는 결국 할머니와의 친분을 첫 '짝사랑'의 추억으로 남기게 되었다.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었지만 짝사랑이 얼마나 단편적인 것인지 또 그 마음이 얼마나 순수했던 것인지 알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바라지 않고 단지 좋았던 그 마음이 내 사춘기의 초반을 형성했다. 성인이 되어서 고향의 길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이미 그때의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오히려 나를 피한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지금은 우정이라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고등학교 때는 오토바이에 빠져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매주말마다 라이딩을 나가서 바다와 대화를 나누었다. 고등학교 1학년 생일이 지나자마자 원동기 면허를 땄고 붉은 오토바이를 타고 마산의 해변을 달리곤 했었다. 생각해보니 이 때에도 한 명 있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문학동아리에 속해 있었다. 이 문학동아리는 고등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던 친구의 누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던 동아리였고 별 다른 생각없이 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이 동아리는 마산의 다른 여고와 연합동아리였다. 내가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주말마다 여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거나 방학 때는 '모꼬지'를 가는 등의 일정이 있었다. 이 때 내가 좋아했던 소녀는 중학교 당시부터 알던 소녀였다. 매일 밤마다 집에 있던 무선전화기를 몰래 내 방으로 들고 와 밤 늦은 시간에 1시간에서 2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았었는지 통화는 언제나 길었고 즐거웠다. 고백을 해야겠다 마음 먹었지만 고백은 실패로 돌아갔고, 어느 날 동아리 다른 친구와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백하던 날 나를 먼저 집으로 보내려 했던 그 여학생은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뒷모습 보이기 싫다. 먼저 가라.' 도대체 나는 왜 그랬을까. 어쨌든 시간이 지나 동아리 친구들과 다같이 만났을 때 고등학교 동기 친구가 소녀의 귓불을 쥐어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소녀는 지금 결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때 당시 사귀던 친구와는 다른 사람과.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대학에 들어왔고,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는 실로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유행하던 'MSN 메신져'로 고백을 했다가 다시 메신저로 차이기도 하고, 노래를 잘부르던 동기를 좋아했다가 다른 친구와 그녀가 사귄다는 소식을 듣고 '인연은 인연이군' 하며 꽤나 어른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해가 지난 후 들어온 후배에게 사랑이라기 보다 관심을 보여 먼거리를 오가기도 했고, 돈이 필요하다던 그에게 돈을 붙여주기 위해 목돈을 마련해보기도 했다. 물론 돈은 보내지 않아도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다시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는 짝사랑이라기보다 편한 사랑의 시작이라 생각했던 만남, 하루라도 만나지 않으면 불편했던 사람에게 고백했다가 차이기도 했고, 하루를 사귀었다가 다음날 '이건 아닌거 같다'라는 이야기를 들어 차이기도 했다. 참으로 다양한 짝사랑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또 한 명을 짝사랑하게 되었다. 아마 2010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이때의 짝사랑은 그 어느때보다 성숙했던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도 결과는 '짝사랑'인 슬픈 결말이지만 당시는 그런 예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날 고향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서울을 이리저리 빠져나가는데 서울이 그리 아름다울 수 없었다. 건물 하나 자동차 하나 가로수 하나하나가 예뻤다. 그녀의 집이 있다는 북한산이 저 멀리 보이는 듯 하여 혼자 피식 웃기도 하였다. 항상 나에겐 어색했던 서울이, 그녀가 살고 있다는 이유로 서울이 그리 가깝고 아름다워 보이긴 처음이었다. 고백은 하였지만 당시 그녀는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었고 지금까지 사귀고 있다. 그녀에게 주기위해 처음 만난 날부터 고백을 하기 전날의 순간까지의 내 기억 모두를 담은 편지는 전해주지 못했다.


이 길고 긴 짝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얻은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짝사랑 전문가'라는 칭호이고 또 하나는 한 가지 결론이다. 그 결론은 간단하다. "내가 좋아할 정도의 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도 그녀를 좋아한다." 이것이다. 내가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지는 대상의 특징이 특이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닌 탓에, 누구나 관심있게 바라보면 매력이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그 대상들은 나를 택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아니라면 나는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짝사랑 전문가로서 지금도 누군가 짝사랑을 하고 있다면 이렇게 충고해주고 싶다. 고백을 해야하는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그 어느 때에 고백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성공하지 못한다. 매 순간을 지금으로 만들던지 아니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한 가지 충고 더.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은 자신을 더욱 가치있게 한다. 한없이 어둡고 비관적인 세상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를 좋아한는 감정을 가지는 한 빛을 찾을 수 있다. 그 빛이 온 세상을 비추는 밝은 빛이 될지 아니면 잠시 반짝이는 별똥별이 될지는 본인에게 달렸다. 밝은 빛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감정 자체만으로도, 짝사랑만으로도 세상을 살만한 곳이 된다. 그러니 짝사랑이라도 하자. 매우, 짝사랑 전문가로서 우수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p.s

위에 언급된 짝사랑이 전부는 아니다. 몇 사례, 아니 몇 십 사례는 생략되었음을 알려드린다. 

인류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가치는 사랑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