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살다보면 '그럴 수 있다'는 말을 많이 쓴다. 아마도 그럴 수 있다고 표현하는 경우에 마음 속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문장이 상기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원리나 알고리즘에 의해서 이뤄지는 듯이 매번 같은 결론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 집에 일찍 들어와 공부를 시작하고나서도 잘 챙겨보는 '짝'이라는 프로그램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 TV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인류 역사를 지탱해 오고 있는 큰 원리에 대한 궁금증이라기 보다, 나도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대답을 구해보려는 의도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관계 속에서의 심리변화를 나름대로 분석하며 포착해 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이번 방송에서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기에 글로 하나 남긴다.

두 남자의 구애를 받는 여자가, 그 두 남자 중 자신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남자와 대화하는 도중 이렇게 이야기 한다.

'화가 난다(짜증이 난다고 이야기 했을지 모르나, 싫다는 느낌으로 이야기했다)'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있고, 자신의 강렬한 매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사람이 있는데, 자신이 이번에도 강렬한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화가 난다.'

'세상이 이런 결론으로 끝이 난다는게, 자기 스스로에게도 화가 나고,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는 것에도 화가 난다'

와 닿았다.

와 닿은 데에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나는 살면서 강렬한 매력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어 본 적이 몇 번 없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목소리와 외모 그리고 말투 등이 주목을 끌었을지는 모르나, 그것이 나의 '남자로서의 매력'으로까지 이어진 경우는, 내 처음의 사랑이 전부였다.

둘째는, 저 여자는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자신이 어떤 이를 좋아하게되는 과정에서 한 상대방의 노력을 인정할 줄도 알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런 말을 하는 여자가, 성스러워 보였다.

사랑이라는 것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변수와 상황, 그리고 시점들이 있겠지만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서 자신이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객관화할 수 있는 관점. 이것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에 나는 다시 한번 놀라움을 느꼈다.

결국, 그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사이에서 후자를 택했지만, 그래도 그 선택의 과정에서 자신의 선택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와 선택의 의미를 방송을 통해 알려준 그 모습이 참 아름답고 고마웠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바래왔는가.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서로 어떤 사람을 바래왔는가.

어떤 연애소설에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월계관을 씌워주었고, 다른 책에서는 등장부터 남다른 매력적인 이성이 결국 사랑을 쟁취하는 결론도 보여주었다.

우리는 책들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을 했다.

그럴 수 있다.

속으로는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했을지라도.

노력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이 반드시 좋은 세상은 아닐지 모른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순간적인 매력이 모든 것을 잊도록 하는 그런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 역시 좋은 세상은 아닐지 모른다. 왜냐면 삶은 1초가 아니라, 80년, 100년이므로.

어설픈 양비론(兩非論)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다양한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의 과정에서 어떤 것을 중시해야 하는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한다.

201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