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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이야기

두 가지 이야기. 2014.11.3.


어제 저녁 홍대에서 저녁을 먹기 전과 먹고 난 뒤의 이야기다. 홍대에서 저녁 먹을 약속이 갑자기 정해져서 부랴부랴 씻던 중 또 다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집 근처에 태국음식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는데 그곳에 와서 같이 저녁을 먹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미 약속이 있었으므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친구에게 잠시 들러 인사를 하고 가겠다 말했다. 집을 서둘러 나와 태국음식점이 있는 연남동 동진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 골목은 매번 지나다니면서 흘끔거리기만 한 골목이었고 실제로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거니 가게 안에서 자리를 기다리고 있단다. 그렇다면 내가 부러 복잡한 가게 안에까지 들어가 인사하는 것은 무리일 듯하여 나는 바로 다시 홍대입구로 방향을 잡고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이때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길을 잃었다. 연남동은 큰 길로만 다녔지 골목은 처음이었고 그 골목은 큰 특징이 없는붉은 벽돌로 지어진 집들로만 가득했다. 어둑해지고 있었고 나는 약속에 늦으면 안된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꼈다. 일단 골목 중에서도 큰 골목을 따라 나가보자 마음을 먹고 계속 따라 가다보니 익숙한 길이 나왔다. 익숙한 길이라곤 하지만 연남동은 요즘 워낙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그새 없던 포장마차가 길가에 떡 하니 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익숙한 길이었지만 익숙하지 않았다. 혼자 중얼거렸다. "나이 서른에도 길을 잃는구나." 길을 잃어보니 멍해졌었다. 집에서 걸어 5분도 채 되지 않는 곳에서 길을 잃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목표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길을 잃는구나 생각했다. 우리 삶도 그런 것 같다. 편안한 마음 혹은 공간에서 갓 나와 자신감 있게 출발했다가도 별 특별한 계기 없이 방황하기도 한다. 계기가 없어 오히려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방황하다가 결국 주저 앉아버릴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가야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야할 방향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결국 '그 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만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는 것. 이것들이 어제 내가 처음으로 생각한 느낌이다.
두 번째 이야기. 저녁을 먹고 친구와 차를 한 잔 마신 뒤 친구는 돌아가고 나는 카페에 잠시 앉아 있다 다시 집으로 향했다. 다시 연남동으로 돌아와 익숙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저녁을 먹기 전 내가 느낀 바를 다시 한 번 되새김질했음은 물론이다. 음메음메 우는 소에게는 위가 4개나 있다. 이는 먹은 것을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기 위한 것이듯 사람에게는 기억과 추억이라는 위가 생각을 되새김질하게 도와주는 듯 하다. 계속 걸어 경의션 철로 밑을 지나 우리집이 있는 골목으로 도는 길에 뭔가 그곳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 것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큰 흰 색 곰 인형 한 마리와 갈색 곰 인형 한 마리, 그리고 어린이용 매트 하나와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화장대가 버려져 있다. 버린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곰돌이 두 마리는 아직 때가 묻지 않았다. 버린지 얼마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저녁을 먹으러 나서는 길에는 그것들이 없었다. 몇 시간 사이 누군가 버린 것이다. 혹시 내가 놓쳤던 것은 아닐까. 여튼 곰돌이 두 마리와 장난감 화장대를 보니 서글퍼졌다. 누가 이걸 버렸을까. 이것들의 주인이었던 여자 아이는 오늘 밤 눈물로 보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소 낡아보이긴 했어도 곰돌이와 화장대는 꽤나 깨끗해보였다. 하지만 이 인형들과 장난감들, 버리지 않을 수는 없는 것들이다. 여자 아이가 나이가 들어 중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었음에도 이런 것들을 가지고 논다면 그것은 정신적 발달장애일지 모를 일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소중하다고 하더라도 어떤 물건들은 버려야 하는 시점이 반드시 다가온다. 근데 생각해보니, 이것 또한 쉽지 않다. 어릴 적에 익숙했던 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런 것들 뿐만 아니다. 잘못된 습관이나 생각들, 미숙했던 시절 저지른 잘못들을 사람들은 쉽게 버리지 못한다. 누군가 그것을 버리라고 하면 자신의 특성이라며, 개성이라며, 자유라며 끈길기게 고수하고자 한다. 타인의 의견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도 그것이 자신의 지금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어릴 적 입었던 옷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책도 그렇다. 어릴 적이나 지적 배경이 갓 형성될 때 읽어야 하는 책들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읽는 사람들 역시 그렇다. 가령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며 자기계발서를 마치 성경이나 된 듯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자동차를 예를 들면, 시동은 딱 한 번 걸면 되지 계속 시동을 걸고 있는 차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아마도 곰돌이 두 마리를 버린 여자 아이는 그날 밤은 슬피 울며 지새웠겠지만 내일이 되고, 나중에 더 시간이 흘러 그 곰돌이가 있었다는 추억으로 더욱 성장하고 또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며 다시 성장할 날이 올 것이다. 아니, 왔으면 좋겠다, 고 아침에 일어나 생각을 정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