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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을 보자. 2012.11.27

사람들이 산소를 마시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어떤 일이든, 무슨 일이든 생기기 마련이다.

사건(occassion)이 발생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그가 마시는 것이 더 이상 산소가 아니거나, 내뿜는 것이 이산화탄소가 아닐 수 있다.

누구나 사건을 만들고 산다는 것의 의미는, 범죄를 일으키거나 매일 새로운 일들을 도전하고 또 응전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는 것,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 등 이런 모든 행위가 각각의 사건일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사건이, 사람에 따라 역사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 되기도 하고, 같은 행위를 다른 사람이 하였을 때 범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건의 독립성은 존중받아야 하나, 사건이 사람에게 귀속되는 순간 모든 것은 그 '사람'의 사건으로 인정 받고 분류되는 것은, 사람이 가진 한계이자 책임인 것이다.

사건이라는 것의 특성을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가 언급하고 싶었던 것은 '현상'에의 매몰이 가져다 주는 문제점을 언급하고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시점에서 한국 정치 내에세 매우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몇 명의 대선후보들이 각자의 공약과 또 세 불리기에 힘쓰고 있다. 매일 새로운 발언을 하고, 또 새로운 장소를 찾아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기도, 또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정치와 관련한 부분 이외에도 검찰의 비리와 부정 문제, 경찰의 문제, 경제 구조의 문제, 빼놓을 수 없는 교육의 문제 등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고, 그것에 족히 100배는 넘을 정도의 양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객관화'된 정보인 양 사람들에게 알리는 전문가들의 의견들도 있는 것이다.

한가지만 묻고 싶다.

10년 전에는 그러지 않았을까? 아니 1년 전에는 그러지 않았을까?

대선은 5년에 한번 있는 일인데 10년 전과 1년 전의 비교가 가능하지 않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은 충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선의 문제 역시 정치의 문제인 것이고, 정치의 문제는 대한민국이 광복되기 이전부터 이어져왔고, 역사 속에서 이름을 지울 때가지 아마도 이어질 문제인 것이다.

대선 이슈 뿐만 아니라, 사법권의 문제며, 경제의 문제며 무슨 문제던지 우리는 그러한 접근에 대해서 일정부분 그 '현상'에 매물되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이 글에서 지적하고자 한다.

이해하기 쉬운 예로, 신문과 잡지를 비교해보자.

사람들은 신문을 본다. 어제의 사건사고를 알고, 전문가들의 생각이 담긴 글들을 읽고, 또 그 신문이 특종으로 잡아낸 것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신문을 본다. 하지만 신문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라는 것은, 지난 주의 신문과 오늘의 신문간의 연결성이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결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르게 이야기하면 지금 이 사건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발생하게 되었고, 이 것의 원인의 분석을 통해서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기회를 오롯이 독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보통 주간 잡지는 1주일에 한번의 간격으로 발행되는데, 잡지는 일주일에 한번 발행되기 때문에 바로 어제 발생했던 사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1주일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기자가 쓴 글들과 잡지가사 야심차게 준비해 놓은 르포 기사들 등 그 원인과 경과, 그리고 미래까지도 예견할 수 있을 정도의 글을 우리는 읽게 되는 것이다.

나는 결코 이 글에서 신문을 읽지 말고 잡지를 읽어라 는 것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다.

신문의 장점은 신문을 읽는 사람이면 다 알고 있을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잡지 구독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통계적 자료를 동원하기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잡지를 구독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잡지의 장점에 대해서 언급을 한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아. 순간 잡지를 읽는 사람이 적다고 했는데, 신문을 읽는 이도 적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신문과 잡지의 비교를 통해서 다시 한번, 내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여러 사건들이 가져다 주는 시의성에 빠져서 현상 속의 맥락을 읽지 못하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는 말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신문과 잡지를 같이 읽자. 신문을 통해서 현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잡지를 통해서 어떤 사건에 관한 순서를 알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면 누구나 시사 상식의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잡지로도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은, 관련 서적을 찾아서 읽어보신다면 더할나위 없는 최고의 지식인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런 노력을 종용하기에는, 세상이 바쁜 것인지 내가 바쁜 것인지 모르는 요즈음이니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겠다.

사람은 사건의 연속적인 발생으로 하루를 살고, 일주일을 살고 1년을 산다.

우리는 자신이 일으킨 사건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볼 시간도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지금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시점이 되었을 때, 주위의 사건들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인식을 갖고자 하는 이는, 다른 이의 사건에 대한 정보를

현상에 집중해서, 좁은 연못에서 놀지 말고, 좀 더 크게 보아 큰 강물에서 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기를 기대해 본다.

 

p.s 계몽주의자는 아마도 자신은 스스로를 계몽주의자라고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을 것이다. 글을 쓰다가 문득 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