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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루.

하루종일 방을 나가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왔기 때문이다. 약을 먹고 누워도 머리가 아팠다. 머리가 아프다고 표현하는 것이 잘못된 표현일지 모른다고 지금 생각하고 있다.

사실은 머리가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지금 이글을 적는 이 시간도 머리가 어지러워 좀 힘들다.

방에서 하루 종일 가만히 누워있었다. 최근에 많은 것들이 나를 압박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누워 있는 것이 마치, 김밥을 더욱 예쁘게 싸기 위해서 사람들이 노력하지만 그 노력의 결과로 항상 어디선가 터져버리는 옆구리처럼, 내가 지금 그 터진 부분이 된 듯한 느낌으로 누워있었다.

아침도 먹지 않았고, 점심도 먹지 않았다. 저녁은 간신히 일어나 사놓았던 시리얼에 우유를 넣어 한 그릇 먹었다.

아침을 먹지도 않았고, 점심을 먹지도 않았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초콜렛이 한 조각 있길래 그것으로 내 위를 안심시켰고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내 위에게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리고 저녁에도 시리얼에 다시 한번 내 위는 실망했을 것 같다.

가만히 누워서 생각했다.

나는 지금 이렇게 누워있으면 안된다. 일요일에 중요한 시험이 하나 있고, 또 약 2달 뒤에는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시험의 1차 시험이 있지 않는가. 누워 있으면 안된다. 일어나서 공부를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내 손과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려는 머리의 의지와 내 몸의 의지는 다르기 반응하는 듯 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지만 그래도 이불은 덮을 힘은 있었는지 추우면 이불을 슬쩍 덮는 내 모습이 한편으로 참 처량했다. 나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잠결이었을까. 나는 내 머리 속에서 많은 일들을 했다.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머리 속에서, 꿈 속에서 만났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들은 내 머리속에 남지 않았다. 꿈 속에서도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꿈 속에서도 알았고, 내가 지금 꿈 속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꿈 속에서도 눈을 감고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 꿈 속의 감은 눈 역시 어둡구나 하고 한편으로 안심했다. 내가 지금 감은 눈이 내가 뜨지 못할 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꿈 속에서도 나는 다시 눈을 뜨고 내 눈 앞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꿈은 아무리 강렬한 꿈이었다고 할 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옅어지는 것인가 보다. 나는 오늘 하루 거의 대부분을 꿈 속에서 생활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꿈들이 내게 전혀 경험이 되지 못하고 희미해져 가고 있다. 사람은 꿈 속에서 배우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했다. 내가 결과적으로 했던 일은 편안한 베개에 누워서 따뜻한 바닥에 누워서 이불을 덥고 있었던 것 밖에 한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경험이든 지식이든 내가 무엇인가를 노력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바닥에 가만히 누워서 세계 전체를 돌아다니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지금은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를 더 생각했다.

이렇게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이 익숙해지면 나는 이대로 외톨이가 되는거구나. 사실 밖으로 나갈 일이 없을 때는 가끔 집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누워있거나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한다. 그럴 때면 내가 여기서 죽기라도 해도 사람들은 내가 죽었는지 조차 모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오늘은 죽음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내가 여기서 이렇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한 채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지면 나는 언젠가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인가 오늘 하루 계속 머리 속에 떠다녔던 느낌인데 막상 글로 쓰려니 좀 표현이 어럽지만, 이런 느낌이었다. 큰 구름 한 구름이 아래위로 갈라져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멀어져가는 느낌. 내가 어딘가 사회로부터 멀어져가는 느낌을, 나는 오늘 누워서 받았다.

그러나 나는 전혀 사회로부터 멀어져 있지 않았다. 일요일이 되면 책과 가방을 챙겨서 시험을 치러 가야되고, 다시 돌아와서 하루를 정리하는 공부를 해야하고, 다시 일주일의 공부를 견뎌내야 하며, 다시 이번 대선 기간 동안의 불합리한 여러 모습들을 혼자서 화내며 혼자서 삭히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사회는 그렇게 쉽게 나를 놓아두지 않았다. 결코 어느 순간도 나를 놓아둔 적은 없었다.

누워서 생각했다. 나는 금방 꿈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만났는데, 나는 그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얼굴을 보고 하는 것이 참 좋았는데, 그사람들은 알까? 모를 것이다. 오히려 내 꿈 속에 자신들이 나왔다는 사실이 기분 나쁠 수 도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도 궁금해 할 것인데 나는 사실 그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고,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누가 내 꿈에 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무엇인가 많은 일들과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 곳이 어디이며, 내가 했던 것들이 어떤 행동들이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오늘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으므로, 기억도 나지 않는 것들을 나는 소중하다며 지금 이렇게 글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두통약을 먹었고, 나는 힘이 없었지만, 나를 찾는 이는 없었고, 하루는 생각보다 짧아서, 내 꿈 속에서의 시간들을 소중히 보내었다고 생각될 만큼, 아침해는 떴다가 다시 저녁해가 되어 저물어 갔다.

최근에 자랑할 일이 없나 하고 생각을 해보니, 자랑할 일은 전혀 없다. 누군가에게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은 내 어릴적부터의 나의 본성인 듯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방학을 끝내고 '방학생활'을 잘 한 친구에게 상을 주곤 했는데, 그 친구들이 상을 받는 것을 5년동안 부러워만 하다가 6학년 때 한번 마음먹고 방학생활을 두껍게 만들고 막 바닥에 긁고 해서 좀 열심히 했던 것처럼 보이게 해서 상을 받았을 때 그렇게 뿌듯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상을 받고 나니 별 것 없다는 실망감 역시 컸던 것 같다. 상을 받았다는 것보다는 나는 그 단상 위에 한번 서보는 것이 더욱 좋았을지 모른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자랑하고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자랑할 일도 칭찬받을 일도 없다. 최소한 욕만 안들어도 이익이라며 하루를 보내곤 한다. 내게 욕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욕을 하는 것이다.

나도 자랑하고 싶지만, 자랑할 것은 없고, 칭찬 받고 싶지만 칭찬 받을 일을 한 것은 없다. 누가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약이나 먹고 누워있는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일거리는 줄 것이며, 칭찬을 해 주겠는가. 내가 굳이 칭찬을 받아야만 한다면,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을 견뎌내고 잘 이어지게 했다는 것이 내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칭찬일지 모를 것이다. 내일의 내가 칭찬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나는 사실 확신이 없다. 어제 칭찬 받지 못한 아이가 오늘 칭찬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머리가 아프다.

두통약은 영구적인 약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머리가 다시 아파온다. 최근 들어 머리가 수시로 아파오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병원을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는 어머니의 전화는, 내가 병원에 가면 안되겠다는 확신을 더 들게 한다. 병원에 간다고 하면 어머니는 걱정하실 것이고, 나는 어머니 걱정시켜드리는 것보다 그냥 아픈 것 참고 있는 것이 더욱 낫다. 약국은 뭐하러 있겠는가. 머리가 아프면 머리 아픈 약을 먹고 손이 아프면 밴드를 붙이면 되고, 마음이 아프면 그냥 오늘 처럼 누워서 있으면 되는 것이다. 머리와 손가락은 모르겠지만, 마음이 아플 때 누워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고 나면, 전혀 낫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더 작아지고 낮아지고 의미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 심하게 들어 아무말도 못하게 되고, 전화도 밥도 물도 아무것도 하시 싫어지는 것이다.

이런 글을 적으니까 더 머리가 아프구나. 머리는 아프고 말은 하기 싫은데 손가락은 내 생각보다 꽤나 부지런하다. 눈은 점점 나뺘저서 모니터가 계속 뿌옇게 보이고 글자를 읽는데도 꽤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이 눈치 없는 손가락은 부지런히도 움직인다. 딱히 하는 일이 없는 내 손가락과 손은 사람 본연의 색깔로 돌아가고 있고, 원래부터 손 피부는 이렇게 좋았는지 딱히 핸드크림 따위 바르지 않는데도 이렇게 손이 맨질맨질하고 뽀송뽀송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아픈 머리과 부지런한 손가락, 나빠지는 머리과 예뻐지는 손가락.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조화이다.

시간은 흘렀고 12월이 되었다. 올해 1월 1일이 기억이 나는데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했나 싶기도 하다.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을 요즘처럼 이렇게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이 건 뭐. 이 건 뭐.

올해 마지막 달의 첫 날인 만큼, 좀 밝게 살아보려 했지만 그래도 머리가 아프다.

약을 하나 더 먹고 산책이나 한번 갔다와야겠다. 새벽 3시 55분에.

아픈 머리는 이제 익숙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