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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2012.12.02.

일본어능력시험을 3년 만에 치고 신촌으로 가는 길. 일본어능력시험은 무언가 재미가 있다. 분명 시험을 만드는 사람 중에 시험을 나름대로 즐겁게 치르게 만드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이 속해 있음이 틀림이 없다. 아무런 맥락은 없어도 그 나름대로의 새로움을 집어 넣어 그 속에 시험을 치르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는 한두 문제를 넣는 것이 일본어능력시험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2009, 일본에서 치를 때는, 지금의 일본어능력시험이 새롭게 시작되기 직전의 시험이어었던 관계로 많은 사람들이 치렀던 시험이다. 시험의 큰 틀이 바뀐 것은 아니나, 난이도와 시험 문제의 여러 구성을 바꾸는 계기가 있었던 관계로 마지막 시험이라는 특수성이 있었던 시험이었다. 그 시험의 마지막 청해 문제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급박한 상황을 나타내는 청해 문제였고, 대장이라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묻는 문제였지만, 그 문제 자체의 내용은 사실, 일본의 문화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에 나올만한 대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치를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정도 내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들으면서 웃었다. 마지막 시험 문제라는 특수성도 있었겠지만 그 문제는 그 시험이 끝나고 난 뒤 꽤나 역사적인 문제로 남았다. 시험을 치르는 사람들이 웃었다고 했지만, 그 사람들 모두는 외국인이었고, 외국인이 웃는 시험문제를 일본인 감독관이 웃지 않을 수 없었던 듯, 시험 감독을 하는 일본인 여자는 웃음을 참지 못해 깔깔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보여줬던 엄숙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 일본인 감독관들은 일본어 능력시험의 제도가 바뀐다는 것은 몰랐던 것이 분명하지만, 그 문제가 마지막 문제라는 것은 그 사람들도 알고 있었으므로 다같이 웃으면서 시험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내 일본에서의 1년동안의 생활이 그 시험으로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는데, 그 시험의 마지막 문제는 잊을 수 없다.

오늘 3년 만에 일본어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길에, 딱히 전철 안에서 할 일이 없어 노트북을 펼쳐들고 글을 쓰고 있으니, 마치 내가 영화 ‘up In the air'에 나오는 여자 신입사원이 된 듯한 머쓱함마저 들지만 그래도, 나의 지금 감정을 글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기에 이렇게 글을 남긴다.

오늘 시험의 총평은, 내가 시험을 평가할 수 있는 실력이 없으므로 평을 하는 것이 다소 우습기는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딱히 어려운 시험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난이도 조절을 하기 위해서 등급을 더 세분화 하고 시험의 내용을 바꿨다고 했는데, 나는 사실 일본에 있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고 딱히 시험으로서 일본어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시험의 난이도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평가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오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곁귀로 들어보니 다들 그렇게 어렵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보니, 쉬운 난이도로 출제된 듯 하다.

글을 마무리 하기에 앞서서 오늘의 재밌었던 문제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자 한다.

내가 느끼기에 포인트를 줬던 문제는 문법에서 한 문제와, 듣기에서 한문제인데.

문법에서의 한 문제는,

동물원에 갔다. 고릴라가 있었다. 고릴라가 마치 나를 같은 종류로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라는 내용의 문제였다. 문제를 읽는 순간 그렇게 진지한 문제에 저런 내용의 글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적고 있는 시험 당국의 유머러스함이 참으로 반가웠다.

청해에서의 문제는, 남자와 여자와의 대화를 듣고, 남자가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된 계기를 묻는 내용이었다. 우선 여자가 남자에게 묻는다. 왜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냐고, 물으면서 자기는 다른 곳은 다 떨어져서 받아주는 곳이 여기 밖에 없었기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는 대답한다. 자신은 어떤 일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회사가 좋았고 그렇기에 여기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일을 하는 것도 자신만의 보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했다. 여자도 남자의 대답에 응대한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보람을 느끼는지 느끼지 않는지도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그러자 남자가 다시 대답한다. 사실은, 나도 다른 곳에 다 떨어져서 여기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우리 둘이 있으니까 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오늘은 시험 치는 자리가 맨 앞자리였어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 내 자리가 뒷자리였으면 사람들의 반응을 보았을 것인데, 다들 진지한 자세(얼굴은 볼 수 없으므로)로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아마 저 청해 문제가 스피커에서 흘러 나올 때 사람들의 진지함과 그 문제의 우스꽝스러움을 같이 감상했더라면, 오늘은 그 어떤 개그 프로그램도 그 순간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었으리라.

사람들은 때로 모든 것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진지한 것이 무슨 큰 잘못이나며, 사회가 나를 이렇게 진지하게 만들었지 않았느냐고 반박한다. 그렇다. 사회는 생각보다 진지한 곳이고, 사람들의 표정만 보아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진지한 곳인지 다른 증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삶 속에는 꽤 많은 재미가 숨어 있고, 그 속에 그 진지함을 더욱 진지하게도 만들 수 있는 유머가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 이야기 했던가, 우리의 삶은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고, 멀리서 보면 비극이라고.

나는 오늘 그 진지한 시험에서 재미를 보았고, 이는 내가 수험료를 지불하고서 볼 수 있는 한편의 연극과도 같았다.

사족이지만, 나는 가끔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을 관찰하고는 하는데, 언제나 여지 없이 그 속에는 희노애락이 숨어 있어, 우리네 삶이 다 그런 삶이겠거니 하는 한편의 위로와 또 한편의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요즘의 내 즐거움의 역치가 상당히 낮아져 있는 것이, 이런 민감한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할지, 어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야할지, 그 대답은 차차 찾아보기로 하자. 나는 다만 오늘을 즐기기 위해서 신촌으로 영화를 한편 보러 가는 것, 그리고 지금 지하철에 앉아서 오른쪽 남자의 향수냄새와 왼쪽 할머니 두분의 이야기를 즐거이 느끼며 글을 쓰고 있다.

글 쓰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 이것도 아마, 내 즐거움의 역치가 낮아졌기 때문이리라.

글을 종료하려는데,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빼들어 바라보니 저 오른쪽 문에 하모니카를 불고, 파란색 바구니를 목에 메고 있는 할아버지 한명이 오신다. 한국이 제 아무리 선진국이라고 광고를 해도, 아직도 지하철에 다른 사람의 선의에 의해 연명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아직은 선진국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한강을 건너가고, 햇빛이 내 얼굴을 때리는데, 하모니카 소리가 들리니 나는 오늘도 하루를 즐기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