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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6년'을 보고 난 뒤.

 

<영화 '26년'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우선 영화 '남영동 1985'를 보고 나서는 감상평을 적지 않은 주제에, 영화 '26년'의 감상평이랄까 내 나름의 생각을 적는 것을 내 블로그에 들어오시는 분께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26년'만 적는 이유는, 영화를 보고서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 방안을 지금부터 적어보고자 한다.

한줄 감상평 : 표준어를 쓰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

한줄 감상평이 다소 뜬금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솔직히 이야기하면 영화 '26년'을 보면서 몇몇 대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다. 광주 518 민주항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니 만큼 전라남도의 사투리가 기본 지역방언으로 등장하는데, 본인은 경상남도에서 2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전라남도 광주 사투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갔던 친구 역시도, 나와 같은 중-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라 서로 못알아 듣는 전라남도 사투리가 나오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적으려는데, 사투리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다소 어색할 수 있으나, 나는 내가 알아듣지 못한 전남 사투리를 들으면서 한편으로 매우 죄송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죄송하다고 할 것까지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죄송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내가 쓰는 경상남도 사투리가 가지고 있는 권력성, 이것이 나를 죄송하게 만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은 구미,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은 합천,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고향은 대구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향은 거제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역시 경남 김해이지만, 이 수많은 대통령들의 고향이 경상남북도의 한 지역이라는 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본다.

영화 26년의 실질적 주인공이자 배역 이름이 '그사람'으로 나오는 전두환 대통령은 진한 경상도 사투리르 쓰시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나도 아직까지 꽤 농도 짙은 경상남도 사투리를 쓰고 있다.

나는 내가 편하다는 이유로 사투리를 아무런 생각 없이 죽 써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표준어 연습을 혼자 방에서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볼 때 아나운서의 톤을 듣고 따라하는 연습을 통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표준어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나오는 것을 나는 의지를 가지고 막아본 적은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오늘 다시 한번 영화 26년을 보면서, 내가 별 의미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경상도 사투리가 여느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고통을 재생시키고, 아무런 의도와 목적이 없었지만 그들에게 아픈 기억을 확인시키는 기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면,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이나 아픈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아닌, 그들에게 고통을 가했던 전 전 대통령과, 그 이전에 지역주의의 고착화를 야기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 독재 시대의 차별을 상기시킬 수 있는 언어적 권력을 스스로 내려 놓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내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고 전 전 대통령의 죄가 사하여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고 싶은 대한민국의 모습은 지역주의의 악습을 넘어서 북한 주민들의 언어까지도 우리가 포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리기에, 나부터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로마 제정시기 5현제 중 한명으로 손 꼽히는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황제였지만 지금의 에스퍄냐인 히스파니아 속주 출신의 황제였다. 읽은지 오래되어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그리고 로마인 이야기 책들이 본가에 다 내려가 있는 관계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원로원에서 연설을 하게 되면, 당시 로마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연설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히스파니아 억양이 남아있어 원로원의 의원들로부터 많은 경멸을 받았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런 경멸을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매우 노력하여 완벽한 라틴어를 구사하게 되었다고 시오노 나나미는 적었다.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관련된 위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랬다.

'로마라는, 말그대로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 자신은 로마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된 하드리아누스, 이 하드리아누스는 자신의 고향인 히스파니아 지역의 말을 자신의 입에서 지우고, 로마의 공용어인 라틴어를 억양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도록 노력함으로 인해서, 로마 제국의 진정한 통합과 화합을 이뤄낸 것이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만연해 있는 지역주의라는 구습을 철폐하려는 노력을, 선거구 획정의 변경과 공천 제도의 개선 등이 필요한 부분들 있지만, 그런 부분들과 동시에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함으로 인해서 사회가 통합되는 것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적으면서 처음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그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추가된 부분들이 있을 수 있으나, 처음 들었던 생각은 지역주의를 해소하고 사회를 통합하는데 있어, 제도적인 부분의 보완이나 개혁도 중요하지만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구사하는 언어에도 그 통합의 열쇠가 있다는 것이었다.

제국이었던 로마와 지금의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을지 모르나, 하드리아누스가 보였던, 경멸을 넘어선 로마 사회의 통합에의 노력의 일환으로서 '표준어 구사'라는 측면은 지금 우리 정치가 배워야하는 부분이 아닐까.

영화 26년의 감상평을 읽으려고 생각했던 분들에게는 매우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많은 상처와 희생,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역 간의 갈등과 반목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다는 측면을 다시 한번 부각해보고 싶었고, 그런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정치인의 표준어 구사에도 아주 조금이지만 사회의 통합과 갈등의 발전적 해소라는 측면의 빛이 보이는 것은 아닐까 같이 생각해보고 싶었다.

한겨레 신문에서 어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금 검색을 해보아도 찾을 수가 없어서, 기억에 의존해서 적으면, 과거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이 되면 전라도 출신인 인사라 할지라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게 된다는 기사가 있었다. 한나라당 당내의 공식 언어는 표준어라기보다 경상도 사투리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초선의원들은,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배워간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추후에 다시 기사를 찾게되면 링크를 걸겠다)

옛 한나라당, 지금의 새누리당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비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도 적었지만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지역 차별에 의한 지역주의 형성 그리고 영화 26년에 나오는 것과 같은 광주 518 민주화 운동에의 책임이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이 공통된 기반을 형성하는 경상도 우대 전략 등에 대해서, 나부터, 우리부터, 정치의 틀 내에서부터 자성해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하는 주의환기를 시켜보고자 함이 목적이었다.

마지막으로

트라우마라는 말이 과거에는 정신과적 용어로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자주 사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자신의 현재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 감정적 왜곡 혹은 병리적 현상에 대한 분석을 하는데 있어, 과거의 어떤 경험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구사해오고 있었던 경상도 사투리는 한국 정치사와 민주민중사 내에서 다른 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어는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직접 죄 짓지 않고도, 나만 모르는 죄를 짓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소회가 든다.

앞으로 사투리르 쓰지 않겠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으나 되도독 공식적인 자리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표준어를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굳건히 해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 모르는 노력이겠으나, 더 큰 한국을 향해 나아가는 한 걸음이 되어보고자 한다.

진짜 마지막으로,

영화 26년은 가슴 먹먹한 영화였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마지막 장면이 더욱 가슴아팠고, 그리고 '제작 두레'라는,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투자를 하여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끊기지 않고 올라오는 엔딩크레딧의 수많은 이름과 별명들을 보면서, 꼭 그분의 진심어린 용서를 듣게 될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영화는 추천한다. 특히 경상도 출신의 젊은이 중에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전라도사람들은 빨갱이'라는 소리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젊은이들은 꼭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