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8년전 오늘

8년전에 나는 20살이었다.
갑작스럽게 군입대를 결정하였지만 나의 시력이 군대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나쁘다는 사실을 해군 훈련소에서 알게 되어 다시 사회로 나와 있었다.
등산도 다니고 책도 보면서 백수 아닌 백수가 되었지만 그 당시 여유는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미래를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적고자 하는 것은 처량한 내 과거가 아니다.
8년전 오늘 나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당시 내 시간당 임금은 2800원이었다. 이 시급도 내가 3개월째 일했기에 받을수 있는 돈이었다.
하루에 10시간을 일해도 3만원이 채 되지않는 돈을 벌고서도 딱히 불만이 있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만큼 그때는 순수했던 것이리라.
크리스 마스 이브에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내린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눈이 잘 오지않는 내고향에서는 눈은 분명 반가운 존재였지만 나는 다음날을 예상하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아침 8시에 출근해보니 하얗게 주유소가 변해있었다.
예뻤다.하지만 나는 청소를 해야했다.
그리고 주유소에서 같이 운영하던 세차장에 차가 미친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루종일.
그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조차 기억이 안날만큼 바빴다.
기름총을 차에 꼽아놓고 세차장에 가서 세차기계를 돌리고 주차장에 가서 차의 번호를 주차기계에 누르고 오면 기름총을 뺐고 그리고 세차기계ㅔ서 나온 차의 물기를 걸레로 일일이 닦아 내야만 했다.
나들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손님도 많았다.
하루 온종일을 서 있었고 기름 냄새를 맡았고 점심으로 짬뽕을 먹었다.
저녁8시 반에 퇴근을 했다.
내가 일하던 주유소는 마산의 어시장 바깥쪽에 있었고 우리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당시에는 번화가였던 창동을 거쳐 가야만 했다.
어시장을 지나 창동에 접어드는데 캐롤이 들리기 시작했다. 각종 간판들이 밝은 빛을 내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그 사이를 걷고 있었다.
나는 기름냄새 나는 손을 호주머니에 푹 꼽은 채로 종기걸음을 걸어 그곳을 벗어났다.
괜시리 서글퍼졌다. 나에게 8년전의 크리스마스는 시급 2800원을 벌기위한하루였고 사람들은 행복했다.
나는 지금 내 가난의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리 가난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가난의 경험이 아니라 경험의 가난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다들 웃고 떠드는 곳에서의 어두움은 그리고 가난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고 누군가에게는 추억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일 수 있다.
나는 다시 8년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8년전 오늘을 떠올리며
현재의 오늘을 생각해보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결국 오늘은 오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