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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규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무엇을 규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2016.02.15.



2016년 발렌타인데이의 홍대 거리. 눈발은 조금 날렸지만, 매우 추운 날씨였다. 발렌타인데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홍대는 언제나 그랬던 것인지 사람들이 많다. 한 남자는 오랜만에 나온 홍대 거리에서, 이상한 목걸이를 건 채 서 있다. 목걸이에는 영어로 "ASKME"라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일본어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뜻으로 '日本語'와 'ENGLISH'가 다소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몇 분을 채 서있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헤메이는 듯한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그러고 있던 중이었다.

무거운 짐가방을 든 중년의 동양 남성이, 한 남자를 향해 다가왔다. 남자는, 자신의 목걸이를 보고 길을 물어볼 것이라 확신했고 역시 중년 남성에게 다가갔다. 영어로, 길을 잃었냐 물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짧은 순간이었지만, 남자의 바로 옆으로 비슷한 연배의 동양 여성이 중국어로 남자에게 묻기 시작했다. 가족인 듯 보였다.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빠른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남자는 중국어가 그리 유창하지 않은 탓에 거의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여성이 가르키고 있는 것이 '찜닭'이라는 것과 그것의 주소가 이화여대 인근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여기서 멀다' 라는 것을 짧은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설명을 했다. 어느샌가 남자 주변에는 한 가족이 모였다. 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어린아이 세 명과 중년 남성의 어머니로 보이는 노인이 앞서 설명한 중년 남성, 여성과 함께 남자를 둘러쌌다.

'여기서 멉니다. 하지만 같은 음식을 파는 가게라면 이곳에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가며 남자는 설명했다. 중년 여성은 알아들었는지 알겠다고 한다. 네이버 지도를 찾아보니, '안동찜닭홍대점'이 걸어서 약 5분거리에 있는 걸로 파악이 됐다.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남자는 아이들과 노인들과의 속도를 맞추어가며 홍대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안동찜닭홍대점은 홍익대 정문의 길을 넘어 있는 곳에 있었고, 남자와 중국인-길을 걸으며 중년 여성에게 어디에서 왔냐 물으니, '다린'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 가족을 만난 곳은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 가까운 공터였다. 평소 같았으면 5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발렌타이 탓인지 덕인지 사람들이 많았고 아이가 있었으며, 그들은 짐도 많이 들고 있었고 또 추웠다. 홍대 정문 앞길을 건너려는데, 중년 여성이 아직 멀었는지, 얼마나 걷는지를 중국어로 묻는다. 넉넉히 5분 남았다고 대답했다. 아이들과 중년 남성 그리고 노모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를 보며 꾸준히 따라고 오고 있는 듯 했다. 길을 건넜고, 지도에 표시된 위치에 도착했다.

하지만.

안동찜닭이 보이지 않았다. 지도의 위치는 남자가 서 있는 곳을 가르키고 있었지만 안동찜닭은 없었고, 찜닭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남자는 당황했다. 날씨는 추웠고, 사람들은 많았고 중국인 가족은 분명 지쳐 보였다.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남자는 주변의 가게에 들어가 안동찜닭이 옆 건물에 있지 않았느냐 물었다. 대답은, 한 가게에서는 자신은 모른다 였고 또 다른 가게에서도 역시 잘 모르겠으나, 아마 지금 없다면 문을 닫은 것이 아닌가 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남자는, 미안했다.

남자를 믿고 걸어 왔던 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중국인 가족들은, 가게가 없어졌다는 것을 이해한 듯 내게, 다른 가게에서 다른 음식을 먹을테니 남자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 연신 고맙다라 말해준다. 남자는 자기 탓에 추위에 떤 것이 아닌가 하며, 미안함에 '뚜이부치',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주억거린다. 노모부터 아이들까지 모두 추워보였지만 한 명도 잊지 않고 남자에게 고맙다 말해주며, 안동찜닭홍대점이 사라진 건물의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화가 났다.

첫 번째로 화가 난 대상은, 네이버 지도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네이버였다. 왜 없어진 가게를 지도에 번듯이 올려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이버 지도를 사용하는 사람이 내국인인 한국인이라 할지라도 가게나 빌딩이 없어졌거나 이동했을 때는 알려줘야 아닌가,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모든 가게의 이동을 네이버라는 회사가 확인할 수 없다고 해도, 변경된 사항을 업데이트 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가능하다면 법으로 규정하도록 하고 싶었다. 가게의 위치를 바꾸거나 인터넷에 등록을 해야할 경우, 변경된 위치를 각종 포털이나 지도 등에 알려주는 것을 의무로 만든다면 이런 불상사는 사라질 것이다.

두 번째로 화가 난 대상은, 가게를 옮긴 사람들이었다. 이유야 다들 있겠지만, 손님과의 약속을 함부러 져버린 듯 했다. '지난 번 거기 맛있더라' 라는 생각으로 '거기 다시 가자'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실망 뿐이었을 것이다. 가게를 옮긴 사람들에게 순간 화가 났지만, 이것은 주요한 대상에 대한 주된 화가 아니었다. 사실 첫 번째의 대상이었던 네이버 역시 그렇다.

마지막이자, 진실로 화가 났던 대상은 '이런 현상' 그 자체였다. 최근에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용어로, 유명지가 아니었던 곳이 사람들이 몰리고 유명지가 되면서 그곳의 임대료와 지대가 올라 원래 살던 사람이 떠나게 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홍대는 과거에는 인디음악과 미술 계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저 흔한 번화가가 되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몰리니 매장이나 가게가 장사가 잘되고, 자연스레 지대가 오르는 것은 고등학교 한국지리 시간에도 배우는 매우 상식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게 되었을 경우, 상식은 여지 없이 그 범위를 벗어나게 되었다. 홍대에서, '오래된 가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역사와 전통'을 가진 가게는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어떤 아이테이나 유행하는 품목이 있으면 그것으로 손쉽게 변하게 되고, 지대와 임대료는 '권리금' 등의 법으로는 규정되지 않는 암묵적 동의에 의해 운용되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런 현상'은, '너무나 쉽게 모든 것이 돈벌이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 그 정도일 것이다.

홍대가 정체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남자는 홍대가 가진 자유로운 분위기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실질적 공간으로서 홍대가 유지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번 중국인 가족의 경우가 아니라도, 꽤 많은 외국인들에게 홍대의 길을 안내해주면서, 없어진 가게가 버젓이 관광 책자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보기도 했고 지도를 보고 막상 찾아가도 그 가게가 없어진 것을 몇 번이나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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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찾은 중국인의 재방문율은 20%, 외국인 전체로 보면 4% 초반대로 조사되고 있다. 한국에 재방문하는 외국인을 늘리기 위해, 비자 문제나 호텔 문제 등 다양한 방면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런 움직임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은, 이런 움직임 역시 외국인을 위한 것이라는 것, 내국인 역시 겪고 있는 문제점을 포괄하지 못한다는데 그 첫번째 부족함이 있다. 서울의 홍대 뿐만 아니라 국내 여러곳에서도 '100년 가게'는 언감생심, 한 세대인 30년을 견디기에도 쉽지 않다. 많은 이유들이 있겟지만, 임대료의 급격한 인상과 퇴직 이후 요식업 개업이라는 일종의 공식 등 경제학적 문제, 사회복지 문제 등과 같이 복합적인 문제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내국인으로서 느끼는 문제점은, 고스란히 외국인도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현재 위치를 찾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찾기도 하지만, 아직도 이미 출판된 책을 들고 위치를 찾고, 가고 싶었던 가게를 마음에 품고 오기도 한다. 특히 일본 관광객이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없어진 가게는 결국 가지 못한 가게가 되어 버린다. 최신의 정보가 결핍된 관광 자료의 경우, 피해는 생계를 유지하는 한국인과 관광이나 여행을 온 외국인 모두가 나눠 갖게 된다.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이다. 급격한 서구화와 도심공동화 현상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지만, 특유의 역동성과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역사적 유적과 또 지역 문화는 세계 어디와도 비교를 거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 '세계는 평평해지고' 있고, 의지와 약간의 비용이 있다면 외국은 어느 곳이든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관광객 모두의 마음은, 와보고 싶었던 한국이었을 것이고, 궁금했던 한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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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남자는, 마음이 무거웠다.

추운 날씨였고, 아이와 노인까지 있는 중국인 가족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먹지 못했다. 이것 역시 슬픈 요소이기도 했지만 한국에 대한 그들의 인상과는 별도로 우리나라를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것 자체가 슬펐다. 확실할 수 없는 그 근저에는, 지금도 임대료와 지대와 권리금에 허덕이고 있는 영세 사업자들의 문제와 한국을 좀 더 한국답지 못하게 만드는 문화 역시 일조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한국에 온 모든 이,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제대로 한국을 즐기고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남자는 바랐고,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도 바랐다. 중국인 가족이 따뜻하고 안전하게 오늘 밤, 그들의 숙소로 돌아갔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