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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은 그리움을 이기는 것인가.

<새로움은 그리움을 이기는 것인가>  2013.4.2


사람들은 어제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제를 기억하려는 노력은 자신도 모르게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다시 채워지기 마련이고, 그 기대감은 또 다시 내일이 되면 어제가 되고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기대했던 내일과 오늘이 다를 경우에는 또 사람들은 그 기억을 잊게 마련이고 마치 어제와 같고 또 내일과 같을 정도로, 딱 그정도로 그 기억을 다시 기대감으로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기억력이 한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기억을 하는 것을 마치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본성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 기억이라는 것은,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어제의 일을 기억하기는 쉬울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나, 1주일 전도 그 일주일 전의 다음날에게 있어서는 어제였던 것인데, 우리는 1주일 전의 일과 감정, 그리고 자신이 평생 잊지 말자고 생각했던 순간까지 다 잊어버리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그 한계가 있기에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마치 하늘이 있기에 땅이 있다는 것처럼 모순된 이야기로 들릴지는 모르나, 꽤나 과학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그리고 심지어 철학적으로도 정합성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정합성'이라는 말을 굳이 '철학'이라는 용어와 맞춰 쓰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나, 그리고 '정합적'이라는 표현 말고는 딱히 생각난 표현이 없기에 선택했다. 선택했다는 것은 내가 많은 단어와 표현들을 알고 있는 듯 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내 머리속 단어 사전에는 그렇게 많은 표현들과 단어들이 들어가지 있지 않다. 이는 내가 평소 말하는 말투에서 드러나는 표현들이 그렇게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는 것으로 그 실증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내 기억에 어떤 구멍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인데, 그 구멍이 있기에 나는 새로운 단어와 새로운 표현, 그리고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열린 마음이라는 것이 어떤 마음인가 하면, 굳이 표현하자면 어떤 것을 잊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억와 유사한 것이 추억이라고 한다면, 추억 역시 잊기에 '열릴' 수 있는 것이리라. 사람이 자신의 이성으로 감정으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된다고 하면 그 사람과의 사랑 뿐만 아니라 이별 역시 겪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만을 기억하고 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굳이 그 이유를 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랑을 하듯이 이별을 하면 이별을 기억하는 부분도 있을 것인데, 이 이별이라는 것, 기억하는 것을 우리가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또 자연스레 잊는 경우도 있다. 잊을 수 있는 것 이라고 태그를 달아 놓은 적도 없는데, 우리는 또 잊고 살아가고 있고, 이러한 잊어가는 마음가짐이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갖게 하는 그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잊지 말자고 다짐을 해보고 몸에도 새겨보고, 술을 쳐마시면서 간에다가도 새겨보아도 우리는 결국 잊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열린 마음인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기억은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면서 몸 속 어딘가, 마음 속 어딘가, 아니면 뇌에 있는 일련번호 B-324 번 위치에 있는 기억의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과거의 사랑이 가졌던 유사성을 전혀 필요 없는 순간에, 꼭 그 순간이 아니어도 되는 순간에 다시 기억을 불러내어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그 기억의 흙탕물을 뒤집어 씌워버리는 것이다. 열린 마음이 다시 닫히는 순간이라 하겠다. 지난 번 남자가 단지 녹색 신발을 신었었다는 이유로 지금 내 눈앞의 남자가 녹색신발을 신고 있다는 이유로 그 남자가 싫어지거나, 단지 나를 쌀쌀하리 만치 차갑게 떠났던 여자가 짧은 단발을 했었다는 이유로, 세상의 모든 단발의 여자들은 자신에세 쌀쌀 맞게 대하리라는, 그런 근거도 없고 감정도 없고 심지어는 자신도 왜 그러지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들로 인해 우리는 닫힌 마음을 만들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억에는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한계가 있어야 하고, 또 지워져야만 하는 것이다. 

 부모를 잃은 슬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하물며 오랜 시간 같이 지내던 반려견이나 반려묘나 심지어 반려충이라고 할 지라도 우리가 슬픔을 극복해 낼 수 있는 것은, 잊을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누군가는 반드시 겪게 되는 것이고, 그 누군가는 당신을 포함은 모든 사람이다. 겪지 않으리라 하는 사람은 자신이 다른 이에게 그 슬픔을 겪게 할 것이다. 잊음은 새로움이며, 새로움은 곧 그리움을 이기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의 기억이 일치하지 못하고, 어제의 기대와 오늘의 성취가 같은 수준이 되지 못한다고 할 지라도 우리는 또 잊게 마련이다. 일부러 잊으려는 노력을 하지는 마시라. 내가 찬양해 마지 않듯이 우리의 기억은 한계가 있고, 아인슈타인이 사용했던 2퍼센트의 뇌, 즉 98퍼센트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뇌에게 1퍼센트를 더 사용할 수 있는 효율성을 기대하지 말라는 표현으로, 그 기억의 한계를 다시 한번 찬양코자 한다. 잊으려는 노력보다는 단지 다시 잊을 준비를 하는 것이 우리가 인간적인 노력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새로움은 그리움을 이기는 것인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이야기하라. 그 중간에 '잊음'이라는 것이 숨어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든 내일을 기대한다. 그 기대는 과거의 기억과 추억과 그리움을 모두 다 잊게 만든다. 당신은 결코 어제 먹었던 정말 정말 맛있었던 음식을 다시 먹는다고 해도 그 음식맛을 기억하지는 못한채, 다시 먹는 그 음식의 맛을 기억하게 될 뿐이다. 당신은 결코 어제 헤어졌던 연인과의 달콤쌉싸름했던 추억들을 잊지 않으려, 간직해보려 사진과 온갖 선물과 또 몸이 느끼고 있는 그들의 감정을 잊지 않으려 하겠지만,다시 당신이 만나는 그 남자/여자가 그 이전의 추억을 이어주려는 듯 해 보이겠지만 그것은 결코 당신의 감정 속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감정의 시작이며 당신이 가진 기억은 그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아니 이미 무너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봤던 넓은 인도양과 그 파도, 그리고 지는 석양의 모습을 기억하고 다시 그 장소를 찾아간다고 할지라도 그 인도양은 그 인도양이 아니라, 당신이 새롭게 기억해야할 인도양이 될 뿐이다. 당신이 변한 것이 아닌가 하고, 아니 내가 변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해보곤 하지만 당신이 변한 것도, 내가 변한 것도 아닌, 단지 우리의 기억이 이전의 기억을 지워버린 탓이라는 것은 당신이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