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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있는 법

운 있는 법 2013.4.24. 


어제 잠시 나를 만나러 온 동생과 대화 중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내용이 있어 손가락을 든다. 


운이 있는 법.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 많은 운이 따르기를 기대하고 또 막연히도 그리고 무모하게 운을 위해 많은 부분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라는 놈은 자신의 관심을 그런 사람들에게 잘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운마저도 모두 뽑아가 버린다. 


강원랜드에 가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운'을 바라고 있었다. 푸르거나 노란 지폐를 네모난 기계 속에 밀어넣으며 "이정도면 내가 운을 살 수 있는 가격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며 그들의 시간과 건강을 버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돈을 기계 속에 밀어 넣으면서도 그 기계가 보여주는 "당신이 얼마나 운이 없는가" 하는 메세지를 보지 않기 위해 그 화면을 휴지로 가려버린 채, 고개를 돌리고 애써 자신이 운 없음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본래 가졌던 운, 즉 가족의 운과 건강의 운들을 포기하면서 '금전적' 운만을 바라고 있었다. 결국 그들에게 남은 운의 기운은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운을 갖게 되거나, 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제, 동생에게 했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 방법은 바로, '즐기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평소 생각하는 것, 별 의미도 없어보이고, 또 어딘서가 들어 본 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즐기는 것"이라. 


즐기기만 한다면, 과연 운이 자신에게 온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어려운 대답이다. 즐기기만 한다고 해서 운이 올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글을 적는 본인이 가만히 '운'에 인생을 맡겨보았던 대학시절을 생각해보면 실증적인 증거는 충분히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경험의 미천함이 극에 달해, 대학생활을 언급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이해해달라.) 


남들보다 대학을 늦게 들어왔다. 24살의 나이에 예전에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다시 대학을 들어온 뒤, 나에게는 하나의 큰 감정이 있었다. 그 감정은 바로 "내가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라는 것이다. 이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신분이 주는 혜택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지만, 막연히 대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기쁨을 느꼈었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한 한 장면이 있다. 1학기 첫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을 향해가는 길이었다. 3월이 되었지만 날씨는 쌀쌀했다. 하지만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핀 개나리와 여러 꽃들이 길가에 피어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 다시 대학에 들어와서 이렇게 수업을 들으러 가다니.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 


그리고 이 감정은 1학기 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과 기쁨의 결과는 4.5점이라는 학점,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비인간적인 학점을 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도 생각해보건데 그때 학점을 높게 받았던 이유는, 내가 매 수업시간마다 교수님들로부터 듣는 수업의 내용이 즐거웠고, 그 즐거움이 얼굴로 표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또 시험이든 과제든 내가 배우고 싶은 학문을 배운다는 그런 즐거움이 내게는 컸던 것이다. 그런 즐거움의 끝에 '운'은 흐뭇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뒤, 4.5라는 학점을 바탕으로 1학년 2학기 당시, 등록금과 향학 지원금을 제공하는 장학재단에 지원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합격이었다. 역시, 장학금을 지원할 때, 면접을 보러 갔을 때의 모든 순간은 나에게는 즐거움과 재미였다. 다소 딱딱해 보일 수 있는 면접에서도 나는 사회적으로 저명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나눈다는 데 대해서 일종의 감격을 느끼기도 했고, 장학재단 이사였던 분들으로 기억하는데, 그분들과 통일에 대해서 나눴던 다소 격양되었던 토론은 나에게 또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몇가지 이야기를 더 할 것이다. 


빼먹을 수 없는 것이, 일본으로의 교환학생이다. 교환학생을 갈 생각이 전혀 없었던 본인은, 당시 친했던 친구들이 유럽 국가로 교환학생을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아, 나도 교환학생을 가게 되면 재미가 있겠다' 라는 생각에 당시 학교에서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던 일본의 교환학생 모집에 지원하게 되었다. 지원하면서도, 당시 일본어 능력검정시험의 성적이 없었던 본인은, 합격할지 하지 않을지에 대한 불안함보다는 어떻게든 일본에 가서 일년동안 재밌게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결과는 교환학생 선발이었다. 


교환학생 선발 이야기와 이어지는 이야기 중 하나는, 교환학생만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장학금에 지원하게 되어 장학금을 받고 교환학생을 가게 된 이야기 내에서도 '즐거움'의 요소는 빠지지 않는다. 


지금은 면접을 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는 면접이 있었다. 성씨의 자음이 빠른 탓에 아침 8시에 면접을 보게 된 본인은 아침 일찍 여의도로 갔다. 많은 지원자들이 모여있었고, 그 지원자들 모두 각 학교에서 이미 교환학생으로 선발된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면접 시작. 


나를 제외한 3명은 모두 여학생들이었다. 한명의 학생이 참석하지 않아 4명의 학생으로 진행된 면접은 정말 슬픈 분위기였다. 나를 제외한 다른 3명의 여학생이 자기 소개와 '자신이 왜 이 장학금을 받아야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도중 눈물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각자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것은 이해를 하겠지만, 눈물까지 흘렸어야 했나 하는 생각과 더 많은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이사람들겠다 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면서도 본인은 그 면접을 즐겼던 듯하다. 항상 면접을 보러갈 때 메고 가는 "빨간 넥타이"를 메고 갔던 나는, 면접을 보좌하는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넥타이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고, 또 내심 면접 때도 넥타이 이야기를 나에게 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면접관들도 넥타이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해주어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옆의 여학생들의 이야기는 슬펐지만, 나에게는 사소한 재미가 있었던 면접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장학생 선발은 그 중 나 혼자 되었다. 물론, 그 여학생들이 울었기에 떨어진 것은 아니고, 내가 빨간 넥타이를 메었기에 붙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때도 내가 즐거울 수 있는 곳에서는 운이 따라 온다는 것을 느낌을 어렴풋이 갖게 되었다.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가 있을 당시의 '즐거움'과 '재미'를 모두 적을 수는 없다. 따로 교환학생 당시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논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교환학생 당시도 즐거웠고, 그 결과는 좋은 성적과 일본정부에서 받는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간단히 남기고 간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고 난 뒤 약 1년간은 크게 즐거운 일이 없었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랄까, 개인적인 여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여유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한국사회에 대해서 잊고 살고 있다가, 1년간의 일본 생활을 하고 다시 돌아온 한국은 그만큼 나에게 새롭지만 익숙한 갑갑함을 주었다. 그리고 그 1년동안의 성적이 내 대학생활동안 가장 나쁘다. 

결국 나는 그때 당시 즐겁지 않았었다. 


그리고 2011년이 되었고, 어느 정도 한국의 부자유스러움에 익숙해졌고, 다시 예전의 활기를 찾아갈 즈음, 한국사를 공부하기 위한 특강에서 전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또 해군사관학교에서 개최하는 대회에서 1위를 하게 되는 성과도 내게 되었다. 


여자친구와 관련해서는, 사생활의 측면이 강한지라, 언급을 하지 않겠다. 


해군사관학교의 학술대회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2011년 3월 11일에 우리 형의 아들이자, 내 조카가 태어났다. 학교 문제로 서울에 홀로 있던 나로서는, 조카를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어떻게든 고향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의지 역시 매우 컸다. 그러던 중 5월에 해군사관학교에서 개최하는 학술대회가 있다는 것은, 바로 내 고향 옆도시였던 진해에 갈 공식적인 명분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로 지원했다. 


평소에는 크게 관심이 없던 분야였던 해적 문제에 관련해서 많은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해군사관학교 학술대회는 논문 초록을 먼저 제출하고 그 초록을 통해 선발된 사람만이 해군사관학교에 가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는데, 나는 꼭 그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매우 열심히 그리고 조카를 생각하며 준비에 임했다. 그리고 학술대회 참가자를 발표하는 날, 주최측에 수없이도 많은 전화를 걸었다. 


언제 발표가 나느냐, 언제 발표가 나느냐. 


그러던 중 오후에 해군사관학교와 당시 공동으로 준비를 했던 한양대로부터 전화가 왔고, 내가 발표자로 선정되었다는 확인을 받게 되었다. 딱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웠다. 드디어 집에가서 조카를 본다.


조카를 보는 것은 이제 확정이 되었으니, 당시 대회를 준비하면서 했던 많은 공부들을 소홀히 할 수 있었을테지만, 해적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논문과 발표자료 또 세계적 동향들을 살펴보면서, 해적 문제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더욱 깊게 그 문제에 대해서 연구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해군사관학교에서의 발표. 즐겁게 준비하고 많은 생각을 해본 만큼 기대도 컸고, 자신감은 있었지만, 당시 나를 제외한 발표자들의 발표자료들을 보면서, 아 이건 쉬운 일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5명의 발표자 중 마지막 발표자로 선정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해사 대회는 교수님이 평가를 하시지만 발표 대상을 해사 생도들을 포함해 일반 대학생 약 100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하는데, 그 학생들이 해적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발표를 할 때 청중의 반응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렇기에 내가 마지막으로 발표를 한다는 것은 그들이 나보다 먼저 발표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지식을 얻게 될 것이었다. 또 교수님이 갑작스레 발표 시간을 20분에서 15분으로 단축하라 하셨고, 준비했던 발표자료에서 몇몇자료는 넘어가야했기에, 앞선 발표자들의 내용과 중복되는 내용은 내 발표에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발표는 잘 끝났고, 결과는 교수님의 판단에 맡겨두기로 했다. 


시상식이 있는 강당으로 갔다. 해군사관학교 대회의 특징인지, 우리나라의 특징인지, 수상자들이 입장할 때 순서를 맞춰야 했기에 단상 밑에 있는 수상자석에 각 상들의 이름이 붙어 있는 의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중에 1위인 최우수상의 자리가 보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하는 나는, 다른 발표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며, 


"야~ 최우수상 자리 앉아나 있어봅시다. 제가 상은 못받더라도." 


최우수상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리를 확인시켜주러 온 장교는 내 이름과 의자에 붙은 '최우수상'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계속 앉아계시면 됩니다." 


다른 발표자에게 하지 못한 '조카보러 왔다'는 이야기는 결국 하지 않았다. 


조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귀여웠다. 마치 그 아이가 나에게 더 행운을 가져다 주는 듯 하였다. 


그해 10월에 육군사관학교에 가서도 상을 하나 수상했고, 그떄 당시도 매우 즐거웠다. 본인 이야기를 길게 적는데 대해서 다른 이들이 읽게 되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순간 했다. 죄송하다. 


본인이 이런 이야기를 적는 이유는, 앞서 적었다시피, 즐거움이 있으면 운이 따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떄문이다. 


대학생활 중에 내가 즐겁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보는 사례도 물론 있다. 


국가에서 수여하는 "대한민국인재상"이라는 상이 있는데, 2번의 지원 중 첫번째는 서류에서 탈락, 2번째 지원은 서울시면접까지는 갔었지만 탈락. 


당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본인은 상금이 필요했고, 그 상금을 위해서 즐겁지도 않은 일을, 또는 마치 내 대학생활을 증명하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준비를 했었고, 그런 마음과 생각들이 내 얼굴과 행동과 서류들에 묻어났을 것이다. 결국 운은 내 어깨에 내려앉지 않았다. 


그렇다면 즐겁다면 반드시 운은 오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즐거움에도 꽤 많은 종류가 있다고 보는데, 예를 들면 책을 읽는 것이 즐거운 사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 있는 반면,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하릴 없이 노는 것을 즐겁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즐거움들 속에서 운이 가장 좋아하는 즐거움은, 책도 아니고, 꿈도 아닌, 자신만의 방향이 있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세운 큰 틀 속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운은 좋아한다. 잠시 엇나가는 길이라도 큰 흐름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즐거움, 즉 휴식을 위한 일탈이나, 삶의 다양한 면을 알기 위해 떠나는 무전여행, 또는 배낭여행 등에서의 즐거움은 분명 '성실하다'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을지라도 사람들은 즐거움을 느낀다. 이런 즐거움에는 항상 운이 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들 각자가 정한 큰 틀 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또 그것에 대해서 자신이 충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을 때, 운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의 어깨와 머리를 뒤덮어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또 다르게 표현하면 운은, 직사각형의 상자들이 수직으로 죽 서있는 탑과 같은 사람에게는 잘 스며들지 않는다. 쉽게 이야기해서 매우 성실하고, 누구보다 노력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 걸음 한 걸음, 한 상자, 한 상자 세워나가는 사람에게는 운이 스며들지 않는다. 


응? 운이 스며들지 않는다고?


그렇다. 그들에게는 운보다 강한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운은 그들을 응원할 뿐이지, 결코 그들의 노력이 요행으로 보여지는 것을 싫어하기에 그들에게는 운이 내려앉지 않는다. 


반면, 흔들리지 않는 높은 기둥이 있고, 그 기둥 주위로 동그란 모양도 있고, 세모난 모양도 있고, 둥근 모양도 있는 나무와 같이 얼기설기 서 있는 모양의 것에는, 그 빈 공간을 운이 채운다. 이런 상황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는데, 첫번째는 큰 틀 즉, 기둥과 같은 것이 있어야 하고 두번째는, 그 모여있는 여러가지 모습들의 것들이 즐겁게 모여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하나 하나가 웃고 있어야 한다. 그렇면 그 즐거운 공간에 운이 들어가 둥지를 틀지 않을리 없다. 


새삼,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라틴어 구절이 떠올랐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언급되어 유명해진 라틴어 구절이다. 그 내용은 '현재를 즐겨라' 나 '현실에 충실하라'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결국 현실을 즐기는 법이, 자신에게 운이 따르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하지 않을까. 


즐거움이 운을 만드는 것이다.


운이라는 놈은 매우 개구장이이지만 또 매우 진지하며, 거짓으로 즐거운 것과 진심으로 즐거운 것을 잘 구분할 줄 알고, 노력하는 이에게는 존경을 표하고 즐기는 이에게는 환희를 더한다. 그리고 매우 쉽게 오지만 잘 떠나지 않기도 하고, 또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것을 아는 순간 가차없이 사람의 어깨에서 날아올라 버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운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현실을 즐기되' 자신만의 기준과 틀을 잡고 다양한 즐거운 일들을 통해 하루 하루 자신의 기준의 나무 위에 꽃피게 하는 법 밖에는 없다. 


본인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는 즐거웠으니, 지금 내 어깨에 앉아있는 큰 운 한마리가 즐거움의 웃음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들린다. 


다들, 즐겁게 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