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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할 순 없을까.

담담할 순 없을까. 2013.4.26.             - 단편소설



"밥을 좀 많이 주세요." 


평소에 밥을 먹을 기회가 많이 없는 우주에게는 밥을 먹을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밥이라는 것이 주는 이상야릇한 안정감은 그에게 마음의 기쁨 뿐만 아니라 몸 속에서의 포만감도 주었다. 매번 많은 밥을 먹기 전에 '내가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밥을 다 먹고 난 뒤, 그런 생각은 비워진 밥그릇처럼 그의 생각 속에서 지워져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우주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 중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에서 그는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서울의 고등학생들은 학교를 늦게 가는군. 나는 일찍 갔었는데. 서울의 아이들은 머리 길이가 자유롭구나. 나는 저렇지 못했는데. 서울에 산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에게 서울은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었고, 그에서 표준어는 '서울말'이었고 사투리를 쓰는 자신이 보기에도 자신은 서울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들은 아침을 시작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하고 다시 생각해보았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얼른 어른이 되어야지' 어른이 된다고 큰 변화가 있지는 않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그 역시도 20살이 되기 전에 어른은 무엇인가 많은 자유, 그리고 돈이 있든 없든 마실 수 있는 술이 있다는 정도만으로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여자 고등학생 한 명이 남학생과 함께 지나갔다. 상당히 짧은 치마를 입은 것으로 봐서, 저 여학생은 자신이 얼굴에는 크게 주목받지를 원하지 않거나 아니면 저렇게 이른 나이게 자신의 다리가 이쁘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듯 하였다. 아직 추운 날씨였음에도 저렇게 맨다리를 보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참 힘겹고도 외로운 전투가 아닐까 생각했다. 치마를 입으면 불편하지 않을까. 평생 바지만 입어온 우주에게는 치마라는 것은 매우 불편해 보이는 인간의 습성 중 하나였다. 옛날 스코틀랜드 남자들은 치마를 즐겨입었다고도 하고 그들은 심지어 속옷마저도 입지 않은채 말을 타거나 일상생활을 했다고 하니, 그들은 매우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바지를 발명하지 못했던 선조들을 매우 미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인 영국 윗나라 이야기보다, 지금 우주가 앉아있는 이 식당 밖에서 보이는 저 고등학생은 무엇인가 불편함이 느껴졌다. 저렇게 짧은 치마로, 또 저렇게 펄럭거리는 치마로 어떻게 자연스럽게 걸을 수가 있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가장 그가 궁금해 했던 것은, 원피스라고 불리는 치마 종족인데, 원피스는 말 그대로 어깨에 걸려 있는 부분이 없으면 그것은 단지 천을 휘휘 감아놓은 것에 불과했고 또 그 시작이 어깨인지라 치마 끝단까지는 정말 넓은 공간이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그런 옷이 예쁘다며 다양한 종류의 원피스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들을 입는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그들의 머리 속에는 남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편안함'에 대한 정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언젠가 '야한 것'이라는 것을 정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 우주는 이렇게 그 정의를 내렸다 '상상할 수 있는 것.' 그렇다. 야하다는 것은 결국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야한 영화를 보더라도, 남녀 주인공이 실오리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가끔 귀걸이를 하거나 목걸이를 하고 있는 여자들은 있었지만, 아이들은 이해하기 힘든 행위들을 하고 있는 장면보다는 옷을 입고 있거나, 옷이 아니라도 속옷이라도 입고 있는 장면이 '야함'의 정의에 더 맞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정의에 비추어 본다면 여자들의 치마는, 그들의 편안함과는 별개로 남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고, 그런 상상력은 남자들에게는 언제나 '매력'이라는 단어로 포장되기 마련이었음으로 그는 그쯤에서 치마에 대한 생각을 '매력'이라는 단어로 끝내버렸다. 

밥은 여전히 맛있었다. 첫 숟갈과 끝 숟갈의 밥맛은 분명 달라야 했으나 어쩜 이리도 매 숟갈이 맛이 있는지 우주는 궁금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불록 튀어나온 뱃살을 보면서, 자신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자격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중이라고 또 생각했다. 밥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반찬들은 그대로 남아있었으나 그가 여전히 집중해서 먹는 것은 밥이었다. 

눈은 창 밖을 보고 있었으나, 귀는 가게 주인인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인지, 머리가 긴 남자가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에 온 청각세포를 동원하여 고막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건물이 무너졌다고도 하고, 한국에서는 어떤 국가기관 직원이 정치에 개입했다고도 하는데, 그런 내용들은 그의 귀에는 들어왔으나 뇌에는 어떠한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다. 다만 사람들이 저런 문제들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나는 그렇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저런 일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일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일이면 잊혀질 일들을 오늘 다들 저렇게도 집중하고 또 신경을 쓰고 다시 집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렇게들 살아서 무슨 큰 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고막을 흔들어가며 그는 밥을 씹었다. 그리고 씹고 또 씹었다. 

그에게 오직 온 신경을 쓰고, 집중을 할 것은 밥을 먹는 것 그것 뿐이었다. 가끔 밥을 먹긴 하였지만 그는 밥보다는 면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 짬뽕을 좋아했다. 매운 국물과 대비되는 아삭거리는 야채들을 씹을 때, 그는 이 야채가 맛있어서 짬뽕을 먹는 것인지 시원한 국물 때문인지를 항상 고민했지만, 그의 입에 쫄깃한 면이 들어가는 순간 그는 '면이 맛있군' 하면서 모든 걱정을 잊어버렸다. 면을 씹는 행위는, 그가 매우 어릴 적부터 즐겨왔던 일이었다. 밥을 퍼먹는 것은,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었다. 숟가락은 젓가락보다 무거웠으며 밥을 정확히 그 숟가락 위에 올리는 것은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면을 먹는 것을 그렇지 않았다. 젓가락을 이용해서 면을 건져올리기만 한다면, 그의 입은, 살아야 한다는 일념하에 어미의 젖을 물어 놓지 않는 새끼 돼지처럼 그 면을 쪽쪽 빨아 먹었던 것이다. 얼굴에 튀는 국물이나 양념들은 씻어버리면 그만인 것이었고, 그에게 면은 목숨과도 같았다. 면을 먹으면서 그는 이 면을 다 먹으면 무얼 먹나 하는 생각을 하였고, 그 생각은 그릇이 비어 있을 때까지 고민의 가장 큰 부분이었다. 

이렇게도 면을 좋아하는 그가, 밥을 먹으면서 창밖을 바라보고 뉴스를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밥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태생적으로 한국 사람인 만큼 면만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밥은 하루에 한끼 정도를 먹게 되었고 그때는 항상 "밥을 좀 많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그가 한국사람임을 증명했다. 

밥을 다 먹을 즈음이었다.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였는데, 수수한 외모의 남자와 그보다 더 수수한 외모의 여자가 들어왔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밥그릇을 손에 들고 숟가락을 그 밥그릇의 바닥에 붙어 있는 밥풀이 마치 스크래치 복권이나 되는 듯이 긁으면서 듣기 시작했다. 


"신부님께서 이번 행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남자가 말했다. 

"그래요? 이번에 제가 갈 수 있으면 갈께요. 근데 오빠는 그 신부님과 친하시지 않나요?"

여자가 말했다. 


남자가 오빠인 듯 하였지만, 겉으로 보기에 친구라도 해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둘 모두는 꼭 같은 수수함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옷 뿐만 아니라 외모 역시 그랬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뭔가 세련되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우주는, 저 사람들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성당에 다니는 것이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성당에서 무슨 행사가 있나 보다 하고 생각한 우주는, 이 주위에 성당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서울 하늘에서 보이는 것은 십자가의 네온사인 아니면 술집의 네온사인이 전부라고 생각해온 그는 성당은 왜 네온사인을 쓰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지만, 이 두 남녀가 입고 있는 옷들처럼 성당은 수수해야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에, 급하게 그 생각을 접어버렸다. 성당은 자고로 수수해야 성당인 듯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주위에 성당은 없었고 그는 자신이 아직 이 동네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점심에는 중국집을 가야겠다 하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다른 사람이라는 존재가 자신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든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이든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우주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가, 같은 량에 탄 사람들 중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아주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옆이나 앞에 서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전화를 할 정도의 이야기라는 것은,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떨어져 있는데 대해서 무엇인가 불안함을 느끼는 관계가 분명한데,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람과의 이야기에서는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어색함과 상호존중의 격식이 그를 즐겁게 했고, 떨어져 있어 불안함을 느끼는 관계에서는 그 속의 묘한 긴장감과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의 표정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기분들이 그에게는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다고 그런 대화를 녹음하거나 녹취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단지 그 지하철 안에서 시간을 좀 더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그는 체득했을 뿐이었다. 이런 그가 밥을 먹으면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멈추었다. 

그 이유는, 밥을 다 먹었기 때문이다. 선불로 이미 밥값을 지불했으므로 그가 그 식당을 나갈 때 행해야 하는 의무는 단 2가지였다. 첫번째는 물을 마실 것. 두 번째는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할 것. 물을 마시는 것을 그는 좋아하지 않았으나 식당에서 물을 마시지 않고 그냥 밖으로 나가게 되면 사람들이 저 사람은 자신의 입에 무엇이 남았는지도 모르는 채 다른 사람들을 만나겠지 라는 생각을 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조금 물을 입에 머금은 채 이리 저리 물을 입 안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것으로 그의 위생을 과시했다. 그리고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는, 항상 문을 열면서 식당의 종업원에게 했는데, 그는 그가 그렇게 말하기 전까지 식당 종업원 혹은 주인과의 기 싸움을 즐겼다. 내가 먼저 할 것인가, 종업원이 먼저 할 것인가. 항상 그가 졌다. 그리고 종업원은 그가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의 말을 조금 변형하여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묘한 패배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그는 밥을 맛있게 먹었으므로 그 정도는 용서할 수 있다고 흐뭇한 미소를 등 뒤에서 날리곤 했다. 

밥을 먹고 나오니, 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보였다. 책을 안고서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 지각한 것이 분명한 고등학생, 그리고 이제 출근을 하는지 화장을 예쁘게 하고 그가 밥을 먹으면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원피스를 입고 어디론가 가는 20대의 여자까지.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대응하는 자세들을 각각 다르게 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그들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담배를 피워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담배를 필 때마다 담배를 언제 끊지 하는 생각을 하는 그는, 이제는 그런 생각도 귀찮아져 하루의 한갑만 피자는 결론으로 매번 담배를 새롭게 사서 맛있게 피곤 했다.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니 3000원이 있었다. 이정도면 충분하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식당 아래에 있는 편의점으로 그의 툭 튀어 나온 배를 향했다. 50미터를 내려갔을 때, 아침과는 어울리지 않는 남녀가 보였다. 분명 아침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자가 남자의 등 뒤에 업힌 채로 언덕은 아니지만 약간 경사가 진 그 길을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택시에 내렸을까, 택시 한 대가 그들 뒤에서 출발하는 것이 보였고, 남자는 매우 힘들게 여자를 들쳐메고 있었다. '들쳐 메다'라는 표현을 굳이 쓴 이유는 사실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술을 아침까지 마시다니 대단하군, 우주는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 둘다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남자는 검은 바지에 검은 구두 그리고 검은 자켓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검은 자켓에 짧은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치마 속의 팬티까지 검은 색이었다. 치마 속을 보려고 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우주는 했다. 그는 여자 팬티에는 관심이 없었고 치마에는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여자의 팬티는 그 두 남녀가 입었던 옷의 색깔과 너무도 잘 어울렸기에 눈길이 가는 것을 굳이 피하지는 않았다. 


"저쪽, 저쪽" 

여자가 말했다. 

술에 취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여자가 자신의 집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거리에서 남자는 여자가 가라는 방향으로 그의 숙인 머리를 틀었다. 이때 우주는 그 여자의 치마를 보았던 것이다. 하얀 다리와는 상반되게 검은 옷들과 검은 팬티는 그에게 너무도 가까이 있었기에 오히려 그는 당황했다. 오직 그 순간만이 그가 금방 밥을 먹었다는 것을 잊은 순간이었다. 남자도 술에 취한 듯 그들이 지나간 길에는 소주 냄새가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참 많이도 마셨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그들을 지켜봤다. 여자의 팬티를 오랜만에 보는 것이기도 했다고 우주는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생각을 했지만, 그때 그는 그런 생각도 없이 그냥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여자의 치마보다는 팬티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러면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그의 길을 가려 했다. 그러나 그때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도록 만드는 흰 무엇인가 그 팬티 안에 비춰보였다는 것을 그는 다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가 철부지가 아닌 이상, 알고는 있었으나 남에게 이야기해봐야 자신만이 손해가 될 것이었고 그런 손해는 그의 인생에서 너무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선 빠르게 다시 담배를 사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고개를 휘휘 저으며 지나간 두명의 모습을 기억에서 지우려했지만, 이미 얼굴은 잊혀진지 오래였고 단지 검은 옷과 검은 팬티 그리고 흰 색의 어떤 것만이 그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그 공포는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마음 속에 품고 있다는 것에 의해서 느껴지는 공포가 아니라, 저 여자가 저렇게 까지도 스스로의 모습이 망가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하는데에 대한 공포였다. 그리고 그 공포는 그 여자 자신은 느끼지 못하고 우주 자신은 느끼고 있는데 대한 그러한 상황이 주는 공포였다. 

그는 그 공포를 담배 한 대에 담아 지워버리려 했다. 그리고 효과는 전혀 없었다. 담배를 사고 다시 그 사거리로 올라오면서 그는 이미 사라져버린 그 두 명의 모습을 찾았지만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많은 집이 모여 있는 골목이었고 그 집들 중 어느 문에 들어갔다고 해도 그 똑같이 생긴 집들에서 그들만의 특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헨젤과 그레텔이 남겨놓은 빵조각과 같은 소주 냄새 뿐이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소주 냄새는 이미 아침의 태양에 의해서 어디론가 이미 사라져 버렸다. 

담배를 입에 물고, 그는 생각했다. 아침을 먹으면서 두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담배를 사러 가면서 두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식당에서의 두명은 아직 밥을 먹고 있을 것이었고, 다른 두명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선 또 생각했다.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품고 또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리아를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흰 색 그 어떤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둘 다 일상적이지는 않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그 자리를 잡아갈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담배를 한 개피 물고 있으면서 그런 이야기들이 자신에게 들어와도 그에게는 아무런 일도 아닌, 즉 담담한 일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오랜만에 밥을 먹었고, 밥을 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해보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생각했고, 자신의 집을, 술에 취했음에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그 여자를 보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이 그에게 들어왔음에도 그는 단지 밥을 먹고 난 뒤 피는 담배의 알싸함에 그 모든 것들을 잊어가고 있었다. 

뉴스에서도 누군가가 죽었느니, 누군가가 국기를 문란하게 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그에게 흘러들어왔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밥이었고, 성당이 어디에 있는지, 그 여자가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무슨 술을 먹었고 자신이 업혀 있는 저 남자와의 관계가 무슨 관계인지는 그에게 전혀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담담할 순 없을까' 자신이 밥을 먹지 못하게 된다는 것, 자신의 주머니에 삼 천원이 들어 있지 못하다는 것에도 담담할 순 없을까.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고 그런 이야기 하나하나에 의견을 가질 수 없다는 것에 그는 자신이 어디에서나 청취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그는 단지 그 생각들을 이 담배 한 개피를 피면서 할 수 있는 생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오늘 아침 밥을 먹었고, 담배를 폈다. 이것이 그가 오늘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단 한가지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