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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냉면 


봄답지 않게 날씨가 더웠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는 아직 봄 내음이 있었지만, 하늘은 화창했고 사람들의 옷은 가벼웠다. 아침에 일어나 일을 나가기 전까지 입을 옷을 고르긴 했지만, 내가 집어든 옷은 아내가 사준 남색 남방과 검은색 기지 바지였다. 아내는 내가 그 옷을 입고 일을 나가면, 회사원 같다고 했다. 회사원이 별거냐, 라고 퉁명스럽게 되쏘아 물었지만 아내는 대답 대신 자신이 다려준 옷을 입고 있는 나를 말없이 웃으며 바라보고만 있었다. 결혼한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처음 만났을 때 그 수줍던 미소를 가지고 있는 그 소녀는, 이제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나를 바라보며 웃는 그 눈꼬리 언저리에는 그 모습이 남았다. 


집 앞 오거리는 사람들이 없었다. 왜 오거리가 필요했는지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런 일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닌 배운 분들이 하는 일이었다. 내가 바라는 건 도로를 오거리로 만들어 달라는 것보다는, 내가 더 오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그것 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랏일 하시는 분들에게 일자리를 구걸해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침에 일을 나와 저녁까지 트럭을 운전하는 나에게는, 나랏님보다 야채가게 사장님이 더욱 존경스러운 사람이었다. 존경할만 일은, 나에게 딱 돈을 주는 것 그것뿐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존경했다. 물론 그런 존경은 한 사람에게만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은 아니었다. 


오거리든 십 거리든 길이 있어야만 내가 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남색 남방과 기지 바지를 입고, 흰색 프로스펙스 신발을 신고서 그 길 위를 정말 많이 오가곤 했다. 직접 오갈 수는 없었고, 나를 대신하여 내 트럭이 자신의 몸을 바닥에게 문들어대고 있었다. 내 차는 1.5톤 포터다. 1997년식 포터는, 앞전구 대가리가 둥글다. 앞에서 보면 개구리처럼 보이는 이 차는, 내가 한전에서 불하를 받은 것인데, 그때 이미 5년을 탔던 차니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그 개구리 차를 타고 다니면서 내 부인의 웃음을 되찾아 주곤 했다. 


오늘은 일거리가 없었다. 일거리는 많아도 걱정이었다. 나같이 못배우고 부모 잘 못 만난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지 트럭기사는 길거리에 넘쳐났다. 그래서 일을 해도 많은 돈을 벌지 못했고 그 중 대부분은 석유값으로 나갔다. 어떤 미친 나랏님이 일을 만들었는지, 석유값을 올렸다. 우리가 환경을 파괴한다고들 했다. 우리는 다만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고, 내 흰 색 프로스펙스가 직접 나르지 못하는 것을 내 차가 대신 해서 일을 한 것 뿐이었지만, 사람들이 우리가 눈에도 보이지도 않는 환경을 파괴한다고 했다. 파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게도 적을 수 있는 표현인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우리는 석유값을 더 내게 되었다. 


돈은 못벌었고, 애꿎은 내 남방에만 땀방울이 묻었다. 집을 싣고 나르다 보면 땀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모르고 있다가 가만 보면 땀이 어느새 흥건히 나 있는 것이다. 땀이 돈처럼, 나도 모르게 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돈은 또 땀처럼 빠르게 날라가버리는 것이었다. 땀을 닦으면서 부인을 생각했다. 왜 나에게 시집을 왔을까. 왜 좀 더 좋은 집에 시집을 가지 않고 배우지도 못하고 가진 것도 없는 나에게 시집을 왔을까. 내가 쫓아냈어야 했나. 더 좋은 남자 만나라고 내가 매몰차게 대했어야 했나.. 여러 생각을 했지만, 그 대답은 이미 예전에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신은 참 선한 눈을 가졌어요. 


내가 선한 눈을 가졌다고 했다. 그래서 거울을 볼 때면, 다른 곳은 보지 않고 나는 눈만 봤다. 내 눈이 선하게 생겼었나 하는 고민을 20년이 넘도록 하고 있다. 아직 답은 나오기는 커녕, 거뭇거뭇한 얼굴에 바둑알 두 개가 덩그러니 있는 듯한 눈으로 나는, 껌뻑껌뻑만 대고 있을 뿐이었다. 선한 눈이라니, 태어나서 처음 들은 이야기였지만, 그게 나와 결혼한 이유인지를 다시 묻지 않았다. 부인이 나에게 내가 들어보지 못한 말을 해줬다는 것만으로 나는 할 말을 잃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선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릴 없이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한 통 왔다. 평소 거래를 하고 있던 과일가게에서 급하게 다른 곳에 과일을 배달할 일이 있다고 했다. 알겠습니다 라고 말을 한 뒤, 내 포터 시동을 걸었고,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동참하러 다시 그 차를 움직였다.

과일가게가 있는 광장시장에 도착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왔습니다~'

'어~. 알았다. 그기 있으라. 내가 그리 갈꾸마. 급하다이~'

'예~'


구미 출신 사장은, 이상한 말투를 쓰고 있었다. 한국말이긴 하였으나 들을 때마다 북한이 연상되었다. 그가 북한말을 쓰던 표준어를 쓰던 그는 나에게 돈을 주었고 나는 그를 존경했다. 과일 가게 사장이 도착해서는, 다양한 과일이 담긴 박스 하나를, 방배동 45-3 번지로 좀 부탁한다고 하며, 나에게 5만원 짜리 하나를 쥐어 주었다. 적은 돈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일을 안하고 있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벌자는 생각에 돈을 받고 조용히 인사를 했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전화 할게이~' 

'네'


거리는 멀지 않았으나 기름값은 멀었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해야만 했다. 

영동대교를 건너오는데, 전화가 한통 왔다. 발신자 번호를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평소 거래를 하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는 다 저장해놓고 있었으니, 모르는 번호는 새로운 거래처이거나 아니면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 지금은 받지 말아야겠다 하고 우선 배달을 마치고 내가 전화를 다시 하리라 생각했다.


멀지 않은 거리였으므로, 과일을 고이고이 모셔다 드리고 차에 타기전 담배를 한대 피워물며 아까 그 번호를 전화를 했다. 통화연결음이 낮고 음울했다. 


"뚜.. 뚜.. 뚜.. 뚜.. 딸칵"

"여보세요,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아, 예, 실례지만 성함이..?"

"아, 저는 김영환이라고 합니다만.."

"아, 김영환씨, 네 여기는 동사무소입니다만, 전해 드릴 이야기가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네. 뭐죠?"

"얼마전에 실종신고 하나 하셨었죠?"

"네"

"그 실종자가 사망자로 처리되서 금방 경찰서에서 확인요청이 들어와서요."

"네?"

"아, 그 실종자가 지금 보라매 병원에 안치되어 있는데, 그 쪽에 가셔서 확인을 좀 해주셔야 될 것 같아요."

"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겁니까? 전 실종신고를 했었구요, 지금 일주일도 안지났다구요."

"네. 그럼 맞네요. 실종자 성함이 강희숙 씨 맞으시죠? 부인 되시구요?"

"네. 맞긴 한데요. 어디가서 죽을 사람이 아닌데요?"

"네. 죽을 사람인지 아닌지는 저희는 잘 모르구요, 일단 지금 보라매 병원 가셔서 사망 확인 좀 부탁드릴게요."


뭘까. 누가 내 부인을 사망자라고 부르는 것일까. 내 부인이 집에 오지 않은지 5일이 되던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부인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간다는 쪽지 하나 없이, 마치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잘 다려진 남색 남방과 까만 기지 바지는 옷걸이와 바지 걸이에 잘 걸려 있었다. 

3일째가 되어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매일 입고 다녔던 남방과 기지 바지는 내가 대충 세탁기에 넣어서 빨아서 다시 입고 있었다. 부인이 오지 않은 기간동안 계속 그 옷을 빨고 입고를 했다. 그러면 부인이 빨리 집으로 올 것이라는, 근거도 없는 기대를 했다. 안되겠다 싶어 동사무소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여기서도 실종 신고를 받아주니 일단 신청은 받아 놓는다고 했다. 그리고 찾게 되면 연락을 해준다고 했다. 그 연락이 오늘에야 온 것이다. 

보라매 병원에 갔다. 큰 병원 건물과는 다르게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좁았다. 많은 사람들이 슬픈 얼굴과 그보다 더 슬픈 검은 정장을 입고들 있었다. 나는 검은 정장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여기서 할 일은 아닌 듯 했다. 

접수하는 사람에게 가서 내 이름과 부인 이름을 말을 하니, 한참 장부를 뒤적거리다가 숫자 3개를 찾아서 가만히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죠?"

"아, 밑에 안치실이 있거든요. 거기 가시면 남자 한명 있을텐데 그분한테 그 번호 보여드리면 됩니다."


어디가나 무미건조한 말투의 공무원들이었다. 장례식의 분위기가 그들을 더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존경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꽃바구니를 배달시켰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그 번호가 적힌 쪽지를 들고, 안치실이라는 곳을 찾아 갔다. 평생 가본 적도 없는 안치실은 티비에서 보는 것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사뭇 밝다고 해야할까, 죽음과는 거리가 먼 곳처럼 느껴졌으나 정사각형의 은색 덮개가 씌워진 큰 냉장고를 보니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314"


안치실 남자가 번호를 읽었다. 평생 살아보지 못한 아파트의 호수의 느낌이 들었지만, 아파트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이곳은 사람은 죽는 곳이었다. 아니, 죽은 곳이었다. 남자가 탈칵 소리를 내며 정사각형의 덮개를 열었다. 그리고선 눈부시게 하얀 천으로 덮힌 무엇인가를 그 곳에서 죽 꺼내여 보였다. 티비에서나 봤지, 이런 장면을, 실제로 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곳에 누워있는 사람이 내 부인일지도 모른다는, 아니 일종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보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조차 몰랐다. 


남자가 커튼을 살짝 제쳐서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내 부인이었다. 얼굴이 평소보다 흰 느낌이 들었고 입술은 무엇을 발랐는지, 남청색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눈은 웃고 있었다. 눈꼬리의 끝에는 '소녀'라는 글자가 주렁주렁 메달려 있었으나, 그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어제 밤에 냉면집 뒷 골목에서 내 부인이 발견됐다고 했다. 냉면 가게에서 일을 했다고, 냉면집에서 일하는 다른 종업원들이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일을 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몇일 전부터 집에를 가지 않고 또 쉬지도 않고 계속 웃으면서 일을 하더라고 했다. 아줌마들이 왜 그렇게 쉬지도 않고 일을 하느냐, 왜 웃으면서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없었다고 했다. 다만 한 마디씩 던지는 말 속에, 내 부인이 무엇인가를 사고 싶은게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들 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것이 무엇이었다고 합디까?"

"저기 있네요. 검은 봉지 안에 든거."


큰 냉장고 옆에 검은 봉지가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그게 내 아내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들이었다. 봉투를 가져와 열어보니 아내의 평소 별 것 없던 소지품과 헐은 싸구려 옷들이 있엇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하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신발이었다. 내가 신고 다니던 흰색 프로스펙스 신발보다는 조금 더 비싸 보이는 새 프로스펙스 신발이었다. 사이즈는 정확히 내 사이즈를 표시하고 있었다. 내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박스에도 담기지 않은채 신발만 덩그러니, 검은 봉투안에 여러 물건들과 함께 들어 있었다. 


남자가 이야기를 이어서 했다. 밤낮없이 일을 하다가, 어느 한순간 자리를 잠시 비우겠다고 한 뒤, 어디를 다녀오더니 검은 봉지에 무엇인가를 하나 들고 왔다고들 했단다. 뭐냐고 물으면, 웃으면서 대답은 않았단다. 그게 아마 저 신발일 것이라고 아줌마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더라고. 

4일째 밤을 새고, 마지막 밤을 새고 난 뒤 갑자기 내 부인이 보이지 않기에 찾아보니, 냉면집 뒷 골목에 웃으면서 자고 있는 내 부인이 있었다고 했다. 흔들어 깨워보니 다시는 깨지 못했다고. 


장례 수속을 밟으라고 했다. 장례수속은 돈이 많이 들 것이라 생각했다.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하자, 내일까지는 결정을 해주셔야 한다고 남자가 무미건조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알겠다고, 내일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안치실을 나가려는데, 남자가 잊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고 나를 불러 세운다. 돌아가신 부인이 냉면을 안먹었다고 아줌마들이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왜 안 먹냐고 물어보면, 이 냉면 먹으면 내 시급에서 깎이니까 그러면 안된다, 고 이야기를 했단다. 결국 냉면을 한그릇도 안먹고 5일을 일했단다. 남자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표정은 없었다. 


내 오른손에서는 부인이 남긴 마지막 물건들이 담긴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가져오고 싶진 않았지만, 남자가 친절히도, 이럴때는 또 친절히도 봉지를 챙겨주었다. 그리고 왼손에는 흰색 프로스펙스 신발이 있다. 지금 신고 있는 프로스펙스는 흰색같아 보이지도 않았지만,  아마 마지막으로 내 아내의 손을 거쳤을 이 새 신발은 하얬다. 그 무엇보다도 하앴다. 


봉지에 다시 신발을 넣고, 아내가 일 했다는 냉면집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내 포터는 병원주차장에 세워둔채로 걸어서 갔다. 냉면집에 들어가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전까지 내 부인이 여기서 일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리에 앉으니, 젊은 아줌마가 나에게 와서 묻는다. 


"주문 하시겠어요?"

"네, 시원한 물냉면 하나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물냉면을 기다렸다. 계절은 봄이었고, 날씨는 더웠다. 아내가 일을 했을 당시에는 좀 추웠을지도 몰랐다. 어제는 추웠고, 엊그제도 추웠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지금 아내는 냉장고 안에서 추울 것이었다. 

냉면이 나왔다. 나는 아내가 남겨놓은 짐들 중, 일회용 팩 두장을 꺼냈다. 무엇인가를 담았을 것이라는 생각되는 두 장의 팩이 고이 접혀 있었다. 한장씩 꺼내어 후후 입김을 불어넣어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팩 중 하나에 냉면을 털어넣었다. 다시 나머지 팩 하나에 냉면이 든 팩을 넣었다. 공기를 뺐고, 주둥아리를 묶었다. 


나오면서 6천원 계산을 했고, 내 지갑에는 4만 4천원이 남았다. 


나는, 아내에게, 아내가 소녀같은 웃음을 지으며 남들에게 만들어준 그 냉면, 그 냉면의 맛을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한번 맛보게 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한 행동이었다. 

아마 지금 다른 사람들이 내 눈을 보았다면, 선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슬퍼보인다는 이야기를 해줄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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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친구와 함께 냉면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고기와 함게 나오는 냉면을 시켜, 고기는 먹지도 않고 냉면만그릇 째 봉지에 담아가던 한 남자를 보면서 상상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적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