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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어린이날 2013.5.5. 


어린이날이었다. 소파 방정환 선생께서 만드신 오늘을, 우리는 휴일로, 올해같은 경우에서는 일요일로 그 하루를 보냈다. 


티비에서는 어린이날이었다는 방송과 함께 각종 놀이공원이나 공원 등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이들의 영상을 내보냈다. 그들은 어린이다. 


조선시대의 '어린이'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어린이와는 그 용법이 달랐다. 그때의 어린이는 '어리석은 이'라는 뜻을 의미했다. 지식의 측면에서보면 지금의 어린이 역시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닌 듯하나, 그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조선시대 어린이는, 양반이었을까. 양반은 아닐 지언정, 신분 사회 내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높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어린이는,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을까. 신분사회는 1910년 일본의 강제 국권침탈로 인해 무너져 내렸고,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이후,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신분제 사회의 습성은 다 분쇄되었으니, 지금의 어린이는, 단지 '나이가 적은 사람'으로만 표현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공익근무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본인은 약 2년 1개월동안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주 희미하지만, 또 매우 멀리서 느껴지지만 '진리'일 수 있겠다는 느낌의 문장을 완성했다. 


"지금까지의 역사와 사회가 남성 위주의 사회였어서 이 정도의 해악과 모순과 전쟁들이 있었지, 만약 여자들이 우위에 있는 사회였다면 지금보다 더한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있었으리라" 


여권 향상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 문장만을 읽으면, 마치 내가 남성우월주의자라도 되는 듯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런 오해는 삼가하시라. 


내가 왜 저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해명 아닌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다. 


사회복지시설 중 아동양육시설, 즉 시쳇말로 '고아원'에서 근무를 한 본인은 수많은 여자 사회복지사들과 19세 미만의 아동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아동양육시설이라는 것의 법적 범위가 19세 미만이어서 저렇게 표현한 것이지, 본인이 근무할 당시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즉,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모두 어린이였다. 


그리고 그 아동양육시설의 한 부분인 사회복지사들. 사회복지사들은 단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여자 복지사들이었다. 처음 배치를 받았을 당시 남자 사회복지사가 있었지만 약 1년 뒤 그만두었으므로, 내가 마지막까지 있는 시점에는 여자 사회복지사들이 아이들을 통제했다. 


통제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으리라고 본다. 그들의 본 업무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사회에 나가기까지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도록 하는게 그들의 목적이었으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사회복지시설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보호받아야 하고, 또 잘 양육되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있어 그 그늘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이기에, 또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그들의 상처와 고통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기에 글을 적는 것, 딱 그것뿐이다.


약 50명 정도의 어린이와, 약 10명 정도의 사회복지사가 근무하는 아동양육시설에서 권력을 가진 이는, 어른이자 여자인 사회복지사였다. 내가 이 권력구조에서 앞선 명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봉사자들이 아이들과 놀아주러 온 날이었다. 아이들은 항상 사랑에 배고파했다. 충분한 양의 급식을 먹어도 부모의 사랑이 담기지 않은 밥을 먹었기에, 그들은 살찌지 않았다. 우유와 간식을 먹더라도 그들은 살찌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자신들과 놀아주러 온 봉사자들의 존재는 매우 반가운 것이었다. 한 여자아이가 남자 봉사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나는 보았고, 그 아이의 표정에서는, 아버지는 아니지만 자신이 평소 만나지 못하는 남자 어른에게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포근함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남자 봉사자 역시도 그 아이를 보면서 사랑이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봉사자들이 돌아갔다. 


한 사회복지사가 그 여자아이를 부른다. 여자아이의 나이는 6세였다. 


"너, 왜이렇게 남자를 밝히니?" 

"크면 아주 남자 좋다고 따라 다니겠네."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이렇게 말하면서 어린 여자아이를 때린다. 아이는 운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은 듯 했다. 


"다음부터는 안그럴게요."


그 여자아이가 다음부터 그랬는지 그러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수도 없이 봤으므로 일일이 그 아이가 다음에 남자 봉사자들이 왔을 때 어떻게 대하는지를 확인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가지는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다른 봉사자들이 왔을 때, 그 아이는 웃으면서 그들을 반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봉사자들은 돌아가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기 아이들은 웃음기가 없네요."


단체 생활이라는 것, 사회복지사의 수는 작고, 아이들의 숫자는 많다는 것, 그리고 사회복지사의 월급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등의 다양한 이유를 들어 우리는 그런 내부 구조에 대해서 암묵적으로 쉬쉬하고 있다. 그러는 중에 아이들의 상처는 점점 더 벌어져갔고, 그들의 권력관계는 더 강화되어 갔다. 


얼마전 뉴스를 보니, 아동양육시설에서 폭행 등 인권유린 사례가 있어 조사를 들어갔다고 한다. 

아이들을 때리고 굶기고 정말,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들을 한 시설이 있다고 한다. 그런 시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새롭지는 않았다. 


이런 내부 구조를 가진 아동양육시설에서 느낀 것이, 여자가 권력을 잡았을 때 더욱 사회는 갈등이 심해질 것이라는 명제였다고? 


그렇다.


혼자인 나, 즉 소수이면서 남자인 나는 그곳에서 정말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했다. 신분 상 공익근무요원이라는 한계도 있었겠지만, 여자 다수가 펼치는 화려한 인권침해에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을 나를 아이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했고, 심지어 하루 종일 건물 밖에서 청소를 하거나 세차를 하거나 건물 공사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여자이면서 어른인 존재는,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관계 없이 어린이였던 존재에게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펼쳤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만족해 했고 출근과 퇴근 시의 얼굴들은 달라져만 갔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도 변하는 것은 없었고, 그렇게 그들의 권력을 강해져갔다. 


이러한 사례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의 사례이니,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 라는 생각을 얼마전 뉴스를 통해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또 다른 깨달음은 '그곳만 그런 것이겠지' 라는 생각 역시 사라졌다는 데 있다 .


여자 사회복지사를 비난하려는 목적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행해야하는 사회적 권력을 수용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가치를 계발하고 있었다. 


나는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가 어린이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함을 역설코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회,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 내에서 어린이날이라는 영상에 나오는 웃는 얼굴의 어린이가 모든 어린이를 대변할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은 어린이날이었고, 분명 내가 근무했던 아동양육시설 어린이들은 평소와는 다른 음식을 먹었을 것이고, 또 어디론가 놀러갔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교회에서 무슨 행사를 했음에 틀림이 없다. 


이런 어린이들이, 우리가 우리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영상 속의 웃는 어린이가 앞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어떤 삶을 사는가를 통해서 우리 사회를 판단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번 글은, 희망으로 끝내지 않겠다 .


나는 어른으로서, 무한한 희망인 어린이를 논하는 데 있어, 어른의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치졸하지만 이 글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다하고자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가 말한 진리는, 여성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여성들에게 한번 생각해보기를 권하고자 하는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