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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좋아서

소리가 좋아서 2013.5.13.


최근에 글을 많이 쓰는 듯 하다. 특별한 주제의식이 있어서 글을 쓴다기 보다는, 단지 글을 쓰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내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글을 쓴다. 읽는이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이러한 공간에서 내가 글을 쓰는 것이, 부디 인터넷 공간을 오염시키는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단편소설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몇 개 적었고, 또 몇 가지 단편소설의 소재가 될 것들을 머리 속에 넣어 다니며 시간이 빌 떄마다 조금씩 조금씩 완성해 나가곤 하지만 아직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구성력도, 인물이나 배경에 대한 묘사도 정말이지 비루하기 짝이 없다. 내 소설을 읽는 사람들에게 미안함마저 느낄 정도이지만 그래도 "소설을 쓴다" 이 문장 자체만으로 주는 내 자존감의 상승은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소설을 쓰다 보니,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떤 때에는 소설보다 현실이 더욱 냉혹하거나 또는 아름답거나 또는 눈물겹기도 하여 내가 '소설'이라는 형태로서 다양한 사건사고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내가 느낀 바와 또 환경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듬뿍 토핑한 글이라도 있어서 내 생각과 감정이 정리된다고 느끼는 것은, 나에게도 글쟁이의 유전자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사건이든, 또 어떤 인물이든 그 사건과 사람에게는 각각의 역사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그 모든 역사와 이유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내가 수집할 수 있는 정보들을 토대로 새로운 환경을 구성해내고 그 환경 내에서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입장을 바꿔보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가령, 나는 28년 동안 남자로서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 내가 여자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 것인지, 또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을 수 있는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여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 단지 느낌이라도 받는 것이다. 내가 여자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관심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타인과의 나의 관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것이 아닌, 끊어질 수 없는 강철 체인으로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고, 또 그 강철 체인에는 따뜻함이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소설 뿐만이 아니다. 소설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장문의 글로 이뤄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여백이 없다는 단점 또한 있어서, 표현하고 싶은 깊은 내면의 공간을 제대로 담을 수는 없다. 독자는 소설가에게 설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설보다는 '시'의 형식이 더욱 많은 감정의 여백을 독자에게 제공할 수 있기는 하겠으나, 이는 나에게 더 어려운 일이다. 나를 한번이라도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은, 내가 상당히 말을 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고 말과 글이 다소 유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시를 적기에는, 내 입이 너무 방정맞고 내 손가락은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래도 시를 쓰는 행위 자체는 포기한 것이 아니어서 차마 공개는 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래도 끄적이기는 하는 나이다. 


가끔은 작곡도 한다. 작곡이라고 이름붙이는 것이 거창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곡을 만드는 것이니 작곡이고, 그 노래가락에 가사를 넣는 것이니 작사라고 하는 것이다. 딱 그 정도의 표현이 가장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작곡을 왜 하는지 나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다만 길을 걷다가도 잠을 청하다가도 사람을 만나다가도, 또는 음악을 듣고 있다가도 새로운 멜로디가 내 입에서 나오고 머리 속에서 흘러 나오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는 것으로 핑계를 대신하고자 한다. 음악은 소설로도 시로도 표현할 수 없는 내 마음의 멜로디를 담을 수 있다. 가끔은 어둡고, 또 가끔은 희망찬 노래를 만들기도 하는 나는, 그 노래들을 숨기지는 않고 내가 아는 지인들에게 그 노래들을 들려주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노래인지 모르겠고들 하지만, 그래도 몇몇은 노래가 좋다는 이야기를 하니, 나는 내 감정의 멜로디에 더 귀를 귀울이는 것으로 내 노래를 들어주는 이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노래를 만들고, 소설을 쓰고, 시를 쓰지만, 나는 또 다른 일도 한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사람들은 꿈 속에서 영화를 한 편씩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 꿈은 쉽게 다른 꿈으로 대체되어 버리거나 또는 현실의 꿈을 위해서 꿈 속의 꿈을 단지 꿈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꿈들 중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꿈이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는 그런 꿈을 꾸면, 시나리오로 옮긴다. 시나리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어 책을 한 권 샀지만, 아직 그 책의 첫장도 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책을 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왠지 내가 시나리오에 대한 전문성이 생긴 듯한 느낌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허풍 중의 허풍이라고 하겠다.  이런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일종의 전쟁영화다. 대규모의 전투신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어떤 비밀을 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갈등들과 또 숨기려는 사람들과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치밀한 두뇌싸움이 내가 쓰는 시나리오의 주요 갈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담고 싶은 생각은 "세상에 비밀은 없다."라는 문장이다. 세상에는 비밀은 없고 적당히 서로서로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는 많은 일들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이지 그것이 비밀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 이러한 생각들을 넣어보려고 노력중이다. 시나리오는 생각보다 많은 인물 구성과 배경설명, 그리고 등장인물간의 대화가 주요 요소가 되므로 내가 평소에 하지 않는 말투와 익숙하지 않은 배경들을 삽입해야 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도 매일매일 아직 촬영도 하지 않은, 심지어 시나리오도 내가 쓰고 있는 영화를 한 편씩 내 머리 속에서 돌려 본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적고 있는 시나리오의 첫 장면은, 으레 그렇듯이 먼 바다에서 시작하여, 어느 한 조선소로 그 장면이 옮겨간다. 


거의 대부분의 내가 하는 것들이 어떤 것을 창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 세상 어디에도 그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은 적은 없다. 성과를 낸다는 것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또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영감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므로 언젠가는 '성과'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내 이름으로 글이나 음악,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생각은 생각이지만, 아직 그 생각이 현실이 되지 않아 서글픈 생각이다. 


생각을 가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지금 생각하는 것들을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터이니 지금은 그런 생각들을 멈추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의견에 반대한다. 지금 생각하는 것들을 어떤 형태로도 글이나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사람은 그런 생각자체를 잊어버리게 된다. 고대 인류가 돌에 조각을 세긴 이후 몇 만년이 흘렀고, 파피루스나 종이의 발명 이후 인류가 기록을 남긴 지 채 몇 천년 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살았었다는 것에 대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글자 한글자 남기지 않고 죽이지 않기 위해 국가는 우리에게 이름을 등록할 것과 그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번호를 우리에게 부여했지만, 결국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이 직접 적어두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다른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내가 보기엔 매우 성스러운 일이며, 또 누구나에게 추천해야하는 인류의 의무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 쓰는 글들은, 역시도 어떤 주제의식을 가지고 쓰는 것은 아니다.

작년 4월에 바꾼 노트북의 자판 소리가 적이 듣기 좋아, 이렇게 무엇인가를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글을 쓰고 있으면 괜시리 기분이 좋다. 

소리가 좋아 귀가 좋고, 귀가 좋아 내 기분이 좋다.


글을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는 것처럼 쓰는 것이 내 스타일은 아니기도 하거니와, 또 이번 글처럼 주제의식을 좀처럼 찾기 힘든 글을 찾는 것은 학자의 역할이라기보다 백수의 역할이 어울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위, 이 소리가 좋은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를 상상하면서 읽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떤 주제를 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난 아직 주제를 잡기에는 글 솜씨가 부족하다.


소리가 좋아서 적은 글이니, 읽으면서 혈압을 높이시거나 하시지는 않으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