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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를 아는 것

원리를 아는 것 2013. 5. 13. 


바이올린을 어릴적 부터 켜 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바이올린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통해 울려퍼지는 음악이 좋다고 했다. 그는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은 아니었으나, 바이올린의 실력이 상당했다. 

그 친구가 우연한 기회에 기타를 손에 쥐게 되었다. '손에 쥐게 되었다' 라는 관용구 상의 의미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들고 와서 곁에 세워놓은 기타를 손에 쥐었다는 의미이다. 그 친구는 손에 기타를 쥐더니 이러저리 만져보기 시작했다.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아닌, 기타를 관찰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 기타 관찰이 끝난 친구는, 기타 현을 몇 줄 튕겨 보았다. 


띵 띵 띵


기타에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친구는 기타를 우리가 흔히 보는 방식으로 잡아 쥐었다. 즉 넥(neck)을 왼손으로 쥐었고, 바디(body)를 몸쪽으로 향하게 한 뒤 오른 손으로 기타를 퉁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스트로크(stroke)를 이용한 연주라기 보다는, 음을 하나 하나 잡으면서 한 곡을 천천히 연주했다. 


내가 물었다. 


너 혹시 이전에 기타 배운 적 있어?


친구가 대답했다. 


아니. 기타는 처음 쳐보는건데, 바이올린이랑 큰 차이 없네. 


그 친구는 자신이 바이올린을 켜는 방식으로 기타를 치고 있었다. 치고 있었다는 표현보다는, 기타의 음을 하나씩 잡아가며 나름의 연주를 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 친구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 바이올린을 켜는 방식과 원리를 제대로 알고 있으니, 생소한 기타를 사용해서도 음악을 연주할 수 있구나. 


내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공부를 하고 또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가르침을 얻는 것은, 우리가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제대로 알기 위한 것이 아닐까. 가령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이 기타를 칠 수 있고, 만약 그에게 비올라나 첼로를 가져다 주더라도 그는 그 방식이 정식의 연주법은 아니라 할지라도 나름의 원리를 통해 그 악기가 낼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처럼. 즉,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알게 된다면 살아가면서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그 원리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원리를 꿰뚫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옳게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확신이자 즐거움일 수 있고, 또 제대로 확립된 원리라면 다른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진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사람을 만나면, 다양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이야기들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또 그 내용에 대해서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다시 되묻거나 의견을 말하고는 한다. 그 사람의 지식 수준이나 상식 수준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는 대화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또 상당히 실증적으로 전혀 다른 분야의 예를 들어가며 다시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면 그들은 나름대로 세상의 원리를 깨우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사학을 전공한 남자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여자가 자신이 지금 프로그래밍하고 있는 소프트웨어가 다른 나라에서 이미 개발중에 있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있고, 그 소프트웨어는 상당한 금전적 보상을 자신에게 쥐어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남자에게 이야기한다. 사학을 전공한 남자는 컴퓨터공학에 대해서 제대로 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할 뿐더러 여자가 프로그램밍 하고 있는 소프트웨어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네가 하고 있는 프로그래밍이라는 게 다른 나라에서 개발중이라는 것을 알 정도였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네가 지금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러니 지금 네가 해야하는 일은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더 빠르고 더 나은 기능을 갖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렇게 남자가 이야기하자 여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너는 컴퓨터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지 않니.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이 무조건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성공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에서 더 나은 기능을 탑재할 수는 없단 말이야. 그러니 니가 하고 있는 말이 얼마나 현실적이지 않은 조언인지 알아줬으면 해. 남자가 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나는 컴퓨터에 관련된 일은 잘 몰라. 하지만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은, 컴퓨터라는 것은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볼 때 분명 기능적으로 나아져 왔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이라는 거야. 그리고 컴퓨터라는 것이 생기고 인터넷이 연결된 이후 우리는 세계 속에서 경쟁하고 있어. 그런 속에서 너보다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 프로그래머 역시도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야. 그러니까 기능적으로 나아질 수 없을 것이라는 너의 말은 지난 컴퓨터 발전의 역사를 도외시한 채 지금의 너의 상황만을 보고 있는 것일 뿐이고, 또 결국 너는 또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 다시 뛰어 들 수 밖에 없어. 내가 컴퓨터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너가 하고 있는 일이 결코 너만이 느끼고 있는 문제점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남자가 하는 이야기는 상당히 일반적인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되고 있고 그런 기술들을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으며, 여자가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이 지금의 포기로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 컴퓨터 분야 만의 문제는 아니다. 

수많은 자동차와 기계들, 그리고 심지어 옷까지도 이런 패턴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와 기계는 나날이 빨라지고 있고 또 사람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런 기술을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우리 옆의 친구뿐만 아니라 세계 어딘가에서 지금도 개발을 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은 더이상 새로운 자동차 엔진이나 기계 설비, 혹은 사람들의 건강에 좋은 섬유를 만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만들고 있는 것이기에 지금 자신이 포기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기술'이라는 것이 가지는 원리를 파악하고 있다면 어느 상황에서든, 어느 기계나 설비에서도 그 원리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예로 든 기술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람을 사귀는 법, 공부를 잘 하는 법, 정치를 신뢰하는 법, 좋은 여행지를 찾는 법, 맛좋은 음식을 만드는 법, 청소를 하는 법, 심지어 면도를 하거나 양말을 신는 법까지도 우리는 원리를 안다면 그와 유사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것들 뿐만 아니라 다른 패턴을 가진 것까지도 이해를 할 수 있고 적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간혹 자신이 찾은 원리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의 원리인 줄 알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찾은 원리만이 옳은 것이며 다른 원리는 그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원리라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빈약한 경험을 토대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그가 가진 경험 근거가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집에 빠진 것일 뿐이다. 몇몇 되지 않은 경험 근거나 몇 권 읽지 않은 책을 통해서 원리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없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이 최선의 경험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고, 자신이 읽어야 하는 책이나 지식의 양이 아직 많이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우리는 노력하는 것이다. 세상의 원리를 알기 위해. 


10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 보았을 때 기술 문명은 분명히 발달했지만, 사람은 여전히 밥을 먹고 배설을 하며 잠을 잔다. 그리고 누구나 태어나서 죽는 것은 변하지 않는 원리이다. 이런 원리들은 누구나 알고 있기에 다른 원리를 제시하는 사람은 무시되거나 혹은 신이 되기도 한다. 


이런 공통의 원리가 아닌 생활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고 지식이나 타인의 고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원리를 찾는 것은 당연하게도 우리의 몫이다. 산에 있는 나무가 다 같은 나무가 아니듯이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 역시 그렇다.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역시 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다른 삶 속에서 그것들을 관통하고 있는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역시 우리가 취해야 하는 '원리 추구의 태도'를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원리가 다른 사람의 원리와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겸허히 받아들이고 또 비판적으로 평가해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평가를 수평적으로 넓힐 수 있는 다양한 독서를 통해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 더욱 심층적으로 접근해보려는 자세 역시 필요하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원리를 아는 것' 자체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언급하고자 한다. 자신이 얻은 원리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것으로써 기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적용해보고 또 평가해보는 과정을 통해서 그것이 원리가 아닌 진리로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P.S 안타깝게도, 나는 기타를 칠 줄 알지만 바이올린을 켜지는 못한다. 아, 원리를 아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