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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3.28 착하던데요.
  2. 2013.11.08 개나 소나 강연한다고 하니.
2016. 3. 28. 18:10 내 생각

"착하던데요."

2008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당시 다시 대학에 갓 들어온 '24살' 신입생으로서, 대학생으로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해보자는 생각에 이런 저런 곳에서 주최하는 강연을 찾아 들었다.


고려대에 재학중이던 친구로부터 당시의 진보신당의 대표였던 심상정 국회의원의 강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222번 버스를 타고 고려대로 향했다. 정치적인 입장이 유사해서도, 심상정 의원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에 향했다.


강연 내용은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상가가 아닌, 정치인의 말이란 시처럼 함축적이고 소설처럼 역동적이다. 하지만 시나 소설이 아닌 탓에 마음에 남지는 않았다.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문학은, 정책이 아닐까.


여튼


강연은 마쳤고, 고대 정문 앞의 한 식당에서 뒷풀이를 가지게 되었다. 고려대 진보신당 모임이 주축이 된 모임인 만큼, 관련된 관심을 가진 학생, 강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내 옆자리에는 고려대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신다는 분이 앉았다. 가볍게 내 소개를 했다.


"건국대에서 오셨구나. 건국대 학생들은 참 착하던데요."


내 소개를 듣자, 이어 앞의 문장을 정말 환한 얼굴로- 그 어떤 악의도 찾을래야 찾을 수 없게- 반가워하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대학들에서도 수업을 진행하지만, 서울대, 연대, 고대 같이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학교들이랑 비교해보면 건국대 학생들은 참 착해요. 크게 분란을 일으키지도 않고, 또 시키는 거 잘하고."


그렇구나. 당시 건국대 학부에 재학중이었으므로, 마치 내가 건국대를 대표해서 온 듯한 인상을 받긴 했지만, 그렇구나 정도로 말을 아꼈다.


간단한 저녁과 술을 먹고, 다시 2222번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착하다는 건 어떤 뜻일까. 또 그 착한 대상이 학문의 탐구를 하러 들어온 대학생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건국대 학생들이라는, 개개인이 아니라 집단적 의미로서의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랬다. 고려대는 투박하고, 연세대는 세련되고 서울대는 이기적이다 라는 인식이 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착하다'라는 평가는, 놀라웠다.


서울에 있는 종합대학 중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고 또 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수많은 '멋진' 친구들이 사회에서 바라 보았을 때는 단지 착한 대학생들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억울하기도 했다.


다시 생각했다.


세계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는? 세계경제 10위권에 머물러 있으면서, 역사와 전통이 있지만 착한 나라. 미국과 중국과 일본 그리고 다소 멀지만 러시아 사이에서, 식민지가 되기도 했지만 광복 이후 미국과의 동맹 속에서 미국의 말을 잘 듣고 있는 착한 나라.


누군가 외국에서 만난 사람이 우리 나라 사람을 두고, '착한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구나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듯 하다. 마찬가지로, 건국대 학생에 대한 이미지 역시 그래야만 했다.


세계 속의 한국과 서울에 있는 대학들 사이에서의 건국대. 참 많이 닮았다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는 많은 편견을 갖고 산다. 그 편견이 잘못된 것인지 잘못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불편하다. 편견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지를 갖는다.


개인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집단에 대한, 국가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니라도 항변하는 것은, 피해의식이 드러난 것 뿐이라고 또 비난 받기 딱 좋은 태도기도 하다.


뭐랄까.


살면서 많은 편견들과 마주치고, 또 개인이 매몰된 조직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 수긍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이런 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겪으면서도 또 동시에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상이 누구든지, 그 대상이 원하지 않은 편견과 이미지는 그 사람의 가능성을 낮추어 버리기 때문이다.


건국대도 그렇고, '아줌마'도 그렇고, '아저씨'도 그렇다. 마치 한국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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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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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8. 06:39 카테고리 없음

개나 소나 강연한다고 하니. 2013.11.8. 


제목이 좀 강렬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제목을 달아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개보다는 소에 가까우니, 나 스스로에게 하는 평가라고도 할 수 있다. 


강연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학이나 교육과정에서 듣는 '강의'와는 좀 다르다. 강의는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일정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체계적 수업을 뜻한다면, 강연은 하루나 이틀 정도, 아니면 몇 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 한 가지 주제로 적은 수의 강사가 시간을 채우는 것을 강연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강의와 강연의 차이를 굳이 꼽고 싶지는 않지만, 그 중 한가지를 꼽자면 '깊이'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강의가 강연보다 더 깊은 수준을 가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강의는 긴 시간을 두고 하는 만큼 강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첫 강의와 마지막 강의까지 염두해 두어야 할 만큼의 체계를 가지는 반면, 강연은 짧은 시간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임팩트 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기에 강의와 비교했을 때 만큼의 깊이를 도모하지는 못한다. 


물론 이런 것들도, 우리나라에 한정되는 것이라고 해 두는 것이 옳다고 해야겠다. 지금은 '강연'이라는 것이 워낙 큰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고, 전문 강연자를 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이 강연의 큰 틀로 데려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미국의 TED가 그것이다. TED는 전문 분야에 오랜 기간 종사해 온 사람이나 자신 나름대로의 이벤트나 역사를 가진 사람을 초청해 약 20분 간 강연을 하도록 하는 무료 강연 사이트이다. 물론 강연을 보는 것은 무료이지만, 실제 강연장에 등록을 하여 듣는 강연을 꽤나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이런 TED가 우리나라에 도입되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어떠한 정보나 지식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강연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 강연시장이 확대되자 마자 왜곡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표적 왜곡 현상 중 하나는, 자기 자서전에나 쓰여져야 할 내용이나 마치 자신의 겪은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양, 강연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읽어나가는 것이다. 강연이라는 것이 짧은 시간에 임팩트를 주는 것이 장점이라고 한다면, 이런 '자서전류'의 강연자가 하는 이야기들이란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왔는지를 구구절절히 설명하는 것, 그것 뿐이다. 자신이 겪은 일과 그 강연을 듣는 사람이 겪을 일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강연자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나도 했는데, 당신은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당신이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에게 모든 문제가 있는 것 마냥 굴게 되고, 강연자가 지금 위치하고 있는 지위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때문에 더욱 노력하고자 믿게만 되는 것이다. 


두번째 왜곡 현상은, 강연 컨텐츠의 질적 하락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열리고 있는 강연들의 목록을 죽 뽑아보면 대부분의 강연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대상의 '꿈' 강연이나, 정치인의 '정치 인생' 강연이나,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육아' 강연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확한 자료를 찾기에는 다소 시간상 부족함이 있으므로, 수치를 대기를 어려우나 본인이 파악한 바로는 저 세 가지가 축을 이룬다고 본다. 그 중에서도, 강연 컨텐츠의 질적 하락을 가장 선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꿈' 강연이다. 여기서 말하는 꿈이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 꾸는 꿈은 물론 아니다. 아마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에 대한 강연을 우리 사회에서 한다고 하면, 그의 유명세를 제외하고 그 강연에 몇 명의 사람들이 올 것인지 궁금해진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꿈을 강연한다는 사람들의 강연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이런 내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가지는 것이다.'

'꿈을 가진다면 여러분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꿈을 실현시기키 위해서는 당신은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꿈을 이룬 사람들은 도전을 했다. 당신도 도전을 해야 한다.'  등등


이런 이야기들을 그들이 말하는 '꿈을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에게 하고 있다. 일종의 '자서전류'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저런 꿈을 이루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강연을 통해서 자서전의 한자락을 채워보고자 하는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스타강사'가 되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담보로 남들이 꿈을 갖도록 하는데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다.  


꿈을 갖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꿈을 가지는 사람과 꿈을 가지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은, 삶의 목표를 이루는데 있어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연'의 한 컨텐츠로서 누군가에게 꿈을 가지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꿈을 가지지 못한 것은 그사람의 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모를 때 그 사람은 꿈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꿈을 가지라는 강연을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직업의 특성과 그 직업은 선택한 계기 등을 알려주는 강연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이나 대학생들은 꿈을 찾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우선 '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만을 알려주고 나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아마도, 정확한 설문조사를 해보지는 못했지만 '꿈'에 대한 강연을 듣고 난 뒤, 그 강연이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를 조사해본다면, 단지 그 시간 동안 '꿈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정도의 반응만 나와도 아마도 그 강연은 좋은 강연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이런 비유를 하곤 한다. 말이 목이 마르다고 해서 강가에 데려가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말이 물을 마실 것인지 말 것인지는 말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비유 말이다. 하지만 본인은 이 비유에, 조금 다른 의미를 첨부하고 싶다. 말이 목이 마른지 마르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것 역시 사람이다. 사람은 말이 목이 마르면 스스로 강을 가든 아니면 주인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든 그러한 변화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지, '물을 마시는 것은 중요하다' 며 강가에 끌고 가 놓고선 '왜 물을 마시지 않느냐' 라고 하는 것은 다소 억지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꿈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는 따위의 강연을 할 것이 아니라 '꿈을 가지고 싶을 때, 어떤 꿈을 가지는 것에서 궁금한 사항에 생기면 물어보라' 라는 정도의 호기심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강연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조금 다른 내용이지만, 말이 물이 아닌 사이다나 콜라, 혹은 주스를 먹고 싶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의 꿈이 다양한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무리가 조금 감정적이 될 듯해 다음으로 미뤄야 겠다. 


결론이랄까, 간단히 결론만 적도록 하면. 


강연이라는 것을 하는데 있어, 강연자에게는 생각보다 큰 책임이 따른다. 학교 수업이나 대학 강의의 경우에 있어서는 일상성에 포획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강연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원해서 듣는 것이거나, 자신의 상사나 선생님이 학생들이나 직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이 있는 강연을 신청한다. 이런 강연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꿈을 찾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잘못된 도전을 생각하기도 한다. 


마냥 꿈을 좇아 가라는 강연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책임감 있는 강연 시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적었다. 


그러니 개나 소나 강연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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