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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6.03.28 착하던데요.
  2. 2015.04.01 현우의500자_120
  3. 2014.12.15 2012년 1월 13일의 '오늘의 일'
  4. 2014.11.04 일감호의 강아지
  5. 2014.09.25 대학과 성(性)
2016. 3. 28. 18:10 내 생각

"착하던데요."

2008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당시 다시 대학에 갓 들어온 '24살' 신입생으로서, 대학생으로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해보자는 생각에 이런 저런 곳에서 주최하는 강연을 찾아 들었다.


고려대에 재학중이던 친구로부터 당시의 진보신당의 대표였던 심상정 국회의원의 강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222번 버스를 타고 고려대로 향했다. 정치적인 입장이 유사해서도, 심상정 의원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에 향했다.


강연 내용은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상가가 아닌, 정치인의 말이란 시처럼 함축적이고 소설처럼 역동적이다. 하지만 시나 소설이 아닌 탓에 마음에 남지는 않았다.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문학은, 정책이 아닐까.


여튼


강연은 마쳤고, 고대 정문 앞의 한 식당에서 뒷풀이를 가지게 되었다. 고려대 진보신당 모임이 주축이 된 모임인 만큼, 관련된 관심을 가진 학생, 강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내 옆자리에는 고려대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신다는 분이 앉았다. 가볍게 내 소개를 했다.


"건국대에서 오셨구나. 건국대 학생들은 참 착하던데요."


내 소개를 듣자, 이어 앞의 문장을 정말 환한 얼굴로- 그 어떤 악의도 찾을래야 찾을 수 없게- 반가워하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대학들에서도 수업을 진행하지만, 서울대, 연대, 고대 같이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학교들이랑 비교해보면 건국대 학생들은 참 착해요. 크게 분란을 일으키지도 않고, 또 시키는 거 잘하고."


그렇구나. 당시 건국대 학부에 재학중이었으므로, 마치 내가 건국대를 대표해서 온 듯한 인상을 받긴 했지만, 그렇구나 정도로 말을 아꼈다.


간단한 저녁과 술을 먹고, 다시 2222번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착하다는 건 어떤 뜻일까. 또 그 착한 대상이 학문의 탐구를 하러 들어온 대학생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건국대 학생들이라는, 개개인이 아니라 집단적 의미로서의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랬다. 고려대는 투박하고, 연세대는 세련되고 서울대는 이기적이다 라는 인식이 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착하다'라는 평가는, 놀라웠다.


서울에 있는 종합대학 중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고 또 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수많은 '멋진' 친구들이 사회에서 바라 보았을 때는 단지 착한 대학생들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억울하기도 했다.


다시 생각했다.


세계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는? 세계경제 10위권에 머물러 있으면서, 역사와 전통이 있지만 착한 나라. 미국과 중국과 일본 그리고 다소 멀지만 러시아 사이에서, 식민지가 되기도 했지만 광복 이후 미국과의 동맹 속에서 미국의 말을 잘 듣고 있는 착한 나라.


누군가 외국에서 만난 사람이 우리 나라 사람을 두고, '착한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구나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듯 하다. 마찬가지로, 건국대 학생에 대한 이미지 역시 그래야만 했다.


세계 속의 한국과 서울에 있는 대학들 사이에서의 건국대. 참 많이 닮았다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는 많은 편견을 갖고 산다. 그 편견이 잘못된 것인지 잘못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불편하다. 편견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지를 갖는다.


개인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집단에 대한, 국가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니라도 항변하는 것은, 피해의식이 드러난 것 뿐이라고 또 비난 받기 딱 좋은 태도기도 하다.


뭐랄까.


살면서 많은 편견들과 마주치고, 또 개인이 매몰된 조직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 수긍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이런 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겪으면서도 또 동시에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상이 누구든지, 그 대상이 원하지 않은 편견과 이미지는 그 사람의 가능성을 낮추어 버리기 때문이다.


건국대도 그렇고, '아줌마'도 그렇고, '아저씨'도 그렇다. 마치 한국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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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1. 00:28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120 
모교에 있는 영화관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앉을 수 있었다. 몇 역을 지난 뒤 내 건너편에 한 여대생이 앉았다. 그를 여대생이라 특정지을 수 있는 이유는 대학과 학과가 적힌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국대 영화과 학생이었다. 최근 영화과와 영상과의 학과 통폐합을 막고자 많은 학생들이 단식을 비롯해 농성을 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던 참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을까 고민하다 수첩에 꺼내 이렇게 적었다. ‪#‎SAVEKUFILM‬ 끝까지 힘내세요! 영화과-영상과 통폐합에 반대합니다! 건대 정외 08 졸업 권현우. 성수역에서 그 여학생이 내리려는 줄 알고 성급히 뛰어가 쪽지를 찢어 건네주었다. 처음엔 놀라던 여학생이 쪽지 내용을 보자 살짝 웃음을 짓는다. 둘 모두 건대입구에서 내렸다. 내리기 전 나는 그 여학생이 우는 것을 보았다. 착각일 수 있으나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닦으며 흐느끼는 어깨를 보았다. 그간 힘들었나 보다. 힘내세요,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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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5. 17:45 일상다반사

오늘의 일. 2012.1.13.

 

오늘 한 가지 일이 있어 이렇게 글 남긴다.

 

졸업강연과 PSAT 스터디 덕분에 늦은 저녁을 먹었다. 9시가 갓 넘었을까.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과 선배를 만났다. 과 선배라고는 해도 나이는 나보다 어린, 좋은 동생이다. 저녁 식사 후에는 후식을 드셔야 한다며 나에게 따뜻한 베지밀을 하나 사주기에, 언 손을 녹이면서 같이 학교를 산책했다.

 

기숙사로 향하는 길에 동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대화는 즐거웠다. 후배가 다시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게 미안하기도 했고, 나도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했기에 다시 학교의 호수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던 참이었다.

 

달이 낮게 떠 있었다.

 

하얀 달이라기 보다는, 붉은 달이었고 후배는 저 달에 묻혀 있는 천체물리학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학교 호수를 보았다. 겨울이라 얼어있는 호수에는 오늘 오후에 잠시 내렸던 하얀 눈 탓인지 하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얼어 있는 호수에 한 평 남짓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보았고, 그 구멍을 멀리하는 곳에서 오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그 얼음 구멍을 자세히 살펴보니 무엇인가 허우적 대고 있었다. 밤이어서 그런지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것이 ''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개가 자신의 앞발로 그 얼음 위를 나와보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개는 그 얼음 위로 올라 서고자 하였지만, 그 얼음들은 계속해서 깨졌다. 개의 발길질에는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었다.

 

동생과 그 개를 보면서, 이건 우리가 지나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들어가기에는 호수의 가장자리에서 꽤 먼 곳에 그 구멍이 나 있었고 개는 계속 해서 그 구멍의 넓이를 넓혀가고 있었다.

 

생각 끝에 119에 신고하는 방안이 떠올랐고, 지체 없이 동생이 전화를 열어 119에 전화를 했다. 유기동물 관련 업무는 9시에 종료되었다고 하였지만, 일단 오시라는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119의 출동을 기다렸다.

 

물 속의 개는 점점 힘이 빠지는 듯 해보였다.

 

얼음을 깨는 발길질이 힘을 잃는 것이 멀리서 보아도 충분히 보였다.

 

'자식아, 포기하면 안 된다'

 

나도 모르게 혼자 읊조리고 있었다.

 

개는 더이상 얼음 위로 올라가려는 노력을 포기한 듯, 구멍 가운데에서 자기의 몸을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안 된다. 기다리라'

 

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인지, 다시 얼음 위로 올라가려는 노력을 잠시 했던 개가 갑자기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얼음 밑으로 내려갔나?'

 

얼음 밑으로 내려가서 물 밖으로 나오려고 하나 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개가 방향을 잡은 곳이 더 얼음이 많이 얼어 있는 곳을 향했다면 다시는 물로 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그러고 길어야 2분이 흘렀을까.

 

다행히 광진구 소방서가 학교에서 가까웠던 덕에 소방대원 분들이 화려한 조명이 달린 차를 타고 학교 호수 쪽으로 오시는 것이 들어왔다.

 

하지만 개는 보이지 않았다.

 

소방대원분들이 먼 곳까지 비추는 후레쉬를 가지고 호수 위를 비췄지만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살아나고자 노력했던 흔적들만 남겨둔 채, 개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방대원들 중 한 명이 이야기하셨다.

 

'우리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어요. 미안합니다.'

 

개는 자신의 체온을 물에 다 빼았겻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생각한 대로 얼음이 녹은 곳으로 나오고자 얼름 밑으로 들어갔던 것일까.

 

소방대원분들은 돌아갔다.

 

소방대원분들의 등장 탓에 우리가 서 있었던 호수 주변에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그들 역시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호수의 덩그렁한 구멍만을 보고, 약간의 실망감을 느낀 표정으로 돌아갔다.

 

 

동생과 나는 한 동안 그 곳에 서 있었다. 날씨는 추웠다.

 

사람 두 명은 따뜻한 옷을 입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추웟다.

 

멀리서 보았지만 그 개의 목에는 분명히 개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주인이 있는 개라는 생각이 들었고 주인이 저 개를 얼마나 찾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주인보다 개를 더 생각했다.

 

얼마나 추울까. 조금만 기다려주지. 얼마나 추울까. 조금만 더 발버둥 쳐주지.

 

우리가 학교 호수를 돌지 않았더라면, 바로 그 개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발길질 하던 그 곳으로 갔더라면, 내가 저녁을 좀 빨리 먹었더라면, 동생이랑 달 이야기를 하지 않고 먼저 호수를 보았더라면, 조금의 지체 없이 바로 119를 불렀더라면, 아니면 내가 개를 위해서 뛰어들었더라면...

 

어제의 호수와 오늘의 호수는 변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와 동생, 그리고 소방대원분들 말고는 학교의 호수에 개가 한 마리 죽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일감호라고 불리는 호수를 지날 때마다 그 개를 생각할 것이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목숨을 건 발길질은 저 호수의 얼음이 녹고 다시 봄이 오면 잊혀지겠지만, 나는 저 호수의 그 개는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개가 생각난다. 이 추운 겨울에 저 물 속에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지 모르는 이름 없는, 흰 개를 위해서 이 글을 적는다. 내일 개를 위해서 빵이라도 하나 호수에 던져줘야겠다.

 

개가 먹지 못하면, 호수에 살고 있는 오리들이 그것을 먹고 개의 동무라도 해주겠지.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도 한 번쯤 건국대에 오시거든, 일감호에 들려 저 곳에서 개 한마리가 살고자 발버둥쳤노라 는 사실을 한 번은 생각해주시면 진심으로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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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4. 16:08 카테고리 없음

일감호의 강아지 2014.11.4.


2012년 1월 13일 싸이월드에 적은 글이다. 우연히 들어갔다가 다시 읽게 됐다. 지금 보니 비문도 많고 오타도 많다. 하지만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 
----
오늘의 일.


오늘의 일은 공부했다. 내일의 일도 공부할 것 같다. 


PSAT 점수가 잘 나오지 않는다. 잘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머리가 잘 안돌아가는 게 느껴진다.


시간 쪼개서 내가 친구랑 공동으로 창립했던 동아리에서 졸업강연을 했다. 졸업강연 주제로 '박수 칠 때 떠나라' 를 잡았지만, 나는 나에게 박수를 쳤다.


오늘 한 가지 일이 있어 이렇게 글 남긴다.


졸업강연과 PSAT 스터디 덕분에 늦은 저녁을 먹었다. 9시가 갓 넘었을까.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과 선배를 만났다. 과 선배라고는 해도 나이는 나보다 어린, 좋은 동생이다. 저녁 식사 후에는 후식을 드셔야 한다며 나에게 따뜻한 베지밀을 하나 사주기에, 언 손을 녹이면서 같이 학교를 산책했다.


기숙사로 향하는 길에 동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대화는 즐거웠다. 후배가 다시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게 미안하기도 했고, 나도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했기에 다시 학교의 호수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던 참이었다.


달이 낮게 떠 있었다.


하얀 달이라기 보다는, 붉은 달이었고 후배는 저 달에 묻혀 있는 천체물리학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학교 호수를 보았다. 겨울이라 얼어있는 호수에는 오늘 오후에 잠시 내렸던 하얀 눈 탓인지 하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얼어 있는 호수에 한 평 남짓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보았고, 그 구멍을 멀리하는 곳에서 오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그 얼음 구멍을 자세히 살펴보니 무엇인가 허우적 대고 있었다. 밤이어서 그런지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것이 '개'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개가 자신의 앞발로 그 얼음 위를 나와보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개는 그 얼음 위로 올라 서고자 하였지만, 그 얼음들은 계속해서 깨졌다. 개의 발길질에는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었다.


동생과 그 개를 보면서, 이건 우리가 지나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들어가기에는 호수의 가장자리에서 꽤 먼 곳에 그 구멍이 나 있었고 개는 계속 해서 그 구멍의 넓이를 넓혀가고 있었다.


생각 끝에 119에 신고하는 방안이 떠올랐고, 지체 없이 동생이 전화를 열어 119에 전화를 했다. 유기동물 관련 업무는 9시에 종료되었다고 하였지만, 일단 오시라는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119의 출동을 기다렸다.


물 속의 개는 점점 힘이 빠지는 듯 해보였다.


얼음을 깨는 발길질이 힘을 잃는 것이 멀리서 보아도 충분히 보였다.


'자식아, 포기하면 안 된다'


나도 모르게 혼자 읊조리고 있었다.


개는 더이상 얼음 위로 올라가려는 노력을 포기한 듯, 구멍 가운데에서 자기의 몸을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안 된다. 기다리라'


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인지, 다시 얼음 위로 올라가려는 노력을 잠시 했던 개가 갑자기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얼음 밑으로 내려갔나?'


얼음 밑으로 내려가서 물 밖으로 나오려고 하나 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개가 방향을 잡은 곳이 더 얼음이 많이 얼어 있는 곳을 향했다면 다시는 물로 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그러고 길어야 2분이 흘렀을까.


다행히 광진구 소방서가 학교에서 가까웠던 덕에 소방대원 분들이 화려한 조명이 달린 차를 타고 학교 호수 쪽으로 오시는 것이 들어왔다.


하지만 개는 보이지 않았다.


소방대원분들이 먼 곳까지 비추는 후레쉬를 가지고 호수 위를 비췄지만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살아나고자 노력했던 흔적들만 남겨둔 채, 개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방대원들 중 한 명이 이야기하셨다.


'우리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어요. 미안합니다.'


개는 자신의 체온을 물에 다 빼았겻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생각한 대로 얼음이 녹은 곳으로 나오고자 얼름 밑으로 들어갔던 것일까.


소방대원분들은 돌아갔다.


소방대원분들의 등장 탓에 우리가 서 있었던 호수 주변에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그들 역시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호수의 덩그렁한 구멍만을 보고, 약간의 실망감을 느낀 표정으로 돌아갔다.


동생과 나는 한 동안 그 곳에 서 있었다. 날씨는 추웠다.


사람 두 명은 따뜻한 옷을 입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추웟다.


멀리서 보았지만 그 개의 목에는 분명히 개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주인이 있는 개라는 생각이 들었고 주인이 저 개를 얼마나 찾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주인보다 개를 더 생각했다.


얼마나 추울까. 조금만 기다려주지. 얼마나 추울까. 조금만 더 발버둥 쳐주지.


우리가 학교 호수를 돌지 않았더라면, 바로 그 개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발길질 하던 그 곳으로 갔더라면, 내가 저녁을 좀 빨리 먹었더라면, 동생이랑 달 이야기를 하지 않고 먼저 호수를 보았더라면, 조금의 지체 없이 바로 119를 불렀더라면, 아니면 내가 개를 위해서 뛰어들었더라면...


어제의 호수와 오늘의 호수는 변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와 동생, 그리고 소방대원분들 말고는 학교의 호수에 개가 한 마리 죽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일감호라고 불리는 호수를 지날 때마다 그 개를 생각할 것이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목숨을 건 발길질은 저 호수의 얼음이 녹고 다시 봄이 오면 잊혀지겠지만, 나는 저 호수의 그 개는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개가 생각난다. 이 추운 겨울에 저 물 속에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지 모르는 이름 없는, 흰 개를 위해서 이 글을 적는다. 내일 개를 위해서 빵이라도 하나 호수에 던져줘야겠다.


개가 먹지 못하면, 호수에 살고 있는 오리들이 그것을 먹고 개의 동무라도 해주겠지.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도 한 번쯤 건국대에 오시거든, 일감호에 들려 저 곳에서 개 한마리가 살고자 발버둥쳤노라 는 사실을 한 번은 생각해주시면 진심으로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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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25. 05:32 카테고리 없음

2014.09.25.


2004년 처음 대학을 들어왔을 때의 일이다. 
서울에 종종 올라올 일이 있었지만 내게 서울이란 '사람 많고, 얼굴 표정 어둡고, 무언가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45도 이상 들어야 하는 높은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은, 차마 내가 너무 촌스럽게 느껴질까봐 적지 않도록 하겠다. (이미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잠을 잘 곳이 생기고(첫 보금자리는 2인실 기숙사였다.) 내가 소속된 곳이 있다는 사실은 내게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서울사람이 되어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표준어를 구사해보려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기에 지금도 여전히 노력중이다. 
서울에 내 24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다시 서울을 보게 됐다. 사실 '서울'을 보게 됐다기 보다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는 표현이 합당할 듯 하다. 당시 처음으로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을 '압축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많이 만나게 된 곳은 다름 아닌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줄여서 오티(OT)라고 부르기도 하고, 최근에는 한글 사용 분위기에 따라 '새내기 새로배움터'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곳 말이다. 짧게는 1박2일부터 길게는 3박4일까지 진행하는 학교가 있다고 하니, 대학은 짧게 배울 수도 또는 길게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아마 각 대학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 
고향에서 올라와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기 전, 오티는 말 그대로 서울 대학 생활에 대한 오티이자 서울에 대한 오티였다. 오티를 가보니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많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의 특성인가 싶을 정도로 전국 각지 출신의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있다는 것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공립 남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에게 있어서 수많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곧 다니게 될' 여학우들의 존재는 신선의 수준을 넘어 황홀의 수준에 이르기에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의 시점에서 약 10년 전의 여학우들의 사진을 보면, 어딘가 촌스럽기도 하고 또 지금까지 알고 지내던 동기들과 선배들의 사뭇 다른 모습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때 당시의 '첨단' 유행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에 나름 새롭다.

내가 황홀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던 여학우들에 대한 생각이 변하게 된 것. 이것이 이 글의 주제임과 동시에 내가 서울에 대학을 올라오고 난 뒤 '아, 이것이 다른 것이구나'하고 느꼈던 것이다. 생각이 변하게 된 것이라고 하기에는 오히려 내가 무지했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인정하고 넘어가자. 내가 무지했다. 내가 무지했던 부분은 다름 아닌, 내가 너무 쉽게 여성의 상품화와 여성에 대한 희화화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다시 오티로 돌아가자. 오티에 가기 전, 학교에 옹기종기 선배동기들이 모였다. 가볍게 자기 소개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니 당시 학생회장 선배가 흰 종이를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무슨 종이인가 해서 보니, 양성 평등 교육 및 성불평등에 관한 문제점 그리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 등이 적혀 있는 종이였다. 그것을 단 한줄도 빼놓지 않고 읽어내려가는 학생회장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거부감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사례를 들어가며 읽어나가면서 가끔 유머 코드를 섞긴 했지만 그것이 흰 종이 위에 적혀 있던 내용의 전체적인 맥락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때 학생회장 선배가 들었던 예시 중 대표적인 것들은 아래와 같다.

"예전에 어떤 선배가 오티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타입의 신입생이 있길래 친해지고 싶어 옆에 앉았어. 그리고 술을 같이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무슨 기분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여학생에게 건배와 함께 술을 서로 따라 주자고 이야기를 했다네. 그때 그 선배는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으나 다음날 총여학생회에서 그 선배를 찾아와 오티가 끝나는 대로 학교로 돌아가 사과 대자보를 붙일 것을 요구했대. 사과 대자보에는 선배가 했던 행위들, 예를 들면 술을 같이 마시자고 한 행위, 억지로 건배를 시킨 행위, 술을 따르도록 한 행위들에 대한 반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네. 그 선배는 총여학생회 소속의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대자보를 붙였어."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장기자랑 하면 여장들 많이 하지? 우리는 하면 안돼. 여장은 여성을 희화화하는 것이라 알려져 있어. 여장이 재밌는 이유는 남자가 여자처럼 분장을 해서 재밌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가진 특성을 부각시키고 또 그것을 통해 통쾌해 하는 것 혹은 여성에 대한 성적 상품화 등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시킨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 학교는 여장을 절대로 하지 않아. 만약 누군가 이따가 밤에 있을 장기자랑에서 여장을 하게 되면, 아마 장기자랑은 중단될 것이고 그 여장을 한 학생은 리포트보다 대자보 쓰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할 거야."

이런 이야기를 버스 안에서 가만히 듣다보니 "아, 서울에 있는 대학은 여성에 대한 존중을 높이 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되었다. (여담이지만, 여성을 여성이라 부르는 것이 오히려 여권신장에는 좋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여자/남자는 단지 성별에 대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반면, 여성/남성이라 함은 여자가 가지고 있는 본성, 남자가 가지고 있는 본성을 부각시키는 표현으로 여자에게는 남자에게 복종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유교주의적 사상이 깊게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많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리고 마치 '여자'라 부르면 비하하는 듯 하고, '여성'이라 부르면 높여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풍토 또한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아, 또 여담이 길었다. 본론으로 돌아와야지.

오티를 가는 버스 안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오티 장소에 가보니, 여학우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 선배가 했던 다른 이야기 중에, 내가 속해있었던 사회과학부 소속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각 단과대학 오티에 참석해서 여성 비하 혹은 희화화를 하지는 않는지 또는 여자 휴게실을 따로 만들어 두지 않은 것을 적발하거나 혼숙을 예방하기 위한 감시의 목적으로 총여학생회 소속의 학생들이 몰래 돌아다닌다는 사실도 있었기에 여학우들이 어떨때는 무섭게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2박 3일 동안의 오티 기간 중 '성'과 관련된 문제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즐거운 무박 3일의 오티를 보내고 다시 서울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총여학생회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들은 왕왕 있었다. 실제로 희롱이나 모욕에 대한 대자보를 읽어보기도 했고, 그것이 미치는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용어 하나에서도 그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는데, 총여학생회를 부를 때 줄여서 '여총'라고 부르는 것은 금지되었다. '여자총학생회'가 아니라 '총여학생회'가 정식 명칭인 만큼 줄여 부르려면 '총여'가 되어야 했고, '여총'이라 부르는 것은 남녀가 모두 포함된 '총학생회'와는 다른 별도의 조직같아 보일 뿐만 아니라, '여자'를 강조하는 듯한 뉘앙스를 품기에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티를 다녀온 이후 한 학기 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입대를 했고, 다시 서울에서 약 3년 간 멀어져 있었다.(당시 군입대는 실패ㅋ) 오티와 약 4개월 간의 신입생 생활 동안 받았던 임팩트 때문이었을까, 당시에는 꽤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다. 총여학생회의 감시때문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지평을 넓혔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여성인권이라는 미개척지를 자의는 아니었지만 개척하게 되었고 또 그것에 대한 공감을 충분하게 하였기에 나름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향에 내려오고 고향 근처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심찮게 당시 싸이월드 등과 같은 사이트에 올라오는 여장 사진들과 여자를 두고 싸움을 하거나 선택의 강요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었고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나는, 기껏해야 '여자 편 드는 이상한 놈'으로 밖에 인식되지 못했다. 나는 여기서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지금도 일부 대학에서 여장을 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점, 그리고 그 문제의식을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거나 전통으로 여기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고 그런 대학들이 공교롭게도 서울이 아닌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빈도수가 높다는 것을 인식시켜주고 싶은 생각 뿐이다.(여담이지만, 아직도 지역 일부 체육대학에서 학우들을 때리는 것을 전통이니, 역사니 하는 대학이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내가 지방에서 대학을 다녀보지 못했으니 그 지역의 문화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여성을 희화화하는 것, 상품화 하는 것이 일부 지역의 전통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내가 가진 문제의식이 때로는 나 스스로를 불편하게 했지만 이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고 하는 것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은 지금이 적절한 듯 하다. '전통'이니 '재미'니 하는 구태의연한 표현들을 포함해서 티비에서도 여장은 다시 웃음을 유발하는 모습으로 다가왔고 처음에는 불편했던 여러 장면들에 나 역시도 익숙해졌다는 것. 이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긴 글을 왜 적느냐.

최근 서울의 모 여대 총학생회가 축제기간 중 학생들에게 요구한 '의상'과 관련한 부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 여대 총학생회는 학생들에게 심한 노출을 하거나 교복 등 흔히들 '아청아청'이라는 의성어로 익히 알려진 '아청법' 위반을 연상케 하는 복장들에 대한 자기 규제를 요구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 마음 속에서도 양시론이 구축되어 있다. 다만 남자로서의 입장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로서의 입장과 여성인권의 향상이 필요하다는 입장, 이 두가지 입장에서 양시론이다. 자유에 대한 보장은 권위로 펼칠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 '자유'에 대한 한계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는 억압일 수 있기에 우선 소속 학우들과의 논의가 필요했던 부분이 분명 있었다고 본다. 그와 동시에 축제라는 매개를 통해서 대학 내부의 구성원과 대학을 둘러싼 사회의 구성원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있어 여성에 대한 상품화가 만연해 있는 사회의 구조를 그대로 반영해야 했었나 하는데 총학생회의 문제의식이 있다고 보아 찬성표를 던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남녀공학 대학이라 하더라도 총학생회에서 여성의 상품화와 희화화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같은 성명을 낸다 하더라도 찬성할 것이다.

2004년에 들어갔던 대학과는 다른 대학에 2008년에 입학하기도 했던 나는, 2008년 입학 대학이 '축제 때 가장 물 좋은 대학'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 역시도 간과하지 못한다. '컨셉'을 잡아 운영한다고 하여 승무원 복장을 한다거나 간호사 복장을 한 여학우들이 주점을 운영한단다. 학생들은 그것에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고 매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고 하니 결국 '시장주의'의 답습을 대학에서 제대로 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문제의식도 없이 '자정'하지 못하는 것은 말그대로 문제 그 자체일 수 있다.

티비만 틀면 나오는 걸그룹의 복장은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고, 몸매를 드러낸 것으로도 부족한지 성인이 채 되지 못한 멤버에게 성행위를 암시하는 춤을 추도록 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를 구성하는 양대축 중 하나를 구성하기도 함과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은 섹시함에서 나온다'는 이념을 주입시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사회라고 특별히 그런 이념에 반항하고 대항하고 대학만의 양성평등을 구축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에게 무조건적으로 즐겁고 옳은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상대방에게도 옳을 것이라 인식하는 것, 또 이런 문제들을 직면함에 있어 내부적인 토론이나 그것을 넌지시 혹은 의도적으로 밀어넣는 사회에 대한 토론이 부재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매사에 치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매사에 전혀 치열하지 않고 단지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다보면 차별은 당연시 되고 억압은 마치 자유로운 것인양 인식될 것이다.

2004년 대학 신입생으로서 느꼈던 그때의 그 문제의식은 지금은 많이 희석되어버렸지만, 오히려 그 때보다 지금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의견을 구함에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의 소유라기 보다 공유 그리고 토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더욱 굳건해졌다.

어찌들 생각하시는지.

p.s 서울과 지역에 대한 구분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의 미천함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혀둔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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