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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12.21 “알바 시각표”
  2. 2015.01.21 갑을 문화 그리고 계층 사회 (1)
  3. 2014.11.27 정규직 애가
2016. 12. 21. 00:50 내 생각

“알바 시각표” 


‘이러다가 분명, 또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받지 못 할거야. 어떻게 하지? 내가 얼마만큼 일을 했는지, 시각표를 적어놔야겠다.’ 


2004년 겨울, 아직 11월임에도 더 이상 추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추위가 이어졌다. 내가 일했던 주유소는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에 세워져 있어 바다와 상당히 가까웠다. 바다는 다른 건물들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의 비린 냄새와 함께 차가운 겨울 바람은 주유소 곳곳을 파고 들었다. 나는 몇 번이고 주유소 소장님께 아르바이트를 위한 대피장소, 그러니까 주유소에 들어가면 흔히 보이는 조그마한 부스를 하나 사서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벌벌 떨며 손님을 기다려야만 했다.


10월에 시작한 주유소 주유원 아르바이트도 이제 손에 익을 무렵, 10월 달의 급여를 처음 받았을 때 생각했다. ‘내가 일한 시간보다 적은 금액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시간을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라고 정해두긴 했지만, 매번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손님들의 차에 기름을 넣는 일이 많았고, 추가 근무에 대한 것은 으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추가 근무에 대한 급여를 달라고 해도 소장님은 가끔 저녁을 사주는 것으로 몇 일 간의 추가근무에 대한 급여를 지불하는 것이라 여기시는 듯 했다. 


11월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집에 있던 A4 용지 한 장에 11월의 달력을 한 장 그려갔다. 토, 일요일도 없이 일을 했으므로 11월 한 달의 달력은 딱 내가 일을 할 날을 의미했다. 그리고 달력 위에 내 이름을 적어 소장님께 매우 친절한 목소리로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며 드렸다. 


“소장님, 제가 이런 걸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이번 달 말에 알바비 계산하실 때 편하게 하시라구요.” 


소장님은 그 종이를 받아 드시더니, ‘이게 뭘까?’ 하는 눈빛으로 내가 내민 종이와 내 얼굴을 몇 번 번갈아 보셨다. 그리고 이윽고 “그래, 내가 일일이 못 챙길 수도 있으니까 월말에 다 적으면 나한테 다시 보여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소장님께서 화를 내시거나 혹은 내게 지난 달 급료가 적었냐고 따져 물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내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아마도 지난 한 달 간 내 근무 중, 주유 실수도 없고 또 청소나 단골 관리 등을 솔선하여 하는 모습들을 보시며 칭찬을 하셨던 것을 떠올리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날부터 퇴근하기 전 내가 몇 시에 출근을 했고 또 퇴근을 했는지를 정확히 계산해 표에 적어 넣기 시작했다. 월말이 되면, 총 몇 시간을 근무했는지를 모두 더한 값을 적어서 소장님께 드렸고 그렇게 나는 내가 일한 정확한 시간에 맞는 시급을 받았다. 그 당시 내가 한 달을 꼬박 일하고 받은 돈은 약 8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표는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왔을 때도, 같은 표를 만들어 올 것을 소장님께서 요구했고 그것을 적어 채워줄 것을 요구했다.) 


최근 대기업의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생의 시간을 쪼개고 뭉개는 형식으로 약 4만 명이 넘는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84억에 달하는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이 뉴스가 되었다. 깊은 화가 났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이 더러운 옛말을 아직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기업이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몇몇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식으로 어딘가에 취업하기 전, 아르바이트는 간접적으로 사회를 배우고 또 자신의 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이지 않냐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지금 현재의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는 결코 젊은 사람만이 하는 것도 아닐 뿐 더러, 젊은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그것은 더욱 보호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찬란한 시절의 가치인 ‘젊음’이라는 시간을 써서 최저시급을 받아가며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경험이 되기 때문도 아니고, 사회를 배우기 위해서도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위해 단기적으로 나마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 따위가 아니다. 삶의 유지에 필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돈이다. 


봉사는, ‘돈을 벌지 않는 일’이 아니다. 돈이 아닌 또 다른 가치를 벌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봉사다. 그렇기에 결코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을 소비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마치 ‘봉사’나 ‘의무’와 같이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아르바이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신의 시간을 들이는 모든 경제관계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스스로가 원하지 않은 것을 해달라며 요청하곤 그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결코 서로에게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자신이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임에도,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설명하진 못해도 느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글을 정리하며, 일본에서 유학했을 때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한다. 당시 여자친구가 없었던 나는 일본인 친구들 중 한 명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녀에게 호감을 표시하기 전, 한국과 일본에 연애에는 다른 점이 있을까 해서 일본인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일본인 여자친구와 가까워질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선 밥을 같이 먹어라. 그리고 밥을 같이 먹을 정도의 사이가 되면, 술을 함께 마셔라. 그러면 그 여자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고백을 해도 된다’ 따위의 어이 없는 대답을 내게 해주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나는, 왜 그런 순서로 이어지냐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는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밥을 함께 먹자고 한 이야기를 듣고 같이 밥을 먹고, 또 술을 마실 정도라면 그 여자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들일 만큼.’ 


나는 시간이 소중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것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소중하기에 그 사람이 가진 시간 역시 소중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사람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두고 있을까? 한 명의 아르바이트가 어떤 일에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언제나 대체가 가능한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아니면 그 한 명이 소중하고 또 관계에 있어서도 유지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궁금해진다. 궁금해지기도 전에 우리 사회는 그 답을 이미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틀린 답을 정답이라고 우기며. 


한 명의 아르바이트라 할지라도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시간은 결코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지켜 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 모두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람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지켜주기 위하여 발전해 온 역사가 우리 인류의 역사이자 자유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아, 너무 멀리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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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1. 19:16 내 생각

'갑을 문화 그리고 계층 사회'  2015.1.21. 


JTBC의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한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고정 게스트로 합류한 네팔의 '수잔'이라는 청년이 고정 게스트가 되기 전 '인턴(?)'으로 한 번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다른 게스트와 MC들로부터 네팔의 문화와 종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카스트'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네팔 역시 힌두교 문화권이므로 카스트 제도가 있으며 결혼 상대의 결정, 직업의 결정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카스트 제도의 틀 내에서 정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 MC 뿐만 아니라 여타 국가들의 게스트들은 '아직도 그런 신분제와 같은 제도가!' 하는 놀라움과 동시에 문화다양성을 인정하는 뉘앙스를 동시에 풍겼다. 


최근 다양한 사건으로 불거지긴 했지만, 한국 사회의 '갑을' 문화는 역사와 전통이 깊다. 사실상 일본에 의한 갑오개혁이 시행되기 이전에 오천년의 역사는 신분제 사회였다. 크게는 왕족과 양반, 서민 그리고 노예(근대적 단어이긴 하지만.)로 구성된 신분 사회는 그 구조를 변경시키려는 일부의 노력들은 여지 없이 실패로 끝났다. 갑오개혁 역시도 신분제의 철폐를 통한 평등 사회 구축이라는 대의를 갖춘 듯 하지만 사실은 조선 말기 이미 문란해 지기 시작한 신분제를 국가가 나서서 그것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그를 통해 세수 확보를 도모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는 일본 식민정부에 소속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기준이 되었고, 몇몇 친일파는 기사 작위를 받아 조선 이전과는 또 다른 신분을 갖게 되었다. 


최근의 갑을 문화에 대한 비판에 대해, 마치 '역사적으로 갑을 문화가 정착된 국가이니 문제 삼을 것이 없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미군정기 이후 1948년 독립 이후 우리가 취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갑을 문화와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와 같은 계층 문화를 우리 스스로 내면화시키고 있다는 데 더욱 큰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핵심 의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자와 연구자들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니 좀 더 전문적인 해석은 여타 학자들의 저서를 통해서 확인해보길 바란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유주의의 핵심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정도 내에서 자신의 자유를 제한 없이 펼칠 수 있는 것이고, 민주주의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있어 다른 누구의 도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결정으로 그 방향을 이루는데 도와주는 사람을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서 뽑는 절차이며 과정이다. 이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는 본인은, 한국 사회의 갑을 문화, 계층 문화는 사실 자유주의도 아니며, 민주주의도 아닌 상황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주의의 핵심 의제를 시쳇말로 표현한다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라 요약할 수 있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개인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범위의 일들은 극소화되고 있다. 가령 예를 들어 화가가 되겠다는 어린 학생이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 어느 시대에도 경제적 지원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어떤 시대와 어떤 사회와 비교한다 할지라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지원은 막대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림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화가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경제적 지원은 일상화되어 있다. 화가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분야라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이미 '노력'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꿈들로 가득차 있다. 혹자들은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 사회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냐며, 노력을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 며 반문을 하겠지만 노력을 해서 성공한 그 일부의 사람들이 결코 한 사회의 평균이 될 수 없기에, 되지 않았기에, 여러 사람이 그 사람의 삶을 동경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 주었으면 한다. 누구나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다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라는 말에 부정적인 어투를 본인은 과감히 지울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이 그러한가.


민주주의 핵심 의제 역시 흔히 쓰는 표현으로 바꾸면, "내가 원하는 미래는 내가 만든다."라 할 수 있다. 작게는 구의원에서 크게는 대통령까지, 각자가 원하는 마을, 사람, 나라의 모습을 그리며 투표를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투표는 번거로운 일이 되었고, 누군가 우리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가진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있어도 사람들은 그러한 태도에 크게 반감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민주화 이전의 시대의 사람들은 그러한 태도에 자신의 목숨과 청춘을 바쳤지만 제도적으로 민주주의가 다시 한 번 확립된 이후의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내 통장의 잔고를 더욱 늘려줄 수 있는 사람을 유명인으로 만들어 주는 법'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세금 제도와 교육 제도를 끈질기게 요구했음에도 점점 더 삶과 유리되는 방향으로 정치가 이끌려 가는 것은 그러한 '올바름'이 '경제적인 혜택'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한국 사회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경제에 종속된 '카스트' 사회가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카스트 제도에 대한 검색을 해 본 결과 "학벌 사회, 한국 사회 카스트 만들어" 등의 글을 읽었다. 대학 서열이 한 사람의 신분이 되어 버리는 위험성을 경고한 글이었지만, 이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일 수 밖에 없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명문 대학을 나왔다고 그 사람이 카스트의 정점이나 그 언저리에 머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어떤 대학을 나왔든 그 사람이 사장이 되거나, 의사, 변호사, 판사 등 사회적 지위와 동시에 경제적 혜택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대학의 이름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같은 대학 내에서도 '인문계열' 학생과 '공학 계열' 학생들 사이의 취업 시장에 있어서의 카스트 제도는 만연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어느 덧 사람들은 한국 사회를 '계급은 없지만 계층은 있는 사회' 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계층이 어디 인지를 자신 스스로, 그리고 타인을 통해서 확인받기 시작했다. 대기업 직원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를 '미생'이라 부르기도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기도 하며, 결혼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 등 개인적인 부분에 까지 그 계층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지는 대기업 총수와 그 일가들의 행태를 보며 '저들도 저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라는 연민의 시각 마저 보이며 일부 사람들의 경제력-권력 독점을 내면화시켜버리고 있다. 


앞서 한국 사회의 갑을 문화-계층 문화의 역사성에 대해서 잠시 언급을 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의 갑을 문화-계층 문화를 역사적 '유물'로서 보전하자는 취지가 결코 아니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하지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감히 역사를 만들 수 있는 힘이 개인 각자에게 주어져 있다면, 우리는 100년 뒤, 200년 뒤의 역사가들에게 최소한 이런 한 줄의 글은 쓰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2000년 대의 한국은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와 유사한 경제적 카스트 제도를 강화하며 유지하여 왔다." 그리고 그 카스트 제도가 활성화 되는데 있어 가장 주체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일부 대기업 총수나 권력층이 아니라, 99%라 스스로를 위치 짓는 민주주의 시민들에 의해서 성립-활성화되었다.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이며,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평등을 훼손하는 제도라고 욕하기 이전에 우리는 스스로 카스트 제도의 나쁜 원형을 우리의 손으로 소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이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은 힌두교 카스트 제도 내에 같은 계급끼리의 연대 혹은 연대 의식을 우리 사회는 결코 가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 때문이다. 어느 사이인가 연대는 '전경련'이나 '국회의원 의원회관'에서나 통용되는 말이 되었지, 필부필부의 집이나 한적한 도로 위 혹은 어린 아이가 뺨 맞아 쓰러지는 어린이집 숫자 매트 위에서 찾을 수 있는 말은 아니게 되어버렸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은 처음 읽는 사람에게 길고 지루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찾아야 할 연대, "잃어버린 연대를 찾아서"라는 책이 나온다면, 프루스트의 저 책보다 훨씬 더 긴 시간과 지루함 그리고 때로는 일부 몇몇의 피가 붉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야아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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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oodman 2015.04.10 00:43  Addr  Edit/Del  Reply

    글 잘읽었습니다 대단하네요 ㄷㄷ

2014. 11. 27. 01:48 내 생각

"정규직 애가(哀歌)" 2014.11.27.


취업을 하겠다며 휴학 신청 사유란에 '취업', 딱 두 글자만 홀연히 던져놓고 '신청'을 눌렀다. 신청을 하고 나서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나 내가 원했던 '취업''미취업'으로 바뀌었고, 오히려 미취업이라기 보다 '취업 안해!'라는 어리광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어색하지는 않다.

취업이라 적긴 하였지만, 내가 ''하고자 했던 직''은 애석하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정규직이었다. 직업이 정규직이라니. 그렇다. 직업이 정규직인 것은 어느 회사든 똑같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회사 내부의 생활 뿐만 아니라 비슷한 외모로 변해가고 비슷한 취미를 갖게 되는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몇몇 사람은 자신이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원했던 직업을 갖기 위해 학부 생활 틈틈히 인정 받을 수 있는 '스펙'을 쌓아나갔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눈에 들어오는 회사 모두에 자신의 소설 작성 능력을 펼쳐보이고 있었다. '이 많은 회사 중 하나라도 들어가자'라는 첫 마음은 '이 많은 회사 중 어느 하나도' 나를 뽑아주지 않는다는 슬픈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전하는 인사 담당자의 메일을 받게 되기도 했다.

왜 우리는 정규직이 되고자 할까. 정규직이 되어야만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것일까? 아니면 으레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이나 2년제를 나왔든 고등학교를 졸업했든, 모든 사람은 정규직에 대한 회귀 본능이라도 유전자에 탑재되어 있는 것일까?

정규직의 가장 큰 특징을 살펴보면 우리가 왜 정규직이 되어야만 하는지 알 수 있을 듯 하다. 첫번째 특징은 '고용 안정성 확보'. 쉽게 말해 안 잘린다는 것이다. 잘리지는 않지만 잘리지 않기 위한 노력을 결코 쉬이 해서는 안되는 불운을 타고 나기도 했지만, 정규직은 어쨌든 잘리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해고'라는 표현을 '목을 자른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자르는지는 지적하지 않은 채 다만 자른다 라고만 표현하니 인권 국가 되시겠다. 잘리지 않는 가장 안정적인 직업으로 손꼽히는 직업은 공무원이 으뜸이다. 하지만 공무원 세계에서도 등급이 있어, 5급부터 9급까지 시험도 직렬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은 쥐꼬리보다는 많이 받지만 쥐꼬리처럼 통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월급을 받아야 하며, 또 최근에는 연금과 관련하여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니. 잘리지만 않았을 뿐 그 길고 긴 생명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형국이랄까. 대기업 정규직은 공무원과는 또 다르다. 노조가 있는 곳에서는 우선 한 번의 칼 맞음은 피할 수 있다 할지라도 몇 번이고 톱으로 자르려는 그 사측의 의지를 이겨내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장점이 있으니 그 첫번째가 많은 연봉이요, 두 번째가 자신의 직업을 설명할 때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두 번째다. '연봉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발끈하는 대기업 정규직이 있을 줄로 알지만, 전체 대한민국 고용에서 대기업 고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1% 전후라는 사정을 생각해서, 적당히 발끈하고 넘어가주시면 얼마나 고마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적은 숫자이니 고통도 느끼지 말라는 게 아니라, 나머지 99%는 대기업 정규직의 월급을 받으려면 100년은 꾸준히 연봉협상을 해야할 것이니 그 수고를 좀 인정해주자는 정도의 이야기 되시겠다. 어쨌든 대기업 정규직은 자기가 큰 사고를 치거나 도저히 대기업 문화와 맞지 않거나 그것도 아니면 창업을 하겠다고 손을 걷어붙이지 않는 이상 꾸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책상은 마련되어 있다. 공무원과는 다르게 오래 앉아 있을수록 불안한 것은 옵션 되시겠다.

정규직의 두 번째 특징은, 없다. 정규직의 특징이랄 것이 '고용안정' 빼고 나면 업무의 지속성 확보, 즉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되어 '일 잘한다' 소리 듣는게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진다는 것인데, 이것은 엄연히 고용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지 고용'당한' 입장에서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유일하고도 가장 큰 특징은 고용 안정, 딱 이것 뿐이다.

그럼 고용 안정이 뭐 그리 중요한가 이말이다. 공무원은 왜 고용 안정되어 있으면서 왜 연금액을 바꾸겠다는데 발끈하냐 이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 나갈 때가 많다.'

돈 나갈 때는 많고 들어오는 돈은 적다. 이번 달만 벌어서 다음 달 다 쓰고 죽을 운명이라면 정규직에 목 메는 사람 없을 걸. 어차피 다음달 말에 죽을건데 일도 하기 싫을 걸.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각이긴 하지만) 앞으로 몇 십년은 더 살아야 하고, 살기 위해서는 돈이 적게 들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단지 '살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더욱 돈이 필요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결혼을 앞둔 한 예비 부부가 전세집을 구하든 집을 사든 관계 없이 어쨌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다고 해보자. 부모님이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 집은 모르겠으나 거의 대부분의 부모님은 자신의 노후 대책도 제대로 세우고 있으시지 못한다고 가정하면 결국 예비 신혼 부부의 보금자리는 스스로 구할 수 밖에 없다. 30살 전후의 남녀가 몇 년간 일해서 모은 돈이 1억이 넘는 일은 없을 듯 하니(1억이 어딘가.. 1..) 어쨌든 서울에 조그만 집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는 대출을 해야 하는데 대출 원금은 둘째치고 이자라도 꾸준히 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대출 이자를 내는 게 1년 안에 끝난다면 1년 안에 원금을 갚았다는 말인데, 이건 금액에 따라 다르겠지만 거의 불가능. 그럼 기본이 3년이나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내 고용이 2년 뒤에 불확실하다면? 아이를 낳았는데, 유치원도 보내고 싶고 좋은 음식도 먹이고 싶은데 아이가 2살이 되던 해에 내 직업이 뿅 하고 사라진다면? 남편과 아내 모두 직업이 뿅하고 사라진다면? 40대 후반이 되어 아이가 대학을 갈 나이가 되었는데 등록금 고지서가 마치 징용장 나온 것처럼 생각되는 순간에, 내 직업이 뿅 하고 사라진다면?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말고 다른 나라 여러 나라 비정규직 임금을 가만히 보면 말이지. 정규직 보다 훨씬 높더라 이말이지. 왜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보다 높다면 비정규직이 다른 더 연봉 높은 직업을 구하게 되면 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우리 일에 지장이 생기니 '돈 많이 줄테니 다른 곳 가지 마세요'라고 생각하는 입장이 있고, 비정규직은 말 그대로 '' 정규직이니까 삶에 안정성이 약하다고 보고 돈을 많이 줘서 충분한 삶의 가치를 누리도록 하겠다는 기업과 정부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입장도 있더라고.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비정규직 만들 때 자유롭게 회사 옮겨가며 더 많은 돈 벌라고 한 것 같긴 한데. 한국은 그렇지 않단 말이지.

. 말투가 이상해졌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비정규직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한 회사에 핵심적인 업무가 아니라는 평이 많고, '당신 말고도 여기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 많아!'라는 말이 인사담당자의 가훈처럼 머리에 박혀 있는 상태에서는 비정규직은 그냥 회사의 소모품에 불과하고 정규직은 회사나 관공서에서 매년 실시하는 '재물 조사'에 들어가는 리스트 정도에 불과하니.

정규직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한테 '도전 정신이 없다' 느니, '사람이 너무 편하게 되면 나태해진다'라느니 '젊을 때는 실패해도 된다'느니 따위의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은데.

사람이 살아가는데 돈이 그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사회가 이미 되었어요. 그리고 그 돈을 매달 받지 못하고 매년 받지 못하면 우리의 삶을 유지할 수 없어요. 내일이 두려운 사람은 오늘도 집중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우리한테 결혼 왜 안하느냐고 묻지 마세요. 우리한테 왜 아기 안낳느냐고 묻지 마세요. 결혼이 예로부터 어른이 되는 가장 큰 일이라고 하면, 부모님께 돈 받아서 하고 싶지 않아요. 돈 안받고 우리들의 힘으로 살아가보려는데 돈을 꾸준히 못 벌면 안되잖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해서 아기 낳고 싶어요. 아기를 낳으면 돈 들잖아요. 기저귀값, 분유값 그리 비싼 줄 모르고 살다 주변에 친구들 이야기 들으면 눈물이 나더군요. 아기는 소중하잖아요. 아기는 소중하니까 엄마가 기르겠다는데 육아휴직 하면 자를 거잖아요. 탯줄로 목메고 죽으라는 건가요? 결혼하면 어떻게든 된다고 말하지 마세요. 결혼 안해도 어떻게 안되는데, 결혼하면 어떻게 된다는 건 우리에게 삶의 즐거움 보다 '책임감'만 뒤집어 씌우려는 거 뻔히 보입니다. 직업이 안정적이라서 나태해 지는 게 아닙니다. 정규직이라서 도전 정신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직업을 통해서 각자가 바라는 이상이 있으면 그것을 이루도록 회사가 도와주면 도전 정신 생깁니다. 집에 돌아가서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기들 보면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태함'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습니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월급 받고 그 월급으로 사람답게 살겠다는데 '실패' 따위 언급하지 마세요. 정규직이 왜 되고 싶냐구요? 왜 안정적인게 중요하냐구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요. 비정규직은 불행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행복할 수 있죠. 하지만 그 행복,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고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요. 딱 그거 하나의 이유입니다.

정규직이 되지 못한 이들은 되지 못해 울고, 정규직은 정규직이 되었기에 삶의 고단함에 울고, 도대체 이 세상에 웃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지. 한 번 묻고 싶네요.

'취업''미취업'이 되어도 고민이나 좀 더 해보렵니다.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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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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