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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22 친함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2. 2015.03.01 현우의500자_86
2016. 4. 22. 01:30 내 생각

친함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가끔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는 장면이 있다. 그건 고3이었을 때 수능을 마친 뒤의 일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패잔병들의 모임처럼, 수능이라는 전쟁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져 버렸으니 자존심이라도 지켜보려는 친구들은 날카로웠다. 사소한 일에도 큰 시비로 번질 수 있었으니 서로 졸업 때까지 조용히 지내자는 암묵적 합의도 있었던 듯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의 한 친구와 다른 반의 한 친구가 싸운다는 소식이 복도로부터 들렸다. 이 싸움이 있기 몇 달 전 우리 반의 두 친구가 싸운 적이 있었는데 이때의 불똥이 이상하게 나에게 튀었다. 그 둘의 싸움을 말리거나 중재할 사람이 나 밖에 없었는데(?왜일까?) 내가 말리지 않았다며 꽤나 욕을 들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누군가 싸움을 하면 말리겠노라- 하고 했던 허망한 맹세를, 수능이 끝난 뒤에야 지키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지만, 어쨌든 그랬다.

 

, ! 싸우지 마라. (한껏 짜증난 목소리로)

 

한참 서로의 얼굴을 주먹으로 마사지하고 있던 두 친구의 사이를 슬며시 쑤셔 들어갔다. 그런 뒤 한껏 힘을 주어 둘을 떼어냈다. 싸우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때만 해도 힘이 셌던 것인지 둘은 생각보다 쉽게 멀어졌다. 우리 반 친구에게 그만하라며, 교실로 들어가자고 하는 순간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돼지쉐끼(새끼의 사투리, 쉐끼), 니는 뭐꼬?

 

? 나한테 한 이야기일까? 정말?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반 친구는 정확히 내 눈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 난 그냥 싸움 말린거 밖에 없는데? 하고 냉정을 찾았으면 다행이었겠지만 나 역시도 무언가 지키고 싶었던 것이 있는 느낌으로 갑자기 싸움을 시작했다. ‘뭐라고? 다시 말해바라!’ 라고 시작한 싸움에 옆반 친구는 참 많이도 맞은 듯 했다. 체급이 달랐다고 솔직히 고백해야겠지만, 어쨌든 나의 싸움은 두 친구를 말리던 것보다 더 격렬하게 말림을 당하며(?) 끝이 났다.

 

수업시간이 끝나고 다시 쉬는 시간, 화장실을 갔다.

 

가보니! 나와 싸웠던 그 친구가 밀대자루를 손에 쥐고, 나를 죽일거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씩씩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나도 죽을 만큼 소변이 급했으므로, 그 친구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총총거리며 가서 소변을 시원하게 보고 들키지 않은 채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난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한 무리의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찾아왔다.

 

잠시 배경설명.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이상한 교육을 했는데 대학처럼 학생들이 교실을 옮겨다니며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시기가 잠시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 교실 앞에 넓은 공간을 만들어 일종의 휴식공간이 있었다. 배경설명 끝. 나는 그 한 구석 모퉁이에 앉아 당시 유행하던 힐리스를 신은 채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를 찾아온 한 무리의 친구들은 나의 위치와 정대각선의 모퉁이에 한껏 어깨와 미간에 힘을 주며 섰다. 굳이 분류하자면 양아치일까. 3이 되어서도 와해되지 않았고, 수능을 치고서도 저러고 있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에게는 그게 우정인 듯 보였다. 무리 사이에서 마치 대변인인 양 한 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평소 얼굴과 이름은 알지만 딱히 친하다고 할 친구는 아니었다. 그 역시 양아치였다.

 

니가 내 친구 때렸나?

 

일종의 보복성 방문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 한 걸음 나왔던 친구가 다시 묻는다. 돌았나?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갑자기 잘 안난다. 좀 길게 대답했던 것 같은데, 아마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저 새끼가 내한테 먼저 욕을 했다. 나는 싸움을 말릴려고 한건데, 내한테 시비 걸고 그러면 안되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비논리적인 대답이었는데, 이 대답이 먹혔다. 무리의 친구들이 생각해봐도 싸움 말리는 사람한테 다시 시비거는 건 아니었나 싶었던 듯 하다. 한 걸음 나왔던 친구는 다시 뒤로 들어갔고, 그 무리의 친구들 중 일부는 나에게 앞으로 조심해라, 툭툭 던지며 모두 다시 자기 교실로 들어갔다. 나와 싸움을 했던 친구는 양아치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나름의 계파는 유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조심하지 않았다. 그래도 싸움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런 치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게도 적고 있냐.

 

나 한 명 조지겠다고, 우루루 몰려온 그 친구들 - 결국 다 고등학교 동창들이긴 하지만 -이 참 미웠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기가 맞았다고 친구들을 불러온 그 친구보다 무슨 일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자기랑 단지 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해코지하려 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 그 친구들이 난 참 미웠다.

 

그럴 수도 있다.

 

, 그럴 수도 있다. ‘친하다는 것 역시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내가 속하지 않은 그룹이나 집단의 친함이 나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러고 있지 않은지 반성을 해보게 되는 측면도 있다. 내가 당할 때는 느끼는 것을, 가해자가 되면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인간이 가진 이중성인가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 감정의 근원이 친함이라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기도 하다.

 

자주 만난다. 이런 상황.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아도,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또 다른 사람과 어울리도록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다. 정치에 있어서는, 자신에게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물급 인물이나 정당에 친밀함을 느껴 거물급 인사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을 막무가내로 비난하거나 또는 상대 정당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을 일삼기도 한다. 정치에서 뿐만 아니다. 오히려, 정치를 포함하는 공적 영역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소한 일상에서의 친밀함이 주는 폭력이 더욱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는 친구라 할지라도 나는 누군가와 친하다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것이 용인되는 경우도 있고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뒤에 서줄 수 있는 용기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이 옳은 행위인지 옳지 않은 행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생각을 해야 사람이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저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죄를 물을 수 없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적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취재하며 내린 결론이다.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은 주체적인 판단 즉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저런 반인류적인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은 지금도 그 울림이 있다. 생각이라는 것은 어떤 누군가를 죽이거나 살리거나 혹은 철학적이거나 사상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세운 기준에 의해서 행동하거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정도로도 생각은 그 충분조건은 모두 채운 듯하다. 이런 생각의 기준에 친함이 포함될 수 있을까?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친함이라는 것이 향하는 방향이 중요하다. 내부적인 친함을 외부적인 미움으로 표현할 경우, 친함은 사실 친함이라기보다 추악함이다. 지키려는 것은 고작 자신의 마음 편함정도일지도 모르고 다음에 자신이 같은 경우를 겪게 되었을 때, 다른 이에게 보였던 미움처럼 같이 미워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감히 바라건대

 

친함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 있다면, 그 친함의 외부적 표현도 친함으로 보여주면 어떨까. 아니, 욕심을 버리고 친함의 시작으로 보여주는 건 어떨까 싶다. 친밀함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해서 연구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친밀함이란 결국 우연의 결과이다. 가족이 되는 것도 친구가 되는 것도 연인이 되는 것도, 이러한 친밀함의 시작은 결국 우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라도 지금 부모의 아들딸이 되고 싶어 된 사람은 없고, 친구라 할지라도 연인이라 할지라도 우연한 만남에 의해서 시작했다. 그럴 것이면, 지금은 친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 우연한 기회나 친밀함의 시작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우리 사회나 국제 사회나 나아가 향후 형성될지 모르는 우주 사회나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점들이 해결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마음 많이 연 사람이 상처받는다.

 

슬픈 문장이다. 위의 문장을 다르게 표현하면, 더욱 좋아하는 사람이 상처 받는다고 표현할 수 있다. 결국은 누가 더 친해지고 싶어하느냐의 문제이다. 우리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가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친밀함을 표현한다면, ‘? 나랑 안친하잖아?’ 라거나 왜 갑자기 친한 척 하지?’ 라는 반응이 아니라, ‘저 사람과 친해질 수 있겠구나.’ 라거나 나도 마음을 열어볼까?’하는 생각을 가진다면, 더욱 넓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친함은 결국 폭력이 발생하는 요소였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많은 전쟁과 갈등의 근간에는 친밀함이 있었다. 더욱 친한 사람을 지키고자 했던 갈등, 자신과 같은 국적을 갖고 있거나 같은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부터 느끼는 친밀함으로부터 발생한 전쟁 혹은 동일한 사상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 세계를 반으로 나누어 싸웠던 냉전까지. 이런 글을 통해서 서로 친해집시다!’ 하고 연설적으로 외치는 것이 결국 일상 혹은 세계사에 어떤 큰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으나, 친밀함에 친밀함을 연습하고 포용해나간다면, 더욱 나은 우리가 될지 모르겠다.

 

수능이 끝난 고등학교 3학년, 친밀함의 범위 밖의 한 학생이 느낀 소외감 혹은 폭력의 경험으로만 끝내기는 아쉬워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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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 09:26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86


싼타 마리아 살루테 성당 앞 계단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인스부르크에서 출발하여 베네치아까지 침대칸을 타고 와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했다. 습도 탓인지 바지 안쪽이 쓸리듯 아프다. 침대칸에는 나와 4명의 홍콩인 그리고 피곤했던지 아무 말도 없이 잠이 든 여자가 있었다. 아침에 깨어난 여자는, 내가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아무말 없이 수줍은 미소만을 보일 뿐이다. 그 미소에는 당혹감이 서렸다. 좁고 복잡한 베네치아는 미로 그 이상이다. 피아짜, 즉 광장에만 있는 우물의 덮개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신기루 속의 오아시스인 듯 마음을 트이는 상쾌함이 있다. 강 같은 바다 건너, 다시 산타 마리아 살루테 성당 앞 계단.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생면부지 백인이다. 혹시 뮌헨 다녀 오셨나요? 아, 네. 대답과 동시에 그가 든 가방이 보인다. 뮌헨 프라우엔 성당 쌍둥이 종탑이 그려진 가방이다. 나도 같은 가방을 들고 있다. 아무말 없이 서로 활짝 웃는다. 오아시스는 어디에나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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