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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11.14 영웅
  2. 2013.12.04 누구나 주인공.
2014. 11. 14. 02:25 일상다반사

영웅 2014.11.14.


# 1
언제부터 이런 관점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유지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꾸준히 유지하게 될 듯 하니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그 관점이란, 세상은 결코 영웅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웅'에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없음에도 결국 다시 적어 버리는 것은, 영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하는 계략이다. 계략이란 말이다. 


한글을 창제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세종대왕'이라 대답할 것이고, 프랑스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나폴레옹'이 자연스레 연상되고,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단어에는 '링컨'의 그림자가 짙게 베어 있다. 앞의 인물들은 위인전의 주인공이 되었고 각국 국민들의 마음 속에 영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자 하였을 때 반대하지 않았던 신하들, 그리고 왕의 명령에 의해 일을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수많은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창제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폴레옹이 스스로 프랑스의 황제라 칭하기 이전, 프랑스 혁명을 처음으로 주도했던, 낫과 창을 메고 '빵을 달라'고 외쳤던 수많은 '어머니들' 이들이 프랑스 혁명의 영웅이 아닐까. 링컨의 그 유명한 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을 게티스버그 연설은, 사실은 남북전쟁에서 죽어간 군인들을 묻은 게티스버그 묘지에서 언급되었다는 것, 나라가 반토막이 되어서도 자신의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 목숨 걸고 말하고자 했고 지키고자 했던 죽은 군인들, 이들이 영웅이 아닐까. 

지금의 사회는 끊임 없이 '영웅'과 '영웅이 아닌 자'를 구분하고자 한다. 영웅이 되지 못한 탓에 스스로가 짊어지는 '평범함'이라는 굴레를 부끄러워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부끄러움을 다시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고 자녀에게는 '영웅'이 되되, 평범한 영웅이 되라 말한다. 가량 고시를 합격하든, 대기업을 들어가든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다. 

강 위에,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만 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배가 떠 있을 수 있는 것은 방울방울 모여 있는 강물과 바닷물이 있기에 가능하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새로운 곳을 여행하게 했다. 과거의 사람들은 강물과 받닷물에게 고마움을 느꼈다고 본다. 그 보답으로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강이야 육지에 속해 있지만 바다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나누어 불렀다. 산도 그렇다. 바람도 그렇다. 

백 번 양보해서, 과거의 영웅들은 자신이 영웅이 된 것을,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보기에 인정하고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최근의 유명인 혹은 영웅 또는 영웅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런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태도를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미덕인 양 여겨지기도 한다. 

영웅을 없애자 라는 극단적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백번 양보해서 영웅이 생겼다고 할지라도 그 영웅을 만든 영웅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 이말이 하고 싶었다. 단 한번도 민초들이 영웅이었던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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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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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4. 23:13 카테고리 없음

누구나 주인공. 2013.12.4. 


진부하다. 


제목이 정말 진부하다. 하지만 진부한 만큼 많은 사람들은 그 진부함을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주위 사람들 중에 '자살'한 사람이 있는가. 혹시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진심으로 애도해주길 바란다. 그가 택한 죽음의 방법이 불쌍해서 애도해 달라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사후 세계'에서 행복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애도해 주길 바란다는 것도 아니다. 


그가 택한 '삶'이라는 한 소설의 끝이 '비극'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는 애도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굳이 사람들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태어나는 순간이 어머니의 노력을 태어났든, 카이사르가 했다기에 이름이 '제왕절개'라고 붙은 의학의 기술로 태어났든 그 탄생은 분명 어미와 자식, 이 둘에게는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일년의 대부분이라 한다면 길고, 전체 인생에서 바라본다면 짧은 10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많은 노력과 고초를 겪으면서 낳은 자녀와 그를 이겨낸 어머니의 심정은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린 시절의 환희를 잊고 살고 있지는 않는다. 


결론은 '누구나 주인공'이라는 것을, 이 글을 읽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목이 진부한 만큼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자신이 스스로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자문해보길 바란다. 


주인공의 삶이란 별 다른 것이 없는 삶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별다른 것 없는 삶, 다시 말해서 이런 삶은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다. 자신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생각하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아마도 꽤 오랜 시간 그리고 깊숙이 노에의 근성이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노예?"


우리와는 관계 없는 단어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관련이 있는 단어이다. 링컨이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고 얻은 것이 '노예제 폐지'라는 전리품을 얻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 땅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내에서도 '노예제 폐지'는 성립된 적 없다. 그것은 '제도'로서 폐지된 것 뿐이지 우리의 삶 속에 마치 '유전자' 처럼 각인되어 버렸다. 몸이 아파 약을 먹었으되, 그 약은 사라졌지만 우리 몸 속에 그 약의 성분은 남아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노예의 삶이란, 자신의 원하는 바를 하지 못하는 삶이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것. 이것이 가능하다면 노예가 아니라고 반론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생활은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하는 삶이지 그것이 노예의 삶인 것은 아니다. 


노예가 아닌 삶, 즉 주인공으로서의 삶을 사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돌리는 것. 


이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노예의 삶이 아니자, 주인공의 삶이다. 


글을 적다보니, '주인공'이라는 단어에 한가지 의구심이 든다. '주인'이 아닌 '주인공'이라는 말 때문이다. '공'이라는 말은 누군가를 높여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예를 들면, 귀족에게 '공'자를 붙이기도 하고, 어른이라고 대접 받는 사람들에게 무슨무슨 '공'이라고 붙여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공'의 주인공은 '충무공'이 대표적이다. 다시 말해, '공'이라고 붙여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노예가 아니라, '주인'은 우리에게 붙일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이다. 아무도 우리는 노예를 '노예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시 돌아와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다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주인공의 삶이라면 누구나 주인공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문이 당연히 따라올 수 밖에 없다. 


그렇다. 


누구나 주인공이다. 다만 그 사실을 그 자신이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긴 삶의 궤적 속에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인식하는 삶과 인식하지 못하는 삶에는 아마도 지금까지 발견된 우주의 크기만큼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사실 주인공이라고 인식한 사람에게는 그 우주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방 한 칸조차도 자신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 뜻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 혹은 대부분 혹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하며 '결혼'을 통해 '가정'이라는 목적을 이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때문에 결혼을 하기 도 한다. '집'을 사야한다는 압박이나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이나 이 모든 압박들이 결국은 스스로를 노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집이 없어도, 결혼을 하지 않아도, 심지어 연애를 하지 않아도, 제대로 먹고 살지 않아도 주인된 삶을 살 것이냐 라고 묻는 질문에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을 지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바라기 때문에 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는 반드시 있다고 본다. 


'주인공'은 연극의 주인공이라는 뜻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이 연극의 관객은 바로 자신이다. 자신이 보는 연극에서 자신이 주인공으로 서는 곳, 그것이 인생이다. 자신이 서 있는 곳에 조명을 설치할 것인지, 자신이 서 있지 않은 엉뚱한 곳에 조명과 음향과 그 모든 것을 집중할 것인지는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자신이 서 있지 않아도 다른 곳에 빛을 비춘 사람들을 우리는 존경하기도 한다. 테레사 수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는 자신 이외의 다른 곳에 빛을 비추었되 그 빛이 더욱 넓게 비춰지도록 한 사람이다. 그녀는 결국 주인공이었다. 



진부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누구나 주인공'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적어보았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숟갈, 한 글자,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이 정해 놓은 대본에 의해 혹은 짜여진 대분이 아닌 즉흥 연극이라도 여러분이 원했던 것인지 원하지 않아던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10억을 버는 노예와 1000원을 버는 주인공에게, 과연 당신은 누구에게 조명을 비춰줄 것인가.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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