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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6.05.23 "잘가"
  2. 2015.02.10 현우의500자_65
  3. 2015.01.19 현우의500자 _47
  4. 2015.01.17 현우의500자 _44
  5. 2014.11.20 인류 역사 진보와 장애인
2016. 5. 23. 02:51 카테고리 없음
"잘가"

어제 들어온 친구와 간신히 하루를 보냈을 뿐이다. 어느 바다에서 왔는지, 차에 실려 오는 동안 어지럽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그립지는 않은지. 몇 가지의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것을 기록이라도 하듯 내 짧은 기억력 속에 담아두려했다. 하지만 이내 곧 잊어버리고 다시 몇 가지 질문을 반복했다. 내 반복된 질문이 귀찮아질만도 했는데 새로운 친구는,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히 대답해준다. 내가 질문을 잊은 것 같으면 내게 다시 질문을 하라며 다그치기 까지 한다. 그 친구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넓은 몸이 횟감이 되기 전까지 자신이 살아있음을 내 질문을 통해서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 아저씨가 뜰채를 들고 와 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 새로운 친구를 잡으려 하면, 이리저리 피하면서 "나는 남해에서 왔어!! 내 이름은 광어야!!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의 삶이 부러워!!" 외치며 뜰채에 실려 나간다. 파닥파닥. 몇 번 파닥이다 횟칼에 목이 잘리고는, 부끄러운 속살이 사람들이 먹기 좋게 잘려 내 머리 위 창가로 보이는 사람들의 테이블에 놓였다. 핏기 하나 없는 하얀 몸은 이름 한 글자 적혀 있지 않았고, 고작 '자연산'이나 '양식' 정도의 분류만 허락되었다. 내 헤어짐에 눈물을 흘려도 물 속에 있는 탓에 보이지도 않았다. 매번 잊지만 또 매번 헤어질 때 생각하지만, 다음에는 수조를 떠나가는 친구들에게 꼭 외쳐주고 싶다. "잘가."

---

집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골목으로 돌아들어오려 하면 횟집이 하나 있다. 그 횟집은 특이하게도 수조들 중 한 칸에 금붕어를 키우고 있다. 오며 가며 보는 길에 횟감 생선들은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채워지기도 하지만 금붕어는 여전한 모습이다. 먹지 못하는 금붕어를 먹을 수 있는 광어나 멍게 등 해산물 사이에 키우는 주인의 생각은 알지 못하지만, 금붕어와 (대표적인 횟감인) 광어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갈까 궁금해졌다. 그걸 글로 표현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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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속에 태어나, 사랑 속에 살다, 사랑 속에 죽는다. 나는 이 표현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힘들면서도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태도이자 노력이라 믿는다. 최근 우리 사회는 그 무엇보다 '사랑 속에 죽는다'라는 것이 너무 힘든 것이 되었다. 높은 자살률 뿐만 아니라 빈곤사 그리고 타인에 의한 살인까지. 죽음을 맞이하기 전의 사랑이 불가능했다면, 죽음 이후의 사랑이 담긴 애도와 재발 방지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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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수조 속의 금붕어와 광어는, 분리되어 있기에 서로의 죽음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람은 다르다. 같은 나라에 살고, 같은 시기에 산다. 자신이 사랑 속에 살고 죽고자 한다면 타인의 삶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고 개선시키려 해야 한다. 그게 사람다운 일이다. 사랑다운 일이다.

---

강남역 인근에서 돌아가신 분의 애도와 사랑 속에 삶을 마감짓지 못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잘가. 잘가세요.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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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10. 20:20 현우의500자

퇴근시간이라 버스가 만석이다. 버스 안은 따뜻했고 아늑했다. 사람들의 숨에 창문에는 김이 서렸다. 누구의 숨이랄 것도 없이 모두의 숨이 만들어 놓은 스케치북이다. 버스는 또 다른 정류장에 섰다. 앞문이 치이익거리며 열린다. 아기를 앞에 안은, 앳되어 보이는 여자가 탄다. 내 자리에서는 조금 먼 거리다. 엄마는 아기의 엉덩이에 한 손을 받치고, 한 손으로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서 어깨를 톡톡 친다. 저기 앉으세요. 고맙습니다. 나는 뒷문 앞에 가 섰다. 그리고 몇 정류장이 지나 내렸다. 나도 아기였던 적이 있다. 누구나 아기였던 적이 있고, 그 아기를 안고서 어딘가 가야할 곳이 있었을 엄마가 있다. 내가 아기와 아기 엄마에게 해줄 것은 없다. 자리를 비켜 준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일어난 사이, 그 자리에 앉지 않았던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버스 안의 스케치북에는 한 줄이 적힌다. 아가야, 엄마 품에 안전하게 있으렴. 버스는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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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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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9. 18:11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47


푹 잤다. 나에게 조선을 준다고 해도, 아니 고구려를 준다고 해도 나는 이 잠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세브란스 병원 앞을 지나, 두 정거장만 더 가면 내가 내릴 곳이다. 하지만 나는 잠들어버렸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한 손에는 책과 장갑을 들고, 한 손은 코트 주머니에 이러쿵저러쿵 쑤셔 넣은 채 잠들었다.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한 정거장이 더 지나 눈을 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스스로 민망해 한숨과 한웃음을 짓는다. 아무런 꿈도 없이 5분의 시간 동안 푹 자고 난 뒤 나는 말똥해졌다. 피곤했던 것도 아닌데, 버스에서 나는 잠에 빠졌다. 종종 이런 일이 있지만 오늘은 내일보다 새롭다. 버스에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편히 잠들었다. 잠들어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불행한 상황 속에 행복의 순간을 찾았다. 어둑하던 하늘에서 눈이 벚꽃처럼 내렸지만 만지자 녹아내린다. 손대지 않으면 꽃, 손대면 녹아버리는 눈과 같이 짧은 5분은 시공간의 왜곡을 친히 내게 영접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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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7. 00:26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44


얼마 전 시내 버스를 탔다. 10시간이 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기에 만사가 귀찮았다. 버스 안의 승객들도 추위가 피부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며,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열정이 흘러나가는 것을 막으며 기댈 곳을 찾고 있었다. 뒷문 앞에 서 있는 나는 멍하니 서서, '내 장갑의 색깔이 왜 이렇게 파랗지?' 따위를 생각하며 주억거리고 있었다. 동교동 삼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렸고, 이윽고 신호가 바뀌었다. 그때 서서히 출발하는 버스의 운전석 쪽에서 여자의 앳된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네. 정말요? 고맙습니다. 진짜 고맙습니다. 야, 나 합격했어. 진짜 포기하고 있었는데 합격했어. 어디에 합격한 것일까. 대학일까. 직장일까. 그곳이 어떤 곳이든 그의 목소리는 버스 안에 조용한 파도를 쳤다.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넘어오는 파도는 무거운 피로 대신 따스한 전율로 나를 씻어주었다. 어제와 다르고, 내일과 다른 오늘을 기억하기에 '합격'이라는 두 글자 만큼 크고 벅찬 단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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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0. 23:18 내 생각

인류 역사 진보와 장애인 2014.11.20. 


나는 인류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이다. 그 인류 역사 진보의 핵심은 기술 발전도 아닌, 우주 탐험도 아닌 인간 개인개인의 가치를 높였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노예'가 있었다. 노예라는 표현보다는 노비 혹은 머슴이라는 표현이 익숙하지만 그들의 처지는 노예였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살지 못했고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했으며, 자녀의 출생은 '재산 증식'으로 간주되었다. 제1차 갑오개혁(1894년)에 이르러서야 공사 노비제를 없애는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주인집에 '자발적으로' 남아 자유로인 노비를 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다. 남자 노비는 머슴으로라도 불렸지만 여자 노비의 경우는 그 이름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여자 노비의 경우에는 주인의 성폭행과 성추행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어미가 노비인 경우에는 남편의 지위에 관계 없이 노비 지위를 물려주는, 말 그대로 노비 생산 공장으로 밖에 대접받지 못했다. 
광복을 맞이한 이후, 각 개인의 권리가 중요 시 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연합국들로부터 받아들였지만 막상 나아지지는 못했다. 알다시피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손을 잡고 들어왔고, 민주주의는 광복 이후 몇몇 독재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인간 개개인의 가치를 높여가는 인류 진보의 역사 속에 간과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는 지에 따라 그 국가의 선진성을 척도로 삼는다면 적절한 기준이 될 듯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 역시 비용이 문제로 밖에 치환되지 않는다. 낙태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고, 태어난 이들에 대해서 당연히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어제 내가 올린 아이디어는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더욱 편하게 탈 수 있도록 하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이 아이디어를 들은 한 친구는 "장애인은 안내견이나 자원봉사자가 있지 않냐."라는 질문을 내게 했다. 물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적인 논리 뿐만 아니라 사람이 가진 '선의'를 베풀 수 있다는 점에서 성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매번 그 도움을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에서 받을 수도 없고 또 줄 수도 없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장애 제도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가는 것이다.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는 부분들을 혼자 해결해나가면서 사람은 성장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한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논의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나 통용된다.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탈지 택시를 탈지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지에 대해서 선택권을 넓혀나가야 그 장애인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권리도 아닌, 의무도 아닌 한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장애를 갖고 있다 해서 혜택이라 생각해서도 또 혜택을 준다고 생각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지금 인도 위에 서 있다면 가운데 노란 보도블럭이 보이는가. 그 보도 블럭은 시각장애인이 길을 혼자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지금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면 '저상 버스'라는 이름의 버스가 혹시 서 있는가. 그 버스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버스다. 지하철 역에 있다면 휠체어 리프트를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들 역시 장애인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인류 역사의 진보는, 노비 상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극적인 사건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역시도 제도로서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그 내용에 대한 학습과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허황된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인류 역사의 진보, 자유주의의 적용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장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잣대가 장애인에 대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왜 집 밖에 나와서 난리야?' 라던지 '누군가 반드시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길에서 장애인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소한 것들이라도 장애인들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 나가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할 때 그에 대해 도움을 주어야 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라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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