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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04.11 아픈 이유
  2. 2016.02.14 똥오줌을 싸지 않는 아이
  3. 2015.03.29 현우의500자_99
  4. 2015.03.09 현우의500자_93
2016. 4. 11. 17:07 내 생각

"아픈 이유"


어릴적부터 생일이 있는 4월이 되면 이유 없이 아픈 날이 있었다. 고열과 기침 그리고 어지럼을 동반한 아픔이었고, 그런 날이면 밤새 어머니는 내 옆에 앉으신 채 내 이마에 찬 수건을 올려주셨다. 아침이 되어 병원을 가면 의사선생님은 감기 몸살이라며 몇 일 분의 약을 처방해주셨고, 나는 그것을 생애 마지막 약인양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몇 일이 지나면 씻은 듯 나았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오늘(2016년 4월 10일) 시점, 이제 3일 동안 지속된 4월의 아픔에서 슬며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먹은 약에 수면제 성분이 있는지 지금 사실 좀 헤롱헤롱하기도 하고 멍하기도 하다. 하지만 무언가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이렇게 앉았다.


4월의 아픔에는, 이유가 있을까.


몇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환절기의 감기일수도 있고 한국의 학제상 3월에 시작한 새로운 학기에서 느낀 긴장이 4월이 되어 풀린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4월에 있는 내 생일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태어나며 아팠다는 어머니의 말씀. 낳을 때도 역아여서 목숨을 한 번 놓칠 뻔 했고, 태어나고 나서도 황달을 지난 흑달의 병세 탓에 병원에 다시 입원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몸에 남아 있는 듯 하다.


'태어남을 기억하라.'


몇 해 전 적은 글에,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메멘토 모리'가 아닌, 태어남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 세로'라는 말을 만든 적이 있다. 라틴어 타동사인 'sero'는 타의에 의해 태어나다 라는 뜻을 품고 있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결코 자동사가 될 수 없다. 누군가로부터 생명을 받아 태어난 존재. 그러니 태어남을 기억함으로써 우리가 누군가의 의지로부터 태어났다는 것과 가능하다면 그 태어남이 사랑으로 이뤄져 있기를 바랄는 마음을 기억하라는 뜻이었다.


아마도


내가 4월이 되면 아픈 이유는, 그런 탓이다. 4월의 봄꽃 피고 날 따뜻한 날, 나의 삶이 시작되었으니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를 내 몸은 아픔으로써 그것을 나에게 일깨워주는 듯 하다. 태어남을 기억해야겠다. 그것도 두 번으로 나눠어서 말이다. 4월 11일은 음력 3월 5일. 가족이 챙기는 내 생일이고, 4월 24일은 가족을 제외한 사람이 챙기는 내 생일이다. 두 번의 생일. 축하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태어났다는 것,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태어났다. 태어남을 기억하라. 사랑 속에 태어났을 그 때를 기억하라. 죽음은 태어남 이후의 일이니 우선 태어남 부터 확실히 기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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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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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14. 02:41 카테고리 없음

<똥오줌을 싸지 않는 아이> 2015.02.14. 소설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아이 한 명이 응급실로 실려왔다. 마침 오늘 당직인 나는, 수많은 응급환자들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었다. 오늘 따라 시내에서는 교통사고가 3건이나 났고, 다행히도 삶을 내 눈 앞에서 마감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삶을 끝내도록 하지 않겠다는 내 의지가 더 강했던 것은, 나름의 뿌듯함으로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아이가 실려오다니? 무슨 일이야?"

 

간호사에게 물으니, 한 아이가 아랫배를 움켜쥐고 사색이 되어 울며불며 있는 걸 발견한 아이의 친척이 상황이 위급하다고 생각해 응급실로 보냈다고 나에게 설명한다. 아이가 떼를 쓰는가 보다 하고,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가 누워 있는 침대로 갔다. 커튼을 젖히니, 울고는 있지만 간호사가 설명했던 것 만큼 크게 울지는 않지만 조용히 흐느끼고 있는 아이가 새우 마냥 굽은 채 누워 있다.

 

"얘야, 어디가 아프니?"

 

아이에게 조용히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아이는 아무 대답이 없다. 내 손에는 그저 흔들리는 어깨가 느껴질 뿐이다. 오래 동안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얇은 외투에 한기가 서려있다. 이렇게 해서는 아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듯 해, 목소리 톤을 한 톤 높이고 다정하게 묻는다.

 

"꼬마야, 어디가 아픈지 이야기를 해줘야 선생님이 너를 아프지 않게 해줄 수 있어."

 

아이 옆에 걸린 응급실용 차트를 보니, 아이 나이는 7살이다. 남자 아이이고, 장례식에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떄문이라고 특이사항에 적혀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유가 궁금했다.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묻기 위해, 아이를 잠시 두고 데스크로 나왔다. 아이의 어머니는, 급성 심장마비로 오늘 아침 아이에게 밥을 먹인 뒤 삶을 등졌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지금 시각이 새벽 3시를 잠시 넘긴 시간이다. 아이가 여태 자지 않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배를 잡고 울고 있다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 아이에게 가서, 왜 아픈지 물어보기로 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디 갔는지, 원 참. 요즘 젊은 부모란 아이들에게 참 관심이 없다.

 

환자용 침대 옆에 있는 간이의자에 앉아, 아이의 얼굴을 보며 앉았다.

 

"얘야, 선생님은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늘 슬픈 일이 있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어. 나도 참 슬프다. 근데 지금은 너가 아픈게 선생님은 더 슬퍼."

 

아이는 내 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하지만 흐느끼는 것도 멈추지 않았고, 자세를 편하게 바꾸지도 않았다. 다만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이야기를 해줄 수 없겠니? 선생님은 그냥 너의 이야기가 듣고 싶구나."

 

아이는, 순간 꾸물하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치켜 뜨며 나를 얼핏 바라본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했다. 나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교통사고 환자들은 1차 응급 처치가 다 끝난 뒤였고, 나도 조금 쉬고 싶기도 했다. 아이는 몇 분이 지나서야 입을 떼기 시작했다.

 

".. 화장실을 가고 싶었..어요.."

 

화장실? 순간 잘못 들은 것이라 착각했다. 7살이니 만큼 대소변은 스스로 가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화장실을 가고 싶다니. 따져묻고 싶었지만, 다시 잠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실을 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요."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갈 수 없다니. 장례식장에도 화장실은 있었고, 그런 문제라면 장례식장 주변에 친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언제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했다. 나는 다시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지금 여기 없었고,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선생님이랑 같이 갈까?"

 

아이는, 다시 찡그리며 하얗게 변해버린 얼굴로 고개를 가볍게 흔들어보였다. 무엇이 이 아이가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 의대를 다니면서도, 인턴, 레지턴드를 겪으면서도 이런 사례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화장실을 가지 못해 응급실을 온 사람이라면, 치질이나 대장 쪽 문제가 있거나 요로 쪽 문제에 의해 정말 '화장실을 가지 못한' 사람들 만이 의대 교과서에는 실려 있었다.

 

"왜 화장실을 가지 못할까? 선생님은 궁금하네~"

 

그러지 않으려 했지만, 살짝 빈정거리는 말투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아이에게 들키지 않기위해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천천히 이야기 해줘."

 

아이는 여전히 끙끙 앓고 있었지만, 내가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조금씩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똥하고 오줌 누면... 엄마가..완전히.. 떠날 것 같아요."

 

엄마가 떠난다니? 아이의 어머니는 이미 죽어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아이 역시 그 장례식장에서 이곳 응급실로 온 것이다. 이미 떠난 사람이 다시 떠날 수도 있는 것인가, 나는 조용히 앉아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해보려 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가 다시 말을 꺼낸다.

 

"엄마가 나한테 해준... 마지막 밥이었..어요..."

 

다시 아이는 감정에 북받쳤는지, 아니면 배가 너무 아파서였는지 크게 울기 시작했다. 달랠 겨를도 없이 아이는 고통의 사선을 넘는 듯 보였다. 나는 그때 이해했다.

 

아이는, 오늘 아침 자신의 어머니가 해준 마지막 밥이 소화가 되어 똥과 오줌으로 나오는 것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손길이 담긴 음식이었고, 그것이 자신의 몸 밖으로 나와버리면 정말 엄마와 헤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치료가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죽음이라는 것과 이별이라는 것을 최대한 쉽게 설명해야만 했다. 의사로서 지난 10년 간 배우고 겪었던 것 중 다행인 것은 죽음에 대해서 다양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일종의 초연함과 동시에 숭고함을 충분히 느켰다는 것이다.

 

"엄마는, 너가 이렇게 아파하는 모습을 지금도 지켜보고 계셔. 엄마는 지금 네 곁에는 계시지 않지만, 앞으로 너가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함께하실거란다."

 

아이는 찡그린 얼굴과 몸을 한 채, 여전히 고통스러운 얼굴이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엄마는, 용기가 있었던 사람이야. 사람은 누구나 한 번씩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진단다. 엄마는 사실, 그 용기를 준비한 것은 아닐거야. 하지만 엄마는 용기를 냈지. 그리고 그 용기가 지금 너에게 전해지길 바라고 계실거야."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이 아이가 다 알아듣는지는 알지 못했다. 혹시 그럴지도 모르니, 다시 설명해야 겠다 생각했다.

 

"엄마의 용기는, 너와 헤어지지만 너와 함께 할 것이라는 용기이기도 하고 또 네가 엄마 없이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용기이기도 해. 지금처럼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서 똥이랑 오줌을 싸지 않고 있다면, 내가 너의 엄마라면 참 슬플거야."

 

사실, 아이의 상태는 지금 당장 마취를 하고 관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아마 내가 설득을 성공한다 할지라도 아이는 방광과 대장 쪽에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분 만 더 진심을 담아보기로 했다.

 

"건강하게 있어야 해. 나중에 너가 다시 엄마를 만나러 가기 되기까지 넌 건강하게 있어야 해. 엄마는 헤어진 게 아니야. 엄마는 너가 용기 있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거야."

 

말을 이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 감정이 올랐다. 사망 시간 정도 알려주는 것이 전부였던 내가, 누군가의 죽음을 용기라 표현하고, 그 용기를 이어받기를 원한다니. 하지만 삶은 언제나 죽음 뒤에 있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쉽게 설명하지는 못해도 누군가 죽지 않으면 또 누군가 살지 못했다. 아이는 분명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을테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의 삶을 이어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니, 선생님이 도와줄게. 엄마랑 헤어지지 않을 수 있게 해줄게. 건강하게 해줄게. 그래야 엄마한테 웃으며 용기를 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바지에서는 오줌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엉덩이는 지금 내 쪽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아이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내게 슬며시 이야기를 꺼낸다.

 

"제가 행복해야 하나요? 그래야 엄마가 기뻐하나요?"

 

그렇다, 고 늦지 않게 대답했다. 아이는 죽음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보다 행복에 대해서 받아들인 듯 했다. 지금의 상황은 누가 보나 불행이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의 상황은, 더 이상 불행한 상황이 무엇인가 찾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 죄송해요.. 도와 주세요.."

 

아이가 도와달라 말하자 마자, 나는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는 준비했던 링거를 아기의 머리 위 걸이에 걸었고, 그 안에 소량의 수면제를 넣었다. 그리고 깨끗한 어린이용 환자복 바지를 준비해 오도록 했다.

 

아이는 이미, 마음이 풀린 듯 했다. 응급실에는 아이가 눈 똥 냄새가 가득했지만 이미 잠이 든 아이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아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굳어 흰 가루가 묻어 있었다. 눈꺼풀에는 채 마르지 못한 눈물이 흔들리고 있었다. 동공이 바삐 움직이는데,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 했다. 아마 꿈 속에서 엄마를 찾고 만나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처리가 끝난 뒤, 어린이용 환자복 바지를 입고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언제나 슬픈 일이다. 연인과의 헤어짐, 친구와의 헤어짐, 가족과의 헤어짐.. 헤어짐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슬픈 헤어짐이란 언제나, 돌이킬 수 없는 죽음 그것이었다.

 

소중한 것과 헤어질 때, 그것은 더욱 슬프다. 하지만 헤어지지 않는 것은 어느 하나도 없다. 아이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비록 똥과 오줌이지만 그것은 이 세상 어느 똥과 오줌보다도 큰 의미가 있었다. 아이는 그것에, 제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담은 것을, 품고 아프고 눈물 흘렸지만,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어머니라는 소중한 것과의 헤어짐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던 것이다. 방법은 다소 잘못된 것이었어도 말이다.

 

아이가 잠든 뒤, 아이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아이와 많이 닮은 얼굴이라, 아버지라는 설명도 필요하지 않은 정도였다. 간략히 아이의 상황과 내가 했던 이야기들을 설명했다. 그리고 따지듯 물었다. 어디 계셨던 거냐고.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며 이야기했다. 아내를 잃은 것이 믿겨지지 않아, 장례식장에 있지도 못했다며 집에서 아내를 찾고 또 찾았다 했다. 이미 병원으로 실려간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았고, 병원보다 먼저 집으로 찾아가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한다. 아내의 옷가지를 품고 울다 실신한 뒤, 뒤늦게 남편을 찾은 또 다른 가족이 깨웠다 했다.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어도, 소중한 이와 헤어지는데에는 선수가 없다 싶다.

 

누군가 오늘도 헤어지겠지만, 그 헤어짐이 영원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의사로서 할 도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바라본다. 그리고 헤어지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기를. 헤어지는 사람도 헤어진 사람도 그 용기 모두 갖고 있기를 간절히, 다시 간절히 바랄 뿐이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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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9. 22:17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99


친구들이 집에 모였다. 우리집이 궁금하다 하기도 했고 내가 직접 만들어주는 한국 요리도 먹어보고 싶다고 하기에 초대했다. 적게 잡아도 20명이 넘는 친구들이 교수님 한 분까지 모시고 우리집을 방문했다. 떡볶이, 탕수육, 김치 계란말이 등을 만들었고 함께 맥주를 마셨다. 따뜻한 시간을 보낸 후, 입가심으로 먹을 과일 통조림을 따기 위해 다시 주방에 갔다. 따개가 없어 칼로 통조림 위를 톡톡쳐가며 땄다. 술기운 탓에 쉽지 않았다. 그러다 손이 삐끗, 했다. 뚜껑의 날카로운 부분에 왼손 엄지 손가락이 베였다. 꽤 깊이 베였는지 피가 포물선을 그리며 뿜어 나왔다. 화장실로 달려갔고 수건과 휴지를 사용해 지혈했다. 하지만 피가 멈출 기미가 없자 집 주위의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일본인 친구들이 같이 가자 하였지만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괜찮다고 하며 홀로 병원을 갔고, 마취 후 혈관을 지져 지혈했다. 움푹 페인 작은 흉터가 남았다. 들여다 보아야 볼 수 있다. 아프고도 그리웁는 그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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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9. 06:33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93


태어나자 마자 몇 달을 울었다고 했다. 밤낮 없이 울어, 나를 낳으시곤 몸을 풀어야 했던 어머니께선 밤을 샐 정도로 나를 업고 옛 집 마당을 걸으셨다 했다. 그러던 어느 오후, 매일 울던 나의 얼굴을 옆집 할머니께서 보시더니 내 얼굴이 왜 이렇게 노랗냐며 병원을 가보라 하셨단다. 그제서야 병원을 찾은 부모님은 내가 황달을 넘어 흑달이 되었다는 의사의 진단을 들으셨단다. 발목까지 황달기가 내려와 조금만 더 늦었으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나는 바로 입원했단다. 두 달 간 병원에 입원해 간의 회복을 위한 치료를 받았단다. 아버지께서는 조선소 노동자셨는데 일을 마치시고 돌아오시는 길, 매일 들러 눈을 가리고 있으면서도 발을 꼼지락 거리고 있는 나를 보며 앞으로 울지 못할 정도라 생각할 정도로 우셨다 한다. 당시 어머니 나이 28살, 아버지 나이 27살 때였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를 훌쩍 넘겼다. 걸음과 눈물에 답하고 있는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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