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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7.01.18 일상에 산다
  2. 2016.04.19 여드름 자국
  3. 2016.04.18 티 없는 순수함
  4. 2015.04.12 나에게 바란다_3
  5. 2015.03.01 현우의500자_88
2017. 1. 18. 11:24 내 생각

일상에 산다

 

사당의 한 술집에서 시비가 붙은 일이 있었고, 몇 일이 지났다. 시비 자체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것은 없다. 그저 어리고 안타까운 영혼들이 술이라는 악마의 피를 마시고, 괜한 사람에게 자신의 더러움을 퍼부은 것. 그 정도의 술회를 갖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도, 화날 일도 없다. 어이가 없을 뿐. 그러나 몇 가지 느낀 바 있다.

 

더러움은 묻지 않았다. 내가 티 없이 깨끗하였다면 더러움 묻었을 것이나 그렇게 깨끗하지 않아 술집에서의 시비정도, 묻어도 묻은 티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양아치들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 아니다. 살면서 몇 가지 잘못을 했고 그것을 반성하며 살고 있다. 누구, 잘못하지 않은 자 돌을 던져라. 순수하지 않기에 더욱 더러워지지 않고, 더더욱 상처받지 않는다.

 

그리고 일상.

 

더러운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복귀할 일상이 있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건 더러운 일 뿐 만은 아니다. 슬픈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일상이 있다는 건 소중한 일이다. 화나는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일상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나아가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쁜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일상이 있다는 건 필요한 일이다. 순간의 감정 변화가 삶 전체를 바꾸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감정의 충동은 일시적이라도 삶의, 일상의 주인은 나여야 한다는 것. 나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참는 것이 아니다. 이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삶 전체에 티끌 하나, 그것이 그림 전체를 망치게 두지 않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가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새 그림을 그릴 수는 없고, 포기할 수도 없으나 뭐, 아직 그릴 공간이 남았고 그 그림 그리는 일상. 그것이 소중하다는 것.

 

언젠가 적었지만.

 

비가 내려도 바다는 여전히 짜다. 파도가 쳐도 바다는 여전히 짜다. 시련은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 시련이지도 않은 것들은 하물며. 헛헛, 웃으며 일상에 있다. 일상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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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9. 00:31 내 생각

여드름 자국

 

중학교 시절까지 단 하나도 나지 않던 여드름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내 얼굴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춘기가 되면 누구나 나는 것이라 생각해 내버려두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선 배 밑에 베개를 깔고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양손을 얼굴에 대고 여드름을 상처로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드름을 무던히도 열심히 짰던 기억이 선명한 것은, 그 사소한 실수가 지금까지도 내 얼굴에 남아 있다는 것을 매일 거울을 보며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하얀 고름이나 유분기가 ’-이 소리는 실제로 난 소리는 아니고, 마음 속에서만 들렸던 소리다-소리를 내며 거울에 튀겼고, 나는 더욱 힘껏 여드름을 손으로 꾹꾹 눌러 피가 나도록 했다. 몇 번의 반복된 동작 끝에 내 얼굴에는 여드름의 기미는 사라졌지만 불긋한 상처와 딱지들이 남았다. 상처가 나으면 예전의 피부도 돌아가겠지- 하는 착각. 이 있었다. 그때는 그 사소한 행동들이 이후의 내 얼굴의 한 특징이 될 줄 알았을리 없다.

 

나에게는 익숙해졌지만.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익숙해지지 않는 듯 했다. 대놓고 내 피부를 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내 피부 상태를 보고, 나 자신을 관리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기는 듯 했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것은, 내 눈을 보지 않고 묘하게 피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적어졌지만 과거에는 꽤- 많았다.

 

상처가 남았다.

 

여드름 흉터로 인해 상처가 남은 것은 내 피부였지만,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나 사소한 놀림-예를 들어 달의 표면 사진을 보는데, 네 피부가 생각났다.’ 라던지, ‘좀 씻고 다녀라라던지- 에 의해서 마음에도 상처가 남았다. 피부의 치료를 위해 피부과를 다녀보기도 했지만,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내가 익숙해진 만큼 크게 신경쓰지 않는 시간들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예전의 중학교 친구가 생각났다. 오른손이 있을 자리에 항상 붕대를 감고 다녔던 친구. 그 친구는 혈관기형으로 손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했다. 자신과 같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기 위해 한의사가 되고자 했었는데,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친구는 손이 없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불편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는데, 그 시선탓에 굳이 감지 않아도 될 붕대를 감아야만 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혐오스럽다며 언짢은 표정을 자주 지었다고 했고 자신도 그런 피해를 남에게 주고 싶지 않다 했다.

 

손과 피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용도와 이질감이 덜 드는 쪽은 피부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다르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그 결과는 같을 수도 있다.

 

이질감.

 

티비를 틀어보면 피부 미끈한 사람과 손 두 개인 사람들이 나온다. 심지어 예쁘고 잘생기기까지 했다. 굳이 티비를 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도 관리 잘된 피부를 갖춘 사람을 꿀피부나 피부 미녀/미남이라 칭송하기도 하고 매력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손이 없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저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편하게 만들어내어 관리복지의 대상으로까지 만들어 버린다. 그 원인에는 이질감이 있다. 누가 만들어낸 기준이고 평균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은 피부가 미끈해야 하고 손은 두 개, 발도 두 개, 눈도 두 개 등등 다양한 평균적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이질적인사람이 되어버리고,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복지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다르다는 것의 아름다움.

 

나는 비록 내 실수로 인해 그리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여드름 흉터가 생겼지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를 가진 사람은 대부분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내 실수로 지금의 피부가 되었지만, 나는 내 피부가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저 내 피부는 남과 다를 뿐이다. 장애 역시 그렇다. 그저 그 한 사람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안될까. 개성이면서 일상 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부족한 사람에게 부족하다 비난할 것이 아니라, 부족하니 사회에서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러게 된다면 다름은 개성으로 굳혀지고, 그 개성은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하나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든 드러나지 않는 것이든, 다시 말해 신체적인 것이든 정신적(혹은 심리적)인 것이든 불편함과 다름을 안고 산다. 마치 현재 모든 인류의 공통점이라 할만한 불편함과 다름을 이질적이라거나 비정상이라고 낙인찍는다면 이 세상 누구도 정상은 없다. ‘정상평균이라는 것의 틀을 벗어나야만 모든 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지 않을까.

 

피부 나쁜 것도 장애가 있는 것도, 마음이 아픈 것도, 몸이 아픈 것도 또 그 어느 한 곳 아프지 않은 것도 그저 그 사람이 가진 개성이고 다름이 되기를. 불편하더라도 스스로가 변하길 원치 않으면 마음 깊이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나만의 욕심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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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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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8. 00:47 내 생각

"티 없는 순수함"

 

20대 초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고백했다. 단 한 번 만난 사람에게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고, 몇 해를 걸쳐 만난 사람에게도 그랬다.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기보다 그렇지 않으면 가슴 속 어딘가가 아팠다. 마음은 결코 물질이 아니라는 말이 거짓이라 확신했던 순간들이 이어졌다.

 

어찌 보면 고백을 남발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단 한 번의 고백에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적은 없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진심의 순간을 빨리 느낀 것 뿐이었다. 확신에 찼던 내 감정과 진심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버렸지만, '고백하지 말걸' 이라는 후회는 결코 들지 않았다.

 

30대가 되어, 사랑 고백에 대한 달콤한 이야기로 회상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10 여 년 전 감정들에 섞인 이물질을- 당시에는 보지 못한- 지금에서야 확실히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물질.

 

그 이물질은, 내가 고백했던 대상들에 대한 무한한 이상화였다. 이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은 적이 없기를 바랬고 슬픈 영화를 보아도 그 슬픔이 마음에 남아있지 않기를 바랬다. 힘든 일을 마주함에 있어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굳건한 마음이 언제나 있길 바랬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이물질이었다. 그리고 앞선 잘못된 생각과 함께 가장 내 마음에 큰 이물질로 남았던 것은 "내가 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더럽힐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아무리 깨끗한 옷을 입고 있어도, 손을 깨끗이 씻어도 나와의 관계나 감정으로 인해 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고, 그 사람의 마음을 더럽힐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생각은 흔한 말인 자괴감과는 달랐다. ‘상처받기 싫어라는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과 동시에 나의 단점을 이 사람이 알게 되면 안되는데.’ 하는 불안함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그래서 차일 때, 안도감이 들었다.

 

누군가 또 한 명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되었다는 생각과 나 역시 상처로부터 지켜졌다는 생각이었다. 틀린 생각이었고, 이물질이었다. 이 세상 누구도 티 없는 순수함을 갖고 있거나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도 순수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살아오면서 겪어야했던 어려움과 느껴야했던 상처들을 품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 당연한 사실들을 품어내고 보살피고 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에게 상처 받은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그 상처를 그대로 두면서도 더욱 넓은 마음으로 상처를 작은 것으로 여길 수 있었다. 실수를 저질렀던 이들은 실수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지 않으려는 고난한 노력을 해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라는 큰 틀 속에 고이 담아두었던 것이다.

 

사람을 만나 그림자를 보았다. 그 그림자의 색깔은 검지 않고 어두웠다. 새까만 것이 아니라 회색과 하얀색도 섞여보였다. 다양한 색을 띠고 있는 얼굴과 옷, 신발에 이어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지만 그림자에도 밝음은 보였고, 그림자는 있다가도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은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티 없이 순수한 사람은 없다.

 

내 결론이다. 자신의 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이왕 때가 묻었으니 더욱 때를 묻히며 살자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상처를 가졌음에도 혹은 자신의 마음이나 성격, 태도 등에 부정적인 것이 있음에도 그것 또한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싫어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어두운 면을 보이고 싶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보이게 된 어두운 면을 미안해 하지만,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에 자신이 결코 하찮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마냥 좋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있다. ‘티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티 없이 사람이 되려하기 보다 티 있어도 그 티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 상대방의 티를 품어내는 사람, 더욱 많은 티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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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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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12. 01:30 내 생각

'내가 성공해서 꼭 복수할거야.'

흔히들 하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들 혹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자신의 성공한 모습으로써 복수를 하겠다는 이야기.

하지만 전 이런 복수에 다소 측은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며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상처의 크기가 작든 크든 관계없이 누구나 상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상처들의 대부분은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친했던 친구의 배신과 믿었던 연인의 변절 혹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연유한 자기실망까지 말입니다.

이런 다양한 상처들에 모두 '복수'로 응한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요? 그야말로 복수로 점철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나의 성취는 복수를 위한 처절한 와신상담의 과정이 되어버립니다.

복수를 하지 말자라는 말이 결론일까요?

아닙니다. 복수는 분명 부정적이긴 하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부정적이나마 긍정적인 효과도 있는 셈이지요. 그렇기에 복수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면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복수해 보세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복수란, 과거의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 혹은 실언,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던 상처들에 대해서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줄여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도 없기 마련입니다.
복수의 대상을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만 설정해보세요. 그럼 어제 보다 나은 자신을, 1년 전보다 나은 오늘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는 내버려두라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내 탓이오'라는 자기책임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상처들을 혹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범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진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성공해서 복수하겠다는 말, 마음껏 해도 됩니다. 하지만 그 대상은 자기 자신에게만, 어제의 나에게, 1년 전의 나에게 집중하도록 하세요. 자기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과 실수, 상처줌 등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룩된 성장은 자신을 더욱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내가 나에게 상처주지 말기를, 내가 타인에게 주었던 상처에 대해서 미안해 하기를, 남에게 복수하기 위한 삶을 살며 내 삶을 수단으로 삼지 말기를,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내가 되려 노력하기를, ‪#‎나에게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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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 09:28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88 


공익근무요원이었다. 해군에 입대하고 나서야 내 시력이 군대를 갈 수 없을 만큼의 시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합병원에서 병사용 진단서를 떼어 보아도 결과는 같았다. 공익요원 판정을 받고 4주 간의 훈련 이후 내가 배치된 곳은 아동양육시설이었다. 부모가 버린 아이들이나 학대 받던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다양한 일을 했다. 차량 운행 및 관리, 학습 지도 그리고 식사 준비가 내 업무 중 하나였다. 그날은 마늘 쫑대 볶음이 반찬으로 나가는 날이었다. 마늘 쫑대를 물에 데쳐 그것을 한 번 씻어 내고, 다시 볶아야 하는 음식이다. 마늘 쫑대를 물에 데치고 그것을 옮기려는데 손잡이 부분이 갑자기 헐거워졌다. 뜨거운 물이 내 왼쪽 허벅지 쪽으로 쏟아진다. 데친 마늘 쫑대를 버리지 않으려 싱크대 위에 냄비를 재빨리 올려 놓았다. 그리고 나서 다리에 냉수로 바지를 흠쩍 젖을 만큼 열을 식혀보아도 몇 일이 지난 후 큰 화상으로 남았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내가 받은 상처 모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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