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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4.17 어리석은 질문
  2. 2016.04.11 59초
  3. 2014.09.19 만남 자체만으로.
2016. 4. 17. 20:13 내 생각

어리석은 질문


운전면허를 갓 따고 운전에 재미를 붙여나가고 있던 20살이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아버지로부터 운전을 하나씩 배웠기에, 말 그대도 실용적인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운전 면허 시험장 코스는, 떨어져가며 한 코스씩 한 코스씩 익혀 나갔다. 몇 번의 낙방 결과 운전면허를 손에 쥐게 되었으니 그 재미와 기쁨은 크디 컸다.


택시를 탈 일이 있었다.


운전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시기였던 만큼 매일 운전을 하시는 택시기사님은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하다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택시 기사님께, 20살의 천진난만함을 담아 물었다. 기사님께서는 이렇게 재미난 운전을 매일 하시니 참 좋으시겠어요. 기사님께서 나를 슬쩍 보시고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뭐든 처음에는 재밌는데, 그게 먹고 살 일이 되면 재밌지 않아요.


그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재미가 없어지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들 힘들게 운전면허를 딴 만큼 이렇게 운전을 하는 것 자체가 재미가 없을리 없다는 일종의 근거 없는 확신도 들었다.


그러고 시간이 꽤 지나,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할 때 였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점심과 저녁 시간을 포함해 약 10시간을 운전을 해야하는 업무가 이어졌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아메리카노와 담배를 물고 살았던 당시였다. 서울의 구석구석과 경기도라는 것만 알고 있던 평택 등을 직접 왕복하며 이틀에 기름 한 통을 비우며 운전을 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운전이 재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해야했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내 생활비와 조금씩 모으는 저축을 위해 필요했다. 다른 재미난 일을 하는 것을 찾을 시간도, 여유도 없었고 밤만 되면 피곤해서 쓰러지기 일쑤였다. 운전은 재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고, 생계라는 항목 속에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다.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20살의 내가 택시기사님께 했던 질문은, 살면서 경험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지를 모르는 내가 던진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쉽게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때로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론 매우 쉬워보이기도 한다. 힘들어 보이는 일들도 많은 것은 당연하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에 사람들은,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길 원한다. 간접경험도 경험일 수 있지만, 실제로 겪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많은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 뿐이다.


경험을 직접적으로 하든, 간접적으로 하든 그 경험을 통해서 얻어야 할 것은 경험 뿐이면 안되지만, 결국 경험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험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해야 한다. 타인의 경험을 읽거나 들으며 나의 경험이 될 수도 있었을, 혹은 운 좋게 피할 수 있었던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20살 때, 운전에 재미를 느꼈던 나는, 택시 기사님의 삶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하지 못했다. 이후 운전을 하지 않다가 운전이 삶의 큰 부분으로 들어왔을 때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내가 바보 같고 어리석은 탓일 수 있겠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내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단지 경험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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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1. 17:04 내 생각

"59초"


할머니 생신이었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할머니께서는 깨어있으실 것이 분명해 전화를 드렸다. 여보-세요.(할머니께서는 '보'를 길게 발음하신다.) 할매, 해눕니다. 아이고. 해누가? 예. 오데고? 서울입니다.


'아이고. 서울에서 전화했나?'


예. 할머이, 생신 축하드립니더. 그래. 서울 먼데서 전화를 다 했나.


할머니께서는 아직 옛날 시외전화 시절의 기억이 있으신가 보다. 매년 생신이 되면 전화를 하는데, 서울에서 전화를 걸었으니 빨리 전화를 끊어야 한다는 투의 말씀이시다. 아침 식사는 하셨는지, 편찮은 데는 없으신지 물어도 보고 해도 끊고 난 전화에는 59초라는 짧은 통화 시간이 무심하게 반짝이고 있다.


작은 손자, 해드릴 건 전화 한 통 밖에 없어 죄송한 마음 뿐이다. 명절 마다 내려가서 찾아뵈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며 손을 꼭 잡으신다. 할머니 댁에서 나오는 길, 우짜든가 공부 열심히 해라- 말씀하신다. 나는 알겠슴니더- 오데 아프시지 마이소- 하며 조그만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마음이 전해지는 거리는 서울-마산도 가깝다. 가깝다 못해 죄송함에 심장 한 켠이 찬 바람 맞은 듯 하다. 작은 손자, 얼른 자리 잡아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고마움 갚을 사람이 많다.


잠시 차가워졌다가도 다시 열을 올려 마음 다잡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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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9. 01:22 카테고리 없음

만남 자체만으로. 2014.9.19.


서울에 살면서 종종 마주치는 사람들은 '여행자'. 여행자의 손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나라 언어로 적힌 지도나 관광 책자가 들려있기 마련이니 알아차리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한글로 된 간판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당신의 나라에는 팔지 않는 여러 음식을 먹으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면 '여행'이라는 시간은 일상보다 몇 배의 가치가 더 있는 듯 하다.

 

그러다 가끔, 지하철이나 큰 대로변에서 지도와 건물, 건물과 친구의 얼굴, 친구의 얼굴과 자신이 마주한 어려움을 번갈아보며 헤메이는 여행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부부같아 보이는 사람도 있고, 친구들인 듯한 사람도 있고 혼자 온 사람들도 있다. 무언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을 알아보는 신호는 그리 약하지 않아 언제나 항상 내 레이더에 포착된다. 급한 일이 있거나 일행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곤 내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간다.

 

올해 1월 초였다.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일을 할 당시 일을 마치고 연희동의 집을 알아보러 3시간 여를 발품을 팔며 돌아다녔다. 집을 알아보는 것은 결코 추운 겨울에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 계기가 되었던 시기다. 집 없는 것도 서러운데 추우니 더욱 서러웠다. 당시 살았던 신림동 고시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 2번 출구로 들어가 왼쪽을 돌면 개찰구가 있다. 개찰구를 돌기 직전에 2번 출구를 나오면 만나는 세상에 대한 안내가 담긴 지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일본인 노부부가 서계셨다.

 

호텔 주소인 듯, 하얀 종이에 카타가나가 가득적힌 글자들이 보였고 지도와 자신들이 가져온 주소를 연신 비교해 보았지만 장소를 알 수 없는 듯 보였다. 스쳐지나가며 들어보니, 도쿄 표준어가 아니었다. 도쿄 표준어가 아닌 바에야 나는 어느 지역 출신인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인인 것은 확실했고 그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것도 '거의' 확실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제가 일본어를 할 줄 압니다. 지금 가시려는 곳이 어디신지 알려주시면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코반(길을 알려주는 파출소와 같은 곳)'과 같은 곳에 데려다드리겠습니다.' 알아들으신 듯 했다. 별 말씀 없이 고맙다고만 하신다. 주소를 보니 내가 모르는 장소다. 홍대 근처에는 게스트하우스도 많고 소규모 호텔도 많다. 호텔이라고 적혀 있기는 하지만 작은 빌딩 하나인 경우도 있고, 유스호스텔은 일반 가정집을 리모델링한 것이 많으니 내가 알 수 없는 곳들이 많았다. '파출소로 데려다 드릴게요. 그럼 그곳에서 경찰관들이 아마 길을 알려주실 겁니다.' 다시 고맙다고 하신다.

 

연남동 파출소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일을 마치고 난 뒤 세 시간을 추운 곳을 돌아다녔기도 했고 집 없는 서러움에서 흠씬 빠져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살던 나라와 다른 나라, 낯선 곳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당황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분 정도를 걸어 연남동 파출소에 도착했고, 노부부가 가지고 있었던 주소를 경찰관 여러분들께 읽어드리자 ', 거기 알아요. 데려다 줘서 고마워요.'라고 하신다. 노부부는 사투리를 쓰시며 고맙다고만 하신다. 아마 호텔에 잘 들어가셨을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행자의 당황은 나에게도 찾아왔고, 나는 오늘 그것을 적기 위해 글을 쓴다.

 

얼마전 상해에 갔다. 여행을 간 것은 아니지만 오후 시간과 저녁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에 여행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자의 시간이란, 새로운 것에 기쁨을 느끼고, 익숙한 것에 새로움을 느끼고 다른 것에 신기함을 느끼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혼자 걷기'인데 때로는 심심할 때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진정한 '자유'를 느끼며 걷는다. 상해에 왔으니 와이탄에 가보아야 했다. 상해의 야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일 뿐만 아니라 옛 프랑스와 독일의 조계지였던 곳이라 옛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 고풍스러움이 이루 말할데가 없는 곳이었다. 상해박물관에서 나와 이리저리 길을 물으며 와이탄에 가보기로 했다. 와이탄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아주머니와의 대화는 따로 기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나와 영어를 하지 못하는 아주머니는 약 20분 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이 또한 좋은 경험이지만 이 글에서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은 내가 와이탄에서 호텔로 돌아가고자 했을 때 만난 사람이다.

 

밤이 늦었고, 나는 호텔로 돌아가야겠다 생각했다. 황푸강을 건너야 하는 곳에 호텔이 있었으므로 나는 걸어갈 수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지만 버스를 타는 곳이 어디인지 지하철을 타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묻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니 영어로 물을 수 밖에 없다. 마침 길을 지나는 젊은 사람에게 영어로 길을 물었다. 손사레를 치며 그리고 웃으며 나를 피한다.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니 청년 남자 한 명과 여자 3명이 이야기를 하며 지나간다. 나는 남자 청년에게 다가가 영어를 할 줄 아는지를 물었다. 다행히 영어를 잘했다. 내가 지금 가야 하는 곳을 알려주니 자신도 그곳으로 가는 대중교통을 모른다 한다. 그리고선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그리고서 나에게 전화를 바꾸어 주며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말하라 한다. 알고보니 교통을 알려주는 전화랄까, 서울의 '120'과 같은 기능을 하는 전화다. 영어도 가능하니 매우 편했다.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호텔로 향할 수 있는 버스 노선을 알려준다. 내가 전화를 받을 동안 청년 4명은 기다리고 있다.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자 남자가 괜찮다고 말해준다. 고마웠다.

 

버스를 어디서 타야되는지도 알았고, 몇 번을 타야하는지도 알았지만 정류장 이름만으로 내가 그곳을 찾아갈 순 없었다. 그러나 청년이 내게 같이 정류장으로 가자고 한다. 자기도 그곳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며 같이 가잔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중 여자 한 명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남자 1명과 여자 2명이 나와 함께 걸었다. 버스 정류장에 가는 길에 여자 두 명이 길가에 세워져 있던 차에 탄다. 그때 남자가 뒷문을 열어주었다. 다시 걸으며 금방 차는 누구의 차냐고 물으니, 여자 2명 중 한 명의 아버지의 차라고 말해준다. 나는 다시 궁금해졌다. 왜 차 뒷문을 열어주었냐 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 청년이 하는 이야기. '그 두 명 중 한 명을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자 했단다. 좋은 'face' 를 남기고자 했다는데, 알고보니 중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멘쯔(面子)‘를 의미하는 말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한테 좋은 이미지를 남겨야 한다고 했다. 둘 중 누구냐고 물었더니 차를 태우러 온 아버지의 딸이었고, 내가 봐도 귀염성을 가진 얼굴의 여자였다. 흐흐흐. 나는 웃었다. 그러자 청년이 웃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오지 않는다. 10분 여를 기다리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 청년의 이름은 프랭클린이다. 그리고 이 청년은 건축학을 전공했고 상해에서 태어나 상해에서 살았다. 지금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 회사의 대표는 나와 같은 나이이다. 자신은 88년생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는 90년생이라 한다. 그리고 내가 듣기론 상해 여자가 남자 보다 기가 세다고 하는데, 사실이냐 물으니 그건 사실이 아니란다.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서 잘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것은 기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라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음에도 버스가 오지 않자 이 청년이 내게 택시를 태워주겠단다. 상해에서 택시는 그리 비싸지는 않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택시를 태워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택시를 타는 것이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았기에 나도 택시를 타고 올 수 있었지만 이 청년의 마음을 받기로 했다. 택시를 잡으려니 이제 택시가 또 오지 않는다. 몇 분여를 기다려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황푸강 바닥을 건너 호텔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호텔 입구에서 둘 다 택시에서 내렸다.

 

내가 물었다. 같이 내려도 되는거냐. 그러자 괜찮다고 한다. 자기는 다시 돌아가는 버스가 있단다. 내가 다시 물었다. 내게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택시까지 태워줄 것까지 없지 않았냐. 그러자 상해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싶단다. 상해에도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이 있고 좋은 곳이라는 이미지를, 즉 멘쯔를 남기고 싶단다. 고마웠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 내가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이 청년, 프랭클린이 악수하고 싶지 않단다. 그 대신 안기를 청했다. 호텔 입구에서 나와 플랭클린은 10초 정도를 안고 있었다. 서로 팔을 풀고 나서 내가 왜 악수말고 안아보길 원했냐고 물었다. 우정을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고마웠다. 헤어지기 직전, 내가 프랭클린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그녀를 꼭 잡아.” 프랭클린이 웃는다. 환한 손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내가 오늘 이 글을 통해서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은 프랭클린이다. 아마 지난 상해에서의 2주간의 시간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좋은 이미지를 남긴 사람이다. 이미지 뿐만 아니라 좋은 추억과 생각 그리고 중국에 대한 매력마저도 느낄 수 있게 한 사람이다.

 

서울에 있으니 여행자를 많이 만나게 된다. 여행자는 손님이다. 손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마음이다. 나는 따뜻한 마음을 주었다고 다시 그 따뜻한 마음을 다른 누군가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선의는 선의로 돌아오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 상해에서의 프랭클린과의 만남과 그와 나눴던 대화 그리고 여행자에 대한 마음 씀은 내가 이제껏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을 내가 느낄 수 있도록 하였기에 기쁜 마음을 받아들였다.

 

언젠가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것이다. 그가 가진 기억과 내가 가진 기억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지만, 한 가지 서로 함께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기억은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 이 한 가지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만남그 자체가 좋은 기억으로 남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본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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