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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9.28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2. 2016.03.31 37점
  3. 2016.03.29 샤프를 쓰지 못한 이유
2016. 9. 28. 22:25 내 생각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애석하게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올라갈 때 시험을 본 마지막 세대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내가 살던 경남 마산지역에서는 2000년을 마지막으로 '연합고사'가 폐지되었고 그 이후에는 중학교 내신성적 만으로 고등학교에 배정받아 들어갔다. 나와 같은 시점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내신과 연합고사 모두가 반영되는, 걸쳐진- 다시 말하면 재수 없는 시절의 친구들이었다.


 

연합고사가 중학교 3학년 말에 있다 보니, 3의 시작은 고3만큼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비장한 느낌이 돌았다. 실질적으로 학교에서 배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다 배웠다. 그리고 중31년 간은 문제집을 교재로 하여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풀거나 한 달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 번씩 지속적으로 있는 사설 모의고사를 풀어나가는 압박의 연속이었다.


 

모의고사는 말 그대로 모의고사였다. 학교 성적에 반영되지도 또 고등학교를 들어가는 연합고사에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당시만 해도 체벌이 너무도 당연했으므로 모의고사 '점수 하락'은 곧 '매 타작'을 의미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교육에 대한 철학도 있으시고 합리적인 분이셨지만, 성적에 있어서는 엄격했다. 그래서인지 교실의 밀대 자루는 수시로 교체되었고, 새로운 밀대자루를 사야하는 몫은 그 밀대 자루로 맞다가 부러뜨린(?) 친구의 몫이었다.

 


맞기 싫다는 이유로, 같은 반 친구 몇몇(혹은 많은)은 모의고사를 치르는 중에도 컨닝을 했다. 애초에 모의고사인 만큼 선생님께서는 문제지를 나눠주신 후 크게 감독에 신경을 쓰시지 않읫고, 교실을 나가셨기에 컨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양심 뿐이었다. 하지만 중3의 친구들은 그 양심의 참으로 얕았고 또 동시에 습자지처럼 얇아 언제나 바닥이 보였고 또 쉽게 훼손되었다.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교실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었다. 서로 답을 훔쳐보기에 바빴고, 그러던 사이에서도 답을 너무 많이 맞히게 되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 일부러 몇 문제씩은 틀려(?) 가며 시험이 끝난 후 몇 대를 맞을 것인지를 스스로 조율했다.

 


나는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컨닝을 하지는 않았다. 맞기 싫어서 라기 보다 굳이하기 싫었던 것이 가장 컸다. 어차피 모의고사였고, 점수가 떨어져 맞는다면 그것 또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그 당시에는 생각했다. 또 나름 목표한 고등학교가 있었기에, 실전처럼 열심히 해보고자 했던 마음도 있었다. 물론 모의고사는 '너무' 자주 있었지만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모의고사가 끝나면, 우리 교실뿐만 아니라 전체 3학년 교실이 장례식장이 된 듯 했다. 적막한 즈음, 선생님께서 답안지를 들고 들어오셔서 그것을 나눠주셨다. 자기 시험지를 자신이 메기면 틀린 것도 맞다고 할 수 있기에 무작위로 친구의 시험지를 메기도록 했다. 모든 답을 메기고 난 뒤, 자신의 것을 찾아든 아이들의 표정은 한 명도 밝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회초리(라고 적기에는 두꺼웠지만.. 사실은 몽둥이)를 우선 교탁에 올려놓으시고, 자신의 직전 모의고사 점수와 이번 모의고사 점수를 함께 종이에 적어 교탁 위에 올려놓으라 하셨다. 아이들은 자신의 사망선고를 하는 유령 의사처럼 하나씩 그 종이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이후는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다. 몇몇은 울며 맞으며 빌었고, 몇몇은 부들거리면서도 참았고, 극히 소수 몇몇은 고개를 숙인 채 이번에는 맞지 않았음을 안도했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모의고사를 치르고 맞기 싫다는 그 욕망으로, 맞는 것을 피하고 싶어 노력했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누구든 몇 대는 맞기 마련이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완벽히 벗어났다고 할 사람도 또 다른 실수를 했다. 그때에도 생각했고, 2016년 지금도 생각하는 것이 있다.


 

잠시의 고통을 잊기 위해 진정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망각하고 현재에만 매몰되어 버리면, 전체가 무너져 버린다.

 


그 무너져 버린 어떤 것이란, 중학생 시절의 우리에겐 고등학교 입시가 될 수도 있고, 연인에게 하는 사소한 거짓말이 불러일으킨 이별일 수도 있고, 크게는 정치인이 자신의 당리당략에 빠져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국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의 한국은, 중학교 3학년 당시의 어린 친구들보다 못한 듯하다. 누구나 당장의 비난과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정의감은 시궁창에, 연대의식은 쓰레기통에, 공감은 변기에 처박아 둔 듯 하다. 지금 이 시점이든, 아니면 과거든 미래든 그 상태 자체가 결과인 것은 없다. 거의 모든 것은 과정이다. 결과 같은 과정이 있고 과정인 것이 분명하지만 결과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하지만 몇몇 정치인들 혹은 관료들은 지금이 자신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인 양, 과정이 아닌 결과로서의 향유될 어떤 것인양 마음껏 그것을 누리고 있다. 그 근저에는 권력에 대한 확신뿐만 아니라 국민을 무시하는 아주 더러운 태도도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비리나 부정의 그리고 각자도생을 보면서,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없고 특히 그 피하고 싶은 대상이 국민의 비난이나 정권의 획득 실패나 비리 탄로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작금의 이런 망발들이 놓치고 있거나 또는 놓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권력이나 영예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실망이요 국가의 전체적인 질서를 무너뜨리게 만드는 것들이다.

 


선생님의 몽둥이보다 무서운 것은, 국민의 판단이다. 판단일 것이라 믿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장의 고통이나 비난을 피하고 싶은 그 치사하고 옹졸한 마음들에 들려주고 싶어 글을 쓴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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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31. 18:53 내 생각

“37점”


이제부터 여러분이 읽게 될 이야기는,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나 중에서 자신이 어디까지 나아질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나 그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본어를 내 나이 또래가 흔히 접하던 계기로 접한 것은 아니었다. 내 또래가 ‘흔히 접하던 계기’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통해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게 된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을 ‘오타쿠’라고 불렀는데, 최근에는 ‘덕후’라 부르는 듯 하다.


나는 ‘러브레터’라는 영화를 보고,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된 후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만’이라는 뜻의 ‘케도’라는 발음이 재밌었다. 그렇게 배운 일본어를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꾸준히 배웠다.


어떤 목적이 있어 배운 것이 아니었기에, 일본어능력시험을 치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저 일본어를 배워 일본인과 말이 통한다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낀 것이 다였다. 일본어능력시험을 처음으로 치게 된 시기는 일본 교환학생이 끝날 무렵이었으니, 일본어를 접하고 거의 10년이 흐른 다음이었다.


일본어를 재미로 배우고 말하고 있던 대학교 1학년 2학기의 어느 날 일본 교환학생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다시 들어온 대학이었고 열정과 의지가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교환학생 모집 공고에는 ‘일본어능력시험 2급 이상 소지자와 그에 준하는 일본어회화실력을 가진 자’라고 되어 있었다. 자신만만하게도 회화실력 하나만을 믿고 지원을 했고, 덜컥 합격을 해버렸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일본 사이타마현의 한 대학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외국인 학생을 위한 일본어교실이 있었고, 그것은 교환학생이라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었다. 수업을 듣기 전 반편성 고사를 치렀다. 그때 받은 점수가


37점.


기억에도 어렴풋이 남아있는 ‘매우 낮은’ 점수였다. 물론 100점 만점이다. 나는 내가 최하위반에 가겠구나- 생각을 했고, 일본어교실을 담당하고 계시던 교수님과의 면담에 들어갔다. 여자 교수님이셨는데, 보랏빛이 도는 여성용 정장을 깔끔히 입고 계셨다. 나는 자리에 앉았고, 교수님께서 내게 한 가지 질문을 하셨다.


‘시험지에 나온 글을 읽었지요?’


시험지에 나온 글을 읽었냐니.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그 뉘앙스가 묘했다. 읽다 읽지 않다의 ‘읽다’가 아니라, ‘읽어내다’의 읽다 였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 나는 내가 일본어교실 중 가장 높은 반에 편성이 된 것을 알았다. 그 반에는 일본어능력시험 자격은 물론, 일본어한자시험인지 뭔지 나는 알지도 못하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쉽게 말해, 나보다 모두 일본어능력이 뛰어났다.


정말 힘들었다. 교환학생이라도, 아니 교환학생이므로 일반 일본인 학생들이 듣는 대학 수업도 들어야 했고 또 일본어 수업도 들어야했다. 오전에는 일본어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일반 수업을 듣었는데 내가 느끼는 난이도는 일본어 수업이 더 힘들었다.


말이 좋아 일본어교실이지, 일본의 역사나 일본 뇌사의 역사, 일본의 여러 이야기 등을 읽고 적고 쓰고 또 매주 시험을 치르기까지..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일주일일주일이 빠르게 흘러갔다.


역시나 점수는 꼴등.


한 단계 아래의 반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 단계 아래로 가면 다음 학기에도 다시 최상급 반의 일본어수업을 들어야했고 그럼 이 고생을 다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개겨 보기로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갈 즈음. 그러니까 한 학기가 한 달이 남은 즈음 점수가 갑자기 올랐다.


90점 대를 받기도 하고, 또 때론 두 개 이상 틀리지 않기도 했다. 놀란 것은 나 만이 아니었다. 우리를 가르치시던 일본인 선생님들께서도 놀라셨다. 하루는, 중년의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권 군의 실력이 급격하게 오른 게 화제입니다.


그만큼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멍청하게 보이는 것도 싫었고, 또 내가 어느 정도까지 나아질 수 있는지 궁금했기에 그 좋다는 교환학생, 그렇게 놀거 다 논다는 교환학생의 1학기를 일본어 공부와 학과 공부를 하며 보냈다. 물론 공부 밖에 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저녁에 피곤한 상태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자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일본어 단어와 문장을 외우기도 했고, 학과 수업은 내용 이해를 위해 매 시간 녹음을 해서 들었다.


일본어가 늘었다.


원했던 결과였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이룰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힘든 일은 그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는 법이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간에.) 내 일본어 실력은 엄밀히 말하면, 나의 노력이 일부 들어가 있는 내 주변 환경의 영향이었다. 쉽게 말하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경쟁하고 힘쓰는 환경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겸손’이라는 가치로 자신의 가능성을 쉽게 낮춘다. 하지만 무엇인가 배우려는 사람은 겸손하되 겸손하면 안된다. 겸손이 필요한 순간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아직 부족하구나’라는 것을 느낄 때이며 겸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은, '나도 저렇게 잘 할 수 있어' 라는 욕심을 가져야 하는 순간이다.


앞서 이야기를 했듯이, 여러분이 읽은 이야기는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을 할 수 없는 여건인 사람도 있고 또 지금의 상황도 충분히, 아주 충분히 힘든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지금 있는 곳 - 그곳이 학교여도 좋고, 직장이라도 좋고, 그 어디라도 좋다-에서 자신이 발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나고 싶다면 ‘다소 무리’라고 생각되는 범위나 ‘절대 무리’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여 보아도 될 듯 하다. 사람은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한다. 적응을 위한 초기에는 분명 힘들지만 어느 샌가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일본어교실을 담당하시던 교수님께서는, 문제는 틀렸지만 그것을 ‘읽어낸’ 나를 평가하셨다. 다시 말하면, 나아지길 원하는 나의-학생의 욕심을 알아차리신 셈이다. 이런 교수나 선생님 혹은 선배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좋은 선생님과 함께 있다. 바로 자기 자신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위의 이야기는 누구나에게나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중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고 그 배움을 통해서 더욱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글이, 하나의 방법이 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한계는 자신은 결코 모른다.


그러니 한 번 한계 너머로 자신을 던져보시길. 만약 너무 힘들어 다시 돌아오고 싶어도 한 번 더 참아보고, 그래도 정말 힘들면 그래도 한 번 더 참아보고 정말 죽을 듯이 힘들면 그때 돌아와도 된다. 그래도 당신은 그 전보다 성장해 있을 것이고, 그런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확신, 아니 예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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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9. 18:01 내 생각

"샤프를 쓰지 못한 이유"


지금도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초등학생은 샤프를 쓸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샤프를 쓰지 말라 하시기도 했고, 부모님께서도 연필을 쓰라 하셨다.


왜 샤프를 쓰지 못하게 했을까.


연필은 매번 깎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었고, 또 연필심이 쉽게 부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샤프를 사용하지 말라는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특별한 이유라기 보다, 샤프를 사서 쓸 수 없는 친구들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연필은 저렴했고, 샤프는 초등학생이 사기에는 고가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혹은 지역만 하더라도, 지금의 기준으로 금수저와 흙수저가 편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편한 친구가 될 수 있었지만 또 그와 동시에 부모의 재산이나 직업이 학생에 영향을 끼친 측면도 물론 있다. 옷차림만 보아도 알 수 있었고, 간혹 있는 생일 잔치에 초대받아 가면 그 친구의 환경을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부모의 재산이나 배경이 아이들을 주눅들게 하거나 자신의 현재를 비관하게 두지는 않았다. 아이들과 부모 각자가 서로를 배려하려 노력했다.


최근의 뉴스나 기사들을 보면 자신이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몇 평의 집에 사는지 등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구분 짓기'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부모의 직업으로 불려지는 것보다 정도가 더 심하게, 'OOO동'으로 불려지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또 간혹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고급 아파트 단지 사이로 지나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바리게이트를 치고 철조망을 친다는 기사를 읽을 때면, 고개가 자연스레 저어진다.


사회적 차별이란 별 것 아닌 듯 싶으면서도 한 사람에게, 특히 그 사람이 어린 아이라면 크게 영향을 끼치는 듯 하다. 옛날이 그립다는 생각이 아니라, 차이를 차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예전의 태도가 지금은 많이 사라진 듯 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학교 그리고 부모가 배려하는 속에서, 연필을 사용하게 된 아이들은 샤프를 사용하지 못하는 불만이야 물론 있었겠지만 다른 친구와 자신을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력에 의해 차별하지는 않았다.


헬조선이니, 금수저니 흙수저니 다양한 계급의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지금에서, 나는 연필 한 자루에 담긴 그 배려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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