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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1.18 산중턱이었다.
  2. 2016.03.28 착하던데요.
2017. 1. 18. 11:19 내 생각


"산중턱이었다."


산중턱이었다. 어린 시절이었으므로 오르긴 힘들었지만, 한 번 오르고 나면 높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탁트임과 그로 인한 청량감이 들었다. 할머니의 집(할아버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으므로, 주말마다 방문하는 곳은 자연스레 할머니의 집이 되었다, 그리고 정식명칭은 할매집이다.)은 산을 뒤로 세워진 단독주택이었다. 넓다거나 크다고는 하지 못했지만, 형과 내가 뛰어 놀 만큼의 공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결코 한 번도 빠져보진 못하겠지만 마산의 명치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합포만은 또 그만큼의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할머니집에서 가까운 곳에는 우물이 있었다. 할머니의 집 바로 앞 아래쪽에는 200평 남짓 되는 밭이 있었고 그 밭과 아랫집 사이에 흙길이 있었다. 그 흙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바로 그 우물이 있었다. 생각하는 그런 우물은 아니다. 물을 길어 쓰는 우물이 아니라 물이 넘쳐 흐르는 우물이었다. 무학산 줄기에서 흐른 물이 지하로 타고 흘러 마침 그곳에서 솟아 올랐고 그 물을 사용하기 위해 누군가 만들어 놓은 시멘트로 만든 우물이었다. 우물 주위에는 이끼나 고사리 같은 것이 푸르름을 더하고 있었고, 가끔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보라색 조그만 꽃들도 보였다. 그리고 아주머니들.

 

빨랫감을 들고 나와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들. 그들의 손에도 조그마한 꽃들이 피었다. 보라색은 아닌, 붉은 꽃. 그 꽃은 사람 손과 꼭 같았다. 붉게도 피었지만 손목에 붙어 부지런히 빨래에 묻은 삶의 때와 먼지들을 털어내고 있었다. 크지 않은 동네였으므로, 내가 그 옆을 지나갈 참이면 그 꽃들은 내 손을 잡고 내 볼을 꼬집었다. ‘해누, 왔나~.’ 인사를 꾸벅, 하긴 하지만 누군지 알지 못하는 아주머니들이다. 그저 매주 얼굴을 보고, 성씨를 붙이거나 출신지역을 붙인 ‘~으로만 불리는 아주머니들이다. (참고로 우리 할머니는 뒷길댁으로 불렸다. 길 뒷편에 살았기 때문이리라.) 꽃과 같은 손, 손과 같은 꽃들이 빨래를 하고 있는 그곳은 매주 할머지집에 갈 때마다 꼭 한 번씩 들렀다. 여름이면 거기서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웃통을 벗고 등목을 하기도 했고, 어머니를 따라 빨래를 하러 가선 이끼나 풀잎들을 뜯어다가 흘러가는 물에 슬며시 올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우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내가 성장하지 않을 것처럼.

 

시간이 흘러 할머니께서 이사를 하셨다. 혼자 사시기엔 큰 집이기도 했고 또 그만큼 융통할 수 있는 돈이 궁색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또 다른 할머니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다 몇 해 전, 우연히 그 우물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바짝 마른 우물, 그리고 더 이상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그 공간. 꽃 한 송이 피어 있지 않았고 누가 보아도 그저 둔덕이었다. 빨래를 하는 손 빨간 아주머니도 없었고, 나를 불러 세우는 이도 없었다. 나는 그 사이, 그곳을 오르는 데 힘을 들이지 않았고, 가능하면 차를 타고 가거나 할머니집 바로 뒤에 생긴 산복도로에서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그저 그랬다.

 

10여 년이 지나며 많은 것이 변했다. 할머니집이 있던 동네에는 소방도로가 생겼고, 그 소방도로로라는 주차공간이 생기자 사람들은 차를 타고 동네를 드나들었다. 그 동네에 살던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또 그렇게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 채워지는 새로운 동네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나는 청소년을 지나 성인이 되어 있었고, 메마른 우물 하나 보다 더욱 메말라 있을지도 모를 감성, 감정을 갖게 되었다. 살면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어릴 적의 추억이라기 보다 하루하루, 강하게 내리쬐는 감정 없는 논평과 시선과 그리고 생계, 그런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만약.

 

변하지 않고 만약, 그 우물이 그대로 예전처럼 흐르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푸른 이끼가 묘한 징그러움을 선사하고 보라색 조그만 꽃과 붉은 손꽃이 나를 반겼다면, 나 역시도 그 당시의 순수한 모습이 다시금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느낌으로 내가 다시 감정이 흘러넘치는 우물이 되어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길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랑은 모텔에서의 2시간으로만 상징되는 이곳에 한 방울 한 방울 감정을, 떨어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우물이 하나쯤,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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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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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8. 18:10 내 생각

"착하던데요."

2008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당시 다시 대학에 갓 들어온 '24살' 신입생으로서, 대학생으로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해보자는 생각에 이런 저런 곳에서 주최하는 강연을 찾아 들었다.


고려대에 재학중이던 친구로부터 당시의 진보신당의 대표였던 심상정 국회의원의 강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222번 버스를 타고 고려대로 향했다. 정치적인 입장이 유사해서도, 심상정 의원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에 향했다.


강연 내용은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상가가 아닌, 정치인의 말이란 시처럼 함축적이고 소설처럼 역동적이다. 하지만 시나 소설이 아닌 탓에 마음에 남지는 않았다.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문학은, 정책이 아닐까.


여튼


강연은 마쳤고, 고대 정문 앞의 한 식당에서 뒷풀이를 가지게 되었다. 고려대 진보신당 모임이 주축이 된 모임인 만큼, 관련된 관심을 가진 학생, 강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내 옆자리에는 고려대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신다는 분이 앉았다. 가볍게 내 소개를 했다.


"건국대에서 오셨구나. 건국대 학생들은 참 착하던데요."


내 소개를 듣자, 이어 앞의 문장을 정말 환한 얼굴로- 그 어떤 악의도 찾을래야 찾을 수 없게- 반가워하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대학들에서도 수업을 진행하지만, 서울대, 연대, 고대 같이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학교들이랑 비교해보면 건국대 학생들은 참 착해요. 크게 분란을 일으키지도 않고, 또 시키는 거 잘하고."


그렇구나. 당시 건국대 학부에 재학중이었으므로, 마치 내가 건국대를 대표해서 온 듯한 인상을 받긴 했지만, 그렇구나 정도로 말을 아꼈다.


간단한 저녁과 술을 먹고, 다시 2222번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착하다는 건 어떤 뜻일까. 또 그 착한 대상이 학문의 탐구를 하러 들어온 대학생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건국대 학생들이라는, 개개인이 아니라 집단적 의미로서의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랬다. 고려대는 투박하고, 연세대는 세련되고 서울대는 이기적이다 라는 인식이 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착하다'라는 평가는, 놀라웠다.


서울에 있는 종합대학 중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고 또 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수많은 '멋진' 친구들이 사회에서 바라 보았을 때는 단지 착한 대학생들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억울하기도 했다.


다시 생각했다.


세계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는? 세계경제 10위권에 머물러 있으면서, 역사와 전통이 있지만 착한 나라. 미국과 중국과 일본 그리고 다소 멀지만 러시아 사이에서, 식민지가 되기도 했지만 광복 이후 미국과의 동맹 속에서 미국의 말을 잘 듣고 있는 착한 나라.


누군가 외국에서 만난 사람이 우리 나라 사람을 두고, '착한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구나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듯 하다. 마찬가지로, 건국대 학생에 대한 이미지 역시 그래야만 했다.


세계 속의 한국과 서울에 있는 대학들 사이에서의 건국대. 참 많이 닮았다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는 많은 편견을 갖고 산다. 그 편견이 잘못된 것인지 잘못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불편하다. 편견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지를 갖는다.


개인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집단에 대한, 국가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니라도 항변하는 것은, 피해의식이 드러난 것 뿐이라고 또 비난 받기 딱 좋은 태도기도 하다.


뭐랄까.


살면서 많은 편견들과 마주치고, 또 개인이 매몰된 조직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 수긍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이런 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겪으면서도 또 동시에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상이 누구든지, 그 대상이 원하지 않은 편견과 이미지는 그 사람의 가능성을 낮추어 버리기 때문이다.


건국대도 그렇고, '아줌마'도 그렇고, '아저씨'도 그렇다. 마치 한국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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