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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02.19 여행과 수강신청
  2. 2016.08.29 교토에서 만난
  3. 2016.03.31 37점
2017. 2. 19. 21:17 내 생각

'여행과 수강신청'





1. 남들이 많이 듣는다고 내게도 좋은 수업은 아니다.



말 그대로, 남들이 많이 듣는 수업이라고 소문이 난 수업들은 학점을 잘 주거나 수업이 편한 수업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수업이 반드시 나에게 맞는 수업이라는 보장이 없다. 수강신청 이야기로 하면, 학점을 잘 준다는 수업이라도 절대평가가 아닌 이상, 누군가는 반드시 C이하를 받는다. 그리고 수업이 편하다는 것은, 열심히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 다시 말하면,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들어도 머리 속에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 수업을 비싼 등록금 내고 들을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점만을 따기 위해 들어온 곳이 대학이 아니라면 말이다. 남들이 많이 듣는 수업은 결국 남들에게는 좋은 수업일 수 있겠지만, 자신에게는 최악의 수업이 될 수도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 남들이 가서 좋은 여행지나 국가라고 해도, 자신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일본 오사카 정도가 딱 적당한 예인데 비자도 필요 없어지고 항공권도 싸게 많이 나오는 관계로 오사카에 많이 간다. 하지만 가보면 일본 사람보다 많이 만나는 게 한국 사람(특히 난바)이고, 예전부터 관광지였지만 이제 한국인들 대상으로 한 상술들이 많이 들어와 여행지라기 보다 쇼핑지구 혹은 식당지구 느낌이 많이 든다. 그리고 이미 너무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어서 가서 막상 보면 새로운 감동이나 일본 특유의 장점을 찾기 보다 '이미 어디서 본 듯한 사진'이나 '어디서 먹은 듯한 음식'만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돌아올 때 사오는 것들도 '도쿄 바나나'나 폼클렌징 크림 등. 그래서 오사카 여행은, 기본만 해도 손해는 없지만 자신의 경험이나 추억에 쉽게 남지 않는다. 돈은 들였지만 좋은 여행이었다 라기 보다 '좋은 쇼핑'이었다 정도가 남는 여행. 그래서 남들이 많이 간다고 해서 쇼핑을 싫어하거나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는 여행지는 피하는 게 좋다.



2. 강의 위주의 수업인지, 토론(발표) 위주의 수업인지를 확인하자.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 강의계획서 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강의계획서라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 그 강의계획서에는 이 수업이 어떤 교재를 갖고 수업을 할 것이며, 수업 방식과 평가 방식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적혀 있다. 그것을 읽으면 수업이 교수님이 일방적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스타일의 수업인지, 아니면 학생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수업인지를 알 수 있다. 우선 자신이 어떤 스타일인지 혹은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는지를 먼저 파악을 해야 한다. 강의 방식이 좋은 학생은, 이해 능력과 암기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학생일 것이고 토론(발표) 위주의 수업이 좋은 학생은 팀워크에 뛰어나거나 수업을 통해 친구들을 사귀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일 것이다. 우선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를 먼저 파악을 하고, 강의계획서를 보고 수강 신청을 해야 최악의 선택은 피할 수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 크게 여행을 패키지와 자유 여행으로 나눌 수 있고, 자유여행에도 혼자 가느냐 친구를 포함하여 둘 이상 가느냐 로 나눌 수 있다. 패키지는 어차피 혼자 간다는 개념이 애매하기 때문에 자유 여행에만 혼자/친구랑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여행 자체에도 '휴양'이 목적이냐 '탐험'이 목적이냐 로 나눌 수 있는데 휴양과 탐험은 여행지를 선택할 때 매우 중요하다. 휴양을 하고 싶은 사람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나 일본의 온천지역을 선호할 것이고, 탐험 스타일의 사람은 남/북미나 유럽 등지를 선호하리라 생각한다. 탐험이라고 적긴 했지만 오지여행을 가는 것은 아니고, 평소 접하지 못한 문화나 문물을 접하려는 의도가 있는 여행을 탐험이라 통칭했다.(실제로 오지로 여행가는 건 당연히 탐험) 탐험이냐 휴양이냐 역시도 자신이 어떤 스타일이냐 따라 다른 여행지를 갈 수 있다. 그리고 패키지와 자유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직접 계획 짜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자유여행,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패키지가 좋다. 스타일에도 맞지 않은데 굳이 자유 여행을 해서 일정 변경이나 숙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껴안기 보다 패키지라도 좋은 곳이 있으면 패키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친구와 함께'가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여성분들 중에 일부는 외국 여행을 할 경우 혼자 가면 무섭다고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시는 분들이 있다. 물론 친한 친구와 함께 가겠지만, 여행에 가서 여행지의 상황이나 현지인보다 친구가 무서워 질 경우도 있다. 어떤 곳이든 둘 다 처음 가보는 곳이면 긴장하게 되고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고, 만약 다투기 까지 하게 되면 여행은 여행대로 망치고 우정은 우정대로 금 간다. 여행을 혼자 갈 것인지 친구와 갈 것인지에 대해서 판단이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은, 여행을 같이 언젠가 가보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먼저 함께 국내여행을 가볼 것을 추천한다. 국내에서는 말도 다 통하고 돈 문제도 없으니 크게 충돌할 것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단 둘이 의논해서 해결할 문제들은 지역과 나라를 떠나서 언제든 일어나기 마련이고, 거기서 자신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길게 적었지만, 수강신청도 마찬가지고 여행도 마찬가지고 자기 스타일을 알아야 한다. 자기 스타일도 모른 채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거나, 막연한 불안함 때문에 친구와 무조건 함께 를 외친다면 자신도 힘들고 같이 간 누군가도 반드시 힘들어 지게 마련이다.

 



3.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이 좋은 수업.

 

1번과 맥락이 통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포인트가 다른 내용이 있다. 대부분 선배들이 추천하는 수업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성적 잘 주고 듣기 편한 수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수강신청 경쟁률은 치열하고, 막상 수업을 들어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헛돈 그리고 헛시간 날리는 것이라는 것은 앞서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하는가 하면,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찾아서 들어야 한다. 교재와 수업 방식은 강의계획서에 적혀 있는 대로 하는 교수님들이 대부분이니, 꼼꼼히 살펴보거나 혹은 수강신청 전에 궁금한 게 있으면 강의계획서에 적혀 있는 교수님 메일이나 연락처로 질의를 보내도 된다. 어떤 수업에 관심이 생기고, 그 내용에도 관심이 있다면 그 수업을 신청하면 될 것인데, 가장 크게 걱정되는 것은 역시 학점이겠다. 하지만 학부수업의 수준에서 자기 학과 학생이든 타과 학생이든 수업을 들었을 때, 전혀 이해가 되지 않게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는 없다. 또 어떤 수업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인 만큼 다른 학생들보다 열의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가 교수든 박사과정이든 혹은 시간강사이든 관계 없이 수업시간에 열의를 보이는 학생에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제공한다. 그것이 반드시 학점이 아닐지 모르나, 열의를 갖고 열심히 공부를 하면 학점은 분명 좋게 나올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남들이 가는 여행지 말고, 자신이 정말 가고 싶었던 여행지를 찾았다면 그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불안감보다 궁금증과 호기심 혹은 어떤 주제를 갖고 여행을 떠나라. 이미 인터넷에 여행지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으니, 자신이 가고 싶은 여행지를 찾았다면 그곳에서 자신이 정한 주제에 맞는 여행코스를 새롭게 짜보거나 소소한 일탈 등을 추가한다면 분명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남들이 다 가는 여행지는 분명 검증이 되었다는 안도감은 들 수 있겠으나 새롭게 개척하는 재미는 반감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미 책에 나와 있는 어떤 식당이나 유스호스텔, 관광지 말고 현지에 직접 가서 현지인에게 길이나 식당을 묻거나 추천을 받으면 현지인만 알고 있는 좋은 곳을 추천 받을지 모르니 그런 재미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어느 나라든, 여행자들이 자신의 나라 혹은 도시에 관심을 갖고 어떤 질문을 해오면 그 고마움을 반드시 느낀다. 그래서 그 열정이 전달되어 더욱 좋은 여행지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놓치지 말길. 수강신청도 마찬가지고 여행도 마찬가지고, 자신이 주도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 성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4. 수업이 끝난 뒤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를.

 

수강신청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되면 수업에 맞춰 학기가 시작된다. 학기가 시작되면 첫 주는 수업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지고, 보통 두 번째 주부터 진짜 수업을 시작하는 학교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한 달 반 정도가 지나면 중간고사를 치고, 다시 한 달 반 정도가 지나면 기말을 친다. 길게는 4개월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3개월 정도의 체감 기간을 갖는다. 그 이유는 3월이 되면 신입생들은 학생회나 학교의 일정에 짜여진 행사로 정신이 없고, 정신 좀 들까 싶으면 중간고사, 중간고사가 끝나서 좀 놀까 싶으면 레포트 하나, 레포트 하나 다 쓰고 좀 쉴까 하면 기말고사를 치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지났는지를 알 수가 없다. 신입생뿐만 아니라 2,3학년도 마찬가지이다. 신입생 들어왔다고 좋다고 같이 놀다가 같은 결론으로... 최근에는 취업 준비와 학점 관리 때문에 노는 학생들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 학기가 짧게 느껴지는 것은 여전하리라. 이런 짧은 느낌을 줄이기 위해서는, 매주 수업이 끝나고 나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업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트를 정리하든 교과서를 다시 읽든 아니면 녹음을 해둔 파일이 있다면 녹음을 통해 다시 수업을 되새김질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매주 수업이 끝나고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겠지만, 대부분의 대학 시험이라는 것이 이해와 암기 능력을 묻는 시험이 기본이므로 시험기간이 되면 다들 암기에 열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술과 연애(실패)에 찌들어 있던 자신을 시험기간 직전에 발견하고, 3월 중순에 배운 것을 기억해내려 하지만 노트에는 누군가 기억은 안나지만 자신의 글씨체로 써놓은 내용만이 가득하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매주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을 정리해 놓으면 시험 대비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식 축적에도 큰 도움이 된다.

 

여행도 마찬가지. 여행을 양적으로 다니는 사람이 있고, 질적으로 다니는 사람이 있다. 굳이 나눌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많이 다녀보고 어디가 좋은지 알아보자는 사람이 양적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고, 한 군데를 가더라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살펴보고 관찰하고 또 그것을 통해 얻은 경험이나 지식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정리해 놓는 사람을 질적인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라 구분하고 싶다. 양적과 질적 중 무엇이 좋다 나쁘다의 기준이 아니라, 양적인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 역시도 분명 질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여행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여행을 정리한다. 그 방식이 사진이 되었든 글이 되었든 아니면 그림이 되었든 다양하지만, 아주 긴 여행에서는 규칙적으로 기록을 정리하고 남기고, 짧은 여행에서는 집으로 돌아온 뒤 사진이나 메모 등을 바탕으로 정리를 하곤 한다. 그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 여행기나 여행 에세이가 되는 것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은, 그 여행 당시의 기억을 소중히 생각하고 또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정리를 한다. 그래서 누군가 어느 여행지에 대한 질문을 하면 마치 어제 갔다 온 것처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여행 중/후의 정리가 가지는 힘이다. 마치 대학수업을 들은 후 자신의 방식대로 정리한 내용들이 자신이 지식이 되듯.



 

5. 방학은 정리이자 재정비

 

한 학기를 다 보내고 나면, 학기 초의 수강신청은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다시 수강신청이 돌아온다는 것은 분명하다. 신입생의 경우, 대학교라는 곳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을 테지만 분명 반복된 실수를 할 것이다. 오히려 더 학점 잘 주는 수업은 없는지, 이왕 시험공부 한다고 힘들 것 학기 중이나 좀 편하게 다니자 싶어 레포트도 없고, 과제도 없는 수업을 찾아 다니는 하이에나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대학생활은 딱히 지식의 측면에 있어서는 기억이 남지 않는다. 물론 수업에 충실하지 않은 대신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 대외활동에 참여한다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수업을 통한 지식측면에서는 충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방학은 말 그대로 방학이고, 대학의 방학은 도약의 계기가 된다. 학기 중에는 수업을 소화하느라 깊게 읽지 못했던 전공서적이나 추천도서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도 하고, 직접 답사를 가볼 여유가 없었던 곳에 답사도 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어느 분야와 어떤 방식에 관심이 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높여나갈 수도 있다. 이런 방학기간 동안 다음 학기를 준비하고, 한층 성숙된 학기를 보낼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다.

 

여행도 그렇다. 일정한 주거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여행이 끝나면 그곳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분명한 것은, 여행을 떠나 있는 기간 만큼 여행과 여행 사이의 기간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행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서로가 느낀 색다른 느낌을 공유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다음 여행지에 대한 준비와 정보습득을 할 수 있는 기간이 되기도 한다. 여행은 여행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데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가고 싶다 라고 마음 먹는 순간부터가 여행이다. 실제 여행은 아닐지라도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행에 대한 기대와 그 기대에 부응하는 착실한 준비는 다음 여행에서의 큰 보답으로 다가온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는, 어떤 여행지가 자신에게 맞는지 혹은 자신이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하거나 필요한 여행자금을 모을 시간이 되기도 한다. 또 여행 메이트를 찾기도 한다. 여행과 여행 사이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다음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천차만별이다. 마치 방학에서의 성장이 다음 학기에서의 성장으로 이어지듯이 말이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는 못해도, 한 번 다녀온 여행지는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 여행과 수강신청이라는 두 가지의 전혀 다른 행위가 연결이 될 수 있을 듯 하여 글로 옮겨보았다. 수강신청이라고는 해도 대학생활 전반을 다루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고 또 이미 수강신청이 끝나버린 대학도 있어 시기에 적절성에는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한다. 그리고 여행도, 개인마다 다양한 방식이 있고 또 그만큼 수단이 어울리는지 혹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 역시 다양해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학의 한 학기를 짧은 지식 여행이라고 본다면, 수강신청 역시 여행의 준비라고도 할 수 있고 여행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행은, 직접 여행을 하는 것만큼 간접 여행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읽어보고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참조해주시길, 감히 바라본다.

 

추신. 수강신청은 대학을 들어가서 하는 것인 만큼 이 글을 쓰면서, 대학을 가지 않았거나 혹은 가지 못한 분들에게 불편함을 드리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수강신청은 대학생들이 자신이 어떤 수업을 들을 것인지를 정하는 과정입니다. 대학생활의 내용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신 분이 있으시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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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29. 23:59 내 생각


"교토에서 만난." 2016.08.29.


처음에는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하는 줄 알았다.

 

일본 교토의 어느 시민회관에서 후쿠야마 테츠로(福山哲郞) 민진당 참의원의 강연이 끝난 뒤, 점심을 먹고 캔 커피를 하나 사러 나온 길이었다. 나와의 거리가 2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을까. 한 여자가 무릎을 바닥에 댄 뒤 양손 역시 바닥에 대며 수그리고 머리를 숙인 채 한 참을 있었다. 처음에는 교토라는 지역에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절도 많고 또 전통을 지키는 곳이라 생각해서, 삼보일배를 하는 승려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금 자세히 보니, 거지였다. 그것도 여자 거지. 그날도 날씨는 더웠고, 여자 거지의 옷도 그만큼 가벼워져 있었다. 긴 바지를 입고 조리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상의는 가슴이 거의 드러나 보이는 검은 민소매 티 하나를 달랑 입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부스스했고, 얼굴과 드러난 팔과 손은 검게 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삼보일배라고 오해했던 그 행동은, 다름 아닌 자판기 밑에 떨어진 동전을 찾는 행위였다. 일본은 길거리에 자판기가 많다. 음료 자판기 뿐만 아니라 담배 자판기도 있었기에 분명 그 아래에 동전을 실수로 떨어트리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저 여자 거지는 그런 동전 중 하나를 발견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바로 자판기 앞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호주머니에는 일본 엔화 동전이 가득 있었고, 지갑에는 빳빳한 일본지폐가 두둑히 있었다. 그리고 내 앞으로 사람이 지나갔다. 그 사람은 누군가가 자판기 아래에 실수로 떨어트린 동전을 찾기 위해 무단횡단을 하며 지나가는 일본의 여자 거지였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단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많은 단편을 남긴 그였기에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단편소설의 내용은 일본의 탄광마을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탄광에서 일을 하며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사는 극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당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로 팽창일로를 걷던 일본 내에서도 이런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었겠구나 하는 일종의 측은함을 느꼈다. 식민본국의 국민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식민지의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일상적 삶과는 유리(遊離)된 제국주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 조지 오웰(George Orwell)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다. 조지 오웰 자신의 삶과 그 주변의 삶을 르포 형태로 적은 이 책에서는, 담배와 홍차를 포기하지는 못하지만 역시 극도로 가난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국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산업혁명과 중상주의 정책으로 영국은 세계제국이 되었음에도 그 혜택은 결코 모든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20168월의 일본 교토에서는 수많은 관광객이 붐볐고 버스 안은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키요미즈데라(청수사)에서 바라본 교토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발전되었고 화려했다. 하지만 그 도시 안, 어느 곳에서는 자판기 밑에 떨어진 동전을 주우며 다니는 여자 거지가 있었다.

 

화가 난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건너며 수많은 국가들이 시장 개척이나 영토 확보 등의 이유로 다른 나라를 침략했고, 각 나라의 전통을 말살시켜 가며 자국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웠다. 우리나라 역시 그 대상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화가 난 부분은, 그렇게 다른 나라 국민들의 생사와 역사를 짓밟았으면 자국의 국민들이라도 편히 먹게 살게라도 해줄 것이지, 그러지도 못할 것이면서 왜 다른 나라에 침략을 했더란 말인가. 결국은 많이 가진 자가 더욱 많이 갖기 위해, 그것이 권력이든 돈이든 아니면 다른 그 어떤 것이든, 자국을 희생하며 또 다른 희생자를 찾는 것 뿐이었지 않냐 말이다.

 

이날 오전에는 한국과 일본과의 교류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일본 참의원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그 직후 일본에 살고 있는 거지도 만났다. 내 눈 앞의 자판기 아래에 동전이 없자 빠르게 다음 자판기를 찾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일본 참의원의 눈빛에는 자신이 36살에 당선이 된 후 18년 간 계속 참의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서렸다. 그 자신감 찬 눈빛과 여자 거지의 생존을 위한 눈빛은 도저히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국경을 갖춘 근대국가가 형성된 시점은 유럽에서의 30년 전쟁이 끝난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이라는 것이 정치학계와 국제법학계에서는 정론으로 받아들여진다. 전쟁의 상대국이었던 국가 내부의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기 위해 30년 간 싸웠다는, 그 어이 없는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것이 국경이다.

 

국민과 국경. 이것은 단지 누가 더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고 누가 더 경제력이 있는지를 살피는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되어서도 안된다.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이 과거에는 군주였고, 지금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국민들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그 지배집단을 선출하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국가 안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핍박받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경이란, 바로 그 국경 안에서만이라도 그런 사람들이 사라지길 바라는 지배집단의 의무가 다하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일본 교토에 가서, 국경과 국민 그리고 지배집단의 의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더불어 빈곤계층을 안정적인 삶의 궤도에 올리는 옳은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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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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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31. 18:53 내 생각

“37점”


이제부터 여러분이 읽게 될 이야기는,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나 중에서 자신이 어디까지 나아질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나 그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본어를 내 나이 또래가 흔히 접하던 계기로 접한 것은 아니었다. 내 또래가 ‘흔히 접하던 계기’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통해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게 된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을 ‘오타쿠’라고 불렀는데, 최근에는 ‘덕후’라 부르는 듯 하다.


나는 ‘러브레터’라는 영화를 보고,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된 후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만’이라는 뜻의 ‘케도’라는 발음이 재밌었다. 그렇게 배운 일본어를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꾸준히 배웠다.


어떤 목적이 있어 배운 것이 아니었기에, 일본어능력시험을 치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저 일본어를 배워 일본인과 말이 통한다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낀 것이 다였다. 일본어능력시험을 처음으로 치게 된 시기는 일본 교환학생이 끝날 무렵이었으니, 일본어를 접하고 거의 10년이 흐른 다음이었다.


일본어를 재미로 배우고 말하고 있던 대학교 1학년 2학기의 어느 날 일본 교환학생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다시 들어온 대학이었고 열정과 의지가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교환학생 모집 공고에는 ‘일본어능력시험 2급 이상 소지자와 그에 준하는 일본어회화실력을 가진 자’라고 되어 있었다. 자신만만하게도 회화실력 하나만을 믿고 지원을 했고, 덜컥 합격을 해버렸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일본 사이타마현의 한 대학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외국인 학생을 위한 일본어교실이 있었고, 그것은 교환학생이라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었다. 수업을 듣기 전 반편성 고사를 치렀다. 그때 받은 점수가


37점.


기억에도 어렴풋이 남아있는 ‘매우 낮은’ 점수였다. 물론 100점 만점이다. 나는 내가 최하위반에 가겠구나- 생각을 했고, 일본어교실을 담당하고 계시던 교수님과의 면담에 들어갔다. 여자 교수님이셨는데, 보랏빛이 도는 여성용 정장을 깔끔히 입고 계셨다. 나는 자리에 앉았고, 교수님께서 내게 한 가지 질문을 하셨다.


‘시험지에 나온 글을 읽었지요?’


시험지에 나온 글을 읽었냐니.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그 뉘앙스가 묘했다. 읽다 읽지 않다의 ‘읽다’가 아니라, ‘읽어내다’의 읽다 였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 나는 내가 일본어교실 중 가장 높은 반에 편성이 된 것을 알았다. 그 반에는 일본어능력시험 자격은 물론, 일본어한자시험인지 뭔지 나는 알지도 못하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쉽게 말해, 나보다 모두 일본어능력이 뛰어났다.


정말 힘들었다. 교환학생이라도, 아니 교환학생이므로 일반 일본인 학생들이 듣는 대학 수업도 들어야 했고 또 일본어 수업도 들어야했다. 오전에는 일본어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일반 수업을 듣었는데 내가 느끼는 난이도는 일본어 수업이 더 힘들었다.


말이 좋아 일본어교실이지, 일본의 역사나 일본 뇌사의 역사, 일본의 여러 이야기 등을 읽고 적고 쓰고 또 매주 시험을 치르기까지..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일주일일주일이 빠르게 흘러갔다.


역시나 점수는 꼴등.


한 단계 아래의 반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 단계 아래로 가면 다음 학기에도 다시 최상급 반의 일본어수업을 들어야했고 그럼 이 고생을 다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개겨 보기로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갈 즈음. 그러니까 한 학기가 한 달이 남은 즈음 점수가 갑자기 올랐다.


90점 대를 받기도 하고, 또 때론 두 개 이상 틀리지 않기도 했다. 놀란 것은 나 만이 아니었다. 우리를 가르치시던 일본인 선생님들께서도 놀라셨다. 하루는, 중년의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권 군의 실력이 급격하게 오른 게 화제입니다.


그만큼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멍청하게 보이는 것도 싫었고, 또 내가 어느 정도까지 나아질 수 있는지 궁금했기에 그 좋다는 교환학생, 그렇게 놀거 다 논다는 교환학생의 1학기를 일본어 공부와 학과 공부를 하며 보냈다. 물론 공부 밖에 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저녁에 피곤한 상태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자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일본어 단어와 문장을 외우기도 했고, 학과 수업은 내용 이해를 위해 매 시간 녹음을 해서 들었다.


일본어가 늘었다.


원했던 결과였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이룰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힘든 일은 그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는 법이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간에.) 내 일본어 실력은 엄밀히 말하면, 나의 노력이 일부 들어가 있는 내 주변 환경의 영향이었다. 쉽게 말하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경쟁하고 힘쓰는 환경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겸손’이라는 가치로 자신의 가능성을 쉽게 낮춘다. 하지만 무엇인가 배우려는 사람은 겸손하되 겸손하면 안된다. 겸손이 필요한 순간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아직 부족하구나’라는 것을 느낄 때이며 겸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은, '나도 저렇게 잘 할 수 있어' 라는 욕심을 가져야 하는 순간이다.


앞서 이야기를 했듯이, 여러분이 읽은 이야기는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을 할 수 없는 여건인 사람도 있고 또 지금의 상황도 충분히, 아주 충분히 힘든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지금 있는 곳 - 그곳이 학교여도 좋고, 직장이라도 좋고, 그 어디라도 좋다-에서 자신이 발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나고 싶다면 ‘다소 무리’라고 생각되는 범위나 ‘절대 무리’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여 보아도 될 듯 하다. 사람은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한다. 적응을 위한 초기에는 분명 힘들지만 어느 샌가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일본어교실을 담당하시던 교수님께서는, 문제는 틀렸지만 그것을 ‘읽어낸’ 나를 평가하셨다. 다시 말하면, 나아지길 원하는 나의-학생의 욕심을 알아차리신 셈이다. 이런 교수나 선생님 혹은 선배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좋은 선생님과 함께 있다. 바로 자기 자신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위의 이야기는 누구나에게나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중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고 그 배움을 통해서 더욱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글이, 하나의 방법이 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한계는 자신은 결코 모른다.


그러니 한 번 한계 너머로 자신을 던져보시길. 만약 너무 힘들어 다시 돌아오고 싶어도 한 번 더 참아보고, 그래도 정말 힘들면 그래도 한 번 더 참아보고 정말 죽을 듯이 힘들면 그때 돌아와도 된다. 그래도 당신은 그 전보다 성장해 있을 것이고, 그런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확신, 아니 예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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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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