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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4.21 길어도 괜찮아
  2. 2016.03.28 "종이 한 장"
  3. 2015.01.15 현우의500자_40
2016. 4. 21. 00:14 내 생각

길어도 괜찮아.”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은, 2009년 일본에 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페이스북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꽤 많은 친구들이 가입을 했고, 서로의 일상과 가벼운 인사를 담벼락에 남기는 도구로서 좋은 도구라 여겨졌다. 당시의 페이스북은 지금의 페이스북과는 상당히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면은 훨씬 조잡했고 채팅 기능은 있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렇게 광고가 많지 않았다.

 

벌써 7년 째 페이스북을 하고 있다.

 

뭔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한 서비스를 사용한다는게 놀랍기도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나에게 있어 약 1년 반 전부터 페이스북 사용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특별한 변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페이스북에 어머니께서 가입을 하신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몇 해 전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셨으면서도 페이스북은 하시지 않으셨다. 아마 하시는 방법을 모르셨을 것이다. 1년 반 전 고향에 내려간 김에 어머니의 스마트폰에 페이스북을 깔아드렸다. 집에 노트북도 한 대 내려보내드렸는데, 노트북보다는 폰이 쓰시기 편하실 듯 했다.

 

그리고 나는 페이스북에서 더욱착한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께서 가입하시기 전에는, 술을 마신 뒤 다소 우울한 내용이나 특정한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정치적으로 날카로운 글을 마구 싸적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가입 이후, 나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불편해졌을까? 답답해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물리적 거리가 먼 어머니와 더욱 심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적을 때에도 읽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며 적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어머니께서는 페이스북을 하시면서, 작은 아들이 서울에서 어떻게 하며 살고 있는지를 직접 보실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아실 수 있게 되었다. 또 작은 아들의 글을 꼭 읽으시며 응원의 한 마디나 농담 한 마디까지 던져주시게 되었다.

 

그리고 또 나는, 내 글의 팬을 얻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적은 글은 꼭 읽으신다 하셨다.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으시곤 나에게 어머니의 생각을 말씀해주신다. ‘정말 좋은 글이다.’ ‘이번 글은 좀 이해가 잘 안된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시며 내게 조언해주신다. 어머니는 내 글의 팬이다.

 

얼마 전,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글을 페이스북에 적었다. 어머니께서 그 글을 다 읽으셨다며, 이야기를 이으셨다. “매일 올라오는 너의 글이 갑자기 올라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게 된다.”하신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글을 매일 적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기다리지 마세요. 어머니께서 말씀 이으시며, “글이 길어서 읽기 힘들지만, 끝까지 다 읽을테니 계속 글 적어줘.” 내가 되묻는다. 글이 길어요? 그럼 좀 짧게 적을까요? 어머니 대답하시길,

 

길어도 괜찮아.”

 

되도록 길게 적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 길어지면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 글 역시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머니께서는 괜찮다 하신다. 길어도 읽어주시는 마음이 고맙고 또 한편으로 미안하다.

 

페이스북을 한 지 7. 지금은 단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훔쳐볼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꽤 멀리 살고 있는 나의 가족에게 혹은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누군가 나의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지금, 2016, 32살의 권현우라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목소리가 되었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기쁘다. 읽어주셔서 고맙다. 누구보다 어머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들은 오늘도 하루 열심히 살았고, 내일도 오늘 보다 나은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할겁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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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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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8. 18:06 내 생각

"종이 한 장"


2005년, 혼자 전라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다닐 적의 이야기다. 목포와 광주를 거쳐 전주에 도착한 나는, 그때는 유명했지만 한적했고 지금도 유명하지만 사람으로 북적댄다고 들리는 한옥마을을 들리기도 하고, 경기전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전북대학교에 들러 아침 학식을 먹기도 했는데, 아마 사진첩 어딘가에는 그 식판 사진이 남아있으리라.


전주 여행을 즐기던 중, 한지를 만드는 공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껏 기대하고 찾아간 곳은 그저 평범한 마을이었다. 회색 콘크리트 벽 사이로 '한지 공방'이라는 네모난 플라스틱 간판이 보였다. 한쪽에는 한지로 만든 여러 물건들을 파는 곳이 있었고, 쇠문 안으로 보이는 곳에서는 누군가 분주히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다.
창문으로만 채광을 하는 듯 했다.


날씨가 좋았던 봄날이라, 하얀 한지풀이 가득 담긴 목욕탕 욕조같은 큰 통에서 아지랑이가 설핏 보일 정도였다. 그때 그곳을 찾아간 사람은 나 혼자였다. 하지만 한지를 만드시고 계신 아저씨께서는, 나와 같은 관광객을 자주 접해보셨는지 내가 있든 없든 하시던 일을 묵묵히 하고 계셨다.


아저씨의 왼쪽 팔뚝에는 조잡한 문신이 보였다. 순간 쫄았지만, 내가 한지를 훔쳐갈 생각이 없는 순수한 여행자라는 것을 티내기 위해 경탄의 눈빛과 신기하다는 표정을 한껏 지으며 아저씨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한지풀에 담겨져 있는 큰 판떼기를 아저씨는 앞뒤로 흔들었다. 판떼기는 기둥의 노끈과 연결되어 있었기에, 아기 한 명이 타면 좋은 그네 같아 보이기도 했다. 몇 번의 흔들거림을 반복한 뒤, 아저씨는 그 판떼기를 한지풀에서 완전히 건져냈다. 그리고 처음에는 내눈에 보이지 않았던 판떼기 한 구석의 실을 집어 한지 한 장을 들어냈다.


부서지지도 않고, 퍼지지도 않고 그 형체 그대로 흐물흐물한 물 먹은 한지가 판떼기로부터 분리되었다. 아저씨는 익숙한지 그 한지를 이전에 만든 한지들이 켭켭이 쌓여 있는 옆으로 조심스레 옮겼다. 옮겼다 라기 보다 '얹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왜 한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


그 한지 한 장, 참 얇았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반투명상태의 한지 한 장이 마르면 불투명한 한지가 될 것이고, 예전 우리 선조들은 거기에 글을 적고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한지에 글그림을 입히기도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한지 한 장은 참 얇았을 것이지만, 그 얇은 한 장의 한지가 모여 책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 좋은 아찔함이 느껴졌다.


대학원에 복학하고, 이제 3주 정도가 지났다. 아직도 누군가가 적응했냐 라고 물으면, 글쎄..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그 사이 많은 책을 읽었고, 논문과 다른 학우들의 의견들을 들었다. 읽었고, 또 읽었고 또 쓰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어떤 '지식'의 창출자나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다


한지 한 장의 얇음이 떠오른 것이다. 얇아도 그것이 한 장 한 장 쌓이면, 언젠가는 두께를 만들고 그 두께 속에 사람들은 글을 적고 그림을 그렸다. 한지도 그럴진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는 더욱 얇디 얇고, 또 기껏 기억해놓으려 애써도 사라져버리는 머리 속 뇌이니 그저 묵묵히 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다들 '성공'을 바라는 듯 하다. 나와 같이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학문적 성공이 그 목표가 될 수도 있고, 가수가 되고자 하는 연습생에게는 데뷔가 그 성공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 아니, 대부분이라고 해두지- 가만히 살펴보면 한 번에 덜컥 되는 것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들은 당연하다고 해도, 그것을 참아낼 수 있는 인내 역시 필요한 듯 하다.


종이 한 장의 얇기는 얼마나 얇을까. 오늘 내가 익힌 지식은 또 얼마나 미천할까. 가수라면, 오늘 내가 연습한 노래 한곡이 얼마나 많은 틀린 음정이 있었던가 를 생각해보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만두지 않는다.


한 번에 일어서는 아기는 없다. 한 번에 책을 쓰는 사람도 한 번에 유명해지는 사람도 없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위해 꾸준히 얇은 한지 한 장 올려 놓듯이 그렇게 해내 가면 되는 것 같다.


복학하고 공부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요즘, 나에게도 위로가 필요할 듯 하여 글 한 번 남겨둔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하는 또 다른 사람에게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꾸준히 뭔가를 하다보면 남들이 알아봐주든 알아봐주지 않든 뭔가는 해내지 않겠냐고, 위로도 한 번 던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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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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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5. 02:14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40


위로의 말 중에서 내가 가장 나쁜 말로 꼽는 말은 '남들도 다 그래.'이다. 누구나 힘든 시기를 겪는다. 그 사람이 어떤 시련을 겪고 있는지는 그 사람을 제외한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밖에 없다. 그 간접성이 때로는 직접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자신 역시도 겪어 보았던 시련이라는 확신이 들 때이다. 전쟁의 참화라던지, 분단이라던지 혹은 핵 폭발 등 극단적인 경험은 어찌 보면 일부의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시련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시간에 의해 특수한 경험으로부터 배제 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비슷한 시련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비슷한 시련은 없다. 각기 다른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가볍게 이야기한다. "남들도 다 그래. 나도 그랬어." 위로의 말이겠지만, 나는 이 위로를 듣다보면, 내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령 예를 들면, 내 이름 석 자나 내 글 몇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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